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stevet –
Obsian (2013) |
70/100 Jun 28, 2014 |
Castevet의 음악은 최근 많이 등장한 블랙메탈 + 포스트코어 + (약간의)매쓰메탈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밴드입니다.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Liturgy, Krallice 같은 밴드들이 뉴욕 출신이라 그런지 이런 음악을 ‘브루클린 블랙메탈’이라는 부르는 이들도 있는데, 이들은 시카고 출신이므로 ‘브루클린’이란 꼬리표를 달기엔 지역적으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지요. 아무튼 이들도 뉴욕의 블랙메탈 밴드와 비슷한 방향의 음악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들 밴드가 비슷하다고 해서 똑같은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많든 적든 아방가르드 성향을 보인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 으며, Castevet 같은 경우에는 리프를 만들 때 포스트 코어 60%, 블랙메탈 40% 정도 비율로 각 장르의 특성을 섞은 후 Meshuggah 풍의 폴리리듬을 살짝 깔아놓았습니다.
그 결과 사운드는 리듬 위주로 진행되고, 이러한 기반 위에 몽환적인 디스토션을 이용하여 눈보라 같은 리프를 덧씌워주면서 독특한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쓸데없는 블래스팅 비트가 등장하지 않아 리듬감이 살아있으면서 포스트코어 사운드가 블랙메탈 리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멜로디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고 파편화되어 분위기를 형성하는 역할에만 치중합니다. 나쁘게 말하면 이건 멜로딕한 것도 아니고 멜로딕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리듬이 완벽한 폴리리듬인 것도 아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아닌, 감상 포인트가 애매한 상태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이 앨범의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그래서 앨범을 다 듣고 나면 리듬과 분위기는 기억에 남으나 멜로디는 기억에 남지 않았습니다. 리듬과 분위기를 확보했다는 것은 이들의 성과이고 확실한 멜로디의 부재는 이들이 향후 해결해야할 과제가 되겠지요. 그러나 분명한 형태를 취하지 않는 이 앨범의 멜로디와 이들이 구축한 분위기는 서로 연결되어있어 이 문제를 해결하긴 쉽지 않아 보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너무 고민하지 말고 2번 트랙 Cavernous 중반, 3번 트랙 The Curve 중후반이나 5번 트랙 Obsian에서 보여준 톤 메이킹과 멜로디의 배합 능력을 곡 전체에 적용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물론 단순한 멜로디지만, 이를 조금만 확장시켜 적용한다면 이들의 스타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보다 캐취한 음악을 만드는 게 가능할 것입니다.
한편, 잠깐이나마 이 밴드는 이상한 짓을 하려는 징후를 보이고 있습니다. Between the Buried and Me 같은 이들이 즐겨 써먹는 방법(코드만 맞게 돌아가면 아무 장르나 마구 이어붙이는 방법)처럼, 2번 트랙 Cavernous 중후반부터 곡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난데없이 밝은 느낌의 코드를 등장시킨 후 이를 괴팍하게 뒤틀어나가는 전개를 보여줍니다. 아방가르드적 표현이라고 하면 할 말 없습니다만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과는 무관한, 과시적인 시도일 뿐이므로 굳이 이런 무리수는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이들이 가진 아이디어가 그만큼 풍부하다는 점을 드러내는 것 같아 (다른 곡에서는 이런 짓을 하지 않으므로) 애교 정도로 눈 감아줄 수 있는 수준 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 앨범은 좋은 앨범일까요? 좋다고 말하기엔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많은 아이디어와 발전 가능성을 담고 있지만 현 상태의 음악을 그대로 보자면 멜로디의 부재를 채울만한 다른 무엇인가가 없고 그렇기 때문에 끝까지 듣기에는 지겹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습니다. 폴리리듬을 일부 차용했으나 끝없이 변칙리듬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므로 한계가 있고, 분위기가 독특하나 중독성은 부족합니다.
