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
B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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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 | Split |
Released | March 13, 2020 |
Genres | Atmospheric Black Metal |
Labels | Entropic Recordings |
Format | CD, Digital, Vinyl |
Length | 1:55:12 |
Album Photos (1)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 Information
Track listing (Songs)
title | rating | vot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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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Spectral Lore - Mercury (The Virtuous) | 8:36 | 100 | 1 | |
2. | Mare Cognitum - Mars (The Warrior) | 9:25 | 100 | 1 | |
3. | Spectral Lore - Earth (The Mother) | 11:55 | 100 | 1 | |
4. | Mare Cognitum - Venus (The Priestess) | 12:27 | 100 | 1 | |
5. | Mare Cognitum - Jupiter (The Giant) | 15:04 | 100 | 1 | |
6. | Spectral Lore - Saturn (The Rebel) | 10:14 | 95 | 1 | |
7. | Mare Cognitum - Neptune (The Mystic) | 11:38 | 95 | 1 | |
8. | Spectral Lore - Uranus (The Fallen) | 12:23 | 95 | 1 | |
9. | Mare Cognitum & Spectral Lore - Pluto (The Gatekeeper) Part I: Exodus though the Frozen Wastes | 11:29 | 90 | 1 | |
10. | Mare Cognitum & Spectral Lore - Pluto (The Gatekeeper) Part II: The Astral Bridge | 12:00 | 100 | 1 |
[ Rating detail ]
Line-up (members)
- Mare Cognitum
- Jacob Buczarski : Everything
- Spectral Lore
- Ayloss : Everything
Production staff / artist
- Ayloss : Recording, Mixing (tracks 1, 3, 6, 8)
- Jacob Buczarski : Recording, Mixing (tracks 2, 4, 5, 7), Mastering (tracks 9, 10)
- Elijah Gwhedhú Tamu : Cover Artwork
- Francesco Gemelli : Art Direction, Layout
Mare Cognitum tracks recorded & mixed at Entropic Recordings, 2016-2019.
Spectral Lore tracks recorded & mixed at the Stellar Auditorium, 2016-2019.
Spectral Lore tracks recorded & mixed at the Stellar Auditorium, 2016-2019.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 Videos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 Reviews
(1)Date : Apr 30, 2020
그 지위는 잃었을지라도 그 이름까지 잃어버린 건 아니기에
영국의 작곡가 Gustav Holst의 관현악 모음곡 “The Planets"는 1914년부터 1916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1918년 비공개 초연을 거쳐 1920년에 최초로 공개 초연이 이루어졌다. 총 일곱 개의 섹션으로 구분되는 이 곡은 개별 섹션마다 각각의 행성 이름과 그에 해당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을 의미하는 표제가 붙어 있다. 또한 Holst 본인이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계기가 천문학이 아닌 점성술에 기반한 것이었기에 곡의 순서 역시 행성 배열 순서가 실제 태양계의 배열 순서와 다소 다르고, 지구와 당시 발견되지도 않은 상태였던 명왕성은 빠진 일곱 개의 행성을 포함하고 있다.
곡이 발표된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당대를 주름잡던 유명 작곡가들에 비하면 딱히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천문학과 우주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현대에 이르러 명곡 반열에 들게 되었다. 특히 이 곡은 현대 작곡가, 특히 영화 음악 작곡가들이나 록 밴드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John Williams나 Hans Zimmer같은 영화음악계의 거장들이 ‘화성’을 차용하기도 했고(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스타워즈 시리즈의 The Imperial March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가 King Crimson은 ‘화성‘을 편곡한 The Devil's Triangle이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국내에서도 밴드 넥스트가 ’화성’을 커버하기도 했으며, ‘목성‘의 경우 한때 MBC 뉴스데스크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바 있는 만큼 “The Planets"의 위상은 현대에 들어 더욱 올라가 현재는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클래식 명곡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곡이 공개 초연된 지 딱 100년이 지난 2020년, 그리고 Black Sabbath에 의해 본격적으로 메탈이 성립되기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난 올해 두 명의 원맨 밴드에 의해 “The Planets"는 새롭게 재창조되었다. 그리스의 Spectral Lore와 미국의 Mare Cognitum가 협업한 결과물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이 바로 그것이다.
Ayloss(본명 Chris Dir)의 Spectral Lore와 Jacob Buczarski의 Mare Cognitum은 2000년대 이후 Darkspace를 필두로 소위 ‘스페이스 블랙 메탈’ 내지는 ‘코스믹 블랙 메탈’이라고 불리는 부류 중에서도 실력과 개성 모두를 갖춘 원맨 밴드들이다. 먼저 Spectral Lore의 경우 보다 거칠고 날것의 블랙 메탈 사운드와 엠비언트에 기반하면서도 때때로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독특한 면모가 나타나는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한편 Mare Cognitum은 좀 더 깔끔하고 프로그레시브한 구성이 존재하는 매우 독자적인 사운드를 정립했다. 비록 Spectral Lore가 몇 년 더 일찍 활동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두 밴드 모두 2014년의 정규 앨범에서 더욱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쪽 계열 원맨 밴드로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두 밴드의 태양을 테마로 한 스플릿 앨범이자 공동 작곡한 곡이 담겨있는 Sol(라틴어로 태양을 뜻한다)을 발표하며 이때부터 이미 두 밴드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두 밴드 모두 2016년 이후로는 정규 앨범을 발매하지 않고 스플릿이나 신규 프로젝트 등으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며 다음 정규 앨범을 원하는 팬들의 애간장만 타들어 가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마침내 올해 1월, 2013년의 스플릿 Sol 이후 이 두 밴드가 다시 힘을 모아 만들어낸 Sol의 후속작이자 태양계의 행성들을 테마로 한 무려 두 시간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지난 3월 마침내 앨범이 발매되었다. 또한 발매 직후 LP 버전이 전부 매진될 만큼 팬들의 높은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도 했다.
앨범은 엄밀히 말하면 스플릿 앨범이지만 마지막 두 곡은 Ayloss와 Buczarski의 협업으로 탄생한 곡들이며 앨범 전체가 태양계의 행성들을 주제로 한 컨셉 앨범이기 때문에 작년 핀란드의 Oranssi Pazuzu와 Dark Buddha Rising이 협력하여 만든 Waste of Space Orchestra의 Syntheosis처럼 일종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Mare Cognitum의 Jacob Buczarski에 따르면 이 작품은 분명히 Gustav Holst의 행성 모음곡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Holst의 발자취를 따르기보다는 좀 더 독자적인 자기들만의 “The Planets”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개별 곡명에 행성의 이름과 함께 행성을 상징할만한 단어를 병기하여 Holst가 보여준 형식을 따르면서도 실제 음악에 있어서는 전혀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킴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행성 모음곡을 만들어냈다. 과거 다른 밴드나 작곡가들이 Holst의 음악을 차용하거나 혹은 저마다의 커버 버전을 만든 것에 비해 이들의 경우 전반적인 형식만을 빌려오되 그 내용물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Buczarski가 인터뷰에서 농담조로 언급한 대로 “우리는 Holst가 완전히 싫어할 만한 것을 만들어냈다.”라고 한 것처럼 이들은 재해석을 넘어선 재창조에 가까운 시도를 감행했던 것이다.
2 CD, 3 LP 구성으로 총 115분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인 이 앨범은 개별 곡들이 각각의 행성들을 상징하며, 수성~해왕성의 여덟 곡은 두 밴드가 각각 네 곡씩 따로 맡았고, 두 밴드의 공동 작업물인 ‘명왕성’만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Holst의 “The Planets”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Wanderers라는 제목 그대로 점성술 적인 면모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트랙 리스트를 보면 화성과 금성, 그리고 해왕성과 천왕성의 순서가 실제 태양계 행성 순서와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고심 끝에 앨범의 음악적 구성과 흐름을 위해 곡들의 순서를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라고 Buczarski는 밝혔다.
