तत् त्वम् असि
Rudra는 싱가포르의 밴드로, 베딕 메탈(Vedic Metal)의 선구자로 알려져 있다. 베딕 메탈이란 고대 인도의 경전인 베다를 테마로 삼는 장르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 ‘베딕 메탈’이라는 단어 자체를 스래쉬나 데스처럼 독자적인 메탈 음악의 하위 장르로 부르기는 어렵고, 크리스천 메탈이나 코스믹/스페이스 블랙 메탈처럼 음악적 스타일보다는 특정 테마 또는 컨셉을 지향하는 부류를 분류하기 위한 일종의 수식어로서 의미를 갖는 용어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러한 베딕 메탈 밴드로 분류되는 밴드들의 음악적 성향은 대개 데스, 블랙 혹은 데스/블랙/스래쉬의 혼합적 형태로 나타나곤 한다.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례로 2집 이후의 Cult of Fire를 들 수 있겠다. 흔히 Cult of Fire가 베다를 익스트림 메탈과 본격적으로 접목시킨 최초의 밴드로 알려져 있으나, 그보다 십수 년 앞서 90년대부터 이미 이러한 시도를 계속해왔던 밴드가 바로 싱가포르의 Rudra이다.
이들은 92년도에 Rudhra라는 이름으로 결성되었다가 잠시 활동을 중단한 이후 97년 프론트맨 Kathir에 의해 Rudra로 개편되어 현재까지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여기서 Rudra는 베다에 등장하는 폭풍의 신이며, Rudhra에서 Rudra로 이름을 변경한 이유는 표기법에 있어서 오류를 수정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97년도의 데모 Rudra부터 이들은 본격적으로 베다 속의 소재를 차용하여 가사에 담아 오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몇몇 실험적 면모가 돋보이는 데스래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이들은 2005년부터 시작된 Brahmavidya 3부작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스래쉬/데스/블랙을 고루 녹여 만들어낸 독자적인 베딕 메탈 사운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성향은 인도의 정통 육파철학의 베단타 학파 중에서도 아드바이다 베단타 학파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며, Brahmavidya 3부작에서 이들의 가치관을 가장 쉽게 엿볼 수 있다. 여기서 Brahmavidya는 신성한 존재, 절대자에 대한 (영적인)지식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05년도의 Brahmavidya: Primordial I, 09년도의 Brahmavidya: Transcendental I, 11년도의 Brahmavidya: Immortal I 순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삼부작은 이들 디스코그래피의 정점이자 베딕 메탈의 진수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각각의 세 앨범은 저마다 서로 다른 테마를 지니고 있으며, 공통적으로 궁극적인 진리에 대해 논하고 있다. 첫 번째 앨범 Brahmavidya: Primordial I는 베다의 일부인 우파니샤드의 일화들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두 번째 앨범 Brahmavidya: Transcendental I은 힌두교의 경전 중 전승된 서적을 의미하는 스므리티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 Brahmavidya: Immortal I은 베단타 학파의 경전인 브라흐마 수트라를 다루고 있다. 그리하여 Brahmavidya 삼부작은 베단타 학파 중 절대자 브라만과 개인적 자아인 아트만이 동일한 존재, 즉 불이일원론을 주장하는 아드바이다 베단타 학파의 세 토대인 슈루티(우파니샤드), 스므리티(기록된, 전승된 경전들), 니야야(브라흐마 수트라와 같은 체계적 정리)를 각각 세 앨범이 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각각 앨범 수록곡들의 첫 번째 글자를 모두 합치면 특정 단어를 이루며 이를 통해 앨범의 주제의식을 표출하기도 한다. 먼저 삼부작의 첫 번째 앨범 Brahmavidya: Primordial I에 수록된 곡들의 첫 번째 글자를 모두 합치면 Tat Tvam Asi가 되는데, 이는 ‘너는 그대이도다’라는 뜻으로 너라는 자아가 곧 절대자, 즉 신 또는 모든 우주와도 같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두 번째 앨범 Brahmavidya: Transcendental I도 같은 방식으로 Brahma-nirvanam이라는 단어를 만들 수 있는데, 이는 물질적 존재에서 벗어나 영적인 존재로의 초월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작품 Brahmavidya: Immortal I의 경우 Nirvishesha라는 단어가 만들어지며 이는 모든 특성, 특질에서 벗어나 구분이 불가능한 상태, 즉 인간 마음의 모든 예속에서 벗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그리하여 세 앨범이 지니는 주제는 제목 그대로 우파니샤드를 통해 태고의 자아를 깨우치고, 스므리티의 지헤를 통해 초월적 자아를 찾으며, 브라흐마 수트라의 불이일원론적인 지혜를 통해 불멸의 자아를 찾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때문에 리뷰를 적으려면 순서대로 세 앨범 모두에 대해 작성하는 것이 맞겠지만, 편의상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삼부작의 두 번째 앨범 Brahmavidya: Transcendental I에 대해서만 우선적으로 다루어 볼 것이다.