그러나 나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기존에 있던 음악을 섞어 이런 식으로 다시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들어낸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이 앨범에 담겨있는 음악은 블랙메탈의 요소를 가지고 있으나 블랙메탈은 아닙니다. 포스트락도 아니고 포스트 코어라고 할 수도 없으며 매쓰메탈도 아닙니다. 이런 음악은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요? 브루클린 블랙메탈이라는 이름은 부적절합니다. 누군가 이러한 형태의 음악에 새로운 호칭을 부여하겠지요. 이전에 있던 음악보다 발전적인 형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새롭고 들어볼만한 음악입니다.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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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cyful Fate –
Melissa (1983) |
90/100 Dec 15, 2013 |
음산하면서도 탄탄한 헤비메탈 사운드와 컨셉트에 따른 기획력이 돋보이는 곡들. 멜로딕한 기타 솔로와 초고음 가성 창법을 활용한 변화무쌍한 보컬. King Diamond 라는 인물이 이러한 특성을 갖추고 있는 본인의 밴드를 꾸리기 전에 이 Mercyful Fate 라는 밴드로 활동을 했었지요. 자신의 밴드에서도 그랬지만 Mercyful Fate로 활동하던 시기에도 사타닉한 가사와 음산함이 드문드문 드러나는 사운드로 유명했고, 그 완성도는 지금 들어도 훌륭한 수준입니다. 단지 훌륭할 뿐만이 아니라, 지금 들어도 독창적인 아우라는 독보적입니다. 앨범이 발매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여전히 독창적이라면 그 앨범은 분명 대단한 앨범입니다.
이 앨범은 Mercyful Fate의 첫 번째 정규앨범이지만 미숙함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가장 큰 장점은 밴드의 연주력인데, 모든 연주가 척척 맞아들어가는 탄탄한 팀웍은 정말 발군입니다. 캐취한 리프는 물론 정통성과 독창성을 오가는 기타 솔로를 구사하는 Hank Shermann(그리고 Michael Denner)의 연주는 이러한 팀웍의 핵심인 동시에 King Diamond와 Mercyful Fate를 구분짓는 주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King Diamond의 사운드가 좀 더 드라마틱하고 멜로딕하다면, 초기 Mercyful Fate의 사운드는 메탈 본연의 사운드에 더 충실한 편이지요. 베이시스트 Timi G. Hansen과 드러머 Kim Ruzz가 일구어나가는 리듬감 또한 훌륭하여 특유의 메탈 그루브를 만들어내는데(코어 사운드 류의 그루브를 의미하는 게 아닙니다), 1번 트랙 Evil의 메인 리프나 6번 트랙 Satan's Fall의 도입부 리프는 심지어 Funky하기까지 합니다. 강철의 메탈 사운드를 유지하면서 그루브를 얹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메탈 드러머와 베이시스트가 있다면 이 앨범을 꼭 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이러한 연주력이 가장 멋드러지게 나타나는 게 3번 트랙 Into the Coven 입니다. 바흐 풍의 도입부 연주가 기타 단독으로 진행된 후 등장하는 협연에서는 리듬 쪼개기가 자주 등장하는데, 이게 드럼 혼자 리듬을 쪼개는 게 아니라 리프까지 맞춘 유니즌 플레이로 리듬을 쪼개다 보니 곡 전체가 리듬감으로 넘실거리는 효과를 줍니다. 연주력을 과시하는 파트를 배제하여 어색한 감도 없고, 자연스럽게 몰입도와 긴장감을 강화해주는 연주입니다. 2분 30초대에 등장하는 신비롭고 서정적인 반전부까지도 멜로딕한 기타 솔로와 절정에 이르는 연주가 덧붙여져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지요. 곡 전체에서 걸쳐 연주가 쫄깃하다는 느낌을 주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 이 곡은 이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곡은 마지막 트랙 Melissa 입니다. 의욕과잉으로 전개가 너주 자주 변화하긴 하지만 사악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극대화시켰다는 점, 악마에 홀린 Melissa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 시각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입니다. King Diamond가 모든 곡에서 특유의 다채로운 창법을 유감없이 보여주긴 했으나, 여기에 '이야기의 힘'이 더해져 이 곡이야말로 앨범 내에서 King Diamond의 보컬이 가장 돋보이는 트랙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완과 긴장을 오가다가 "I think Melissa still with us" 라는 유명한 나레이션으로 곡을 마무리하여 청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멋진 곡입니다. 향후 King Diamond가 자신의 밴드에서 이러한 사운드를 주된 형태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곡이기도 하구요.
