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이런 걸 왜 들어요?”
메탈헤드라면 한 번쯤은 메탈을 전혀 듣지 않는 사람으로부터 이와 같은 질문을 들어본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특히 메탈 장르 내에서도 소위 말하는 익스트림 메탈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경우 다른 메탈헤드조차 질색할 만한 극단적인 스타일의 밴드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러한 극단 중의 극단을 추구하는 밴드들 또한 잘나가는 팝스타들과 마찬가지로 비록 그 규모는 작을지언정 팬들로부터 열정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스페인의 블랙/데스 메탈 밴드 Teitanblood역시 그러한 부류에 해당한다. 2003년 리더 NSK에 의해 결성된 이들은 캐나다의 Blasphemy로부터 시작된 속칭 ‘워 메탈’ 밴드로도 분류되는 밴드이다. 물론 이들의 음악적 테마가 ‘전쟁’과는 거리가 먼 편이지만, 지극히도 거칠고 난폭한 음악적 스타일은 이쪽 계열을 대표하는 Archgoat, Revenge, Proclamation 같은 밴드들과 비교해 봐도 뒤처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들이 앞서 언급한 밴드들은 물론이고 대다수의 블랙/데스 계열 밴드들과 비교해 볼 때 가지는 뚜렷한 차이점은 대곡을 많이 쓴다는 점이다. 블랙/데스 계열 밴드들이 일반적으로 블랙 메탈과 데스 메탈뿐 아니라 그라인드코어로부터 받은 영향이 작지 않다는 점에서 대개 곡들의 길이가 긴 편이 아니지만, Teitanblood의 경우 10분이 넘어가는 트랙들을 정규 앨범에서도 EP에서도 수록하곤 한다.
물론 단순히 곡의 길이가 길다는 것이 특징은 될 수 있어도 반드시 장점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곡 구성은 자칫하면 쉽게 지루해진다는 비판을 받기 십상인데, Teitanblood의 두 번째 정규 앨범 Death는 무질서함 속에서도 나름의 짜임새와 빌드업을 갖춤으로써 총 길이가 70여 분에 달하는 블랙/데스 앨범의 선례를 찾기 힘든 대작을 만들어냈다.
보통 한 시간이 넘어가는 대작 앨범이나 블랙/데스의 기념비적인 앨범 Fallen Angel of Doom....을 본받은 많은 블랙/데스 앨범들이 앨범의 도입부에 스산하거나 웅장한 분위기의 도입부를 넣어 살살 분위기를 내는 전법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Teitanblood 역시 1집 Seven Chalices에서 웅장함이 느껴지는 인트로를 활용한 바 있는데, 2집 Death에서는 마치 머뭇거릴 틈이 없다고 울부짖듯 앨범이 시작되자마자 제로백 1초의 급발진을 보여준다.
첫 번째 곡 Anteinfierno는 시작과 동시에 모든 세션이 극한으로 치닫는데, 겹겹이 쌓인 보컬의 절규와 매섭게 찢어지는 기타 솔로, 헤비하기 그지없는 리프 그리고 매서운 드러밍으로 단 몇 초 만에 이들의 색깔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이는 마치 서서히 경사면을 오르다 낙하하며 시작하는 롤러코스터가 아닌 시작하자마자 전속력으로 급발진하는 롤러코스터에 탑승한 짜릿함을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이어지는 대곡 Sleeping Throats of the Antichrist는 단순히 광폭함에서 끝나지 않는 이들의 또 다른 매력을 체감하게 해 준다. 첫 번째 곡과는 정 반대로 무겁고 느린 분위기 속에서 시작하는 이 곡은 물론 블랙/데스 특유의 야만스러운 난폭함이 강조되지만, 혼돈 속에서도 헤비한 리프들을 뚜렷하게 들을 수 있다. 또한 내달리는 스타일과 육중한 브레이크다운을 오가는 와중 다채롭고 의외로 짜임새 있는 구성까지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곡 후반부에서 육중한 리프로 서서히 쌓아 올리는 마무리는 그야말로 극한의 장르적 쾌감을 선사해 준다. 실제로 이 곡은 밴드의 리더 NSK가 인터뷰를 통해 리허설 당시 가장 좋아했던 곡이라고 밝혔으며, 해당 인터뷰를 진행했던 인터뷰어 역시 이 곡에 대해 ‘heavy-as-fuck string-bending guitar manoeuvres’라고 표현한 만큼 앨범의 킬링 트랙으로 손색이 없는 곡이다.
