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작을 만들어내기 위한 이론적 기반=펜타토닉 스케일 단 하나!
미국 출신의 스토너 록/메탈 밴드 Elder는 2006년 결성된 이후 지금까지 총 다섯 장의 앨범을 발매해오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었고, 이제는 이쪽 장르 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만한 수준의 베테랑으로 자리 잡았다. 프론트맨 Nick DiSalvo의 주도 하에 앨범을 거듭 발매하며 서서히 스타일의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별다른 실패 없이 매번 수준 높은 음악들을 만들어내는 ‘믿고 듣는’ 밴드 중 하나로 성장한 것이다.
비록 작년 발매된 5집 Omens에 이르러 메탈의 색채가 거의 빠지고 대신 사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적 면모가 부각되었지만 이들은 본래 스토너/둠 메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2008년 Nick DiSalvo와 멤버들이 고등학생 때 지하실에서 녹음하고 발매한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은 Sleep같은 밴드의 영향력이 뚜렷하게 느껴지는 묵직한 스토너/둠 메탈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그로부터 3년 뒤 발매된 2집 Dead Roots Stirring은 이들만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비약적인 성과를 거둠으로써 큰 잠재력을 보여주었던 작품이다.
프론트맨이자 작곡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Nick DiSalvo에 따르면 그들은 온전히 자기들만의 힘으로 제작한 첫 앨범에 기뻐했지만 그보다 더 세련된 스타일을 추구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2집 Dead Roots Stirring은 제대로 된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수 있었지만 금전적인 이유 등으로 인해 녹음 및 믹싱 등의 과정 등을 5일 만에 전부 완료해야 했다. 또한 학업 등의 이유로 다른 멤버들과 따로 떨어져 살았던 그는 작곡 또한 개별적으로 진행했으며 무엇을 빼고 더할지는 합주를 하면서 멤버들과 함께 결정했다고 한다. 그들은 앞서 언급한 금전적인 이유로 인해 앨범 제작에 큰 지연을 겪기도 했지만 끝내 발매된 Dead Roots Stirring은 인내는 쓰지만 열매는 달다는 말이 어울리는 걸작이었다.
앰프 켜는 소리로 시작하는 첫 번째 곡 Gemini는 헤비하고 진득한 리프로 시작하는 도입부로 스토너 장르 특유의 스타일과 맛을 곧바로 보여준다. 귀에 쏙쏙 박히는 리프들은 그루브하면서도 때때로 멜로딕함을 강조하며 듣는 재미를 더하고, 1집에서 Sleep과 Om의 보컬 Al Cisneros의 스타일을 따라가기에 급급했던(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감상이 아니라 실제로 Nick DiSalvo 본인이 1집 녹음 당시의 경험을 말한 것이다.) Nick DiSalvo의 보컬은 보다 개성 있고 매력적으로 변모했다. 또한 곡이 중반부로 접어들며 유려한 솔로가 곡을 휘어잡기도 하고, 이후 기타가 잔잔한 분위기를 이끌어 가다가 다시 조화를 이루어내는 부분은 말 그대로 전율에 이르게 되는 킬링 파트이다. 그러면서도 분위기를 살짝 가라앉혔다가 자연스레 클라이맥스로 이어지는 전개 역시 마치 자유자재로 경공술을 쓰는 것 같은 완급조절에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베이스와 드럼이 이끌어가는 도입부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타이틀곡 Dead Roots Stirring에선 보다 부드럽고도 몽롱한 분위기를 서서히 조성하며 청자로 하여금 이 분위기에 흠뻑 젖게 해 준다. 조금씩 변주되는 리프를 활용하여 반복적이지만 루즈하지 않은 3분 이상의 긴 도입부를 마무리한 뒤, 머리가 절로 움직여지는 헤비하고 그루브한 리프가 수를 놓기 시작한다. 중독성 있는 보컬 파트 이후 이어지는 전개 또한 하나하나 버릴 것 없는 주옥같은 리프들로 변칙적이면서도 유기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마지막 보컬 파트가 등장한 뒤 분위기가 고조되다가 펑 터지듯 멜로디가 분출하는 클라이맥스는 앞서 언급한 1번 트랙의 후반부와 마찬가지로 들을 때마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기가 막힌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유튜브나 레딧 등의 웹사이트에서도 팬들이 공통적으로 이 부분에서 마치 열반에 드는 듯한 수준의 전율을 느낀다는 의견을 찾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곧바로 이어지는 조금 더 테크니컬한 파트 역시 청자를 사로잡는 멜로디를 선보이며, 수미상관적 구조로 서서히 내려앉는 마무리에 이르기까지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완벽한 모습을 선보였다. 개인적인 취미로 혼자 기타를 칠 때 이 1, 2번 트랙을 연이어 커버해볼 때가 종종 있는데 두 곡을 합쳐 20분이 넘음에도 체감상 금방 끝난다고 정도로 푹 빠져들게 되는 기막힌 마력을 지닌 곡들이었다.