그러나, 이 앨범이 모든 곡이 완벽한 앨범은 아닌지라 구멍이 몇 개 존재하는데, 4~6번 트랙이 그렇습니다. 질이 현격하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곡에 비해 응집력이나 내세울만한 장점이 떨어지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중에 6번 트랙 Satan's Fall이 대곡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어 아쉬움이 많이 남는 곡입니다. 구성미보다는 변화무쌍한 전개에 무게중심을 두어 곡의 방향성을 잃어버렸다는 점이 가장 큰 단점이고, 곡이 긴장과 이완을 오갈 때 이질적인 느낌이 든다는 점이 그 다음 단점입니다. 예컨대 신나는 락앤롤 같은 도입부 리프와 1분 45초 대에 나오는 음산한 아르페지오(이 패턴의 아르페지오는 훗날 블랙메탈 밴드들이 즐겨 사용하였지요)를 이용한 반전, 그리고 그 후 2분 30초대에서 다시 나오는 메틀릭한 전개는 서로 너무나 안어울렸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보여주다보니 하나의 곡이라기 보다 일종의 메들리가 되어버린듯 한데, 7분 50초대부터 시작되는 멋진 솔로와 그 뒤를 잇는 긴박한 연주는 버리기 아까운 내용물이라 더욱 아쉽더군요.
그럼에도, 전체적인 완성도는 뛰어난 앨범입니다. 1983년에 나온 메탈 앨범 가운데 마땅히 주목 받아야 할 앨범이며, King Diamond의 목소리에 대한 거부감을 떨쳐낼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찾아 들어야 하는 헤비메탈 앨범이 아닌가 싶습니다.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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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yricon –
Satyricon (2013) |
75/100 Dec 15, 2013 |
변신을 시도한 1999년작 Rebel Extravaganza 이후 이들의 음악은 메탈 팬들이 원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리프와 비트 속에 미니멀리즘을 구현해놓은 듯 단순화된 음악이었고, 그루브 없이 디스코 풍의 댄서블한 리듬감을 갖춘 괴작이었지요. 여기에 기존의 스타일을 변용하여 덧붙이면서 Satyricon 스타일을 확립했는데, 이러한 이질적인 요소들의 조합이 만들어낸 독창성만큼은 인정받을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독창적인 것이 반드시 훌륭한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요.
이들의 새로운 곡들은 대개 훅이 없거나 쓸데없이 곡 길이가 길었으며, 이렇다 할 클라이막스 없이 밋밋하게 끝나버 리는 등 독창적이라는 장점을 갉아먹는 단점이 많았습니다. 스타일과 음악적 틀을 벗어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들이 시도해보지 않은 실험’을 하느라 일반적으로 청자가 좋아하는 음악적 요소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했지만, 어찌되었든 결과적으로 다른 음악보다 이들의 음악이 더 훌륭하다는 증거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실망감을 안겨준 이들의 앨범을 다시금 주의 깊게 들어보게 된 것은 이 앨범의 5번 트랙 Phoenix 때문입니다. 미니멀한 연주와 비장미 넘치는 멜로디, 메틀릭한 필링이 분명히 나타나는 드러밍에 게스트 보컬 Sivert Høyem의 점잖은 음색이 어우러지는 것을 들으면서 다크-헤비 기타팝의 탄생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이와 유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 곡은 이들의 스타일이 살아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추고 있지요. 그러나 앨범을 다 듣고 보니 아직 탄생을 논할 단계는 아니더군요. Phoenix 같은 스타일의 곡은 그 곡 하나 뿐이었습니다.