첫 번째 곡 Bhagavatpada Namaskara는 Skanda Purana의 Guru Gita에 대한 짤막한 곡으로, 제자들의 마음을 바로잡기 위해 고통을 택했던 Guru를 찬양하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Guru Gita의 두 절을 가사로 따온 곡이다. 보컬 Kathir와 여성 보컬이 ‘베딕 찬트’라고 불리는 산스크리트 성가 스타일로 노래하며 독특한 분위기를 조성해낸다.
두 번째 곡 Ravens of Paradise는 자각의 조건 중 하나인 무념에 대해 논하는 Bhartrhari의 시 Vairagya shatakam에 대한 곡이다. 강렬한 도입부로 시작하는 이 곡은 개인적으로 이 앨범뿐 아니라 이들의 디스코그라피에서 가장 선호하는 곡으로, 블랙큰드 데스 메탈 스타일의 파괴적인 연주를 선보인다. 또한 익스트림 메탈 특유의 비장미와 이국적인 색채가 공존하는 멜로디와 산스크리트어 가사를 활용하여 독특한 색채를 더하고, 여기에 연이어 등장하는 트윈 기타의 뛰어난 솔로와 수미상관적 구성으로 강렬한 임팩트를 안겨 주었던 명곡이었다.
세 번째 곡 Amrtasyaputra는 현자 Dattatreya의 가르침인 Avadhuta Gita에 대한 곡으로, 어떠한 사회적 구속과 구별을 거부하고 불멸의 자아 속에서만 존재하는 현인의 통찰력을 기리고 있다. 이전 곡에 뒤이어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이 곡은 드럼의 거침없는 연주로 대표되는 더욱 난폭한 연주가 두드러지며, 곡 중반부에서 짤막하게 여성 보컬이 등장해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구성 역시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산스크리트어 가사를 좀 더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며, 스래쉬 메탈에서 볼 법한 기타 솔로 배틀도 또 하나의 즐길 거리였다.
네 번째 곡 Hymns from the Blazing Chariot는 마하바라타의 일부인 Bhagavad Gita에 대한 곡이다. 주인공 Arjuna와 친구 Krishna가 등장하고, Kurukshetra 전투에서 Krishna는 Arjuna에게 전사로서의 의무와 자기 인식에 대해 깨달음을 전해 준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유일하게 뮤직비디오로도 제작되었던 이 곡은 우선 초반에는 산스크리트어 성가 스타일로 진행되다가 이내 다시 강렬한 전개로 이어진다. 파괴적인 연주와 이국적인 멜로디가 공존하며 마찬가지로 현란한 솔로 역시 돋보였다.
다섯 번째 곡 Meditations at Dawn은 아침 명상에 사용되는 Pratah Smaranam에 대한 곡이며, 태고의 자아를 숭상하고 경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곡은 여성 보컬과 타블라를 비롯한 인도의 전통 악기들이 이끌어가는 곡으로, Nile이나 Melechesh의 앨범에서 간혹 등장하는 완전히 비메탈적인 곡이다. 때문에 다소 이질감이 느껴지거나 맥을 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곡 후반부의 현란한 타악기 연주 부분은 제법 인상적이었다.