원맨 밴드답게 녹음과 믹싱 작업 등 모두 Ayloss와 Buczarski가 각각의 파트를 홀로 마무리했으며, 다만 공동 작업한 ‘명왕성’의 두 파트는 Buczarski가 마스터링을 담당했다. 또한 보는 사람을 홀리는 듯한 앨범 커버는 Panegyrist라는 신예 아방가르드 블랙 메탈 밴드의 멤버 Elijah Gwhedhú Tamu의 작품인데, 그는 최근 Spectral lore를 비롯한 I, Voidhanger Records 소속 밴드들의 커버를 연이어 맡으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앨범 커버는 요소 하나하나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몇 가지만 예로 들자면 중앙 위쪽의 빛나는 형상은 태양을 상징하며 각각의 작은 성배들로 태양의 빛이 도달하여 행성들을 비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큰 성배를 감싸고 오르다가 마치 연기가 되듯이 흩어지는 두 마리의 뱀은 우주의 조화와 불화, 그리고 해체를 통한 재창조의 시작을 의미하며, 아래쪽의 인간 형상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내적 고뇌를 상징한다고 한다.
앨범의 가사는 제목처럼 각각 행성들이 지니고 있는 점성술적 특징에 기반하여 각각의 행성들을 신화적, 절대적 존재로 그려내고, 이와 대비되는 나약한 여행자인 인간의 모습 또한 묘사하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행성에 맞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을 보다 직접적으로 테마로 삼은 곡들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그리스 출신인 Spectral Lore의 곡들에서 이러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물론 가사가 대부분 시적, 상징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은 청자에 따라 더욱 다양할 수 있을 것이며, 이번 리뷰에서의 해석은 단순한 개인적 의견임을 밝힌다.
Mercury (The Virtuous)
수성을 상징하며 대장정의 시작을 알리는 Spectral Lore의 곡이다. 곡은 아득한 우주 공간으로 출발하는 듯한 느낌의 분위기로 시작한다. 곧이어 트레몰로 기타 리프와 더블 베이스 드러밍이 더해지며 분위기를 층층이 쌓아가다가 보컬의 절규와 함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거칠고 격렬한 블랙 메탈 특유의 느낌과 함께 비장미를 조성하는 리프가 공존하며 어지러우면서도 신비감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곡의 시작 부분부터 보컬이 등장하기까지의 부분은 마치 우주선의 이륙을 묘사한 듯한 느낌을 주며 거대한 앨범의 시작을 알리기에 완벽했던 도입부였다. 가사는 한없이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 인간의 열망과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Mars (The Warrior)
화성을 상징하는 Mare cognitum의 곡으로, 앞서 언급한 대로 음악적 구성을 위해 실제 태양계의 행성 배열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금성과 순서를 서로 바꾼 곡이다. 한층 더 음산한 분위기의 인트로 이후 가히 폭발적인 전개로 청자를 단숨에 휘어잡으며, 부드러운 면모와 파괴적인 면모가 공존, 교차했던 Mare cognitum의 기존 스타일에서 가장 파괴적인 면모만 남아 그야말로 ‘전쟁의 신’ 아레스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흐름을 선보인다. 특히 곡 후반부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다다르는 부분은 앨범 최고의 백미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Holst의 “The Planets” 중 화성 섹션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행성들 중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격렬한 트랙이자, 가장 강렬한 첫인상을 남겨 주는 어마어마한 곡이었다. 가사 역시 모든 생명을 멸할 거대한 전쟁을 그려내고 있으며, 아레스의 쌍둥이 아들들이자 화성의 두 위성인 포보스와 데이모스 또한 언급된다.
Earth (The Mother)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상징하는 Spectral lore의 곡으로, 직전 곡과는 딴판인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다. 2014년 발매되었던 정규 3집의 느낌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독특한 서정미를 구사해낸다. 한편 중반부로 접어들며 다시 거친 전개로 전환되면서 장르 특유의 비장미가 어린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또한 후반부에서 분위기가 극한으로 치달았다가 다시 가라앉으며 마무리되는 부분은 마치 우주 왕복선이 대기권을 돌파하며 고요한 우주 공간에 도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한편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행성이자 인간의 고향인 지구에 대한 곡답게 가사는 따스한 난롯불, 그리고 어머니로 비유되는 고향 지구에 대한 그리움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아들을 떠나보내면서도 언젠가 꼭 돌아올 것을 당부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곡이기도 하다.
Venus (The Priestess)
화성과 순서가 뒤바뀌어 네 번째가 된 금성을 상징하는 Mare cognitum의 곡으로, 파괴적인 면모로 가득 차 있는 Mars (The Warrior)와는 달리 비교적 부드러운 면 또한 강조한다. 우선 다시 한번 비장미 넘치는 도입부로 귀를 자극하며, 이어서 조용하고 잔잔한 전개로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이후로는 다시금 절규하는 보컬과 거친 연주가 주를 이루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히 Mars (The Warrior)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똑같은 보컬 스타일과 격렬한 연주 속에서도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에서 Mare cognitum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가사 역시 혼돈과 종말을 노래하는 Mars (The Warrior)와는 달리 어둠을 몰아내고 꺼지지 않는 빛을 밝히는 여신의 숭고한 자태와 힘을 그려내며 구원으로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다.
Jupiter (The Giant)
목성을 상징하는 Mare cognitum의 곡이며,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행성답게 단일 트랙으로서는 가장 긴 15분에 달하는 대곡이기도 하다.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하는 거대한 목성의 이미지, 그리고 천둥과 번개의 신 제우스의 이미지와 어울리게 앨범 내에서 가장 길고 무게감 있는 곡이다. 더욱 진중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메인 리프와 분위기로 일관성 있는 전개를 펼쳐나감으로써 목성의 웅장함과 거대함을 표현했다. 또한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고조된 분위기로 강렬한 마무리를 선사하기도 했다. 가사는 끝없는 폭풍우와 번개가 지속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실제 목성의 가혹한 환경을 표현함으로써 이를 평온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독 속에서 고뇌하는 절대적이고 거대한 신적 존재에 비유했다.
Saturn (The Rebel)
토성을 상징하는 Spectral lore의 곡이자, 두 번째 2CD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기도 하다. 또한, 앨범 내에서 가장 기묘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곡이다. 블랙 메탈 특유의 트레몰로 리프+블래스트 비트 난타가 배제된 곡이기도 하며, 베이스가 유독 눈에 띄는 곡이기도 하다. 간간히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난해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던 Spectral lore의 실험적인 측면이 부각된 곡으로, 기묘한 분위기와 난해하게 보이는 전개 덕에 다가가기 어려울 수도 있는 곡이지만. 겹겹이 쌓아가는 구성과 곡이 진행될수록 빛을 발하는 분위기로 은근한 매력을 뽐낸다. 특히 기타 솔로가 등장하기 시작한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곡의 진가가 발현되고, 곡 전반적으로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전개 역시 인상 깊었다. 한편 이 곡은 로마 신화에서는 사투르누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로 불리는 농경의 신에 대한 가사를 담고 있는 곡이다. 아버지 우라노스의 지배에 반기를 들어 그를 몰아내고 권력을 얻었지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제우스)에게 쫓겨나게 된 크로노스는 이후 현재의 이탈리아 지방으로 떠나 자신만의 도시를 건설해 군림했다고 한다. 헌데 이러한 신화와 전설이 로마에서는 농경과 문명을 가능케 해 준 황금기로 여겨진다고도 한다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와는 차이를 보인다. 그리하여 가사는 그의 이단아적인 면모와 빼앗긴 권력에 대한 한탄과 복수심을 담으면서도, “Of pleasure gained without blood / Of love earned without domination” 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파괴와 약탈 대신 농경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방식의 평화를 불러온 그를 긍정하고 있기도 한다.
Neptune (The Mystic)
앞서 금성과 화성이 그랬던 것처럼 천왕성과 해왕성 역시 음악적 구성을 위해 순서가 바뀌었고, 그리하여 먼저 오게 된 이 곡은 해왕성을 상징하는 Mare cognitum의 곡이다. 이전 곡과는 달리 다시 특유의 격렬한 전개로 되돌아가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러면서도 베일에 싸인 해왕성의 신비로운 면모와 동시에 차디찬 분위기를 그려냈다. 한편 이 곡은 Holst가 다루었던 행성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유일하게 부제가 ‘The Mystic’으로 동일한 곡인데, 이는 “The Planets"의 해왕성 섹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Jacob Buczarski가 Mystic이라는 단어가 해왕성과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해 그대로 놔둔 것이라고 한다. 가사는 목성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환경, 특히 더욱 차디찬 공간을 그려내며, 또한 이 속에서도 지혜를 찾아 나서는 존재를 묘사하고 있다.