뒤를 잇는 곡들 역시 대곡은 대곡 나름대로, 짧은 곡은 짧은 곡 나름대로 블랙/데스 특유의 장르적 특징을 십분 활용하면서도 이들만의 독자적인 특색을 분명히 보여줌으로써 이 작품이 단순히 곡과 앨범의 길이만 긴 것이 아니라 그 여운 또한 길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4번 트랙 Cadaver Synod 같은 10분 내외의 곡들에서 줄곧 거세게 밀어붙이면서도 곡 사이사이 잠깐 쉬어 가는 부분을 통해 살짝 피로감을 덜어주고, 가장 짧은 3분대의 곡 Unearthed Veins에선 착착 감기는 리프와 무게감 있는 구성으로 대곡 사이를 자연스럽게 연결해 주기도 했다.
거칠고 난폭한 와중에도 때로는 느리고 무게감 있는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역시 대곡 구성에서 유발될 수 있는 피로감을 줄여주는 효과를 지닌다. 여섯 번째 곡 Burning in Damnation Fires의 중후반부가 그러한 완급조절을 잘 보여준다. 물론 이 곡에서도 듣는 재미를 더해주는 리프들이 돋보이며, 마지막 곡 Silence of the Great Martyrs에서도 마찬가지로 등장한다.
마지막 곡 Silence of the Great Martyrs의 경우 메탈 파트는 7분 정도이고 나머지는 러시아 정교회 성가를 샘플링하여 만든 음산한 분위기의 마무리이다. 그 때문에 메탈 파트만 놓고 보면 앨범의 총 길이는 한 시간이 약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도 대곡 위주의 대작 블랙/데스 앨범이라는 이 앨범의 특징은 그대로 유지된다.
그리하여 이 작품은 야만적이고 파괴적인 블랙/데스의 진수를 보여줌과 동시에 음침하고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거대한 곡 구성 속에서 나름의 치밀한 구조 또한 갖추고 있다. 혼란스러운 전개의 와중에도 무게감 있는 리프를 사용한 브레이크다운을 선보임으로써 대곡 구성에 어울리는 완급조절을 가능케 하고, 또 이러한 리프들은 단순하지만 매우 중독적인 스타일로 청자를 매료시킨다. 그뿐 아니라 거칠기 짝이 없으면서도 각 세션의 매력을 고루 느낄 수 있는 레코딩 역시 돋보이며, 특히 라이브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밴드의 특징을 활용하여 겹겹이 쌓인 보컬 및 기타를 통해 꽉 찬 느낌을 만들어 준다. 이러한 꽉 찬 느낌은 단 두 명의 멤버가 작은 리허설 방 안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수준이다.
곡들의 배치 역시 꽤나 영악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우선 첫 번째 곡이 인트로도 없이 초장부터 몰아세우면서 강렬한 첫인상을 남겨 주고, 두 번째 곡부터는 완급조절을 통해 한 시간 이상 되는 앨범을 차근차근 진행시켜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곡 사이사이에 음산한 분위기의 간주를 배치하여 잠깐씩 쉬어 가는 부분을 넣은 것 역시 긴 곡과 긴 앨범을 대비하기 위한 장치로서 역할을 한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정공법으로 나가는 방법을 택하면서도 그 뒤로는 각종 방법을 통해 완급조절을 함으로써 긴 앨범을 보다 쉽게 완주하게 해 주는 나름 치밀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이전에 리뷰했던 Vital Remains의 Dechristianize 앨범이 대곡 위주의 한 시간짜리 데스 메탈 작품임에도 네오클래시컬한 솔로를 덧붙인 다채로운 곡 구성으로 지루함을 극복한 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토록 파괴적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악한 면모까지 갖춘 Teitanblood의 핵심 NSK에 따르면 이들은 의도적으로 라이브를 하지 않지만, 그 덕분에 더욱 풍성한 사운드의 스튜디오 앨범을 만들 수 있었다고 한다. Angelcorpse의 멤버였던 Pete Helmkamp가 인터뷰에서 '음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왔으나 그것이 녹음되어 재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고, 따라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음악의 정수이다 '라고 한 것과는 달리 NSK는 Bathory의 Quorthon을 예로 들며 굳이 라이브를 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훌륭한 사운드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답했다.