여섯 번째 곡 Advaitamrta는 인도 베단타 철학의 가장 심오한 경전인 Advaita makaranda에 대한 곡이다. 저자 Lakshmidhara Kavi는 왕국 법원의 시인이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는 인물이며, 28절에 불과한 이 짧은 저작은 우파니샤드의 자기 인식에 대한 핵심을 끌어낸 작품이라고 한다. 이 곡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격렬한 연주로 되돌아오며 독특한 보컬의 음색과 함께 독특한 이국적 분위기를 극대화한 매력적인 곡이었다.
일곱 번째 곡 Natural Born Ignorance는 독특하게도 호주 사람 Michael Comans의 저작 Advaita Pratibodha에 관한 곡이다. 베단타 철학을 다루고 있는 이 저서는 베단타 철학이 문화, 인종, 국경에 구애받지 않음을 증명하고 있다. 이 곡 역시 이국적인 스타일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비장미와 파괴적인 드럼이 기억에 남았다.
여덟 번째 곡 Immortality Roars는 15세기의 현자 Narasimha Saraswati의 Vedanta Dindima에 대한 곡으로, 자아와 절대자 간의 비이원성을 긍정하고 있다. 이 곡은 앨범 내에서 가장 독특한 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상 산스크리트어 보컬과 드럼만이 등장하며 이 둘이서 곡을 이끌어 가는 곡이다. 이러한 시도는 이들의 초기작에서 등장한 몇몇 실험적인 곡들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도 있겠는데, 특이하면서도 짧지만 강렬했던 재미있는 곡이었다.
아홉 번째 곡 Reversing the Currents는 19~20세기 인도의 현자 Ramana Maharshi의 Upadesa Saram를 다룬 곡으로, 이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가 주 내용이다. 그는 16세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단순한 질문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이해하는 깨우침을 전파해 주었다고 한다. 이 곡도 이전까지의 곡들과 마찬가지로 강렬하고도 특색 있는 리프와 연주, 화려한 솔로가 어우러지는 훌륭한 곡이었다. 어쿠스틱 기타를 활용했다는 점 또한 나름의 특색을 지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열 번째 곡 Venerable Opposites은 시바 신과 그의 배우자인 샥티 신의 대담 형식으로 기록된 Devikalottara upagama에 대한 곡이다. 이는 자연을 중심으로 도는 자아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 도입부에서는 전통 타악기를 통해 웅장한 분위기를 내며, 산스크리트어 후렴구와 어우러지는 연주가 만들어내는 신묘한 느낌이 인상 깊었다.
열한 번째 곡 Avidya Nivrtti는 Padma Purana에서 발췌한 Shiva Gita를 다룬 곡으로, 이는 다양한 스므르티 문헌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서 시바 신은 라마 왕에게 자아의 신비와 불멸에 대해 접하게 해 준다. 이 곡은 초반부 시바 신의 발언 부분 이후 등장하는 리프를 비롯해 질주감 넘치는 전개로 청자를 다시 사로잡는 후반부의 킬링 트랙 중 하나였다.