세 번째 곡 III는 보컬 없는 연주곡으로, 흔히 앨범에 중간쯤에 위치한 연주곡이 앨범 전반의 분위기를 환기하거나 쉬어 가는 역할을 해 주는 반면 이 곡은 앞뒤의 곡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강한 임팩트를 선사해 주는 또 하나의 킬링 트랙이다. 사실 나머지 곡들도 보컬의 비중이 곡 길이에 비해 무척 적은 편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도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어쿠스틱 기타의 잔잔한 느낌으로 시작하는 이 곡은 조금씩 분위기를 끌어올리다가 터트려 주는 구성을 다시 활용하며 본격적으로 매력을 발산하기 시작한다. 이 곡도 마찬가지로 강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구성 속에서 귀에 쏙쏙 박히는 리프들이 한가득 담겨 있으며, 파워풀한 메인 리프나 캐치한 멜로디와 함께 마무리되는 마지막까지 마음에 드는 곡이었다.
한편 도입부 이후에 곧바로 맛깔나는 리프와 솔로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The End역시 앨범의 후반부라고 해서 힘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트랙이다. 곡 중후반부까지 마치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은 리프들의 향연에 푹 빠져 있다 보면 어느새 곡이 끝나게 될 정도로 각각의 리프들과 그 짜임새가 훌륭했다. 특히 기타 솔로 이후 이펙터를 활용하여 조금 더 거친 느낌을 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를 뒷받침해주는 베이스와 드럼의 존재감 역시 무시못할 수준이었으며, 무게감 있고 몽롱해지는 분위기를 유지하는데 큰 역할을 해 주었다.
마지막 곡 Knot은 대미를 장식하는 곡답게 초반부터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곡이 진행된다. 이 곡에서는 육중한 브레이크다운과 베이스의 존재감이 부각되기도 하고, 이와 대조되는 후반부의 공중부양을 하듯 붕 뜬 느낌이 저마다의 매력을 뽐낸다. 특히 앨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서서히 치닫는 전개와 곧이어 마치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기타 솔로 파트에서 다시금 전율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이 곡도 2번 트랙과 마찬가지로 수미상관적인 구조로 끝을 맺으며 12분이 넘는 대곡과 앨범 전체의 깔끔한 마무리를 지었다.
이처럼 이 앨범은 평균 10분이 넘는 다섯 개의 대곡으로 구성된 작품이지만 각각의 곡들이 전혀 지나치게 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뿐더러 사실상 다섯 곡 모두 전부 킬링 트랙이라고 봐도 무방할 만큼 매력적이었다. 버릴 것 하나 없이 착착 달라붙는 리프들로 귀를 만족시켜줄 뿐 아니라, 적절한 반복과 변주를 통해 대곡 구성을 전혀 지루하지 않게 풀어나간다. 일례로 타이틀곡 Dead Roots Stirring의 경우 총 10개 이상의 다양한 리프들을 활용해 탁월한 완급조절로 지루할 틈을 주지 않으며, 나머지 곡들도 마찬가지로 빼어난 리프들의 인상적인 짜임새가 두드러진다.
스토너 록/메탈 장르 특유의 진득하고 몽롱한 분위기 역시 훌륭하게 만들어내고 있는데, 이에 그치지 않고 록과 메탈의 경계를 오가며 때로는 가볍고 부드럽게, 다른 한편으로는 무겁고 좀 더 거친 면모를 공존시키는 방식으로 기존의 스토너 록/메탈 선배 밴드들과도 구별되는 이들만의 색채를 확립할 수 있었다. 기타와 베이스의 무게감 있는 톤과 드럼 사운드도 서로 잘 조화를 이루며 분위기 메이킹에 기여를 했고, 앞서 언급한 대로 좀 더 개성 있게 변화한 Nick DiSalvo의 보컬 스타일 역시 거친 목소리 대신 비교적 부드러운 스타일의 보컬로 접근성을 높였고 더욱 분위기와 어울리는 느낌을 주었다.
사실 연주곡인 3번 트랙을 제외한 나머지 곡들에서도 보컬의 비중은 무척 적은 편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이러한 방식이 훌륭한 연주와 분위기에 더욱 흠뻑 젖을 수 있게 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간간이 보컬이 등장하여 100% 연주 앨범이었다면 다소 심심했을지도 모르는 부분에 감초 같은 역할을 해 주었는데, 이는 목소리가 음악의 주가 되고 나머지 연주 파트 등은 단순히 반주로서 보컬을 뒷받침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여겨지는 선입견을 극복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연주나 분위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중요시되는 록/메탈 장르 내에서 이러한 점은 그렇게까지 특이한 것이 아니다만 이들의 음악은 보컬을 최소화하여 적절히 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끝내주는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입증해 주었다고 본다.
