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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차일드 (Moon Child) – Born 1 (1995)
1995, 신세계레코드
가수 이현우가 시나위, 아시아나, 자유 출신의 베이시스트 김영진과 의기투합해 만든 밴드
게스트 뮤지션으로 김도균, 신윤철, 김민기(드럼) 등이 참여
https://youtu.be/tBKgqrGtVN0?si=NOo5hZx-2BeprNT5
가수 이현우가 시나위, 아시아나, 자유 출신의 베이시스트 김영진과 의기투합해 만든 밴드
게스트 뮤지션으로 김도균, 신윤철, 김민기(드럼) 등이 참여
https://youtu.be/tBKgqrGtVN0?si=NOo5hZx-2BeprNT5
이현우는 신세계레코드와 전속계약을 맺고 1991년에 그 해를 대표하는 댄스뮤직 히트곡 꿈이 수록된 데뷔음반 black rainbow를 발표하였습니다. 그리고 1993년에 발표한 2집에 수록된 이 거리엔 비가를 발매되기 전인 1992년부터 방송에 출연하면서 홍보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거리엔 비가는 techno, house , rock mix등 총 3가지 버전이 있는데 이 중에서 techno mix 버전을 중점적으로 홍보하였죠. house mix 버전도 가끔 홍보하였습니다. 김영진은 명 베이시스트로서 시나위, 카리스마, 아시아나와 같은 전설적인 밴드에서 활동하였고 1991년에 신대철, 고 오경환과 함께 자유 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데뷔음반을 신세계레코드에서 발매하였습니다. 1994년 초 부터 문차일드의 음반 제작이 시작되었습니다. 한국과 영국에서 제작된 이 음반은 작곡부터 시작해서 레코딩 까지 6개월이 넘는 제작 기간을 거쳐서 완성되었습니다. 당초 더블음반으로 발표할 계획이었지만 모종의 이유로 born 1, born 2 따로 발매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born 1만 발매되었고 born 2는 당시 소속사였던 신세계레코드에서 지금까지 마스터테이프를 주지 않고있습니다. 이 음반은 홍보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당시 소속사와의 마찰이 심했죠. 1993년 이현우는 자신의 2집 발매를 앞두고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경찰에 구속되었고 그로 인해 방송 출연정지 제재를 받았지만 같은 해 말경에 출연정지 해제가 되었음에도 KBS, MBC, SBS를 비롯한 공중파 TV와 RADIO에도 나갈수 없었습니다. 당시 케이블 방송국이었던 M.NET, KMTV의 TV프로그램에 딱 2번 출연한게 전부였죠. born 1은 정식으로 발매 된지 얼마안가서 회수조치 당한 비운의 걸작입니다. 발매 당시 몇백장 밖에 배포되지 못했는데 말이죠. 카세트와 CD로 발매된 이 음반은 오랫동안 중고시장에서 희귀음반으로 지목되었고 특히 CD는 현재까지 초고가로 거래되고있습니다. 이 후 1996년에 이현우의 스페셜 음반 일시정지에 문차일드의 born 1에 수록된 전곡이 수록되었지만 그 음반도 중고시장에서 고가로 거래되고있습니다. 이 음반에 수록된 후회라는 노래는 원래 이현우의 2집에 처음 공개되었고 이후에도 이현우의 3집 그리고 1999년에 개봉한 (김희선,송승헌 주연의) 영화 카라 O.S.T에 재편곡되어져서 공개되었습니다. 나의 노래와 비는 1996년에 발매된 이현우의 (가,거의 1년이 수록된) 3집에 재편곡되어져서 공개되었죠. 특히 나의 노래는 2001년에 발매된 이현우의 리믹스음반(한국의 저명한 일렉트로닉 뮤지션 Fraktal이 리믹스와 프로듀싱을 맡았죠)에 리믹스 버전으로 수록되면서 그 버전이 다른 버전에 비해서 알려진 편이죠. 문차일드는 born 1이 발매되고 나서 신윤철과 김민기를 정식멤버로 영입할 예정이었습니다. 애초에 이 음반이 예정대로 더블음반으로 발매됬다면 (내년 2025년이 이 음반이 발매된지 30년됩니다.) 비운의 걸작이 되지 않았을겁니다. 1995년 당시에 한국에서 더블음반으로 발매된 사례가 그 이전에도 아예 없었죠. 그 전에 1992년에 윤상이 자신의 2집을 더블음반으로 발표할려고 계획하였지만 결국 part 1, part 2 따로 발매되었죠. 문차일드는 1999년에 더블음반으로 발매된 산울림의 헌정음반 77 99 22에 참가해서 내 마음의 주단을 깔고를 리메이크하였는데 이것으로 문차일드의 활동은 마무리되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한국에서 Alternative Rock, Modern Rock이라는 장르를 표방한 몇몇 밴드들이 음반을 발매되었습니다. 문차일드의 born 1은 분명히 199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의 얼터너티브 락, 모던 락 음반입니다.
May 19, 2024
[달 탐사 사건일지]
moon child : -n. (때로 M- C-) ( pl. moon children ) 占星 게자리 태생의 사람.
1995년 3월 : 이현우, 김영진을 모태로 하여 문차일드(Moon Child)라는 달의 아이 "탄생(Born)"
1995년 3월 이후 : 문차일드 사산(死産)
1996년 : Special Album 1996에서 이현우의 네임밸류를 타고 잠시 부활의 움직임
1996년 이후 : 문차일드 또다시 사산(死産)
2000년 4월 : 신해철의 시험관 아이들인 또다른 문차일드(Moon Child)라는 달의 아이 탄생
2000년 4월 이후 : 1995년에 태어났던 문차일드는 완전히 "삭제(Delete)"됨
2000년 5월 이후 : 새로운 달의 아이는 달에 무사히 안착한 후, 별(Star)이 되었음
[상황설명]
1991년 로 데뷔, 1992년에는 이라는 댄스곡만 8가지 버전으로 실려있는 싱글 리믹스 앨범까지 발표하며 상당한 인기를 구사했던 이현우는 1993년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이후, 막바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마약이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 한동안 활동을 쉬는 것이 관례이자, 잘못을 뉘우치는 제스츄어로 통용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현우는 예전같은 대중적인 활동을 대신하여,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밴드들이였던) 카리스마, 시나위, 아시아나 등을 두루 거친 베이시스트 김영진과 함께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인 문차일드를 결성한다. 물론 음악방향도 이현우의 주특기였던 댄스보다는 김영진의 필살기인 Rock이 앨범 전체를 아우르게 된다.
8개월 동안의 곡 작업을 거치고 마지막 믹싱을 위하여 영국으로 떠난 문차일드는 런던에 위치한 Roll Over Studio, Battery Studio에서 최종 작업을 마치고 1995년 3월부터 야심찬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 1995년이나 지금이나 이들의 다양한 시도가 먹혀들리 만무한 우리나라 실정과 이현우의 '방송활동정지' 상황이 맞물려 이들의 음반은 아주 반짝 음반 시장에 풀렸다가 바로 반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문차일드의 [Born Part.2] 작업이 예정되어 있다는 당시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2번째 음반은 절.대.로. 나오지 못했다.
1년 후인 1996년, [이현우 Special Album 1996 일시정지(一時靜止)]라는 다소 의외의 앨범이 시중에 떠돌기 시작했다. 이현우의 '방송활동정지'가 풀린 기념(?), 혹은 소속 음반사의 마지막 상술(?)로 발표된 음반으로, 문차일드 앨범에 실렸던 10곡과 이현우의 1집, 2집, 리믹스 앨범, 캐롤 앨범 등에서 선곡한 히트곡 7곡을 포함하여 총 17곡의 방대한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앨범 역시 문차일드의 앨범과 마찬가지로 금새 음반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같은 해 문차일드 앨범에 수록되었던 3곡이 새로운 편곡으로 수록되어 있는 이현우 3집 앨범이 발표되었다. 닥터 레게에서 활동했던 앤디서(Andy Suh)와 문차일드의 김영진이 참여하여, 마치 문차일드 2번째 앨범의 느낌을 주는 모던 록 스타일의 곡들이 실려있긴 했지만 이현우의 예전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1997년 이현우는 엔지니어 김국현, 프로듀서 김홍순과의 작업을 통해 4집 앨범의 을 히트시키며 화려하게 재기한다.
과감히 달 상륙을 감행한 이현우를 옆에서 보좌했던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도 이현우를 달의 아이로 만들지 못했다. 아기라고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어쨌든 이현우의 문차일드는 잊혀지고 만다...
[적반하장(賊反荷杖)]
이현우가 실패한 달 탐험을 제치고 달에 무사히 안착한 아이들은 신해철이 지휘했던 파릇파릇한 진!짜! 아이들이었다. 2000년 4월 신해철의 프로듀스라는 최고의 이슈거리를 쥐고 있는 또다른 문차일드가 등장했다. 신해철이 만든 노래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하면서도 소녀팬들을 위한 윙크를 잊지 않는 귀여운 악동의 이미지로 새로운 스타의 자리에 무사히 올라선 4명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물론 실제 대중적 인기몰이의 히든카드는 윤일상이 작곡한 노래였지만...
그렇다면, 같은 이름의 그룹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마땅히 그 이름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피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비단 문차일드 뿐만이 아니다. 이미 문차일드 이전에도 메탈밴드였던 터보가 댄스 그룹 터보에 의해 완전히 망가진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4월 첫 앨범을 발표한 (메탈) 터보는 다음해인 1995년 9월 앨범을 발표한 (댄스) 터보에 눌려 무너지고 말았다.