Uranus (The Fallen)
천왕성을 상징하는 Spectral lore의 곡이다. 곡 초반부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강렬하게 진행되는 이 곡은 그리스 신화의 신, 즉 우라노스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가장 극적이고 변칙적인 전개가 두드러지며, 중반부에서 분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았다가 확 가라앉은 뒤 몽환적인 전개가 뒤를 잇고, 마지막으로는 도입부의 느낌이 되풀이되며 곡이 마무리된다. 한편 이 곡은 Spectral lore의 Ayloss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곡이라고 밝힌 곡이며, 우라노스와 그의 아내 가이아에 대한 곡이다. 우라노스는 가이아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아들들을 증오했고, 그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다. 이에 우라노스는 반기를 든 아들 크로노스에게 거세되고 권력을 잃게 되는데, 이 곡의 가사는 이러한 신화의 내용을 다룸과 동시에 남성성의 종말을 시사하기도 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Pluto (The Gatekeeper) Part I: Exodus though the Frozen Wastes
Spectral Lore 와 Mare Cognitum이 공동으로 작곡한 곡이다. 2013년 발매된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스플릿이었던 Sol의 마지막 곡 Red Giant와 마찬가지로 가사가 없는 스페이스 엠비언트 트랙이다. 우선 조용하면서도 음산한 느낌으로 적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곡 후반부에서는 좀 더 신비로운 느낌을 서서히 만들어내며 두 번째 파트와의 연결점을 찾아 나간다. 메탈 앨범 내에 존재하는 엠비언트 곡의 특성상 존재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Part II와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분위기 전환을 이루어 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의는 충분히 가지고 있는 트랙이라고 볼 수 있다.
Pluto (The Gatekeeper) Part II: The Astral Bridge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곡 역시 Spectral Lore 와 Mare Cognitum의 공동 작업물이면서 실험적인 면모 또한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우선 전반부에서는 마치 또 다른 코스믹 블랙 메탈 밴드 Mesarthim처럼 전자음을 활용하여 더욱 독특한 느낌을 내면서도 이전까지 이어온 특유의 비장미를 여전히 발산해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다시 연출해낸다. 한편 중반부로 접어들며 분위기가 급격히 어두워지고 이내 데스 메탈적인 느낌도 나는 강렬하고 무거운 전개로 돌입한다. 또한,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서서히 가라앉히며 조용하게 여정의 끝을 맺는다. 가사는 마침내 태양계의 끝에 다다르자 태양, 심지어 신들의 영향력조차 사그라들고, 이에 마침내 한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발을 내딛는 인간 자아를 그려낸다.
전반적으로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 모두 각자 맡은 ‘행성’들마다 각기 다른 색깔과 매력을 지닌 곡들을 선보임으로써 태양계의 아홉 행성이 지닌 저마다의 개성을 독특하고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물론 공식적으로 명왕성은 2006년 태양계의 ‘행성’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명왕성은 여전히 Pluto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애초에 이들은 이 앨범을 제작함에 있어 점성술적, 신화적 등 정신적인 테마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명왕성을 작품 속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명왕성만 두 개의 파트로 구분하고 또 둘의 공동 작업물로 제작함으로써 일종의 특별 대우를 해 주었다. 이는 비록 인간에 의해 행성 지위는 박탈당했을지언정 여전히 태양을 돌고 있고, 우리에게 여전히 명왕성이라고 불리고 있는 명왕성에 대한 위로와 경외의 마음을 담아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의 특징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작품이 스플릿 앨범이면서도 두 시간에 가까운 거대한 컨셉 앨범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록/메탈 장르에서 컨셉 앨범은 대개 길어도 80분 이내인 경우가 많고, 특히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만 놓고 볼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물론 Ayreon처럼 90~100분이 넘어가는 대작들을 연이어 성공적으로 만들어내는 특이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컨셉 앨범이라고 해서 무조건 엄청난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대작은 아니고, 앨범의 러닝 타임이 길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오히려 지나치게 러닝 타임이 긴 컨셉 앨범을 시도하는 경우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2시간 10분에 달했던 Dream Theater의 The Astonishing이나 무려 세 시간이 넘는 Therion의 Beloved Antichrist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두 밴드 모두 장르를 대표할만한 베테랑 밴드임에도 장편 영화의 러닝 타임에 맞먹는 컨셉 앨범으로 팬들의 전반적인 지지를 얻기에는 실패했다.
이러한 실패의 이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러닝 타임이 길어질수록 청자가 지루함을 느끼고 집중력을 잃게 되기 쉽다는 것이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본다. 보통 2시간 정도는 딱히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영화와는 달리 음악 앨범의 경우 기본적으로 청각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2시간 내외나 혹은 그 이상의 앨범은 당연히 아주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규)음악 앨범은 짧으면 3~40분에서 길면 7~80분을 오가는 편이다. 이때 2시간짜리 앨범을 영화로 비유해 본다면 거의 4시간 내외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길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대작 앨범이 쉽게 지루해지고 완주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또한 일반적으로 일부 그라인드코어 계열 장르를 제외하고 많아야 십수 곡으로 구성된 보통의 앨범에 비해 대작 컨셉 앨범들의 경우 수십 곡에 이르는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쉽게 산만해지고 개별 곡들이 주는 임팩트가 약화되기 쉽다는 위험도 지니기도 한다는 점에서 음악 앨범은 길면 길수록 그 완성도에 있어서 큰 위험도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위험을 극복해냈다. 먼저 이 작품이 스플릿 앨범이자 콜라보레이션 앨범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라도 한 앨범을 두 시간짜리로 만들어버린다면 그 길이로 인한 지루함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무난한 전개로 인한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매 곡마다 전혀 다른 수준으로 작곡을 하는 과감한 실험을 하는 것 역시 크나큰 리스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은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 각각에게도 당연한 리스크였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각각 네 곡씩을 담당하고 마지막 두 곡은 공동으로 작업한 뒤 앨범의 흐름과 구성에 맞게 배치함으로써 각각의 곡마다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어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한 전개를 예방하는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곡 순서에 있어서 같은 밴드의 곡이 연속으로 배치되는 경우를 최소화함으로써 비슷한 스타일이 되풀이될 우려를 최소화했다. 또한 개별 곡들에 태양계의 행성을 하나씩 대입시켜 각각의 곡들이 서로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부여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록/메탈 장르를 통틀어 두 밴드 또는 아티스트의 스플릿 또는 콜라보레이션 앨범이 본래 각자의 정규 앨범들을 상회하는 평가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뿐더러 대개는 잘 해봤자 본전치기일 정도이다. 때문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처럼 합작을 만드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보통 밴드나 음악가들의 협업은 보통 피쳐링이나 프로듀싱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공동 작업물을 만들어 하나의 앨범으로 만드는 것은 드문 편이다. 아무리 이전부터 잘 알고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도 함께 작곡을 하고 하나의 음악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상호 간의 훨씬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은 2013년에 이미 공동으로 작곡한 곡을 포함한 스플릿 Sol에서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Sol 역시 스플릿 앨범치고는 상당히 긴 러닝 타임을 자랑했지만, 두 밴드가 각각 한 곡, 그리고 공동으로 작업한 한 곡의 단 세 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기에 이 작품에 비하면 구성 면에 있어서의 고민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 당시부터 협업을 해옴으로써 이 작품과 같은 더욱 큰 규모의 협업을 가능케 할 기반을 마련해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곡과 행성을 일 대 일로 대입시킨 전략이었다. 물론 명왕성의 경우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모든 행성들은 각각 하나의 곡에 대입되어 있다. 이 방법이 유효했던 이유는 이미 언급했듯이 가지각색의 스타일을 지닌 곡들을 보여주면서도 그에 대한 충분한 당위성을 지닌다는 것인 동시에 전반적인 흐름 에도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즉, 각각의 행성들마다 서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곡들을 하나하나 펼쳐나가면서도 중구난방의 전개가 아닌 오히려 팔색조 같은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저마다 뚜렷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 태양계의 행성들을 각각의 곡에 대입한다는 것 자체가 서사 위주로 진행된 기존의 컨셉 앨범들과는 상당히 다른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에서 차별화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앨범 구성에 있어서 수십 개의 곡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딱 10개의 곡만을 수록하여 각각의 곡들이 저마다의 색을 보여주면서도 특정 곡이 다른 곡에 의해 묻혀 존재감을 상실해버리는 일을 방지했다. 그리고 곡 구성에 있어서도 대체로 10±2분 정도의 길이를 유지하여 특정 곡에 지나치게 비중이 쏠리는 일을 예방하고,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 대곡 구성을 통해 각각의 곡이 가진 저마다의 특색과 매력을 뽐낼 수 있게 설정해 두었다.
