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eator Biography]]
<위키페디아 출처, Translated by Mefisto>
[밴드의 탄생, 그리고 초기 출시작들 (1982~1987)]
크리에이터는 Tyrant라는 이름으로 독일 Essen지방에서 1982년 결성되었습니다. 맨 처음 라인업은 보컬/기타에 Mille Petrozza, 드럼에 Jürgen 'Ventor' Reil, 베이스에 Rob Fioretti가 되겠습니다. 그들은 곧 밴드명을 Tormentor로 개명하고 2개의 데모앨범을 발매합니다. 그들은 또다시, 그러나 마지막으로 밴드의 이름을 Kreator로 바꾸고 Noise Records에 1985년 입성하게 됩니다. 밴드이름은 레이블에 들어가면서 바꾸었는데 그것은 이미 헝가리출신중에 Tormentor라는 이름의 밴드가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터는 그들의 데뷔 앨범인 Endless Pain을 10일만에 발매합니다. 많은 블랙/데쓰메탈 밴드들은 이 앨범을 매우 영향력있는 앨범이라고 평가합니다. 밴드는 후에 Sodom에 들어가는 Michael Wulf를 세션 기타리스트로 하여 공연을 진행합니다.
Wulf는 잠시 밴드를 떠났고 1986년에 나온 다음앨범인 Pleasure to Kill에 참여하지 않습니다만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 앨범은 Thrash Metal Classic이라고 불리우는 앨범중 하나이며 멤버들의 실력과 테크닉의 성장을 보여주는 동시에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가장 헤비하고 빠른 앨범중 하나입니다. 수록곡중 Flag of Hate는 일찍부터 히트를 치게되고 밴드는 유럽에서 가장 기대되는 밴드가 됩니다. 새로운 기타리스트인 Tritze와 함께, 밴드는 첫번째 투어를 진행합니다. 또한 밴드는 그해를 첫번째 EP인 Flag of Hate를 발매하면서 마무리짓습니다.
[명성을 얻다 (1987~1991)]
1987년, 크리에이터는 그들의 3번째 정규앨범인 Terrible Certainty를 발매합니다. 앨범은 복잡한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전보다 더욱 다양해진 템포로 구성된 우수한 앨범으로 평가받습니다. 수록곡중 Behind the Mirror가 히트를 쳤으며, 밴드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습니다. 그들은 또한 EP인 Out of the Dark…Into the Light를 발매하기도 합니다.
크리에이터는 메이저 레이블인 Epic Records와 1988년에 계약합니다. LA에서 녹음된 그들의 4번째 앨범인 Extreme Aggression이 그곳에서 발매 되었으며, 1989에 대히트를 기록합니다. Terrible Certainty에서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밴드는 여전히 음악을 진보시켰고, Randy Burns의 질높은 프로듀싱을 받아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록곡중 Extreme Aggression과 Betrayer는 첫 싱글로 발매되기도 했고 뮤직비디오로도 제작되었고 MTV의 Headbangers Ball에서 호응을 얻습니다. 그들은 Suicidal Tendencies와 함께 북미를 투어하면서 유럽 밖에서도 튼튼한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89년, 독일 감독인 Thomas Schadt는 크리에이터를 다룬 Thrash Altenesssen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그무렵, Tritze는 크리에이터를 떠나게 되고, 1990년 새로운 기타리스트인 Frank “Blackfire” Gosdzik을 영입하고 Coma of Souls를 발매합니다. 그 앨범은 이전의 앨범들에 비해 호평을 받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이 서두르는듯하고 반복적이라고 평합니다), 여전히 앨범은 잘팔렸고 싱글로 커트된 People of The Lie의 히트와 함께 그들의 명성도 그대로 유지합니다.
[실험기 (1991~2000)]
1990년 초에는 전통 스래시 메탈의 인기가 수그러드는 시기였습니다. Metallica, Megadeth, Anthrax등이 그들의 악곡을 상업적으로 바꾸었고, 크리에이터는 데쓰메탈과 인더스트리얼메탈로 실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물은 1992년 발매된 Renewal인데요, 그 앨범은 데쓰 메탈과 인더스트리얼 메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좀더 넓은 층의 청중을 획득한 반면, 밴드는 오랫동안 팬이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됩니다. 한때 폭발적인 공연으로 잘 알려졌던 밴드는 인더스트리얼의 영향으로 인해 매우 실망스런 공연을 보여주게 됩니다.