몇가지 외국의 예를 들자면 일본의 인기 비쥬얼 락 그룹 X(엑스)는 세계진출을 앞두고 동명의 그룹이 있다는 이유로 X-Japan으로 그룹명을 바꾸었으며, 테크노 듀오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역시 처음엔 더스트 브라더스(Dust Brothers)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다가 미국의 오리지널 더스트 브라더스의 개명 요청으로 인해 지금의 케미컬 브라더스로 개명한 경우이다. 영국 멘체스터 출신의 브릿팝 밴드 Charlatans도 비슷한 이유로 Charlatans U.K.로 활동을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기득권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 약간은 불합리한 권리 중 하나이긴 하지만, 지켜져야 할 필요도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기득권이란 놈은 독점적인 권리를 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어느정도 존중해주는 선에서 공존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터보에 이은 문차일드의 경우까지 보고 있노라니 씁쓸해 지는 기분을 어쩔 수 없다.
[달의 아이는 어떤 음악을 했나?]
보컬에 이현우, 베이스에 김영진, 드럼에 김민기, 기타에 신윤철과 김도균, 키보드 김효국... 사실 문차일드 앨범에 참여한 멤버 이름만으로도 이 앨범에 대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신중현 집안의 둘째 아들 신윤철은 이미 자신의 솔로 앨범을 3장이나 발표하며 나름대로 천재 기타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김도균 또한 백두산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지난 경력으로 인해 기타 지존(至尊)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H2O, 시나위를 거치며 솔로 앨범까지 발표했던 김민기 역시 드럼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11월이라는 그룹 출신의 키보디스트 김효국마저도 다루기 어렵다는 하몬드 오르간의 최고 연주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문차일드의 앨범은 전체적으로 Alternative, Punk의 흐름을 타고 있다. 거기에 다소 거친 느낌의 최종 믹싱을 통해 기존의 다른 가요들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너무나 말끔한 느낌의 기존 노래들이 곳곳에서 빈틈없이 날리는 펀치에 질려있다면, 문차일드의 노래들은 허술한 듯하면서 편안한, 하지만 나름대로 정이 드는 스타일의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또한 김영진과 이현우의 멜로디 감각도 시종일관 우울한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헬리콥터 효과음과 함께 시작되는 1번째 트랙 는 두가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곡이다. 한대수의 원곡으로 나왔을 당시의 암울한 이미지가 그 하나이며, 문차일드가 이 곡을 리메이크할 당시 초전박살의 기미를 보이던 우리나라 음악계의 이미지이다. 헬리콥터 효과음에 이어 나오는 새소리는 행복의 나라를 설명하는 사족이지만, 당시 유행의 물결을 탔던 네오 펑크 사운드로 듣는 는 그 맛이 다르다. 신나는 Hard Rock 스타일의 곡 분위기과 우울한 느낌이 결합하여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2번째 트랙 는 전형적인 얼터너티브 스타일의 곡으로 독특하게 사그라드는 드럼 심벌 소리가 유달리 귀를 자극하며 간주의 기타 애드립 또한 맛깔스럽다. 기타 톤부터 시작해서 이 곡의 모든 악기 음색들이 자극적이지 않고 약간은 둔탁하게 처리되었는데 의도적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넉넉함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곡이다. 마지막 아기 울음 소리의 의미는 뭘까?
계단 올라가는 소리가 인트로로 사용된 3번째 트랙 . 간주 부분에는 이현우의 영어 주기도문 낭독이 삽입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한글 주기도문 낭독이 삽입되어 있다. 호흡과 고음 처리가 미숙한 이현우의 어눌한 보컬이 여실히 드러나는 곡이기도 하다. 하긴 이 어눌함 자체가 이현우의 개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4번째 트랙은 이미 1993년 발표했던 2집 앨범의 타이틀 곡 이지만 이 앨범에는 문차일드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되어 실려있다. 곡 자체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기도 하지만, 이현우는 이 곡에 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의 2집 앨범, 문차일드 앨범, 3집 앨범, 그리고 영화 '카라' 주제곡까지 4번 이상의 새로운 편곡과 새로운 녹음으로 줄기차게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매번 다른 프로듀서가 맡아 나름의 느낌을 첨가하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한테는 상당한 재미꺼리를 선사한다.
5번째 트랙 는 본인이 라는 곡과 함께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이현우의 보컬이 앨범 수록곡 중에서 연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기도 하며, 가장 멋드러진 그루브가 돋보이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보컬 트랙을 영국에서 녹음한 유일한 곡이라고 한다.
6번째 트랙은 앨범에서 두 번째로 선보이는 리메이크곡 이다. 산울림의 의 자취는 모두 사라져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재탄생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가사도 곡 분위기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주었으며, 이현우의 노래가 나오지 않았으면 원곡을 전혀 연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각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드림팀들은 자신들의 테크닉을 맘껏 선보이고 있으며, 이현우는 약간은 오버하며 방정을 떠는 듯한 래핑을 하고 있다.
곡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따뜻한 7번째 트랙 . 처절한 느낌의 절정에 서있는 이현우의 보컬과 그 처절함을 관조적인 자세로 담담하게 연주하고 있는 드림팀들의 대결이 너무나 기분좋은 곡이다. 이 곡은 이현우의 3집 앨범에도 새로운 편곡으로 수록되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살다온 이현우의 영어 발음이 조금은 느끼한 영어 가사의 8번째 트랙 은 블루스 스타일의 곡으로 키보디스트 김효국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백보컬을 담당한 Marian Mogan의 보컬 애드립이 이현우를 능가하는 것 또한 재미있는 꺼리의 하나이다.
집에 혼자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룬 9번째 트랙 는 간주 부분에 나오는 사이렌 소리와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죠!'라는 나레이션이 마치 민방위 훈련을 연상하게 한다. 따지고 보면 도시속에서 이런 저런 공부와 학원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민방위 훈련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트랙인 는 처럼 영어 가사로 되어있는 곡으로 멤버들이 잼을 하는 트랙이다. 현란한 베이스 기타 애드립과 이 인트로로 나온 후, 드럼 비트와 함께 이현우는 래핑에 들어간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의 래핑은 요즘의 많고 많은 래퍼들이 내뱉는 천편일률적인 래핑보다 훨씬 들을만하고 재미도 있다. 곡 후반부에 들어가면 이현우의 멤버 소개가 이어지는데, 신윤철을 Korean Jimmy Hendrix라 얘기하고 있다.
[달에는 무엇이 있나?]
본인은 이 글의 앞부분에서 문차일드의 앨범이 다소 거친 느낌의 믹싱을 거쳤다는 얘기를 던진 바 있다. 하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면 이러한 믹싱이 정말 제대로 된 믹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 물론 모든 음악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Rock 음악에 있어서는 거친 듯 하면서도 귀에 자극적이지 않고 안정된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이 앨범의 사운드가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국내의 사운드 메이킹은 전부다 세련됨만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음악 스타일과 상관없이 뽑혀져 나오는 사운드가 비슷했다. 그런 면에서 문차일드의 앨범은 화려함 보다는 투박한 색조로 칠해진 친근감이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많은 신경을 쓴 앨범이다. 이현우는 자신이 이 앨범의 쟈켓을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열성을 보였으며, 수록곡들 또한 어느 곡을 타이틀로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결국은 사장된 앨범이 되고 말았다. 이 앨범을 듣다보면 앨범 발매후 보컬리스트의 대마초 사건으로 사장된 H2O의 3집 앨범 [오늘 나는..]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이 H2O의 3집 앨범과 비슷한 음악적 가치를 지닌 앨범이라는 생각은? 문차일드의 앨범은 분명히 충분한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된다.
[앨범 리뷰의 변]
사실 이현우를 다루기 위해 이 앨범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워낙 좋아했던 앨범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자초지정을 따지자면... 우선 최근의 영계 문차일드를 보고 있자니 노계 문차일드가 생각이 났고, 본인은 테이프로 가지고 있는 앨범이기에 친구에게 CD를 빌리러 갔고, 친구가 가지고 있던 이현우의 [Special Album 1996]을 빌려오니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으며, 생각난 김에 약간의 자료 수집을 거쳐 결국 독설이 한편 탄생된 것이다.
2000년 8월 09일
출처:지금은 없어진 웹진 독백(dogbeck)
moon child : -n. (때로 M- C-) ( pl. moon children ) 占星 게자리 태생의 사람.
1995년 3월 : 이현우, 김영진을 모태로 하여 문차일드(Moon Child)라는 달의 아이 "탄생(Born)"
1995년 3월 이후 : 문차일드 사산(死産)
1996년 : Special Album 1996에서 이현우의 네임밸류를 타고 잠시 부활의 움직임
1996년 이후 : 문차일드 또다시 사산(死産)
2000년 4월 : 신해철의 시험관 아이들인 또다른 문차일드(Moon Child)라는 달의 아이 탄생
2000년 4월 이후 : 1995년에 태어났던 문차일드는 완전히 "삭제(Delete)"됨
2000년 5월 이후 : 새로운 달의 아이는 달에 무사히 안착한 후, 별(Star)이 되었음
[상황설명]
1991년 로 데뷔, 1992년에는 이라는 댄스곡만 8가지 버전으로 실려있는 싱글 리믹스 앨범까지 발표하며 상당한 인기를 구사했던 이현우는 1993년 대마초 사건으로 구속되었다가 풀려난 이후, 막바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국내에서 마약이나 대마초 사건에 연루되면, 한동안 활동을 쉬는 것이 관례이자, 잘못을 뉘우치는 제스츄어로 통용되지 않았던가!)
