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살리는 블랙 메탈
Burzum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원맨 블랙 메탈 아티스트를 거론할 때 Paysage d'Hiver의 Wintherr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스위스 출신인 그의 본명은 Tobias Möckl이며, 원맨 밴드 Paysage d'Hiver에서 Wintherr로, Darkspace에서는 Wroth라는 예명으로 90년대 후반부터 활동해오고 있다. 먼저 시작했던 원맨 밴드 Paysage d'Hiver에서는 블랙 메탈과 엠비언트를 오가는 스타일을 구사하고, 밴드명 그대로 ‘겨울 풍경’(Paysage d'Hiver의 프랑스어 뜻)을 묘사하며 독자적인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
때로는 거센 눈보라와도 같은 모습을, 다른 한편으로는 조용히 눈 내리는 깊은 숲 속의 밤 같은 면모를 보여주는 그의 스타일은 그의 다른 밴드 Darkspace의 뿌리가 되면서 많은 앳모스퍼릭 블랙 메탈 밴드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한 가지 특이할 점은 지금까지 그의 디스코그래피는 전부 데모/스플릿 앨범만 존재해 왔다는 것이다. 때로는 무려 80분에 달하는 긴 구성의 앨범을 발표하면서도, 그것들은 전부 데모로서 불리어 왔다.
그리고 2020년, 그가 활동을 시작한 지 23년 만에 마침내 첫 번째 정규 앨범 Im Wald가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2CD, 4LP 구성에 장장 2시간에 달하는 장대한 규모를 자랑했지만, 정식 발매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난 1월 25일, Wintherr는 소수의 팬들을 대상으로 곧 발매될 Im Wald의 비공개 감상회를 진행했었고, 참석한 이들에게 Im Wald의 디지털 음원을 USB 메모리에 담아 나눠 주었다. 하지만 얼마 뒤 Im Wald의 음원은 인터넷에 유출되었고, 그 경로는 오직 USB 메모리에 있던 파일을 누군가 인터넷에 업로드한 경우일 것이라고 Wintherr는 밝혔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19 사태가 유럽을 강타하면서 본래 2~3월 발매 예정이던 Im Wald는 지난 6월 26일에야 발매될 수 있었다. 게다가 기존 앨범 발매 당시 이용하던 업체가 코로나 사태로 인해 문을 닫으면서 Wintherr는 디지팩 제조 과정 및 포장까지 손수 하나하나 진행해야 했다.
그리하여 우여곡절 끝에 발매된 이 작품은 Paysage d'Hiver의 여정의 또 다른 일부에 해당한다. 지금껏 발매된 모든 Paysage d'Hiver의 음악들은 한 인물, 즉 Wintherr 본인 내적 자아의 여정 속 각각의 단편에 해당하며, 이번 작품 역시 예외는 아니다. 예를 들어 98년도에 발매된 Steineiche와 Schattengang은 여정의 시작 부분에 해당하고, Das Tor (2013년), Kerker (1999년), 그리고 Die Festung (1998년)은 여정의 끝 부분에 해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작품 Im Wald는 그 앨범들의 중간에 위치한 작품이라고 Wintherr는 밝혔다.
앨범의 첫 번째 곡 Im Winterwald는 여느 때처럼 겨울의 바람소리로 시작하며, 곧이어 특유의 거칠고 격렬한 블랙 메탈 사운드로 팬들의 오랜 기다림에 부응해 준다. 특유의 눈 덮인 설산 내지는 숲에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묘사한듯한 거친 스타일은 여전하며, 이전 작품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깔끔해진 레코딩을 보여주었다. 이는 이 앨범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는데, 200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철저하게 의도적으로 거친 음질을 고수한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상당히 깔끔해진 느낌을 준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2017년 자국 스위스의 밴드 Nordlicht과 발표한 스플릿에 수록된 곡 Schnee (III)에서 먼저 발견할 수 있었다. 때문에 이러한 변화가 갑작스러운 것임은 아니라는 것을 먼저 이야기할 필요가 있었기에 일찌감치 언급한 것이다.
아무튼 Im Winterwald는 거칠고 격렬하지만 비장하고 서정적이기도 한 Paysage d'Hiver만의 독보적인 분위기를 단번에 증명해 준 곡이다. 곡 후반부에서는 더욱 몽환적인 연출을 보여주기도 하는 등 10분 가까운 대곡을 반복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풀어 나갔다.
이어지는 Ueber den Baeumen도 마찬가지로 Paysage d'Hiver의 전매특허 분위기 및 비장미 넘치는 트레몰로 리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겨 준다. 곡이 뚜렷한 기승전결의 흐름을 지니고 있으며, 상당히 캐치한 리프가 등장하기도 한다. 후반부에서는 Darkspace를 연상시키는 장중함을 더해 그 위력을 더했다.