물론 이들이 2013년도의 스플릿 Sol로 협력 경험을 쌓고, 각자의 이전 활동들로 음악적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결코 쉽게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녹음 및 믹싱 과정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3년 가까이 이어졌고, 둘 모두 서로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원맨 밴드였기에 작업은 각자의 국가에서 따로따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두 밴드 모두 이 작품 작업 기간에는 꾸준히 활동해왔던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런 원맨 밴드의 특성상 생계를 이어갈 직업은 따로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실제로 Mare Cognitum의 Jacob Buczarski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탄생한 이 작품이 이루어낸 성과는 실로 값진 것이었다. 우선 음악 그 자체를 놓고 볼 때의 완성도는 이전 Spectral Lore의 III이나 Mare Cognitum의 Phobos Monolith와 같은 각자의 최고작들에 비견될만한 훌륭한 수준이었다. 먼저 Spectral Lore의 곡들의 경우 장르적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특유의 독특한 개성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블랙)메탈 본연의 기본기 또한 충족시키며 개성과 실력 모두를 잡아냈다. 또한 거친 연주와 보컬 속에서 타오르는 비장미와 잔잔하고 부드러운 부분에서 피어나는 서정미의 공존은 Spectral Lore의 실력과 가능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보다 직설적인 모습으로 확실한 첫인상을 안겨주며 완벽한 오프닝을 보여준 Mercury (The Virtuous), 특유의 독특한 서정미를 부각한 Earth (The Mother), 독특한 실험적 면모를 보여준 Saturn (The Rebel)과 극적 구성이 두드러지는 Uranus (The Fallen) 모두 저마다의 매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Mare Cognitum역시 이에 뒤처지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일명 코스믹 블랙 내지는 스페이스 블랙이라고 불리는 이쪽 부류 내에서도 단연 독보적으로 프로그레시브하고 꽉 찬 구성을 통해 단순히 우주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이상의 짜임새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며 입지를 다진 그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실력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이번 앨범에서는 이전 앨범들로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저력을 재확인하면서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폭발적인 화력으로 청자를 압도하는 Mars (The Warrior)와 이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면모를 지니면서도 강렬한 비장미를 선사한 Venus (The Priestess), 목성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웅장한 무게감을 조성해낸 Jupiter (The Giant), 차디찬 분위기 속에서도 신비함을 느끼게 만드는 Neptune (The Mystic) 전부 Spectral Lore만큼 곡마다 큰 차이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구별될만한 뚜렷한 개성, 그리고 그 자체적으로도 훌륭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둘의 합작품인 Pluto (The Gatekeeper) Part I & II의 경우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둘 사이의 협동심과 양측 모두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곡이었다. 특히 Part II: The Astral Bridge는 앨범 내에서 가장 뚜렷한 색채를 지니고, 전/후반부가 가장 극적으로 대비되는 곡이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곡 중 하나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단지 음악뿐 아니라 그 컨셉과 가사, 그리고 앨범 커버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의 정신적 체험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마음 속 깊은 울림을 남겨 주었던 작품이었다. 앨범을 들으며 태양을 떠나 수성에서부터 명왕성에 이르며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돌입하게 되는 일종의 정신적인 여정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작품이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의도를 완벽히 살려냈음을 증명한다. 또한 마치 신화 또는 서사시처럼 각각의 행성을 절대적 존재로 묘사하고 이들을 거쳐나가며 여정을 이어가는 가사와 눈을 사로잡는 앨범 커버는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청자를 아득한 우주 공간으로 인도해주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태양계의 행성들을 테마로 하여 청자로 하여금 드넓은 태양계로 여정을 떠나게 만들어주는 정신적 체험을 선사한 대작이었다. 무려 두 시간에 근접한 거대한 작품임에도 상대적으로 지루함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져 있고 곡들이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물론 굳이 단점을 지적하자면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1 CD(1~5번 트랙)에 비해 2 CD(6~10번 트랙)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떨어진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2시간에 달하는 음악 앨범이 지니는 위험성을 고려해 볼 때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했다고 보고 싶다. 특히 마지막 곡의 마무리나 전반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2 CD 부분 역시 출중한 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 작품은 컨셉 앨범답게 앨범 전체를 한 번에 쭉 들어야 그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실물 앨범 구매 당시 부득이하게 2 CD 또는 3 LP로 나뉜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고 청자의 편의를 위해서 무려 1.7GB에 이르는 디지털 음원을 함께 제공해 주기도 했다.
Holst의 “The Planets"가 공개 초연을 한지 딱 100년이 지난 올해 발매된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에 클래식과 익스트림 메탈이라는 엄청난 괴리감을 두고 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두 작품의 의도와 효과는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태양계 행성들과 그들의 점성술적 가치에 대한 경외가 담긴 묘사를 통해 청자에게 그 위용을 표현해 줄 뿐 아니라 음악을 통한 정신적 체험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Holst의 곡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반응은 딱히 엄청난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영화음악과 록/메탈 등 타 장르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리하여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역시 Holst의 음악에 깊은 인상과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전까지 다른 아티스트들이 보여주었던 단순한 커버나 리메이크 등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이들은 그저 Holst의 음악을 재구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혀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함으로써 분명히 영향을 받되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데 성공해냈다. 그리고 이 작품은 Holst의 곡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태양계의 행성들에 대한 경외를 표현함으로써 청자에게도 색다른 경험을 안겨 주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고, 다른 예술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재생산 과정은 단순한 커버부터 시작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통해 예술의 뿌리가 뻗어 나감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 작품들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합작품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은 Holst의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여 탄생한 우리 시대의 새로운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고, 그리고 또 언젠가는 이들의 음악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또 다른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Holst는 명왕성이 발견된 이후에도 의도적으로 명왕성에 대한 음악을 새로 만들 것을 거부했고, “The Planets"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자신의 다른 작품들의 존재감을 묻어버린 것 때문에 딱히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수십 년 뒤 Colin Matthews에 의해 Pluto, the Renewer가 작곡되기도 했고, “The Planets"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비록 명왕성이 인간, 그것도 특정 집단에 의해 태양계 행성의 목록에서 퇴출되었다고 할지라도, 명왕성은 인류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태양을 따라 공전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명왕성은 ‘왜소행성 134340’보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한 명왕성이라는 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즉, 한 번 각인된 이름과 그 존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 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거부한다고 해서 단번에 그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그 작품의 창작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일단 한 번 탄생한 예술 작품은 그것을 접하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인식되고, 그것을 선호하게 된 사람에게 기억되며 깊은 인상을 주고 때로는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영감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예술 작품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영감을 주는 한 계속해서 불멸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합작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역시 그 가치를 알아주는 모든 이들에게 기억되며 태양계를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앞으로도 계속 우리 곁에 존재하며 그 영향력을 떨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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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곡가 Gustav Holst의 관현악 모음곡 “The Planets"는 1914년부터 1916년 사이에 작곡되었으며, 1918년 비공개 초연을 거쳐 1920년에 최초로 공개 초연이 이루어졌다. 총 일곱 개의 섹션으로 구분되는 이 곡은 개별 섹션마다 각각의 행성 이름과 그에 해당하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을 의미하는 표제가 붙어 있다. 또한 Holst 본인이 이 곡을 작곡하게 된 계기가 천문학이 아닌 점성술에 기반한 것이었기에 곡의 순서 역시 행성 배열 순서가 실제 태양계의 배열 순서와 다소 다르고, 지구와 당시 발견되지도 않은 상태였던 명왕성은 빠진 일곱 개의 행성을 포함하고 있다.