그래서 이현우는 예전같은 대중적인 활동을 대신하여,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밴드들이였던) 카리스마, 시나위, 아시아나 등을 두루 거친 베이시스트 김영진과 함께 일종의 프로젝트 그룹인 문차일드를 결성한다. 물론 음악방향도 이현우의 주특기였던 댄스보다는 김영진의 필살기인 Rock이 앨범 전체를 아우르게 된다.
8개월 동안의 곡 작업을 거치고 마지막 믹싱을 위하여 영국으로 떠난 문차일드는 런던에 위치한 Roll Over Studio, Battery Studio에서 최종 작업을 마치고 1995년 3월부터 야심찬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한 법! 1995년이나 지금이나 이들의 다양한 시도가 먹혀들리 만무한 우리나라 실정과 이현우의 '방송활동정지' 상황이 맞물려 이들의 음반은 아주 반짝 음반 시장에 풀렸다가 바로 반품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문차일드의 [Born Part.2] 작업이 예정되어 있다는 당시의 소문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2번째 음반은 절.대.로. 나오지 못했다.
1년 후인 1996년, [이현우 Special Album 1996 일시정지(一時靜止)]라는 다소 의외의 앨범이 시중에 떠돌기 시작했다. 이현우의 '방송활동정지'가 풀린 기념(?), 혹은 소속 음반사의 마지막 상술(?)로 발표된 음반으로, 문차일드 앨범에 실렸던 10곡과 이현우의 1집, 2집, 리믹스 앨범, 캐롤 앨범 등에서 선곡한 히트곡 7곡을 포함하여 총 17곡의 방대한 노래가 수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이 앨범 역시 문차일드의 앨범과 마찬가지로 금새 음반 시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같은 해 문차일드 앨범에 수록되었던 3곡이 새로운 편곡으로 수록되어 있는 이현우 3집 앨범이 발표되었다. 닥터 레게에서 활동했던 앤디서(Andy Suh)와 문차일드의 김영진이 참여하여, 마치 문차일드 2번째 앨범의 느낌을 주는 모던 록 스타일의 곡들이 실려있긴 했지만 이현우의 예전 명성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후 1997년 이현우는 엔지니어 김국현, 프로듀서 김홍순과의 작업을 통해 4집 앨범의 을 히트시키며 화려하게 재기한다.
과감히 달 상륙을 감행한 이현우를 옆에서 보좌했던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도 이현우를 달의 아이로 만들지 못했다. 아기라고 하기엔 너무 나이가 들어서였을까? 어쨌든 이현우의 문차일드는 잊혀지고 만다...
[적반하장(賊反荷杖)]
이현우가 실패한 달 탐험을 제치고 달에 무사히 안착한 아이들은 신해철이 지휘했던 파릇파릇한 진!짜! 아이들이었다. 2000년 4월 신해철의 프로듀스라는 최고의 이슈거리를 쥐고 있는 또다른 문차일드가 등장했다. 신해철이 만든 노래에 맞춰 노래하고 춤추고 연주하면서도 소녀팬들을 위한 윙크를 잊지 않는 귀여운 악동의 이미지로 새로운 스타의 자리에 무사히 올라선 4명이 그 주인공들이었다. 물론 실제 대중적 인기몰이의 히든카드는 윤일상이 작곡한 노래였지만...
그렇다면, 같은 이름의 그룹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마땅히 그 이름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피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비단 문차일드 뿐만이 아니다. 이미 문차일드 이전에도 메탈밴드였던 터보가 댄스 그룹 터보에 의해 완전히 망가진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1994년 4월 첫 앨범을 발표한 (메탈) 터보는 다음해인 1995년 9월 앨범을 발표한 (댄스) 터보에 눌려 무너지고 말았다.
몇가지 외국의 예를 들자면 일본의 인기 비쥬얼 락 그룹 X(엑스)는 세계진출을 앞두고 동명의 그룹이 있다는 이유로 X-Japan으로 그룹명을 바꾸었으며, 테크노 듀오 케미컬 브라더스(Chemical Brothers) 역시 처음엔 더스트 브라더스(Dust Brothers)라는 이름으로 시작하다가 미국의 오리지널 더스트 브라더스의 개명 요청으로 인해 지금의 케미컬 브라더스로 개명한 경우이다. 영국 멘체스터 출신의 브릿팝 밴드 Charlatans도 비슷한 이유로 Charlatans U.K.로 활동을 하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기득권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 약간은 불합리한 권리 중 하나이긴 하지만, 지켜져야 할 필요도 있는 권리이기도 하다. 기득권이란 놈은 독점적인 권리를 말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어느정도 존중해주는 선에서 공존하는 것이 좋은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터보에 이은 문차일드의 경우까지 보고 있노라니 씁쓸해 지는 기분을 어쩔 수 없다.
[달의 아이는 어떤 음악을 했나?]
보컬에 이현우, 베이스에 김영진, 드럼에 김민기, 기타에 신윤철과 김도균, 키보드 김효국... 사실 문차일드 앨범에 참여한 멤버 이름만으로도 이 앨범에 대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이다. 신중현 집안의 둘째 아들 신윤철은 이미 자신의 솔로 앨범을 3장이나 발표하며 나름대로 천재 기타리스트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김도균 또한 백두산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던 지난 경력으로 인해 기타 지존(至尊)의 자리에 위치해 있었으며, H2O, 시나위를 거치며 솔로 앨범까지 발표했던 김민기 역시 드럼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며, 11월이라는 그룹 출신의 키보디스트 김효국마저도 다루기 어렵다는 하몬드 오르간의 최고 연주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으니 말이다.
문차일드의 앨범은 전체적으로 Alternative, Punk의 흐름을 타고 있다. 거기에 다소 거친 느낌의 최종 믹싱을 통해 기존의 다른 가요들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너무나 말끔한 느낌의 기존 노래들이 곳곳에서 빈틈없이 날리는 펀치에 질려있다면, 문차일드의 노래들은 허술한 듯하면서 편안한, 하지만 나름대로 정이 드는 스타일의 사운드를 들려주고 있다. 또한 김영진과 이현우의 멜로디 감각도 시종일관 우울한 느낌을 던져주고 있다.
헬리콥터 효과음과 함께 시작되는 1번째 트랙 는 두가지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곡이다. 한대수의 원곡으로 나왔을 당시의 암울한 이미지가 그 하나이며, 문차일드가 이 곡을 리메이크할 당시 초전박살의 기미를 보이던 우리나라 음악계의 이미지이다. 헬리콥터 효과음에 이어 나오는 새소리는 행복의 나라를 설명하는 사족이지만, 당시 유행의 물결을 탔던 네오 펑크 사운드로 듣는 는 그 맛이 다르다. 신나는 Hard Rock 스타일의 곡 분위기과 우울한 느낌이 결합하여 묘한 느낌을 주고 있다.
2번째 트랙 는 전형적인 얼터너티브 스타일의 곡으로 독특하게 사그라드는 드럼 심벌 소리가 유달리 귀를 자극하며 간주의 기타 애드립 또한 맛깔스럽다. 기타 톤부터 시작해서 이 곡의 모든 악기 음색들이 자극적이지 않고 약간은 둔탁하게 처리되었는데 의도적인 결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넉넉함이 상당히 마음에 드는 곡이다. 마지막 아기 울음 소리의 의미는 뭘까?
계단 올라가는 소리가 인트로로 사용된 3번째 트랙 . 간주 부분에는 이현우의 영어 주기도문 낭독이 삽입되어 있고, 후반부에는 한글 주기도문 낭독이 삽입되어 있다. 호흡과 고음 처리가 미숙한 이현우의 어눌한 보컬이 여실히 드러나는 곡이기도 하다. 하긴 이 어눌함 자체가 이현우의 개성 그 자체이기도 하다.
4번째 트랙은 이미 1993년 발표했던 2집 앨범의 타이틀 곡 이지만 이 앨범에는 문차일드 버전으로 새롭게 편곡되어 실려있다. 곡 자체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기도 하지만, 이현우는 이 곡에 병적인 집착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자신의 2집 앨범, 문차일드 앨범, 3집 앨범, 그리고 영화 '카라' 주제곡까지 4번 이상의 새로운 편곡과 새로운 녹음으로 줄기차게 부르고 있으니 말이다. 물론 매번 다른 프로듀서가 맡아 나름의 느낌을 첨가하기 때문에 나같은 사람한테는 상당한 재미꺼리를 선사한다.
5번째 트랙 는 본인이 라는 곡과 함께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이현우의 보컬이 앨범 수록곡 중에서 연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기도 하며, 가장 멋드러진 그루브가 돋보이는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보컬 트랙을 영국에서 녹음한 유일한 곡이라고 한다.