나머지 곡들은 전작의 사운드를 모아놓은 모양새입니다. 댄서블한 비트는 4번 트랙 Nocturnal Flare의 일부분, 7번 트랙 Nekrohaven 정도로 제한하고 있고, 대놓고 공격성을 드러내는 곡은 Phoenix의 다음 곡인 6번 트랙 Walker upon the Wind 뿐입니다. 이외의 곡들은 이러한 특색 없이 리프의 힘으로 진행됩니다.
다만 리프의 운용방법이 일반적인 청자의 취향에 맞게 변화하여 2번째 단락에서 언급한 단점은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캐취한 리프를 제시하고 이를 변용하여 리프의 개연성을 확보하거나 음울한 분위기로 침잠하는 파트를 만들어내며, 이를 다시 효과적인 전환부를 통하여 하나의 곡으로 잘 융화시키고 있습니다. (예외적으로 9번 트랙 the Infinity of Time and Space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후렴이 여기저기에 마구잡이로 접합되어 있어 아쉬움을 남깁니다.) 게다가 특유의 분위기와 멜로디가 곡 단위를 넘어 앨범 전체까지 일관되게 녹아들어 있어 앨범을 다 듣고 나면 앨범의 테마라고 할 수 있을만한 멜로디 몇 개는 기억에 남습니다.
녹음상태는 녹음의 몇 가지 단계를 빼놓은 듯 뭔가 미완성된 느낌인데, 그래도 각 악기의 소리가 명확히 들리는 것은 물론, 악기간의 밸런스도 잡혀있고 듣기에 따라 레트로한 감성이 느껴져 나쁘지는 않습니다. 적어도 앨범을 감상하기에 거슬리는 수준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이 앨범은 5번 트랙 Phoenix로 대표되는 ‘Satyricon의 또 다른 모습’을 확고히 한 앨범은 아니지만, Volcano 이후의 음악을 성공적으로 개선한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여전히 메탈 특유의 꽉 짜인 리프 운용과 구조적 미학은 없기 때문에 많은 메탈 애호가들에게 외면 받을 앨범인 것은 분명해보이지만, 이들의 스타일이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는지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는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훌륭하진 않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괜찮은 앨범입니다.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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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ar of No Light –
Ausserwelt (2010) |
70/100 Jun 20, 2013 |
슬럿지/드론/포스트/둠/코어/메탈 등 장르가 혼재되어있고 내적인 분위기와 지적인 짜임새를 갖춘 사운드를 들려주는데, 이런 풍의 음악을 얘기할 때 Neurosis, Isis, Cult of Luna, Pelican 같은 밴드를 함께 거론하지 않을 수가 없지요. Year of No light 역시 방금 열거한 밴드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프랑스 출신 밴드입니다. 이들은 2006년작 Nord 에서 이모 풍의 세련된 멜로디와 슬럿지/둠 리프를 섞어내고, 여기에 키보드의 활용까지 덧붙인 사운드를 들려준 바 있지요. 결과물이 훌륭했지만 국내에서는 완성도 만큼의 주목을 받진 못했습니다.