열두 번째 곡 Not the Seen but the Seer는 Devi Bhagavata Purana의 Devi Gita에 대한 곡으로, 여기에서 절대자는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 자기 인식에 대해 설파한다. 이처럼 절대자가 여성의 모습을 한 채 등장하는 것은 여타 종교에서는 보기 드문 경우지만, 베다에서는 무척 흔한 일이라고 한다. 베다에서 자기 인식을 가르치기 위해서 성별은 전혀 중요하지 않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전 곡의 질주감을 그대로 이어받아 계속 치닫는 이 곡 또한 거센 연주가 돋보이며, 갑작스러운 분위기 전환과 전통 타악기를 더해 부각시키는 오묘한 분위기로 앨범 막바지까지 대충 넘어가는 건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열세 번째 곡 Adiguru Namastubhyam은 베다 전통에서 가장 위대한 현자로 불리는 Adi Shankara의 짤막한 시 Dakshinamurti Stotram에 대한 곡이다. 시바 신의 화신인 Dakshinamurti는 다양한 예시를 들어 자아란 우주의 유일한 실체임을 보여준다. 시의 세 절을 따온 이 곡은 첫 번째 곡과 마찬가지로 베딕 찬트의 형태를 띠지만 이번에는 남성 보컬만 등장하며 더욱 빠른 속도로 진행되며 이전과는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열네 번째 곡이자 마지막 곡 Majestic Ashtavakra는 Astavakra Samhita로도 불리는 Ashtavakra Gita에 대한 곡으로, Ashtavakra Gita는 태어날 때부터 여덟 곳의 장애를 갖고 있었던 현자 Ashtavakra와 Janaka왕의 대담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여기에서도 비이원적 자기 인식에 대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마지막까지 그 격렬함을 이어가는 이 곡도 마찬가지로 귀에 쏙쏙 박히는 리프들과 빈틈없이 내달리는 전개가 훌륭했고, 마지막 부분의 클린 보컬 파트도 기억에 남았다.
앨범 전반적으로 데스 메탈을 기반으로 하여 스래쉬, 블랙의 요소를 가미한 격렬한 스타일을 구사하면서도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 독특한 베딕 메탈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었다. 프론트맨 Kathir가 인터뷰에서 언급한대로 이들은 장르적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들만의 음악을 추구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이국적인 느낌이 나면서도 착착 감기는 훌륭한 리프들이 우선 귀를 사로잡으며, 웬만한 기존 메탈 밴드들 못지않은 트윈 기타의 화려한 솔로들도 수준급이었다. 또한 시종일관 격렬하게 내달리는 드럼 역시 강렬함을 배가시켰다. 그리고 이전 앨범들과 비교했을 때 더욱 발전하고 특색 있는 믹싱 및 마스터링 작업으로 베딕 메탈의 스타일을 확립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개별 곡들의 완성도도 거의 버릴 곡 하나 없이 출중했고, 초반부 2, 3, 4번 곡의 연타를 비롯한 킬링 트랙들의 임팩트 역시 매우 강렬했다. 다만 5번 곡 Meditations at Dawn처럼 맥을 끊을 수 있는 요소나 빡빡한 열 네 곡 구성으로 한 번에 앨범을 완주하기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사소한 약점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총체적으로 이 앨범은 베딕 메탈의 진수를 보여주는 Rudra의 최고작이었다고 본다.
그리하여 이들의 베딕 메탈 스타일은 전 세계로 널리 퍼져 다양한 형태로 계승되고 재창조되고 있다. 네팔의 데스 메탈 밴드인 Dying Out Flame같은 경우는 음악뿐 아니라 사상적으로까지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며, 2집 이후 블랙 메탈의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더욱 주목받게 된 체코의 Cult of Fire, 그루브/데스 메탈 밴드인 러시아의 Kartikeya등등 국적을 불문하고 이들의 영향력은 널리 퍼져나가고 있다. 더 나아가 힌두교적 테마를 차용한 3집 이후의 Persefone나, Rudra의 보컬 Kathir를 피처링으로 초대하기도 했던 Rotting Christ같은 경우도 이들에게서 영향을 받은 사례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이처럼 베딕 메탈의 가장 큰 특징은 근본적인 테마를 공유하면서도 서로 다른 음악 스타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장르’라는 틀에 구속받지 않는다는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어쩌면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프론트맨 Kathir가 말한 대로 장르적 한계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들만의 음악을 추구하는 성향과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장르라는 껍데기에서 벗어나 자기들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추구하는 Rudra와 베딕 메탈 밴드들의 모습은 인간의 굴레에서 탈피하여 초월적 존재로 거듭난다는 베단타 철학의 가르침과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ॐ
99/100 ... See More
4 lik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