6번째 트랙은 앨범에서 두 번째로 선보이는 리메이크곡 이다. 산울림의 의 자취는 모두 사라져 버리고 완전히 새로운 곡으로 재탄생했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가사도 곡 분위기에 맞춰 조금씩 변화를 주었으며, 이현우의 노래가 나오지 않았으면 원곡을 전혀 연상할 수 없을 정도이다. 각 파트를 담당하고 있는 드림팀들은 자신들의 테크닉을 맘껏 선보이고 있으며, 이현우는 약간은 오버하며 방정을 떠는 듯한 래핑을 하고 있다.
곡 전체를 떠받치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 연주가 따뜻한 7번째 트랙 . 처절한 느낌의 절정에 서있는 이현우의 보컬과 그 처절함을 관조적인 자세로 담담하게 연주하고 있는 드림팀들의 대결이 너무나 기분좋은 곡이다. 이 곡은 이현우의 3집 앨범에도 새로운 편곡으로 수록되었다.
아무래도 미국에서 살다온 이현우의 영어 발음이 조금은 느끼한 영어 가사의 8번째 트랙 은 블루스 스타일의 곡으로 키보디스트 김효국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백보컬을 담당한 Marian Mogan의 보컬 애드립이 이현우를 능가하는 것 또한 재미있는 꺼리의 하나이다.
집에 혼자있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룬 9번째 트랙 는 간주 부분에 나오는 사이렌 소리와 '어서 집으로 돌아가시죠!'라는 나레이션이 마치 민방위 훈련을 연상하게 한다. 따지고 보면 도시속에서 이런 저런 공부와 학원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민방위 훈련과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도 든다.
마지막 트랙인 는 처럼 영어 가사로 되어있는 곡으로 멤버들이 잼을 하는 트랙이다. 현란한 베이스 기타 애드립과 이 인트로로 나온 후, 드럼 비트와 함께 이현우는 래핑에 들어간다.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그의 래핑은 요즘의 많고 많은 래퍼들이 내뱉는 천편일률적인 래핑보다 훨씬 들을만하고 재미도 있다. 곡 후반부에 들어가면 이현우의 멤버 소개가 이어지는데, 신윤철을 Korean Jimmy Hendrix라 얘기하고 있다.
[달에는 무엇이 있나?]
본인은 이 글의 앞부분에서 문차일드의 앨범이 다소 거친 느낌의 믹싱을 거쳤다는 얘기를 던진 바 있다. 하지만 반복해서 듣다보면 이러한 믹싱이 정말 제대로 된 믹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 물론 모든 음악에 해당되는 건 아니다. Rock 음악에 있어서는 거친 듯 하면서도 귀에 자극적이지 않고 안정된 사운드를 가지고 있는 이 앨범의 사운드가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국내의 사운드 메이킹은 전부다 세련됨만을 추구해 왔기 때문에 음악 스타일과 상관없이 뽑혀져 나오는 사운드가 비슷했다. 그런 면에서 문차일드의 앨범은 화려함 보다는 투박한 색조로 칠해진 친근감이 있는 앨범이라 할 수 있다.
이 앨범은 전체적으로 상당히 많은 신경을 쓴 앨범이다. 이현우는 자신이 이 앨범의 쟈켓을 직접 디자인할 정도로 열성을 보였으며, 수록곡들 또한 어느 곡을 타이틀로 해야 할지 고민에 빠질 정도로 높은 퀄리티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결국은 사장된 앨범이 되고 말았다. 이 앨범을 듣다보면 앨범 발매후 보컬리스트의 대마초 사건으로 사장된 H2O의 3집 앨범 [오늘 나는..]이 머릿속을 스친다. 그래서일까? 이 앨범이 H2O의 3집 앨범과 비슷한 음악적 가치를 지닌 앨범이라는 생각은? 문차일드의 앨범은 분명히 충분한 대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앨범이라고 생각된다.
[앨범 리뷰의 변]
사실 이현우를 다루기 위해 이 앨범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워낙 좋아했던 앨범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자초지정을 따지자면... 우선 최근의 영계 문차일드를 보고 있자니 노계 문차일드가 생각이 났고, 본인은 테이프로 가지고 있는 앨범이기에 친구에게 CD를 빌리러 갔고, 친구가 가지고 있던 이현우의 [Special Album 1996]을 빌려오니 여러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떠돌았으며, 생각난 김에 약간의 자료 수집을 거쳐 결국 독설이 한편 탄생된 것이다.
2000년 8월 09일
출처:지금은 없어진 웹진 독백(dogbeck)
May 19, 2024
"당시 배철수 선배가 우리 음악을 틀었다가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베이시스트 김영진 인터뷰-
Q:"born1" 앨범이 발매된 건 95년 전반기다. 이 앨범은 이후 록음악계에 나타나는 루즈한 즉흥성이 모티브가 되는, 소위 얼터너티브 한 흐름을 대거 반영한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앨범이었다. '시나위'와 '아시아나'라는 당대의 헤비메틀 밴드를 거친 당신이 이러한 형식의 모던한 어프로치를 착안한 배경이라면?
A:원래 나는 그런 사운드 지향의 연주자다. 당시 김도균이나 신대철 등, 함께 했던 이들은 헤비메탈 성향의 연주자들이었다. 나는 영국음악을 좋아했다. '유투(u2)',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심플 마인즈(simple minds)' 등. 이현우와는 당시 같은 소속사였는데 그때는 그가 대마초를 피우고 구속됐다 풀려난 직후라 활동이 뜸했는데, 나와 자주 만났었다. 당시 나는 '디페쉬 모드'에 심취해 있었고, 그런 스타일의 보컬이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지만 주위에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현우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거다. 그래서 '스톤 템플 파일럿츠(stone temple pilots)'과 '디페쉬 모드'를 교범으로 이현우를 트레이닝 했다. 두꺼운 목소리를 지향한 거다. 신윤철과 김민기는 일단 객원으로 참여시킨 후, 뒤에 정식 멤버로 영입하려 했지만 회사와의 마찰로 그게 불가능해졌다.
Q:언제부터 우리나라 음악 대중들이 한대수를 제대로 이해했는가. 이 앨범은 최초로 한대수를 재평가하고 있는데, '행복의 나라'가 펑크로 재해석되고 있다. 한대수에 대한 생각과 펑크(Punk)적인 편곡의 의도는?
A:아! 거기서 의도한 거는 '섹스 피스톨스(the sex pistols)'였다. 시드 비셔스(sid vicious)를 무척 좋아했고, 그 곡의 가사 또한 대단히 반항적이고 반 체제적이지 않았나(웃음). 그래서 그 노래가 대학가에서 응원가나 집회때 불려지길 바랬다. 한대수씨는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고 좋아하는 분이다. 그래도 그의 음악 스타일은 나와 안 맞다. 비록 그의 앨범에 세션도 여러 번 했지만. 그러나 사람 자체가 기인의 풍모를 지니고 있고 워낙에 예술가 타입이라 언제나 실험 정신으로 충만하고, 딱 뉴욕에 있으면 어울릴 만한 사람이라 본다. 그래도 그의 포크 사운드는 개인적으로 별로다. 내 취향이 아니다. 하다 못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연주하는 포크 사운드는 좋아해도. 나는 밥 딜런(bob dylan)도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Q:요즘 국내 마이너음악계에서 거의 유행적으로 퍼지는 포크적 성향을 이 앨범은 이미 7년 전에 예고하고 있었다. 비,나의 노래,후회 등의 트랙이 그런데. 당시 포크(Folk)적인 사운드에 대한 인상은 어디서 온 건가?
A:'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다. 레드 제플린이 4집에서 들려준 포크 사운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포크 록 사운드였다.
Q:앨범의 사운드는 포크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70년대적 발상에 의한 리프와 사운드의 질감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A:'레드 제플린'과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나의 작업 방식은 항상 리프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가사와 노래 멜로디, 그외 편곡작업이 들어가는 식이다. 당시 미국의 시애틀 사운드, 그런지(grunge)사운드 역시 70년대 하드록 밴드들의 아이템을 차용한 것이다. 지미 페이지(jimmy page)나 제프 벡(jeff beck) 같은 리프 메이커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또한 재즈 프레이즈를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리프를 만들어냈는데, 그런 발상의 연장선에서 나 또한 작업한 것이다. 그런 리프는 평소 많이 만들어 뒀었다. 사운드의 질감도 의도적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리드했다. 신윤철의 기타톤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조정했다. 물론 당시 그는 그런 사운드를 싫어하긴 했지만, 나는 오히려 80년대에 유행했던 그런 깔끔한 사운드는 싫었다. 80년대에 유명했던 뭐... '래트(ratt)'나 '도켄(dokken)',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 같은 LA 메탈 사운드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 사운드 때문에 록 음악이 망했다고 본다(웃음).
Q:[곰팡이]같은 트랙은 '레드 제플린'적인 접근이었다고 보는데
A:맞다. 그 리프는 '레드 제플린'과 '블랙 새버스'를 생각한 거다.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는 나의 오랜 우상이었는데, 그가 주로 하던 더블 노트를 쓰는 베이스라인을 이 곡에 차용 했고, 내가 진짜 원한 건 스푸키 사운드였다.
Q:스푸키 사운드?
A:'크림(cream)' 같은 스타일이다. 주로 마약이나 마리화나를 하고 연주를 하던 즉흥적이고 분열적인 사운드. 연주를 하는데 귀신이나 유령이 날아다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그런 몽환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스푸키(spooky)사운드라 한다.