곡이 발표된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당대를 주름잡던 유명 작곡가들에 비하면 딱히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20세기 중반 이후 천문학과 우주 과학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현대에 이르러 명곡 반열에 들게 되었다. 특히 이 곡은 현대 작곡가, 특히 영화 음악 작곡가들이나 록 밴드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John Williams나 Hans Zimmer같은 영화음악계의 거장들이 ‘화성’을 차용하기도 했고(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스타워즈 시리즈의 The Imperial March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가 King Crimson은 ‘화성‘을 편곡한 The Devil's Triangle이라는 곡을 만들기도 했다. 또한 국내에서도 밴드 넥스트가 ’화성’을 커버하기도 했으며, ‘목성‘의 경우 한때 MBC 뉴스데스크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바 있는 만큼 “The Planets"의 위상은 현대에 들어 더욱 올라가 현재는 대중들에게 익히 알려져 있는 클래식 명곡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이 곡이 공개 초연된 지 딱 100년이 지난 2020년, 그리고 Black Sabbath에 의해 본격적으로 메탈이 성립되기 시작한 지 반세기가 지난 올해 두 명의 원맨 밴드에 의해 “The Planets"는 새롭게 재창조되었다. 그리스의 Spectral Lore와 미국의 Mare Cognitum가 협업한 결과물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이 바로 그것이다.
Ayloss(본명 Chris Dir)의 Spectral Lore와 Jacob Buczarski의 Mare Cognitum은 2000년대 이후 Darkspace를 필두로 소위 ‘스페이스 블랙 메탈’ 내지는 ‘코스믹 블랙 메탈’이라고 불리는 부류 중에서도 실력과 개성 모두를 갖춘 원맨 밴드들이다. 먼저 Spectral Lore의 경우 보다 거칠고 날것의 블랙 메탈 사운드와 엠비언트에 기반하면서도 때때로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독특한 면모가 나타나는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한편 Mare Cognitum은 좀 더 깔끔하고 프로그레시브한 구성이 존재하는 매우 독자적인 사운드를 정립했다. 비록 Spectral Lore가 몇 년 더 일찍 활동을 시작하기는 했으나 두 밴드 모두 2014년의 정규 앨범에서 더욱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주며 이쪽 계열 원맨 밴드로서의 독보적인 존재감을 과시하게 되었다. 그리고 2013년에는 두 밴드의 태양을 테마로 한 스플릿 앨범이자 공동 작곡한 곡이 담겨있는 Sol(라틴어로 태양을 뜻한다)을 발표하며 이때부터 이미 두 밴드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기도 했다.
한편 두 밴드 모두 2016년 이후로는 정규 앨범을 발매하지 않고 스플릿이나 신규 프로젝트 등으로 간간히 모습을 드러내며 다음 정규 앨범을 원하는 팬들의 애간장만 타들어 가게 만들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마침내 올해 1월, 2013년의 스플릿 Sol 이후 이 두 밴드가 다시 힘을 모아 만들어낸 Sol의 후속작이자 태양계의 행성들을 테마로 한 무려 두 시간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이 공개될 예정이라는 소식이 들려왔고, 지난 3월 마침내 앨범이 발매되었다. 또한 발매 직후 LP 버전이 전부 매진될 만큼 팬들의 높은 기대감을 충족시켜주기도 했다.
앨범은 엄밀히 말하면 스플릿 앨범이지만 마지막 두 곡은 Ayloss와 Buczarski의 협업으로 탄생한 곡들이며 앨범 전체가 태양계의 행성들을 주제로 한 컨셉 앨범이기 때문에 작년 핀란드의 Oranssi Pazuzu와 Dark Buddha Rising이 협력하여 만든 Waste of Space Orchestra의 Syntheosis처럼 일종의 콜라보레이션 앨범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Mare Cognitum의 Jacob Buczarski에 따르면 이 작품은 분명히 Gustav Holst의 행성 모음곡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작품이지만, 그들은 단순히 Holst의 발자취를 따르기보다는 좀 더 독자적인 자기들만의 “The Planets”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개별 곡명에 행성의 이름과 함께 행성을 상징할만한 단어를 병기하여 Holst가 보여준 형식을 따르면서도 실제 음악에 있어서는 전혀 새로운 음악을 탄생시킴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행성 모음곡을 만들어냈다. 과거 다른 밴드나 작곡가들이 Holst의 음악을 차용하거나 혹은 저마다의 커버 버전을 만든 것에 비해 이들의 경우 전반적인 형식만을 빌려오되 그 내용물은 완전히 다르다는 점에서 뚜렷한 특징을 보여준다. Buczarski가 인터뷰에서 농담조로 언급한 대로 “우리는 Holst가 완전히 싫어할 만한 것을 만들어냈다.”라고 한 것처럼 이들은 재해석을 넘어선 재창조에 가까운 시도를 감행했던 것이다.
2 CD, 3 LP 구성으로 총 115분에 달하는 거대한 작품인 이 앨범은 개별 곡들이 각각의 행성들을 상징하며, 수성~해왕성의 여덟 곡은 두 밴드가 각각 네 곡씩 따로 맡았고, 두 밴드의 공동 작업물인 ‘명왕성’만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Holst의 “The Planets”와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Wanderers라는 제목 그대로 점성술 적인 면모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트랙 리스트를 보면 화성과 금성, 그리고 해왕성과 천왕성의 순서가 실제 태양계 행성 순서와는 반대로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만 이는 고심 끝에 앨범의 음악적 구성과 흐름을 위해 곡들의 순서를 의도적으로 바꾼 것이라고 Buczarski는 밝혔다.
원맨 밴드답게 녹음과 믹싱 작업 등 모두 Ayloss와 Buczarski가 각각의 파트를 홀로 마무리했으며, 다만 공동 작업한 ‘명왕성’의 두 파트는 Buczarski가 마스터링을 담당했다. 또한 보는 사람을 홀리는 듯한 앨범 커버는 Panegyrist라는 신예 아방가르드 블랙 메탈 밴드의 멤버 Elijah Gwhedhú Tamu의 작품인데, 그는 최근 Spectral lore를 비롯한 I, Voidhanger Records 소속 밴드들의 커버를 연이어 맡으며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는 인물이다. 또한 앨범 커버는 요소 하나하나가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몇 가지만 예로 들자면 중앙 위쪽의 빛나는 형상은 태양을 상징하며 각각의 작은 성배들로 태양의 빛이 도달하여 행성들을 비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큰 성배를 감싸고 오르다가 마치 연기가 되듯이 흩어지는 두 마리의 뱀은 우주의 조화와 불화, 그리고 해체를 통한 재창조의 시작을 의미하며, 아래쪽의 인간 형상은 인간의 존재에 대한 내적 고뇌를 상징한다고 한다.
앨범의 가사는 제목처럼 각각 행성들이 지니고 있는 점성술적 특징에 기반하여 각각의 행성들을 신화적, 절대적 존재로 그려내고, 이와 대비되는 나약한 여행자인 인간의 모습 또한 묘사하기도 한다. 또한 각각의 행성에 맞는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을 보다 직접적으로 테마로 삼은 곡들도 찾아볼 수 있으며, 특히 그리스 출신인 Spectral Lore의 곡들에서 이러한 면모가 두드러진다. 물론 가사가 대부분 시적, 상징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은 청자에 따라 더욱 다양할 수 있을 것이며, 이번 리뷰에서의 해석은 단순한 개인적 의견임을 밝힌다.
Mercury (The Virtuous)
수성을 상징하며 대장정의 시작을 알리는 Spectral Lore의 곡이다. 곡은 아득한 우주 공간으로 출발하는 듯한 느낌의 분위기로 시작한다. 곧이어 트레몰로 기타 리프와 더블 베이스 드러밍이 더해지며 분위기를 층층이 쌓아가다가 보컬의 절규와 함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거칠고 격렬한 블랙 메탈 특유의 느낌과 함께 비장미를 조성하는 리프가 공존하며 어지러우면서도 신비감을 느끼게 해 준다. 특히 곡의 시작 부분부터 보컬이 등장하기까지의 부분은 마치 우주선의 이륙을 묘사한 듯한 느낌을 주며 거대한 앨범의 시작을 알리기에 완벽했던 도입부였다. 가사는 한없이 나약하지만, 그럼에도 미지의 영역으로 발을 내딛는 인간의 열망과 잠재력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Mars (The Warrior)
화성을 상징하는 Mare cognitum의 곡으로, 앞서 언급한 대로 음악적 구성을 위해 실제 태양계의 행성 배열과는 달리 의도적으로 금성과 순서를 서로 바꾼 곡이다. 한층 더 음산한 분위기의 인트로 이후 가히 폭발적인 전개로 청자를 단숨에 휘어잡으며, 부드러운 면모와 파괴적인 면모가 공존, 교차했던 Mare cognitum의 기존 스타일에서 가장 파괴적인 면모만 남아 그야말로 ‘전쟁의 신’ 아레스를 연상시키는 격렬한 흐름을 선보인다. 특히 곡 후반부와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분위기가 최고조에 다다르는 부분은 앨범 최고의 백미 중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다. Holst의 “The Planets” 중 화성 섹션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행성들 중에서 가장 파괴적이고 격렬한 트랙이자, 가장 강렬한 첫인상을 남겨 주는 어마어마한 곡이었다. 가사 역시 모든 생명을 멸할 거대한 전쟁을 그려내고 있으며, 아레스의 쌍둥이 아들들이자 화성의 두 위성인 포보스와 데이모스 또한 언급된다.