세 번째 트랙 Schneeglitzern은 앰비언트 위주의 조용하고 잔잔한 곡이다. 차디찬 바람 소리와 은은히 울리는 멜로디로 청자를 한겨울의 깊은 숲속으로 보내버리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다시금 무자비한 겨울의 폭풍을 묘사하는 네 번째 곡 Alt역시 청자를 압도하는 기막힌 분위기를 연출해내며 장르적 쾌감을 선사해 준다. 특히 사정없이 몰아치는 전개 속에서도 은은한 멜로디가 공존하며 독특한 서정미를 만들어 내는 것이 실로 오묘한 매력을 보여준다.
다시 한번 잠깐 쉬어가는 Wurzel 이후 이어지는 Stimmen im Wald에선 클린 보컬 코러스를 이용해 더욱 환상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한 일부 부분에서는 보컬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도 하는 등 이 곡만의 특색과 앞선 곡들부터 이어져 온 분위기가 공존하며 색다른 느낌을 준다.
7번 곡 Flug은 잔잔하고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천천히 진행되며 쉬어 간다는 느낌의 곡이다. 하지만 앞서 등장한 쉬어 가는 트랙들에 비해 훨씬 긴 곡이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조금씩 쌓아 가는 나름대로의 매력을 지닌 곡이기도 하다.
다음 곡 Le rêve lucide에선 다시금 거친 분위기로 돌아가며 역시나 거칠고 격렬한 전개를 보여 준다. 이 곡에선 처연함을 더하는 현악기의 선율이 더해지기도 하는 등 99년도의 셀프 타이틀 데모의 수록곡 Welt aus Eism를 떠올리게 하는 약간 더 쓸쓸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곧이어 짤막하고 잔잔한 Eulengesang가 뒤를 잇는다.
열 번째 트랙 Kaelteschauer도 마찬가지로 거친 전개 속에서의 비장미를 맛볼 수 있으며, 앞선 2번 트랙처럼 장중함이 더해진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마치 Darkspace의 곡들이나 01년도의 데모 Winterkälte처럼 청자를 거세게 압박하는 분위기를 준 앨범 후반부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곡이다.
마지막으로 쉬어가는 곡 Verweilen 이후의 Weiter, immer weiter는 여전히 거칠지만 상대적으로 좀 더 은은하고 무게감 있는 곡이다.
대미를 장식하는 최후의 대곡 So hallt es wider는 장장 20여 분에 달하며 2시간에 달하는 대작의 마무리에 어울리는 장중함이 더해진 곡이다. 다만 곡과 앨범 모두 워낙 길다 보니 이쯤 되면 집중력이 흐려질 수도 있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곡 자체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빼어나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서서히 연착륙을 하는 듯한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앨범은 이전까지 보여준 Paysage d'Hiver의 스타일을 충실히 따라가는 듯하면서도 상당한 차이점 또한 찾아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앞서 언급한 ‘깔끔한’ 레코딩일 것이다. 이전까지 아날로그 레코딩 방식을 고수해오던 Wintherr는 2017년 발표했던 Nordlicht과의 스플릿에 수록된 Schnee (III)에서 최초로 디지털 레코딩 방식을 시도했고, 전에 비해 보다 깔끔한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이번 신작 Im Wald 역시 지금까지의 Paysage d'Hiver의 음악들 중 가장 말끔한 사운드를 지니고 있다.
레코딩이 깔끔해지는 것이 뭐 그리 중요하게 먼저 다룰 문제냐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블랙 메탈 장르 내에서 현대적이고 말끔한 레코딩의 여부는 꽤 중대한 문제로 다뤄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고전적인 세컨드 웨이브 블랙 메탈의 명반들이 지닌 투박하고 거친 레코딩이 오히려 블랙 메탈 팬들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Paysage d'Hiver의 음악 역시 의도적으로 거칠고 날것의 레코딩을 추구함으로써 그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키기도 했었다. Schnee (III)이전까지는 철저하게 8트랙 테이프 레코더를 사용해 작업을 진행했던 그는 오래된 레코더가 결국 망가지면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러한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듣는 사람에 달려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하나의 정답을 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앨범의 깔끔한 음악에 예전 스타일에 대한 향수를 느낄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더욱 듣기 편하고 진화된 사운드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후자의 의견에 가깝지만, 1999년의 전설적인 셀프 타이틀 데모 Paysage d'Hiver와 같은 투박함의 매력을 그리워하는 의견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Wintherr본인도 아마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깊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는 이전에도 이미 디지털 레코딩 방식을 경험해 보았지만, Schnee (III) 녹음 작업 당시 컴퓨터 기술과 자신의 내면이 담긴 Paysage d'Hiver의 음악을 조화시키는 것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기에 Im Wald는 분명히 깔끔한 레코딩을 보여주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Paysage d'Hiver의 기존 스타일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통상적으로 보면 여전히 특유의 거칠고 격렬한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는 보다 듣기 편한 방식을 추구하면서도 기존 팬들이 실망감을 느끼지 않게 하려는 나름대로의 전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나 이 앨범이 무려 2시간에 달한다는 사실 또한 거친 레코딩이 주는 피로감을 완화하기 위해 보다 깔끔한 레코딩을 선택한 것을 추측해 볼 수도 있다. 실제로 1~2 곡마다 등장하는 짤막한 엠비언트 트랙들은 격렬한 블랙 메탈의 연속에 따른 피로감의 누적을 완화시켜주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도 하다.