-베이시스트 김영진 인터뷰-
Q:"born1" 앨범이 발매된 건 95년 전반기다. 이 앨범은 이후 록음악계에 나타나는 루즈한 즉흥성이 모티브가 되는, 소위 얼터너티브 한 흐름을 대거 반영한 당시로서는 매우 진보적인 앨범이었다. '시나위'와 '아시아나'라는 당대의 헤비메틀 밴드를 거친 당신이 이러한 형식의 모던한 어프로치를 착안한 배경이라면?
A:원래 나는 그런 사운드 지향의 연주자다. 당시 김도균이나 신대철 등, 함께 했던 이들은 헤비메탈 성향의 연주자들이었다. 나는 영국음악을 좋아했다. '유투(u2)', '디페쉬 모드(depeche mode)',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 '심플 마인즈(simple minds)' 등. 이현우와는 당시 같은 소속사였는데 그때는 그가 대마초를 피우고 구속됐다 풀려난 직후라 활동이 뜸했는데, 나와 자주 만났었다. 당시 나는 '디페쉬 모드'에 심취해 있었고, 그런 스타일의 보컬이 개인적으로 맘에 들었지만 주위에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현우가 그런 스타일을 좋아하는 거다. 그래서 '스톤 템플 파일럿츠(stone temple pilots)'과 '디페쉬 모드'를 교범으로 이현우를 트레이닝 했다. 두꺼운 목소리를 지향한 거다. 신윤철과 김민기는 일단 객원으로 참여시킨 후, 뒤에 정식 멤버로 영입하려 했지만 회사와의 마찰로 그게 불가능해졌다.
Q:언제부터 우리나라 음악 대중들이 한대수를 제대로 이해했는가. 이 앨범은 최초로 한대수를 재평가하고 있는데, '행복의 나라'가 펑크로 재해석되고 있다. 한대수에 대한 생각과 펑크(Punk)적인 편곡의 의도는?
A:아! 거기서 의도한 거는 '섹스 피스톨스(the sex pistols)'였다. 시드 비셔스(sid vicious)를 무척 좋아했고, 그 곡의 가사 또한 대단히 반항적이고 반 체제적이지 않았나(웃음). 그래서 그 노래가 대학가에서 응원가나 집회때 불려지길 바랬다. 한대수씨는 개인적으로 매우 친한 사이고 좋아하는 분이다. 그래도 그의 음악 스타일은 나와 안 맞다. 비록 그의 앨범에 세션도 여러 번 했지만. 그러나 사람 자체가 기인의 풍모를 지니고 있고 워낙에 예술가 타입이라 언제나 실험 정신으로 충만하고, 딱 뉴욕에 있으면 어울릴 만한 사람이라 본다. 그래도 그의 포크 사운드는 개인적으로 별로다. 내 취향이 아니다. 하다 못해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연주하는 포크 사운드는 좋아해도. 나는 밥 딜런(bob dylan)도 별로 안 좋아한다(웃음).
Q:요즘 국내 마이너음악계에서 거의 유행적으로 퍼지는 포크적 성향을 이 앨범은 이미 7년 전에 예고하고 있었다. 비,나의 노래,후회 등의 트랙이 그런데. 당시 포크(Folk)적인 사운드에 대한 인상은 어디서 온 건가?
A:'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다. 레드 제플린이 4집에서 들려준 포크 사운드,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포크 록 사운드였다.
Q:앨범의 사운드는 포크에 대한 성찰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70년대적 발상에 의한 리프와 사운드의 질감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A:'레드 제플린'과 '블랙 새버스(black sabbath)'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 나의 작업 방식은 항상 리프를 먼저 만들고 거기에 가사와 노래 멜로디, 그외 편곡작업이 들어가는 식이다. 당시 미국의 시애틀 사운드, 그런지(grunge)사운드 역시 70년대 하드록 밴드들의 아이템을 차용한 것이다. 지미 페이지(jimmy page)나 제프 벡(jeff beck) 같은 리프 메이커들.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 또한 재즈 프레이즈를 단순화하는 방식으로 리프를 만들어냈는데, 그런 발상의 연장선에서 나 또한 작업한 것이다. 그런 리프는 평소 많이 만들어 뒀었다. 사운드의 질감도 의도적으로 거칠고 투박하게 리드했다. 신윤철의 기타톤 역시 그러한 방향으로 조정했다. 물론 당시 그는 그런 사운드를 싫어하긴 했지만, 나는 오히려 80년대에 유행했던 그런 깔끔한 사운드는 싫었다. 80년대에 유명했던 뭐... '래트(ratt)'나 '도켄(dokken)', '머틀리 크루(mötley crüe) 같은 LA 메탈 사운드에는 별 흥미가 없었다. 그런 사운드 때문에 록 음악이 망했다고 본다(웃음).
Q:[곰팡이]같은 트랙은 '레드 제플린'적인 접근이었다고 보는데
A:맞다. 그 리프는 '레드 제플린'과 '블랙 새버스'를 생각한 거다. 기저 버틀러(geezer butler)는 나의 오랜 우상이었는데, 그가 주로 하던 더블 노트를 쓰는 베이스라인을 이 곡에 차용 했고, 내가 진짜 원한 건 스푸키 사운드였다.
Q:스푸키 사운드?
A:'크림(cream)' 같은 스타일이다. 주로 마약이나 마리화나를 하고 연주를 하던 즉흥적이고 분열적인 사운드. 연주를 하는데 귀신이나 유령이 날아다니는 듯한 착각이 드는 그런 몽환적인 느낌의 사운드를 스푸키(spooky)사운드라 한다.
May 21, 2024
Q:'산울림'을 리메이크한 [아니 벌써] 같은 넘버에서는 매우 훵키한 리프가 쏟아져 나온다. 느슨한 기타 리프와 상대적으로 타이트하게 구성된 베이스 라인이 절묘한데
A:이건 녹음실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원래 이 앨범은 2장 짜리였다. part 1, 2로 나뉘어 져 있는. 공개된 게 part 1인데, part 2가 더 좋다(웃음). 그 음원은 신세계(신세계 레코드- 편집자 주)가 갖고 있는데, 안 준다. 훵키(Funky)한 스타일은 예전부터 추구하던 거였다. 근데 그때까지 쭉 헤비메탈을 하면서 그런 음악을 못했다. 래리 그래엄(larry graham),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등의 베이스 플레이에 주목했었고, 영향을 받았다. 곡이 그렇게 즉흥적으로, 다소 연주 중심으로 된 이유는 대부분 곡을 나와 이현우가 다 만들었는데, 신윤철과 김민기가 앨범에 뭔가 중요한 기여를 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거다. 아까 말했듯, 그들을 정식멤버로 포섭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Q:사실 창작이나 연주라는 측면에서 볼때 록 사운드의 발상 자체는 즉흥적인 영감이라 본다. 음반 전체를 들어보면, 곡의 리프라든가 편곡의 경우 상당한 즉흥성이 느껴지지만, 가사를 싣고 있는 보컬 선율은 작위적인 느낌이 나기도 한다. 국내의 유명 산지(山地)를 돌며 곡을 썼다고 들었다.
A: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이 돌아다녔다. 지리산부터 통일전망대까지(웃음). 보컬 멜로디의 경우는 내가 어쿠스틱 기타로 리프를 쳐주면 이현우가 대체로 선율을 흥얼거리는 방식이었는데, 아무래도 당시로서는 록 밴드 경험이 없던 현우가 때때로 막히는 그런 부분들이 나오면 내가 직접 선율을 불러주고 따라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곡의 브릿지(후렴구- 편집자 주)같은 부분은 현우의 색깔이 많이 들어간 거다.
Q:그렇다면 그건 선율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이현우의 창법이나 보컬 테크닉에 의해 그런 색채가 가미된 거라는 뜻인데, 기자의 분석으로는 오히려 브릿지의 선율 자체가 한편으로는 가요적이기도 했다고 보는데
A:그건 맞다. 멜로디 자체를 그렇게 한 거다. 의도적인 부분도 있고, 상업적인 안배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가항력적인 측면도 있다.
Q:핏줄인가?
A:그렇다. 그런 최소한의 가요적인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일본밴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우드니스(loudness)'나 '바우와우(bow wow)'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밴드도 그들 만의 어떤 색깔이 있는 선율을 항상 포함하고 있는 음악을 했다. 일본 역시 이미 70년대에 그런 동양적인 선율, 흔히 마이너 감성이라는 그런 멜로디를 배제하는 시도도 했었는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한 그런 고유한 감성들이 여전히 음악에 녹아있기 때문에 요즘 말하는 뭐 '제이 팝'이니 'Japan Pop'이니 하는 것들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서태지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Q:음악보다는 기타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서태지는 상당히 뛰어난 기타리스트라 생각한다. 센스 있는 톤 감각도 그렇고 테크닉적으로도 굉장히 난이도 있는 기술을 지닌 연주자라고 생각한다.