특히 이 앨범은 진득한 리프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스토너 록/메탈 계열에서도 최고로 손꼽을 만할 정도로 훌륭한 리프들이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러한 리프가 무작정 단순하기만 한 것도 아니고 상당히 다채로운 편이라서 단지 들을 때뿐 아니라 기타를 잡고 직접 커버를 해볼 때도 정말 재미있게 칠 수 있는 정도이다. 또한 이러한 리프들의 구성 또한 듣다 보면 절로 감탄사를 나오게 할 정도로 잘 짜여 있는데, 그 중에서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Elder 특유의 전율을 느끼게 하는 곡 전개는 안 그래도 좋은 이들의 사운드에 더욱 빠져들게 하는 강력한 마력을 지니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작곡의 중추를 담당하는 Nick DiSalvo는 사실 음악 이론에 빠삭한 인물이 전혀 아니며 그가 알고 있는 스케일이라고는 펜타토닉 스케일 하나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화성학을 전혀 배우지 않고도 주옥같은 명작들을 만들어냈던 Dave Mustaine의 유명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Elder의 성공 또한 이론적 기반보다는 탁월한 감각에서 비롯된 예술혼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것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덧붙이자면 이 앨범에 수록된 솔로들은 미리 작곡된 것들이 아니라 즉흥적으로 나온 연주들이라고 한다.
결론적으로 Elder의 2집 Dead Roots Stirring은 1분 1초가 아깝지 않고 단 하나의 버릴 리프도 없는 완벽에 가까운 스토너 록/메탈의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머리를 가만히 두기 어려운 그루브한 리프부터 부드럽고 정교한 멜로디가 돋보이는 리프에 이르는 다채로운 리프들이 시종일관 귀를 즐겁게 해줄 뿐 아니라 이들을 서서히 쌓아 올리며 결국에는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강렬한 구성 역시 감탄을 하게 만들었다. 스토너 장르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면서도 록과 메탈의 경계를 넘나드는 모호함의 매력을 이들만의 개성으로 확립했으며, 음악의 분위기와 딱 맞아 떨어지는 앨범 커버마저도 이 앨범을 완벽함에 수렴하게 만들어주었다.
비록 이 앨범의 후속작인 3집 Lore와 4집 Reflections Of A Floating World도 연이어 큰 호평을 받으며 이들의 최고작이라는 평가도 심심찮게 나올 정도였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들은 이미 이 작품에서 정점에 도달했었다고 생각한다. 앨범을 발매하며 점점 음악적으로 메탈적인 측면과 멀어졌던 Elder는 2019년 원년 멤버였던 드러머 Matt Couto가 탈퇴한 뒤 새 드러머와 기타리스트 겸 키보디스트를 영입하여 4인 체재를 구축했고, 작년 발매한 5집 Omens는 메탈 사운드에서 거의 탈피해 사이키델릭/프로그레시브적인 스타일로의 변화를 택했다. 작년 신작 역시 Elder 특유의 분위기를 잘 살리기는 했지만 2집 시기의 진득한 무게감과의 조화가 거의 사라진 느낌이라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때문에 이들도 서서히 진행된 ‘탈 메탈화’의 과정을 이미 거쳐버린 것 같다만 개인적으로는 언젠가 Dead Roots Stirring같은 스타일의 가벼움과 무거움이 공존하는 매력을 다시 느낄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다만 지금까지 이어져 온 Elder 디스코그래피의 변화 과정과 작년 Omens앨범 발매 당시 Nick DiSalvo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이들이 보다 헤비한 사운드로 회귀할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아 보인다. Nick DiSalvo가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음악은 서서히 진화해 왔으며 이를 특정 장르의 틀에 한정 지으려 하고 싶지 않다는 식의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신작이 발매될 때마다 반드시 전작들을 뛰어넘으려 애쓸 필요는 없으며 또 신작이 높게 평가된다고 해서 이전 작품들이 상대적으로 폄하될 이유도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의견은 상당히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앞서 신작 Omens가 Dead Roots Stirring에 비해 아쉬웠다고 말했음에도 이는 단지 개인적인 의견일 뿐 사람마다 어떤 앨범을 더 선호하는지는 제각각이기 때문에 한 작품을 더 좋게 들었다고 해서 다른 작품의 가치를 애써 깎아내리려 애쓸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Elder의 최고작은 Dead Roots Stirring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의 음악적 변화 과정이 실망스럽다고만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당연히 예술가의 작품이 팬의 기대를 충족시켜 준다면 좋은 것이지만, 어디까지나 많은 수의 예술가들은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의 예술혼을 발휘하기 위해 작품을 창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팬으로써 자신의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이유로 예술가의 작품세계를 비난하는 것보다는 이미 자기에게 큰 만족을 주었던 작품을 계속 즐기는 것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앞으로 Elder가 어떤 식의 음악을 들려줄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2집 Dead Roots Stirring이 주는 큰 감동은 개인적인 취향이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계속 유지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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