작곡 측면에서 보면 변화한 점도 더러 있지만 여전히 Paysage d'Hiver의 정체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2017년 Nordlicht과 발표한 스플릿에 수록된 Schnee (III)에서 기존 스타일을 바탕으로 하되 상당히 캐치한 리프와 모던 블랙 메탈에서나 볼 법한 전개를 더하며 신선한 충격을 주기도 했었는데, 이것이 Im Wald의 전조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했다.
Paysage d'Hiver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는 차디찬 칼바람 소리와 이어지는 블래스트 비트와 트레몰로 피킹, 그리고 Wintherr의 절규는 Im Wald에서도 여실히 드러나지만, 깔끔해진 레코딩 이외에도 이전과는 다소 다른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선 전체적으로 곡들의 길이가 짧아진 편이다. 물론 잠깐잠깐 쉬어가는 짤막한 트랙들을 제외하고 평균 10분 이상의 대곡을 지향하는 것은 여전하지만, 셀프 타이틀 데모 앨범이나 Winterkälte, Das Tor의 수록곡들에 비하면 다소 짧아진 느낌이 있다. 이러한 구성은 두 시간에 달하는 앨범에 보다 많고 다양한 곡들을 담아 좀 더 다채로운 맛을 내고 흐름이 지나치게 늘어지는 경우를 막는 효과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또한 상대적으로 짧은 곡을 통해 각각 곡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보다 쉽게 친숙해질 수 있게 하는 효과를 주기도 했다.
각각의 곡 구성에 있어서도 기존 스타일과는 다소 차이를 보이는데, Im Winterwald나 Ueber den Baeumen의 비장미가 느껴지면서도 캐치한 리프들은 Schnee (III)에서 예고한 변화의 연장선이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특히 2번 곡 Ueber den Baeumen같은 경우 뚜렷한 기승전결의 흐름을 갖추며 보다 접근하기 쉬운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특징은 단지 이 곡들만 아니라 수록곡들 전반에 걸쳐 나타나며, 자연히 이 앨범의 특성이 된다. 클린 보컬 코러스를 비롯해 다양한 보컬 스타일이 등장하는 Stimmen im Wald 역시 이번 작품의 새로운 시도가 두드러지는 곡이다.