A:그런가? 태지도 매우 가요적인 선율을 구사하는 친구다. 그런데 사실상 태지가 힌트를 얻은건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다. 빌리 코건(billy corgan)이 주로 구사했던 그리스 풍의 멜로디와 도리안(음계의 하나-편집자 주)을 섞은 그런 진행들. '메틀리카 (metallica)'도 그런 작법을 많이 썼다. 그런 선율이 사실 서양적이면서도 동양적 감수성을 지닌 독특한 뉘앙스를 풍기는 거고, 그건 대단히 대중적이면서도 색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업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스매싱 펌프킨스'도 '메탈리카'도 태지도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한 거다. 태지는 굉장히 똑똑해서 숨어있는 그런 흐름을 읽는 거다. 태지에게 뭐 장사꾼이다 표절이다 이런 얘기들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배철수 선배도 언젠가 이야기를 했는데, 카피도 모방도 그건 먼저 하는 사람이 가장 똑똑한 거란 말을 했다. 뒤늦게 출발한 이들이 그걸 표절로 몰아붙이는건 그 사람들이 비겁한 거다. 나는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크리틱하고 분석적인 것보다 애티튜드가 훨씬 중요하고 실제 영국과 미국의 록음악계 역시 그렇게 움직인다고 본다.
Q:[no money, no honey]의 경우 거의 즉흥연주인 것 같은데 이런 시도는 어떻게 구상했나?
A:잼이 맞다. 그 곡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미국에서 친한 친구를 만나 함께 있는데 그 친구 아버지가 찾아와서 그랬다. "녀석들, 네놈들 맨날 음악 한다고 그렇게 맘대로 살면, 결혼도 못해! 돈을 못 벌면 여자도 없어, 이 녀석들아."라고 하더라.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모티브로 현우가 가사를 붙이고 그렇게 그냥 흥겨운 파티 분위기로 연주한 거다.
Q:재즈의 즉흥성과 록의 즉흥성이 다르다고 보나?
A:글쎄. 단순히 사용되는 음이나 모드의 차이라기 보다 아예 터치 자체가 틀리다고 본다. 재즈는 피지컬한 것이고, 록은 메타 피지컬한 터치다. 동물적인 재즈와 형이상학적인 록이라 이해한다(웃음). 미술을 예로 들자면 재즈는 유화, 록은 판화나 비구상화 같은 느낌이라 생각한다.
Q:이 앨범에는 김도균, 신윤철 같은 손꼽히는 기타리스트들과 건반에 김효국, 드럼에 김민기 같은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편곡을 당신이 도맡아했는데 구체적인 연주 같은 경우 어떻게 협의한건가?
A:기타 리프 같은 경우도 내가 직접 악보를 그려 주고 그대로 연주하게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느낌이 아닌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행복의 나라로'의 경우가 그랬다. 나는 뭔가 원시적이고 와일드한 질감을 원했는데 아무래도 기타리스트들은 더빙을 선호하고,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나. 좀 어그레시브하게 연주하라고 하니까 기타리스트는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타리스트가 녹음을 끝내고 돌아간 뒤 내가 직접 다시 연주 했다(웃음).
Q:이 음반이 왜 이렇게 묻혀버렸다고 보나?
A:당시 우리는 방송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라디오조차. 현우가 대마초를 했다는 이유로, 당시 배철수 선배가 우리 음악을 한번 틀었다가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도저히 홍보를 할 방법이 없었다. 또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회사측과도 많은 마찰이 있었다. 뒤에 우리 음악을 좋아하던 뭐 방송국의 피디들도 그렇고 앨범에 대한 구명을 바랬는데, 그자들(당시 신세계레코드 측-편집자 주)이 음원을 안 준다. 아직까지도.
[필자 주]
작년, 대자보 문화부에서는 제도 언론의 그늘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릴레 이 인터뷰를 기획했었다. 그 첫번째가 기타리스트 이두헌씨였고, 두번째가 바로 베이시스트 김영진(38)씨 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필자의 사정으로 부득이 그 기획을 포기해야 했다.
애초 인터뷰의 기획안에는 크게 3개의 카테고리가 있었다. '문차일드'의 "born 1" 앨범에 대한 집중조명이 그 하나이고, 베이시스트라는 연주자로서의 정체성, 마지막으로 당시 국내 대중음악계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실제 인터뷰는 상당히 긴 시간동안 애초 기획안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필자의 사정으로 기사게재 시기를 놓치게 되었고, 현 시점에서 시의성이 떨어지는 내용을 대거 포기하고 단지 "born 1"앨범에 대한 내용만 발췌한 것이 위의 인터뷰 기사다.
그래서 완만한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위 인터뷰 기사가 다소 형식적으로 거칠게 마무리 된 점에 대한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또한 긴시간 성의있게 인터뷰에 응해 준 김영진 씨에 게 뒤늦은 감사를 드린다. 현재 김영진씨는 "soul food"라는 새로운 밴드를 출범시키고, 이미 앨범작업을 마무리한 상태라고 한다. 대자보는 "soul food"앨범이 발매되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한번 진지하게 그의 음악세계를 소개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독자들의 성원 바란다.
출처:2002년 3월 12일에 지금은 없어진 언론 매체 브레이크 뉴스에서
A:이건 녹음실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었다. 원래 이 앨범은 2장 짜리였다. part 1, 2로 나뉘어 져 있는. 공개된 게 part 1인데, part 2가 더 좋다(웃음). 그 음원은 신세계(신세계 레코드- 편집자 주)가 갖고 있는데, 안 준다. 훵키(Funky)한 스타일은 예전부터 추구하던 거였다. 근데 그때까지 쭉 헤비메탈을 하면서 그런 음악을 못했다. 래리 그래엄(larry graham), '타워 오브 파워(tower of power)',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등의 베이스 플레이에 주목했었고, 영향을 받았다. 곡이 그렇게 즉흥적으로, 다소 연주 중심으로 된 이유는 대부분 곡을 나와 이현우가 다 만들었는데, 신윤철과 김민기가 앨범에 뭔가 중요한 기여를 하게 하기 위해서 그런거다. 아까 말했듯, 그들을 정식멤버로 포섭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Q:사실 창작이나 연주라는 측면에서 볼때 록 사운드의 발상 자체는 즉흥적인 영감이라 본다. 음반 전체를 들어보면, 곡의 리프라든가 편곡의 경우 상당한 즉흥성이 느껴지지만, 가사를 싣고 있는 보컬 선율은 작위적인 느낌이 나기도 한다. 국내의 유명 산지(山地)를 돌며 곡을 썼다고 들었다.
A:거의 안 가본 곳이 없이 돌아다녔다. 지리산부터 통일전망대까지(웃음). 보컬 멜로디의 경우는 내가 어쿠스틱 기타로 리프를 쳐주면 이현우가 대체로 선율을 흥얼거리는 방식이었는데, 아무래도 당시로서는 록 밴드 경험이 없던 현우가 때때로 막히는 그런 부분들이 나오면 내가 직접 선율을 불러주고 따라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곡의 브릿지(후렴구- 편집자 주)같은 부분은 현우의 색깔이 많이 들어간 거다.
Q:그렇다면 그건 선율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 이현우의 창법이나 보컬 테크닉에 의해 그런 색채가 가미된 거라는 뜻인데, 기자의 분석으로는 오히려 브릿지의 선율 자체가 한편으로는 가요적이기도 했다고 보는데
A:그건 맞다. 멜로디 자체를 그렇게 한 거다. 의도적인 부분도 있고, 상업적인 안배도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불가항력적인 측면도 있다.
Q:핏줄인가?
A:그렇다. 그런 최소한의 가요적인 느낌은 어쩔 수 없다. 일본밴드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라우드니스(loudness)'나 '바우와우(bow wow)' 같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던 밴드도 그들 만의 어떤 색깔이 있는 선율을 항상 포함하고 있는 음악을 했다. 일본 역시 이미 70년대에 그런 동양적인 선율, 흔히 마이너 감성이라는 그런 멜로디를 배제하는 시도도 했었는데 그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또한 그런 고유한 감성들이 여전히 음악에 녹아있기 때문에 요즘 말하는 뭐 '제이 팝'이니 'Japan Pop'이니 하는 것들이 하나의 장르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기자는 서태지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Q:음악보다는 기타리스트로서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 개인적으로 서태지는 상당히 뛰어난 기타리스트라 생각한다. 센스 있는 톤 감각도 그렇고 테크닉적으로도 굉장히 난이도 있는 기술을 지닌 연주자라고 생각한다.
A:그런가? 태지도 매우 가요적인 선율을 구사하는 친구다. 그런데 사실상 태지가 힌트를 얻은건 '스매싱 펌킨스(the smashing pumpkins)'다. 빌리 코건(billy corgan)이 주로 구사했던 그리스 풍의 멜로디와 도리안(음계의 하나-편집자 주)을 섞은 그런 진행들. '메틀리카 (metallica)'도 그런 작법을 많이 썼다. 그런 선율이 사실 서양적이면서도 동양적 감수성을 지닌 독특한 뉘앙스를 풍기는 거고, 그건 대단히 대중적이면서도 색다른 것이다. 어떻게 보면 상업적이기도 하고. 그래서 '스매싱 펌프킨스'도 '메탈리카'도 태지도 상업적으로 모두 성공한 거다. 태지는 굉장히 똑똑해서 숨어있는 그런 흐름을 읽는 거다. 태지에게 뭐 장사꾼이다 표절이다 이런 얘기들도 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배철수 선배도 언젠가 이야기를 했는데, 카피도 모방도 그건 먼저 하는 사람이 가장 똑똑한 거란 말을 했다. 뒤늦게 출발한 이들이 그걸 표절로 몰아붙이는건 그 사람들이 비겁한 거다. 나는 시도 자체가 중요하다고 본다. 크리틱하고 분석적인 것보다 애티튜드가 훨씬 중요하고 실제 영국과 미국의 록음악계 역시 그렇게 움직인다고 본다.