Earth (The Mother)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를 상징하는 Spectral lore의 곡으로, 직전 곡과는 딴판인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시작된다. 2014년 발매되었던 정규 3집의 느낌과 유사하면서도 또 다른 독특한 서정미를 구사해낸다. 한편 중반부로 접어들며 다시 거친 전개로 전환되면서 장르 특유의 비장미가 어린 분위기를 이끌어낸다. 또한 후반부에서 분위기가 극한으로 치달았다가 다시 가라앉으며 마무리되는 부분은 마치 우주 왕복선이 대기권을 돌파하며 고요한 우주 공간에 도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했다. 한편 태양계에서 유일하게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행성이자 인간의 고향인 지구에 대한 곡답게 가사는 따스한 난롯불, 그리고 어머니로 비유되는 고향 지구에 대한 그리움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아들을 떠나보내면서도 언젠가 꼭 돌아올 것을 당부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긴 곡이기도 하다.
Venus (The Priestess)
화성과 순서가 뒤바뀌어 네 번째가 된 금성을 상징하는 Mare cognitum의 곡으로, 파괴적인 면모로 가득 차 있는 Mars (The Warrior)와는 달리 비교적 부드러운 면 또한 강조한다. 우선 다시 한번 비장미 넘치는 도입부로 귀를 자극하며, 이어서 조용하고 잔잔한 전개로 마음을 다잡는다. 물론 이후로는 다시금 절규하는 보컬과 거친 연주가 주를 이루지만, 그 속에서도 분명히 Mars (The Warrior)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부드럽고 따스한 느낌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움을 느끼게 만들었다. 똑같은 보컬 스타일과 격렬한 연주 속에서도 이렇게 다른 분위기를 낼 수 있다는 것에서 Mare cognitum의 저력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가사 역시 혼돈과 종말을 노래하는 Mars (The Warrior)와는 달리 어둠을 몰아내고 꺼지지 않는 빛을 밝히는 여신의 숭고한 자태와 힘을 그려내며 구원으로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내고 있었다.
Jupiter (The Giant)
목성을 상징하는 Mare cognitum의 곡이며, 태양계에서 가장 거대한 행성답게 단일 트랙으로서는 가장 긴 15분에 달하는 대곡이기도 하다.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도 하는 거대한 목성의 이미지, 그리고 천둥과 번개의 신 제우스의 이미지와 어울리게 앨범 내에서 가장 길고 무게감 있는 곡이다. 더욱 진중하고 장엄한 느낌을 주는 메인 리프와 분위기로 일관성 있는 전개를 펼쳐나감으로써 목성의 웅장함과 거대함을 표현했다. 또한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고조된 분위기로 강렬한 마무리를 선사하기도 했다. 가사는 끝없는 폭풍우와 번개가 지속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실제 목성의 가혹한 환경을 표현함으로써 이를 평온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독 속에서 고뇌하는 절대적이고 거대한 신적 존재에 비유했다.
Saturn (The Rebel)
토성을 상징하는 Spectral lore의 곡이자, 두 번째 2CD의 시작을 알리는 곡이기도 하다. 또한, 앨범 내에서 가장 기묘하고 독특한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곡이다. 블랙 메탈 특유의 트레몰로 리프+블래스트 비트 난타가 배제된 곡이기도 하며, 베이스가 유독 눈에 띄는 곡이기도 하다. 간간히 아방가르드에 가까운 난해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던 Spectral lore의 실험적인 측면이 부각된 곡으로, 기묘한 분위기와 난해하게 보이는 전개 덕에 다가가기 어려울 수도 있는 곡이지만. 겹겹이 쌓아가는 구성과 곡이 진행될수록 빛을 발하는 분위기로 은근한 매력을 뽐낸다. 특히 기타 솔로가 등장하기 시작한 부분부터 본격적으로 곡의 진가가 발현되고, 곡 전반적으로 우주 공간을 유영하는 듯한 자연스러운 전개 역시 인상 깊었다. 한편 이 곡은 로마 신화에서는 사투르누스, 그리스 신화에서는 크로노스로 불리는 농경의 신에 대한 가사를 담고 있는 곡이다. 아버지 우라노스의 지배에 반기를 들어 그를 몰아내고 권력을 얻었지만,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들(제우스)에게 쫓겨나게 된 크로노스는 이후 현재의 이탈리아 지방으로 떠나 자신만의 도시를 건설해 군림했다고 한다. 헌데 이러한 신화와 전설이 로마에서는 농경과 문명을 가능케 해 준 황금기로 여겨진다고도 한다는 점에서 그리스 신화와는 차이를 보인다. 그리하여 가사는 그의 이단아적인 면모와 빼앗긴 권력에 대한 한탄과 복수심을 담으면서도, “Of pleasure gained without blood / Of love earned without domination” 라는 가사에서 알 수 있듯이 파괴와 약탈 대신 농경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방식의 평화를 불러온 그를 긍정하고 있기도 한다.
Neptune (The Mystic)
앞서 금성과 화성이 그랬던 것처럼 천왕성과 해왕성 역시 음악적 구성을 위해 순서가 바뀌었고, 그리하여 먼저 오게 된 이 곡은 해왕성을 상징하는 Mare cognitum의 곡이다. 이전 곡과는 달리 다시 특유의 격렬한 전개로 되돌아가 강렬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러면서도 베일에 싸인 해왕성의 신비로운 면모와 동시에 차디찬 분위기를 그려냈다. 한편 이 곡은 Holst가 다루었던 행성들과 비교해 보았을 때 유일하게 부제가 ‘The Mystic’으로 동일한 곡인데, 이는 “The Planets"의 해왕성 섹션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Jacob Buczarski가 Mystic이라는 단어가 해왕성과 너무나도 잘 들어맞는다고 생각해 그대로 놔둔 것이라고 한다. 가사는 목성과 마찬가지로 가혹한 환경, 특히 더욱 차디찬 공간을 그려내며, 또한 이 속에서도 지혜를 찾아 나서는 존재를 묘사하고 있다.
Uranus (The Fallen)
천왕성을 상징하는 Spectral lore의 곡이다. 곡 초반부터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강렬하게 진행되는 이 곡은 그리스 신화의 신, 즉 우라노스에 대해 가장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그 때문인지 가장 극적이고 변칙적인 전개가 두드러지며, 중반부에서 분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았다가 확 가라앉은 뒤 몽환적인 전개가 뒤를 잇고, 마지막으로는 도입부의 느낌이 되풀이되며 곡이 마무리된다. 한편 이 곡은 Spectral lore의 Ayloss가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곡이라고 밝힌 곡이며, 우라노스와 그의 아내 가이아에 대한 곡이다. 우라노스는 가이아를 사랑했지만, 그녀의 아들들을 증오했고, 그들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었다. 이에 우라노스는 반기를 든 아들 크로노스에게 거세되고 권력을 잃게 되는데, 이 곡의 가사는 이러한 신화의 내용을 다룸과 동시에 남성성의 종말을 시사하기도 하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기도 했다.
Pluto (The Gatekeeper) Part I: Exodus though the Frozen Wastes
Spectral Lore 와 Mare Cognitum이 공동으로 작곡한 곡이다. 2013년 발매된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스플릿이었던 Sol의 마지막 곡 Red Giant와 마찬가지로 가사가 없는 스페이스 엠비언트 트랙이다. 우선 조용하면서도 음산한 느낌으로 적막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며, 곡 후반부에서는 좀 더 신비로운 느낌을 서서히 만들어내며 두 번째 파트와의 연결점을 찾아 나간다. 메탈 앨범 내에 존재하는 엠비언트 곡의 특성상 존재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Part II와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분위기 전환을 이루어 준다는 점에서 나름대로의 의의는 충분히 가지고 있는 트랙이라고 볼 수 있다.