또한 이들은 마치 Deathspell Omega 같은 밴드처럼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하며 그 정체를 숨기고 있는 편인데, 3집에서 멤버들이 네 명으로 늘어나면서 함께 찍은 사진이 공개되기 전까지는 얼굴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사족이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들의 배후에 핀란드의 앨범 커버 아티스트 Timo Ketola가 있었다는 것인데, Timo Ketola는 Teitanblood의 모든 정규 앨범 커버 아트를 만들었을 뿐 아니라 밴드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며 막후에서 음악 내·외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고 한다. 그 밖에도 밴드는 Proclamation, Necros Christos 같은 밴드와 스플릿을 발매하며 교류를 다지거나 EP에 수록된 곡 Purging Tounges에서는 스페인의 유명 배우를 기용하여 내레이션을 맡기는 등 신비주의 컨셉을 유지하되 한편으로는 활발한 인적 교류를 이어오는 외향적인 면모도 알게 모르게 보여주었다.
Teitanblood의 2집 Death가 발매된 후 5년 뒤인 2019년에 공개된 3집 The Baneful Choir 역시 이들만의 파괴적인 블랙/데스 스타일을 보여주면서 이번에는 대곡지향적인 부분에서 다소 탈피하기도 했으나, 일부 곡에서는 여전히 8분 이상의 대곡을 선보였으며 때때로는 비교적 멜로딕한 기타 솔로까지 시도하는 등 변화를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3집 역시 팬들로부터 여전하다는 호평을 받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들의 색깔이 가장 여실히 드러났다고 생각하는 2집 Death를 가장 선호한다. 더욱이 이 앨범은 Pitchfork를 비롯한 각종 웹사이트에서 2014년 최고의 메탈 앨범 중 하나로 선정되는 등 익스트림 메탈 내에서도 가장 매니악한 스타일인 블랙/데스 메탈 밴드로서 상당히 값진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글의 첫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래서 이처럼 거칠고 난폭하기 짝이 없는 음악을 왜 좋아하는 것일까? 과거에 폭력적인 영화나 게임 등이 사람을 폭력적으로 만든다는 주장이 팽배했던 것처럼 폭력적인 음악도 폭력성에 중독된 사람이 더 큰 폭력성을 추구하기 위해 듣는 것일까? 당연히 개인적으로는 정 반대의 의견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폭력적인 음악은 폭력성을 해소해 주는 역할을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 허기를 느끼면 음식을 먹고 배고픔을 해소하는 것이지 음식을 먹고 더 큰 허기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폭력적인 음악(여기에는 영화, 게임 등 어떠한 예술이나 매체가 해당될 수 있다.)은 분노와 같은 폭력적인 욕구의 해소 수단이 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폭력적인 음악도 폭력을 다루는 게임 등이 인기를 끄는 것처럼 소비자의 욕구를 해소해 주는 수단으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난폭하고 무질서한 음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자신의 취향에 맞고, 이것이 욕구 충족에 도움을 준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기에 극단적인 장르에서조차 소수이지만 충성스러운 팬들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본다. 한발 더 나아가 데스 메탈이든 뭐든 무엇을 듣더라도 “그런 걸 왜 듣냐?”라고 편견 어린 질문을 하는 것 자체가 의미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마치 초록색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왜 초록색이 좋은 건데?” 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캐묻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좋다는데 굳이 이유를 묻고 따질 필요가 있을까? 이러한 질문에 대해 웹툰 작가 원사운드의 명언을 활용한 다음의 표현으로 허접한 글을 마친다.
“시바 음악듣는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듣는거지”
96/100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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