요약하자면 이 앨범은 2시간에 달하는 대작이지만 어떻게 보면 Paysage d'Hiver의 디스코그래피를 통틀어 가장 접하기 쉬운 작품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상대적으로 깔끔해진 레코딩과 평균적으로 다소 짧아졌지만 뚜렷한 곡 구성으로 진입장벽을 낮추되 Paysage d'Hiver만의 확고한 개성 또한 여전히 지켜나간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Paysage d'Hiver의 독보적인 개성을 다시 한번 보여주면서도 새로운 시도를 곳곳에서 볼 수 있는 ‘구본신참’의 앨범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 앨범 역시 장대한 2CD 구성의 고질병적인 단점만큼은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한 것이 개인적으로 느낀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6번 트랙 Stimmen im Wald까지는 절묘한 완급조절을 통해 완벽에 가까운 구성을 선보이며 일말의 지루함조차 느낄 수 없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단조로움이 느껴지기도 했고, 곡의 길이는 더 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CD에 비해 2CD가 주는 임팩트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앨범은 올해 가장 인상적인 블랙 메탈 앨범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몇 달 전 리뷰했던 Mare Cognitum과 Spectral Lore의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 역시 2시간에 달하는 완성도 높은 대작이었다고 생각한다.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이 예측할 수 없는 변화구와도 같은 다채로운 전개로 승부를 봤다면 이 작품은 2시간 내내 일관성 있게 몰아붙이는 돌직구 같은 작품이었던 셈이다. 두 작품은 (넓은 의미에서)블랙 메탈이라는 점과 규격 외의 거대한 길이를 자랑한다는 점 외에도 흥미로운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작품이 깨달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의 장대한 여정과도 같다는 점이 것이 그것이다. Wanderers: Astrology of the Nine이 태양계 행성들을 거치는 점성술적인 여정을 그려냈다면 Im Wald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깊은 숲속에서의 기나긴 여정을 그려낸다. 즉, 두 앨범 모두 정신적인 여정을 테마로 함으로써 청자로 하여금 예술가의 정신과 내면을 체험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Wintherr는 Paysage d'Hiver의 음악은 자신의 가장 사적이고 진심 어린, 더 나아가 그의 내적 자아 그 자체와도 같은 것이라고 밝혔다. 때문에 각각의 (데모)앨범들은 하나의 거대한 여정의 일부이자 Wintherr의 내적 자아를 투영하고 있다. 또한 그가 겨울의 풍경을 주제로 삼은 이유는 그는 어렸을 적부터 눈 덮인 자연의 모습을 동경했고 그곳을 통찰과 깨달음을 주는 명상의 장소로서 생각해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어릴 적부터 워크맨으로 블랙 메탈을 들으며 겨울의 산과 숲을 거니며 그러한 풍경과 블랙 메탈에 깊은 연관성을 느꼈다고도 한다.
대부분의 음악 작업을 홀로 진행하고 인터뷰조차 자주 하지 않으며 은둔자와도 같은 삶을 살아온 그지만, 철저하게 사적인 그의 음악을 발매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때때로 그는 팬들에게서 그의 음악에 대한 의견을 들으며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는데,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의 한 어린 여성이 2007년도에 발매된 Einsamkeit가 자신을 자살하려는 것으로부터 구해주었다는 말에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음악을 발매한 것에 대한 자긍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고 한다.
이처럼 Wintherr는 흔히 블랙 메탈 하면 떠오르는 철저히 어둡고 부정적인 모습과는 사뭇 다른 면모를 인터뷰를 통해 보여주었다. 오히려 그는 자기 자신은 전혀 부정적인 인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그가 생각하는 블랙 메탈의 목적은 어둠이나 어두운 것에 대해 직접적으로 다룸으로써 그것을 이해하고 직면하여 결과적으로 어둠을 극복하는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어둠이란 단순히 ‘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자연적인 것이자 우리에게 내재된 것이며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주는 것들로부터 피하고 무시하려 하지만, 그것이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을 회피할수록 어둠은 더 크고 가깝게 다가온다. 하지만 예술은 불편한 주제를 다룸으로써 우리의 내면을 비추고 그것을 이해하게 만든다. 특히 블랙 메탈은 이러한 ‘어둠’을 직접 다루면서 그것을 이해하고 깨달음을 얻게 하여 빛을 불러오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둠이 무한한 것이 아니라면, 블랙 메탈이 다루는 어두운 주제는 언젠가 소멸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블랙 메탈은 우리 사회의 ‘보건 계획’이라고도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Wintherr의 의견에 대해 동의하는지에 대한 여부와 관계없이 그의 색다른 통찰력은 블랙 메탈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해 준다고 생각한다. 블랙 메탈은 때때로 메탈의 하위 장르 내에서도 가장 반사회적, 반체제적 특성을 보여주며 가끔은 단순히 음악을 위한 컨셉 잡기가 아닌 실제 극단주의자의 이념을 표출하기 위한 도구로도 사용된다. 때문에 블랙 메탈은 더없이 위험한 장르로서 낙인찍히기도 했지만, 어떻게 보면 그러한 블랙 메탈의 목소리는 우리 사회가 지닌 어두운 면모를 직면하게 해 주는 유용한 기능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단순히 회피하고 억누르는 것은 절대 해답이 될 수 없으며, 그것을 직면하는 것으로부터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이 가능하다는 것은 충분히 깊이 생각해 볼 만한 논점이라고 말하고 싶다.
어쨌거나 Paysage d'Hiver의 23년 만의 정규 앨범 Im Wald는 여느 때처럼 Wintherr의 가장 사적인 작품이지만 올해 발매된 블랙 메탈 앨범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Wintherr는 고작 여섯 사람만이 자신의 음악을 알아준다고 하더라도 음악을 발매한 것에 대한 가치를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기만족을 위해 음악을 발표하는 것이 아니라 팬들의 가치 있는 경험을 위해 음악을 발표했다고 한다. 그러한 면에서 Im Wald는 이미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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