Pluto (The Gatekeeper) Part II: The Astral Bridge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곡 역시 Spectral Lore 와 Mare Cognitum의 공동 작업물이면서 실험적인 면모 또한 엿볼 수 있는 곡이다. 우선 전반부에서는 마치 또 다른 코스믹 블랙 메탈 밴드 Mesarthim처럼 전자음을 활용하여 더욱 독특한 느낌을 내면서도 이전까지 이어온 특유의 비장미를 여전히 발산해내며 환상적인 분위기를 다시 연출해낸다. 한편 중반부로 접어들며 분위기가 급격히 어두워지고 이내 데스 메탈적인 느낌도 나는 강렬하고 무거운 전개로 돌입한다. 또한,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서서히 가라앉히며 조용하게 여정의 끝을 맺는다. 가사는 마침내 태양계의 끝에 다다르자 태양, 심지어 신들의 영향력조차 사그라들고, 이에 마침내 한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발을 내딛는 인간 자아를 그려낸다.
전반적으로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 모두 각자 맡은 ‘행성’들마다 각기 다른 색깔과 매력을 지닌 곡들을 선보임으로써 태양계의 아홉 행성이 지닌 저마다의 개성을 독특하고 훌륭하게 표현해냈다. 물론 공식적으로 명왕성은 2006년 태양계의 ‘행성’ 지위를 박탈당했지만, 명왕성은 여전히 Pluto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애초에 이들은 이 앨범을 제작함에 있어 점성술적, 신화적 등 정신적인 테마를 바탕으로 한 것이기에 명왕성을 작품 속에 포함시킨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오히려 그들은 명왕성만 두 개의 파트로 구분하고 또 둘의 공동 작업물로 제작함으로써 일종의 특별 대우를 해 주었다. 이는 비록 인간에 의해 행성 지위는 박탈당했을지언정 여전히 태양을 돌고 있고, 우리에게 여전히 명왕성이라고 불리고 있는 명왕성에 대한 위로와 경외의 마음을 담아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의 특징들 중에서 가장 먼저 이 작품이 스플릿 앨범이면서도 두 시간에 가까운 거대한 컨셉 앨범이라는 것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보통 록/메탈 장르에서 컨셉 앨범은 대개 길어도 80분 이내인 경우가 많고, 특히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만 놓고 볼 경우 이러한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물론 Ayreon처럼 90~100분이 넘어가는 대작들을 연이어 성공적으로 만들어내는 특이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 컨셉 앨범이라고 해서 무조건 엄청난 러닝 타임을 자랑하는 대작은 아니고, 앨범의 러닝 타임이 길다고 해서 좋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더더욱 드물다. 오히려 지나치게 러닝 타임이 긴 컨셉 앨범을 시도하는 경우 역효과를 내는 경우가 많은데, 2시간 10분에 달했던 Dream Theater의 The Astonishing이나 무려 세 시간이 넘는 Therion의 Beloved Antichrist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두 밴드 모두 장르를 대표할만한 베테랑 밴드임에도 장편 영화의 러닝 타임에 맞먹는 컨셉 앨범으로 팬들의 전반적인 지지를 얻기에는 실패했다.
이러한 실패의 이유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러닝 타임이 길어질수록 청자가 지루함을 느끼고 집중력을 잃게 되기 쉽다는 것이 큰 요인 중 하나라고 본다. 보통 2시간 정도는 딱히 길다고 느껴지지 않는 영화와는 달리 음악 앨범의 경우 기본적으로 청각에만 의존하기 때문에 2시간 내외나 혹은 그 이상의 앨범은 당연히 아주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정규)음악 앨범은 짧으면 3~40분에서 길면 7~80분을 오가는 편이다. 이때 2시간짜리 앨범을 영화로 비유해 본다면 거의 4시간 내외의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길다고 이야기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대작 앨범이 쉽게 지루해지고 완주하기가 어려워지는 이유가 필연적이라는 것을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또한 일반적으로 일부 그라인드코어 계열 장르를 제외하고 많아야 십수 곡으로 구성된 보통의 앨범에 비해 대작 컨셉 앨범들의 경우 수십 곡에 이르는 트랙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더욱 쉽게 산만해지고 개별 곡들이 주는 임팩트가 약화되기 쉽다는 위험도 지니기도 한다는 점에서 음악 앨범은 길면 길수록 그 완성도에 있어서 큰 위험도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위험을 극복해냈다. 먼저 이 작품이 스플릿 앨범이자 콜라보레이션 앨범이라는 점이다.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티스트라도 한 앨범을 두 시간짜리로 만들어버린다면 그 길이로 인한 지루함을 극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또한 무난한 전개로 인한 지루함을 이겨내기 위해 매 곡마다 전혀 다른 수준으로 작곡을 하는 과감한 실험을 하는 것 역시 크나큰 리스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러한 요인들은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 각각에게도 당연한 리스크였으리라. 그리하여 그들은 각각 네 곡씩을 담당하고 마지막 두 곡은 공동으로 작업한 뒤 앨범의 흐름과 구성에 맞게 배치함으로써 각각의 곡마다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어 천편일률적이고 지루한 전개를 예방하는데 성공했다. 예를 들어 곡 순서에 있어서 같은 밴드의 곡이 연속으로 배치되는 경우를 최소화함으로써 비슷한 스타일이 되풀이될 우려를 최소화했다. 또한 개별 곡들에 태양계의 행성을 하나씩 대입시켜 각각의 곡들이 서로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당위성을 자연스럽게 부여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모든 록/메탈 장르를 통틀어 두 밴드 또는 아티스트의 스플릿 또는 콜라보레이션 앨범이 본래 각자의 정규 앨범들을 상회하는 평가를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뿐더러 대개는 잘 해봤자 본전치기일 정도이다. 때문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말처럼 합작을 만드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보통 밴드나 음악가들의 협업은 보통 피쳐링이나 프로듀싱에 그치는 경우가 많고 공동 작업물을 만들어 하나의 앨범으로 만드는 것은 드문 편이다. 아무리 이전부터 잘 알고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도 함께 작곡을 하고 하나의 음악을 완성시킨다는 것은 상호 간의 훨씬 더 깊은 이해를 요구하는 작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편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은 2013년에 이미 공동으로 작곡한 곡을 포함한 스플릿 Sol에서 협력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Sol 역시 스플릿 앨범치고는 상당히 긴 러닝 타임을 자랑했지만, 두 밴드가 각각 한 곡, 그리고 공동으로 작업한 한 곡의 단 세 곡으로 이루어진 작품이었기에 이 작품에 비하면 구성 면에 있어서의 고민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들이 그 당시부터 협업을 해옴으로써 이 작품과 같은 더욱 큰 규모의 협업을 가능케 할 기반을 마련해왔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곡과 행성을 일 대 일로 대입시킨 전략이었다. 물론 명왕성의 경우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기는 하지만, 나머지 모든 행성들은 각각 하나의 곡에 대입되어 있다. 이 방법이 유효했던 이유는 이미 언급했듯이 가지각색의 스타일을 지닌 곡들을 보여주면서도 그에 대한 충분한 당위성을 지닌다는 것인 동시에 전반적인 흐름 에도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즉, 각각의 행성들마다 서로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곡들을 하나하나 펼쳐나가면서도 중구난방의 전개가 아닌 오히려 팔색조 같은 매력을 느끼게 만드는 효과를 주었다는 것이다. 사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저마다 뚜렷한 차이점을 지니고 있는 태양계의 행성들을 각각의 곡에 대입한다는 것 자체가 서사 위주로 진행된 기존의 컨셉 앨범들과는 상당히 다른 잠재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시작한다는 것에서 차별화를 둘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앨범 구성에 있어서 수십 개의 곡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닌 딱 10개의 곡만을 수록하여 각각의 곡들이 저마다의 색을 보여주면서도 특정 곡이 다른 곡에 의해 묻혀 존재감을 상실해버리는 일을 방지했다. 그리고 곡 구성에 있어서도 대체로 10±2분 정도의 길이를 유지하여 특정 곡에 지나치게 비중이 쏠리는 일을 예방하고, 충분한 시간을 할애한 대곡 구성을 통해 각각의 곡이 가진 저마다의 특색과 매력을 뽐낼 수 있게 설정해 두었다.