Q:[no money, no honey]의 경우 거의 즉흥연주인 것 같은데 이런 시도는 어떻게 구상했나?
A:잼이 맞다. 그 곡에 얽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미국에서 친한 친구를 만나 함께 있는데 그 친구 아버지가 찾아와서 그랬다. "녀석들, 네놈들 맨날 음악 한다고 그렇게 맘대로 살면, 결혼도 못해! 돈을 못 벌면 여자도 없어, 이 녀석들아."라고 하더라. 그게 너무 재미있어서 그걸 모티브로 현우가 가사를 붙이고 그렇게 그냥 흥겨운 파티 분위기로 연주한 거다.
Q:재즈의 즉흥성과 록의 즉흥성이 다르다고 보나?
A:글쎄. 단순히 사용되는 음이나 모드의 차이라기 보다 아예 터치 자체가 틀리다고 본다. 재즈는 피지컬한 것이고, 록은 메타 피지컬한 터치다. 동물적인 재즈와 형이상학적인 록이라 이해한다(웃음). 미술을 예로 들자면 재즈는 유화, 록은 판화나 비구상화 같은 느낌이라 생각한다.
Q:이 앨범에는 김도균, 신윤철 같은 손꼽히는 기타리스트들과 건반에 김효국, 드럼에 김민기 같은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했다. 편곡을 당신이 도맡아했는데 구체적인 연주 같은 경우 어떻게 협의한건가?
A:기타 리프 같은 경우도 내가 직접 악보를 그려 주고 그대로 연주하게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느낌이 아닌 부분이 몇 군데 있었는데, '행복의 나라로'의 경우가 그랬다. 나는 뭔가 원시적이고 와일드한 질감을 원했는데 아무래도 기타리스트들은 더빙을 선호하고, 화려한 걸 좋아하지 않나. 좀 어그레시브하게 연주하라고 하니까 기타리스트는 오히려 그게 이상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기타리스트가 녹음을 끝내고 돌아간 뒤 내가 직접 다시 연주 했다(웃음).
Q:이 음반이 왜 이렇게 묻혀버렸다고 보나?
A:당시 우리는 방송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라디오조차. 현우가 대마초를 했다는 이유로, 당시 배철수 선배가 우리 음악을 한번 틀었다가 시말서를 쓰기도 했다. 도저히 홍보를 할 방법이 없었다. 또한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회사측과도 많은 마찰이 있었다. 뒤에 우리 음악을 좋아하던 뭐 방송국의 피디들도 그렇고 앨범에 대한 구명을 바랬는데, 그자들(당시 신세계레코드 측-편집자 주)이 음원을 안 준다. 아직까지도.
[필자 주]
작년, 대자보 문화부에서는 제도 언론의 그늘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뮤지션들의 릴레 이 인터뷰를 기획했었다. 그 첫번째가 기타리스트 이두헌씨였고, 두번째가 바로 베이시스트 김영진(38)씨 였다. 그러나 갑작스런 필자의 사정으로 부득이 그 기획을 포기해야 했다.
애초 인터뷰의 기획안에는 크게 3개의 카테고리가 있었다. '문차일드'의 "born 1" 앨범에 대한 집중조명이 그 하나이고, 베이시스트라는 연주자로서의 정체성, 마지막으로 당시 국내 대중음악계에 대한 논의가 그것이다. 실제 인터뷰는 상당히 긴 시간동안 애초 기획안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필자의 사정으로 기사게재 시기를 놓치게 되었고, 현 시점에서 시의성이 떨어지는 내용을 대거 포기하고 단지 "born 1"앨범에 대한 내용만 발췌한 것이 위의 인터뷰 기사다.
그래서 완만한 흐름이라는 측면에서 위 인터뷰 기사가 다소 형식적으로 거칠게 마무리 된 점에 대한 독자들의 양해를 구한다. 또한 긴시간 성의있게 인터뷰에 응해 준 김영진 씨에 게 뒤늦은 감사를 드린다. 현재 김영진씨는 "soul food"라는 새로운 밴드를 출범시키고, 이미 앨범작업을 마무리한 상태라고 한다. 대자보는 "soul food"앨범이 발매되면 어떤 식으로든 다시 한번 진지하게 그의 음악세계를 소개하는 기회를 갖고자 한다. 독자들의 성원 바란다.
출처:2002년 3월 12일에 지금은 없어진 언론 매체 브레이크 뉴스에서
May 21, 2024
시나위'의 진짜 베이스주자는 강기영(달파란)도 서태지도 아니었다. "시나위 3집"과 번외음반(1988년에 서라벌레코드에서 발매된 음반이다. 번외음반으로 알려진 음반이다. 신대철을 비롯한 김종서,김영진,김민기 등 멤버들이 어쩔수 없는 상황때문에 급조해서 제작한 음반으로 신곡 2곡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신대철의 아버지인 신중현의 곡들을 리메이크하였다.)에 참가한 이후 다시금 신대철과 조우해 '자유'라는 3인조 블루스 밴드를 운용했던 김영진이야말로 정통적인 라인과 저음역 특유의 밀도 있는 프레이즈를 배출했던 유일한 베이스주자였다.
바로 그 유일한 베이시스트가 스스로 독립적인 음악감독임을 증명한 "Born1"앨범은 일명 '저주받은 걸작' 리스트의 단연 1순위에 등재되어야 할 작품이다. 한대수 밴드를 거쳐 '시나위', '아시아나(Asiana)', '카리스마(Charisma)' 등 국내 헤비메탈 장르의 핵심 밴드를 모두 경유한 육중한 베이시스트 김영진은, 70년대 하드록 사운드를 자양분으로 90년대 후반 록계의 새로운 대안중의 하나로 떠오른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가 접목된 미니멀한 하드록을 설계했다.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공중파 가요계에서 배제되어 있던 이현우를 리드 보컬로 내세운 그룹 '문차일드'가 95년 발표한 "Born1" 앨범은 당시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쟁쟁한 실력가들을 포섭해 거의 국가 대표급이라 할 만한 강력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신중현 일가의 차남이자 블루스 지향의 기타리스트 신윤철(현 원더버드), 국내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1세대 김도균(한대수 세션, 국악을 록으로 해석하는 개인 프로젝트 밴드를 진행중), 음악매니아는 물론 뮤지션들 사이에서 더 인정받던 명민한 드러머 김민기(H2O, 김종서 밴드), 하몬드 올갠에서 발군의 기량을 들려주던 스튜디오 세션의 톱 클래스 김효국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한 이 앨범은, 이후 헤비메탈 장르를 피해 대량 이주에 올랐던 언더그라운드 록씬의 난민들을 수용하게 되는 장르적 컨벤션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펑크 사운드로 재해석된 [행복의 나라로]는 한국적 펑크의 가능성에 관한 단서를 포함하고 있다. 느슨하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들려주는 흙냄새 물씬한 기타사운드는 타이트한 리듬섹션과의 연동으로 '달리는' 록 편곡의 전형을 제시했으며, 반항적 정서를 우회적으로 표했던 한대수의 가사는 '문차일드'식 사운드 구도 아래 직설적인 주제의식을 새로이 확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12현 어쿠스틱 기타에 의한 두터운 포크 사운드를 편곡의 중심에 놓은 [나의 노래], [비]는 물론, 소울풀한 [My woman], 훗날 영화 "카라" O.S.T에 사용되기도 했던 [후회] 등의 트랙은 가요적인 선율과 느슨하고 즉흥적인 70년대 록적인 사운드 발상이 유기적으로 결합했다. 이 트랙들은 한국적 록 사운드의 전범이라 할만 하며, 사운드의 발상이라는 측면에서 포크록(포크가 아닌)이라는 작법에 대한 직접적이고 긴요한 힌트를 제시한 곡들이다.
산울림의 [아니벌써]를 훵키한 록큰롤로 교정한 트랙이나, 사이키델릭한 몽롱함과 파퓰러한 선율이 공존하는 [곰팡이], 자유스럽고 열정적인 한바탕 젬세션을 구체화 한 [No money, no honey] 등은 '문차일드'의 응집력이 노련한 테크니션들의 자위행위가 아니라 정통적인 록 사운드와 한국 뮤지션의 고유한 감성이 긴장을 이룬 진정성 있는 록 사운드를 일구어 냈음을 증명하는 곡들이다.
국내 대중음악계에도 이른바 평단이란 것이 있다면 그들은 얼마간 직무유기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서태지 이후 대거 등장한 이른바 대중음악 담론가들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사고에 기반해 작업되는 록 음악을 일개 사회학 텍스트로 종속시켰고, 상대적으로 그런 의미망을 덜 포함한 '문차일드'와 같은 밴드는 제외했다.
그들이 어설프게 꾸려놓은 수많은 재평가 리스트에도 '문차일드'의 "Born 1" 앨범은 누락돼 있지만, 오히려 '문차일드'는 대중음악 담론가들이 한낱 서태지에 열광하고 있던 시점에 국내 최초로 한대수와 '산울림'을 재평가하는 트랙을 "Born 1" 앨범에 상재했다(담론가들은 서태지를 거쳐서야 비로소 '들국화'로, '산울림'으로, 한대수로 제각각 찢어졌다). 오늘날, 중 고등학생들의 삥이나 뜯는 같잖은 댄스팀이 공중파에서 '문차일드'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활개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들의 책임이다.