아무튼, 이 앨범은 이들의 2010년작으로 전작의 음악적 기초에서 드라마 틱한 부분을 추려낸 후 서사적인 면을 부각시킨 음악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쁘장한 멜로디와 훌륭한 녹음상태, 무난한 구성, 적절한 완급조절 등 소위 말하는 '팔릴만한 요소'가 많아 이런 부류의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이 좋아할만한 음악을 만들어내었습니다. 처음 들으면 좋은 편입니다. 하지만 2~3번만 더 들어보면 이내 생각이 바뀝니다. 마치 처음 먹었을 땐 맛있지만 너무 달아서 더 이상은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접한 것처럼, 너무 빨리 물려서 더 이상 듣고 싶지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곡의 길이는 짧아야 13분인데(1,2번 트랙 Persephone 시리즈는 하나의 곡으로 보겠습니다), 앨범 전체에 보컬이 없습니다. 앨범이 통째로 연주곡으로 채워져있는 경우 몰입도를 끝까지 유지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사운드를 주도하는 역할을 악기가 대신한다고 해도 보컬의 변화무쌍한 감정표현을 대체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죠. 물론 이들의 경우 보컬이라고 해봐야 샤우팅 위주의 감정없는 울부짖음(?) 뿐이었으니 조금 예외적인 상황에 있다고 할 수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타가 보컬을 완전히 대체하진 못했습니다.
2. 기타의 실수는 1) 초지일관 단순하고 선 굵은 멜로디만 사용했다는 점, 2) 리프의 리듬을 지나치게 단순화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물론 Epic한 분위기를 살리고자 심플하고 웅장한 멜로디를 사용한 것이겠지만, 보컬도 없는 마당에 멜로디라고 해봐야 음표 몇 개 변하지도 않으면 들을 건덕지가 없잖아요? 멜로디가 이러한데 리듬까지 단순하다면 또 얼마나 지루하겠습니까. 리듬감조차 없으니 멜로디 이외의 음들은 그야말로 '공간 메우기용' 단순 배킹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입니다.
3. 서사적인 분위기에 너무 집중한 나머지 전개가 지루합니다. 완급이 있어도 메인테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2대의 드럼 중 1대만 블라스트 비트로 달리는 형식이라 의미있는 반전이 거의 없습니다. 2번 트랙 Hierophante의 3분대, 그리고 Abbesse의 7분대에 등장하는 반전은 그 효과가 유효하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앞서 열거한 이 앨범의 단점을 만회하려면 이러한 요소가 더 많아야 합니다.
한편, 밴드는 프로덕션에 있어 노력의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여러 층의 기타 레이어를 쌓아올려 공간을 꽉 채우고, 톤에 있어서도 에코, 딜레이 등 각종 이펙터 노가다로 결과물을 뽑아내었지요. 드럼도 2대로 녹음해서 한 쪽은 스네어를 갈기고 한 쪽은 주 템포와 심벌워크를 한층 강조해주는 등 빵빵한 출력을 내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녹음 자체는 이들의 의도대로 잘 빠진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좋은 음악을 만들기 위한 이차적 요소이지 일차적 요소일 순 없습니다. 추측컨대 이들은 프로덕션에 집중한 나머지 다른 요소를 미처 챙기지 못한 것 같습니다.
훌륭한 데뷔앨범을 냈던 밴드이고, 이 앨범 또한 처음 들었을 땐 좋다는 느낌을 주는 앨범이기에 아직 이들에 대한 기대감은 버릴 수 없지만, 부디 다음 앨범에서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이들은 올해 Vampyr 라는 정규앨범을 발표했습니다만 저도 아직 들어보진 못했습니다)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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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 –
Advaitic Songs (2012) |
85/100 Jun 20, 2013 |
제3세계 음악에서 접할 수 있을만한 이국적인 선율과 챔버팝에서 들을 수 있을법한 현악 어레인지, 게다가 Stephen Micus를 듣는듯한 명상적인 분위기. 여기에 Sanskrit Mahamrityunjaya Mantra라고 하는 기도인지 주문인지 이상한 흥얼거림을 넣어서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습니다. 마치 비잔틴 제국이 있던 동유럽/중동 어느 지역의 사원에서 서양/중동 음악이 혼합된 스타일의 명상음악을 듣는듯한 느낌입니다. 게다가 반복적인 리듬과 단조로운 전개는 명상에 최면 효과를 더합니다. 이렇듯, Om의 5번째 정규앨범 Advaitic Songs는 특정한 음악의 범주에 속하기를 포기함으로써 특정장르에 구애받지 않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습니다.