물론 이들이 2013년도의 스플릿 Sol로 협력 경험을 쌓고, 각자의 이전 활동들로 음악적 경험들을 차곡차곡 쌓아왔다고 하더라도 이 작품은 결코 쉽게 탄생한 것이 아니었다. 이 작품의 녹음 및 믹싱 과정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무려 3년 가까이 이어졌고, 둘 모두 서로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원맨 밴드였기에 작업은 각자의 국가에서 따로따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두 밴드 모두 이 작품 작업 기간에는 꾸준히 활동해왔던 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행보를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이런 원맨 밴드의 특성상 생계를 이어갈 직업은 따로 갖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기에 작업을 진행하는 것은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니었으리라. 실제로 Mare Cognitum의 Jacob Buczarski는 컴퓨터 프로그래머로서 일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을 거쳐 마침내 탄생한 이 작품이 이루어낸 성과는 실로 값진 것이었다. 우선 음악 그 자체를 놓고 볼 때의 완성도는 이전 Spectral Lore의 III이나 Mare Cognitum의 Phobos Monolith와 같은 각자의 최고작들에 비견될만한 훌륭한 수준이었다. 먼저 Spectral Lore의 곡들의 경우 장르적 구속에 얽매이지 않는 특유의 독특한 개성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었으며, 그러면서도 (블랙)메탈 본연의 기본기 또한 충족시키며 개성과 실력 모두를 잡아냈다. 또한 거친 연주와 보컬 속에서 타오르는 비장미와 잔잔하고 부드러운 부분에서 피어나는 서정미의 공존은 Spectral Lore의 실력과 가능성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주기에 충분했다. 보다 직설적인 모습으로 확실한 첫인상을 안겨주며 완벽한 오프닝을 보여준 Mercury (The Virtuous), 특유의 독특한 서정미를 부각한 Earth (The Mother), 독특한 실험적 면모를 보여준 Saturn (The Rebel)과 극적 구성이 두드러지는 Uranus (The Fallen) 모두 저마다의 매력과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Mare Cognitum역시 이에 뒤처지지 않는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일명 코스믹 블랙 내지는 스페이스 블랙이라고 불리는 이쪽 부류 내에서도 단연 독보적으로 프로그레시브하고 꽉 찬 구성을 통해 단순히 우주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이상의 짜임새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며 입지를 다진 그답게 이번 작품에서도 역시 실력을 어김없이 보여주었다. 이번 앨범에서는 이전 앨범들로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그의 저력을 재확인하면서도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폭발적인 화력으로 청자를 압도하는 Mars (The Warrior)와 이와 대비되는 부드러운 면모를 지니면서도 강렬한 비장미를 선사한 Venus (The Priestess), 목성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웅장한 무게감을 조성해낸 Jupiter (The Giant), 차디찬 분위기 속에서도 신비함을 느끼게 만드는 Neptune (The Mystic) 전부 Spectral Lore만큼 곡마다 큰 차이를 보인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구별될만한 뚜렷한 개성, 그리고 그 자체적으로도 훌륭한 음악을 들려주었다.
마지막으로 둘의 합작품인 Pluto (The Gatekeeper) Part I & II의 경우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둘 사이의 협동심과 양측 모두의 새로운 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던 곡이었다. 특히 Part II: The Astral Bridge는 앨범 내에서 가장 뚜렷한 색채를 지니고, 전/후반부가 가장 극적으로 대비되는 곡이면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곡 중 하나일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었다.
더 나아가 이 작품은 단지 음악뿐 아니라 그 컨셉과 가사, 그리고 앨범 커버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소가 하나로 어우러져 하나의 정신적 체험이라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마음 속 깊은 울림을 남겨 주었던 작품이었다. 앨범을 들으며 태양을 떠나 수성에서부터 명왕성에 이르며 태양계를 벗어나 미지의 세계로 돌입하게 되는 일종의 정신적인 여정을 체감할 수 있었다는 것은 이 작품이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의도를 완벽히 살려냈음을 증명한다. 또한 마치 신화 또는 서사시처럼 각각의 행성을 절대적 존재로 묘사하고 이들을 거쳐나가며 여정을 이어가는 가사와 눈을 사로잡는 앨범 커버는 음악과 혼연일체가 되어 청자를 아득한 우주 공간으로 인도해주었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태양계의 행성들을 테마로 하여 청자로 하여금 드넓은 태양계로 여정을 떠나게 만들어주는 정신적 체험을 선사한 대작이었다. 무려 두 시간에 근접한 거대한 작품임에도 상대적으로 지루함을 느끼기 어려울 정도로 짜임새 있게 만들어져 있고 곡들이 각양각색의 매력을 뽐내고 있었다. 물론 굳이 단점을 지적하자면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는 1 CD(1~5번 트랙)에 비해 2 CD(6~10번 트랙)의 곡들이 상대적으로 임팩트가 떨어진다는 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2시간에 달하는 음악 앨범이 지니는 위험성을 고려해 볼 때 이 정도면 충분히 훌륭했다고 보고 싶다. 특히 마지막 곡의 마무리나 전반적인 흐름에 있어서는 2 CD 부분 역시 출중한 편이었다고 볼 수 있겠다. 당연한 것이지만 이 작품은 컨셉 앨범답게 앨범 전체를 한 번에 쭉 들어야 그 가치를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실물 앨범 구매 당시 부득이하게 2 CD 또는 3 LP로 나뉜 물리적 한계를 보완하고 청자의 편의를 위해서 무려 1.7GB에 이르는 디지털 음원을 함께 제공해 주기도 했다.
Holst의 “The Planets"가 공개 초연을 한지 딱 100년이 지난 올해 발매된 이 작품은 언뜻 보기에 클래식과 익스트림 메탈이라는 엄청난 괴리감을 두고 있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두 작품의 의도와 효과는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태양계 행성들과 그들의 점성술적 가치에 대한 경외가 담긴 묘사를 통해 청자에게 그 위용을 표현해 줄 뿐 아니라 음악을 통한 정신적 체험을 이끌어낸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Holst의 곡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의 반응은 딱히 엄청난 수준까지는 아니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는 영화음악과 록/메탈 등 타 장르에 이르는 광범위한 영향력을 지닌 명작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리하여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역시 Holst의 음악에 깊은 인상과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은 이전까지 다른 아티스트들이 보여주었던 단순한 커버나 리메이크 등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작품이다. 이들은 그저 Holst의 음악을 재구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혀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함으로써 분명히 영향을 받되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작품을 창조하는 데 성공해냈다. 그리고 이 작품은 Holst의 곡과는 또 다른 방식으로 태양계의 행성들에 대한 경외를 표현함으로써 청자에게도 색다른 경험을 안겨 주었다.
이처럼 예술 작품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평가가 달라지기도 하고, 다른 예술가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생산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재생산 과정은 단순한 커버부터 시작해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통해 예술의 뿌리가 뻗어 나감으로써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 작품들이 탄생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하여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합작품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은 Holst의 클래식을 기반으로 하여 탄생한 우리 시대의 새로운 명작으로 기억될 것이고, 그리고 또 언젠가는 이들의 음악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또 다른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Holst는 명왕성이 발견된 이후에도 의도적으로 명왕성에 대한 음악을 새로 만들 것을 거부했고, “The Planets" 그 자체에 대해서도 자신의 다른 작품들의 존재감을 묻어버린 것 때문에 딱히 탐탁지 않게 여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 이후 수십 년 뒤 Colin Matthews에 의해 Pluto, the Renewer가 작곡되기도 했고, “The Planets"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주며 끊임없이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고 있다.
비록 명왕성이 인간, 그것도 특정 집단에 의해 태양계 행성의 목록에서 퇴출되었다고 할지라도, 명왕성은 인류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태양을 따라 공전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다. 그뿐 아니라 명왕성은 ‘왜소행성 134340’보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익숙한 명왕성이라는 이름 그대로 불리고 있다. 즉, 한 번 각인된 이름과 그 존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 작품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거부한다고 해서 단번에 그 가치를 상실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군가가 그 작품의 창작자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일단 한 번 탄생한 예술 작품은 그것을 접하게 되는 모든 사람에게 인식되고, 그것을 선호하게 된 사람에게 기억되며 깊은 인상을 주고 때로는 새로운 예술 작품을 창작하는 영감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예술 작품은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영감을 주는 한 계속해서 불멸의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Spectral Lore와 Mare Cognitum의 합작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역시 그 가치를 알아주는 모든 이들에게 기억되며 태양계를 공전하는 행성들처럼 앞으로도 계속 우리 곁에 존재하며 그 영향력을 떨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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