'문차일드'의 "Born 1" 앨범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출처:2001년? 2002년?에 지금은 없어진 대자보에서.
바로 그 유일한 베이시스트가 스스로 독립적인 음악감독임을 증명한 "Born1"앨범은 일명 '저주받은 걸작' 리스트의 단연 1순위에 등재되어야 할 작품이다. 한대수 밴드를 거쳐 '시나위', '아시아나(Asiana)', '카리스마(Charisma)' 등 국내 헤비메탈 장르의 핵심 밴드를 모두 경유한 육중한 베이시스트 김영진은, 70년대 하드록 사운드를 자양분으로 90년대 후반 록계의 새로운 대안중의 하나로 떠오른 어쿠스틱 포크 사운드가 접목된 미니멀한 하드록을 설계했다.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공중파 가요계에서 배제되어 있던 이현우를 리드 보컬로 내세운 그룹 '문차일드'가 95년 발표한 "Born1" 앨범은 당시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씬의 쟁쟁한 실력가들을 포섭해 거의 국가 대표급이라 할 만한 강력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신중현 일가의 차남이자 블루스 지향의 기타리스트 신윤철(현 원더버드), 국내 헤비메탈 기타리스트 1세대 김도균(한대수 세션, 국악을 록으로 해석하는 개인 프로젝트 밴드를 진행중), 음악매니아는 물론 뮤지션들 사이에서 더 인정받던 명민한 드러머 김민기(H2O, 김종서 밴드), 하몬드 올갠에서 발군의 기량을 들려주던 스튜디오 세션의 톱 클래스 김효국 등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한 이 앨범은, 이후 헤비메탈 장르를 피해 대량 이주에 올랐던 언더그라운드 록씬의 난민들을 수용하게 되는 장르적 컨벤션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다.
충격적인 펑크 사운드로 재해석된 [행복의 나라로]는 한국적 펑크의 가능성에 관한 단서를 포함하고 있다. 느슨하지만 폭발적인 에너지를 들려주는 흙냄새 물씬한 기타사운드는 타이트한 리듬섹션과의 연동으로 '달리는' 록 편곡의 전형을 제시했으며, 반항적 정서를 우회적으로 표했던 한대수의 가사는 '문차일드'식 사운드 구도 아래 직설적인 주제의식을 새로이 확보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12현 어쿠스틱 기타에 의한 두터운 포크 사운드를 편곡의 중심에 놓은 [나의 노래], [비]는 물론, 소울풀한 [My woman], 훗날 영화 "카라" O.S.T에 사용되기도 했던 [후회] 등의 트랙은 가요적인 선율과 느슨하고 즉흥적인 70년대 록적인 사운드 발상이 유기적으로 결합했다. 이 트랙들은 한국적 록 사운드의 전범이라 할만 하며, 사운드의 발상이라는 측면에서 포크록(포크가 아닌)이라는 작법에 대한 직접적이고 긴요한 힌트를 제시한 곡들이다.
산울림의 [아니벌써]를 훵키한 록큰롤로 교정한 트랙이나, 사이키델릭한 몽롱함과 파퓰러한 선율이 공존하는 [곰팡이], 자유스럽고 열정적인 한바탕 젬세션을 구체화 한 [No money, no honey] 등은 '문차일드'의 응집력이 노련한 테크니션들의 자위행위가 아니라 정통적인 록 사운드와 한국 뮤지션의 고유한 감성이 긴장을 이룬 진정성 있는 록 사운드를 일구어 냈음을 증명하는 곡들이다.
국내 대중음악계에도 이른바 평단이란 것이 있다면 그들은 얼마간 직무유기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서태지 이후 대거 등장한 이른바 대중음악 담론가들은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사고에 기반해 작업되는 록 음악을 일개 사회학 텍스트로 종속시켰고, 상대적으로 그런 의미망을 덜 포함한 '문차일드'와 같은 밴드는 제외했다.
그들이 어설프게 꾸려놓은 수많은 재평가 리스트에도 '문차일드'의 "Born 1" 앨범은 누락돼 있지만, 오히려 '문차일드'는 대중음악 담론가들이 한낱 서태지에 열광하고 있던 시점에 국내 최초로 한대수와 '산울림'을 재평가하는 트랙을 "Born 1" 앨범에 상재했다(담론가들은 서태지를 거쳐서야 비로소 '들국화'로, '산울림'으로, 한대수로 제각각 찢어졌다). 오늘날, 중 고등학생들의 삥이나 뜯는 같잖은 댄스팀이 공중파에서 '문차일드'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활개치도록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상황은 그들의 책임이다.
'문차일드'의 "Born 1" 앨범은 재평가되어야 한다.
출처:2001년? 2002년?에 지금은 없어진 대자보에서.
May 21, 2024
김영진님은 1981년에 수레바퀴 라는 밴드에서 활동하면서 그의 이력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1984년에 수레바퀴에서 활동했던 김도균, 고 유상원과 함께 솔로몬이라는 밴드를 결성하였고 같은 해에 기타리스트 이근형과 함께 작은하늘을 결성하게됩니다. 그리고 그는 1988년 시나위의 3번째 정규음반에 정식멤버로 참여합니다. 이후 이근형,김민기,김종서가 결성했던 카리스마의 1집 레코딩이 끝난 이후에 정식멤버로 참여합니다. 카리스마 1집은 1988년 10월에 발매됩니다. (카리스마 1집 레코딩에는 박현준이 참여했지만 레코딩이 끝난 후에 탈퇴하게됩니다. 후에 1992년에 김종서가 솔로 데뷔가 크게 성공하면서 김종서 in 카리스마 라는 제목으로 재발매됩니다.) 그리고 임재범,김도균,고 유상원과 함께 영국에서 음반의 전 레코딩 과정을 진행한 밴드 아시아나에 참여하게됩니다. 아시아나의 데뷔작은 1990년에 발매됩니다. 그리고 그는 고 오경환,신대철과 함께 자유를 결성해서 1991년에 데뷔음반을 발표하였죠. 문차일드 음반 이후에 김영진은 김종서의 라이브,음반에 김민기,타미 킴과 함께 오랫동안 세션으로 활동합니다. (당시 김종서와 세션들은 김종서 밴드로 알려졌지만 엄밀히 김종서님은 김종서 밴드가 아닌 The Team이라는 밴드로 불리워지기를 원했죠.) 2000년대 초반에 크래쉬의 정용욱과 또 한명의 보컬리스트이자 기타리스트와 함께 소울 푸드라는 (서태지가 2004년에 발표한 정규작(live wire,heffy end,robot 등의 곡이 수록된)을 통해서도 알려진) Emo-Core(emotional hardcore)를 선보이면서 데뷔 음반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무산되었습니다. 그리고 2003년에 재결성된 H2O에서 정식멤버로 오랫동안 활동하였죠. 그리고 2010년대 초반에 글래머 솔(Glamour Sol)이라는 밴드를 결성해서 한대수의 데뷔 40주년 기념 헌정음반에 참여하였고 EP음반을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무산되었습니다. 현재 그는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중입니다.
May 21, 2024
https://youtu.be/KGAUYBAAhNE?si=IqpbVsVKEfhVIQOK
1995년 6월 10일에 방영된 (지금은 없어진) KMTV에서 방영한 쇼!뮤직탱크 4회차 방송에 문차일드의 라이브가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 오프닝으로 공연하는 현재로서 온라인에서 찾을수있는 유일한 영상입니다. 오래전에 엠넷에서 1995년에 출연한 영상도 유튜브에 있었는데 삭제되었죠. 저화질이었고요. 그 영상에는 기타와 드럼까지 포함한 밴드체제의 라이브가 있었죠.
1995년 6월 10일에 방영된 (지금은 없어진) KMTV에서 방영한 쇼!뮤직탱크 4회차 방송에 문차일드의 라이브가 있습니다. 시작하기 전 오프닝으로 공연하는 현재로서 온라인에서 찾을수있는 유일한 영상입니다. 오래전에 엠넷에서 1995년에 출연한 영상도 유튜브에 있었는데 삭제되었죠. 저화질이었고요. 그 영상에는 기타와 드럼까지 포함한 밴드체제의 라이브가 있었죠.
May 23, 2024
May 17, 2024
Band | |
---|---|
Album | Born 1 (1995) |
Type | Album (Studio full-length) |
Genres | Pop Rock, Alternative Rock |
Labels | 신세계음향공업주식회사 |
1. 행복의 나라로 (한대수 cover) (3:17)
2. 나의 노래(3:52)
3. 기도 (5:01)
4. 후회 (5:10)
5. 곰팡이 (4:19)
6. 아니 벌써 (산울림 cover) (3:35)
7. 비 (3:25)
8. My Woman (4:14)
9. 길잃은 천사 (5:11)
10. No Money, No Honey (6:11)
11. 후회 (Radio Edit - CD Bonus Track) (4:21)
2. 나의 노래(3:52)
3. 기도 (5:01)
4. 후회 (5:10)
5. 곰팡이 (4:19)
6. 아니 벌써 (산울림 cover) (3:35)
7. 비 (3:25)
8. My Woman (4:14)
9. 길잃은 천사 (5:11)
10. No Money, No Honey (6:11)
11. 후회 (Radio Edit - CD Bonus Track)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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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직 / 문차일드 (Moon Child) | 1 photo | |
Born 1 (1995) | 1 pho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