Om의 음악은 그 뿌리가 스토너 계열의 음악에 있습니다. 이 밴드 자체가 스토너/슬럿지 파이오니어 Sleep에서 베이스/보컬을 담당하던 Al Cisneros가 만든 것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저처럼 이들의 최근 앨범들을 통해 이들의 음악을 처음 접하면 이들이 과거에 어떤 음악을 했는지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은데, 주로 리듬 파트의 골격에서 스토너적인 부분이 발견되어 '그랬었나보다' 하고 예측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무튼, 소위 Meditation Metal(사실 메탈의 특성을 완전히 상실해서 메탈이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로 불리는 이들의 음악은 드라마틱한 구성이 살아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특성상 곡 단위의 분석은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음악에 귀를 기울이며 물 흐르듯, 명상에 잠기듯 접근을 하는 것이 더 좋은 감상법입니다.
물론, 이 앨범은 100% 명상음악은 아닙니다. 정말 명상에 빠져든다 싶으면 퍼즈톤의 베이스가 리드미컬하게 꿈틀거리면서 청자를 깨우고, 메틀릭한 필링을 버리지 못한 드러밍이 리듬을 이어나가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몰입을 저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것이 이 앨범의 음악이 더 독특해질 수 있는 원천이 되기도 합니다.
5개의 수록곡은 비슷한 분위기와 비슷한 선율로 진행되어 얼핏 들으면 앨범에 하나의 곡 밖에 없는듯한 인상을 주지만, 감상을 이어나가다 보면 5개의 곡이 각각 개성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명상의 시작을 알리는 1번 트랙 Addis, 퍼즈톤 베이스로 분위기를 환기시킨 후 다시 현악으로 분위기를 다 잡는 2번 트랙 State of Non-Return, 에픽한 분위기로 출발하여 무덤덤한 보컬과 담담하지만 의외로 리드미컬한 전개와 현악을 교차시키는 3번 트랙 Gethsemane, 반복적인 비트와 공간감을 가로 지르는 여러 음향효과가 최면을 일으키는 4번 트랙 Sinai, 이국적인 퍼커션과 중동 풍의 현악 선율이 반복되어 가장 독특하고 귀에도 잘 들어오는 5번 트랙 Haqq al-Yaqin 까지 저마다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곡이 명확히 구분된다는 것을 알게 되면 이 곡들이 모두 하나처럼 들린다는 사실이 오히려 놀라워집니다. 하나처럼 응집력이 강하지만 개별적으로도 성립하는 것이, 각 곡들이 개별 악장으로써 존재하는 개념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된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100% 명상음악이 아니라는 점', 즉 스토너 파트와 명상 파트가 서로 부딪히고 있는 부분은 아직까지는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스토너 파트와 명상 파트 간의 이음새는 매끄럽지만 서로 분위기 환기를 하는 정도의 역할 밖에 못하고 있는데, 2번 트랙 State of Non-Return에서 특히 이런 문제점이 잘 드러나있습니다. 2번 트랙을 1번 트랙의 연속으로 보자면(앨범 단위로 감상할 경우 이 앨범은 각각의 곡들을 연속된 개념으로 볼 수 밖에 없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 스토너 파트는 분위기를 전환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어지던 분위기를 끊어놓기 때문에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별 도움이 안됩니다. (Al Cisneros의 보컬 또한 분위기를 깨는데 크게 한 몫 하고 있는데, 부디 개선할 방법을 찾거나 아예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좀 더 고민하면 장점으로 바뀌어 이들만의 색깔을 확고히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이는 바, 앞으로의 앨범을 기다리게 하는 요인인 것 같습니다.
모처럼 독특하고 좋은 음악을 만나 기쁩니다. 같은 Sleep 출신의 Matt Pike도 그의 밴드 High on Fire에서 좋은 앨범을 꾸준히 내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쪽이 훨씬 더 입맛에 맞네요.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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