빡빡한 공연일정은 그들을 남미까지 인지도를 확보시켜 주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을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지치게 했습니다. 밴드는 이 시기에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결성멤버인 Rob Fioretti가 그의 시간을 가족과 좀더 보내기 위해 밴드를 떠나고, Andreas Herz가 그자리를 대신합니다. 또다른 결성멤버인 Reil도 1994년 떠나게 되고, Joe Cangelosi가 새로이 드럼을 맡음으로써, Petrozza는 유일한 결성멤버로 남게됩니다. 그해, Herz가 Christian Giesler로 교체되기도 합니다. 또 엎친데 덮친격으로, Epic레코드와의 계약 역시 결렬됩니다. 그후 GUN Records에 들어가 그 새로운 라인업으로 Cause for Conflict를 발매합니다. 그 앨범은 밴드의 가장 현대적인 악곡을 담고있으며 판테라나 머신헤드로부터의 영향도 보이는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즉, 바로 전 앨범보다는 조금이나마 거친 사운드로 복귀했습니다.
Gosdzik과 Cangelosi가 1996년에 밴드를 떠나고 Coroner출신의 Tommy Vetterli와 –놀랍게도- Jurgen Reil로 교체됩니다. 밴드는 Outcast와 Endorama를 발매하면서 음악적 실험을 계속합니다. 두앨범 모두 고딕/앰비언트 영향의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또한 Petrozza의 창법이 다소 바뀌었습니다. 음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90년 말에는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최악을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론트맨인 Mille Petrozza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성공이란 음반판매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앨범은 모두 우리에게 있어서는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목표하던 것들은 모두 이루었기 때문이다…”
[본래의 스타일로 되돌아오다, 그리고 최근 근황(2000~2009)]
2001년, 새로운 기타리스트 Sami Yli-Sirniö와 함께 크리에이터는 ‘컴백’앨범인 Violent Revolution을 발매합니다. 많은 멜로디와, 이른바 ‘Gothenburg metal’에서 차용한 리프를 많이 구사했지만, 앨범은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투어는 극적으로 성공적이었고 크리에이터의 이름은 메탈팬중 젊은 층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라이브앨범인 Live Kreation와 DVD인 Live Kreation : Revisioned Glory가 2003년에 발매됩니다. 또한 여전히 올드스쿨 스래쉬메탈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신보인 Enemy of God이 2005년 발매됩니다. 이 앨범은 Enemy of God : Revisited라는 이름으로 2006년에 스페셜판으로 재발매되기도 합니다. 크리에이터는 네이팜데쓰와 함께 북미투어를 벌입니다. 또한 크리에이터는 2008년에 킹 다이아몬드와 리브스 아이와 함께 투어를 계획하였지만 안타깝게도 킹다이아몬드의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취소됩니다.
2008년 3월에 At the Pulse of Kapitulation라는 이름으로 DVD가 발매됩니다. 또한 그들은 2007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그들의 12번쨰 앨범을 위한 작업에 돌입하고 2008년 7월부터 레코딩을 시작합니다. 8월에 녹음을 마치고 Hordes Of Chaos라고 명명된 이 앨범은 2009년 1월에 발매됩니다. 2009년 1월 23일부터 밴드는 Chaos Over Europe투어를 시작합니다. 2009년 4월에는 North American 투어에서 엑소더스와 함께 헤드라이너가 되어 공연을 벌입니다.
[밴드의 탄생, 그리고 초기 출시작들 (1982~1987)]
크리에이터는 Tyrant라는 이름으로 독일 Essen지방에서 1982년 결성되었습니다. 맨 처음 라인업은 보컬/기타에 Mille Petrozza, 드럼에 Jürgen 'Ventor' Reil, 베이스에 Rob Fioretti가 되겠습니다. 그들은 곧 밴드명을 Tormentor로 개명하고 2개의 데모앨범을 발매합니다. 그들은 또다시, 그러나 마지막으로 밴드의 이름을 Kreator로 바꾸고 Noise Records에 1985년 입성하게 됩니다. 밴드이름은 레이블에 들어가면서 바꾸었는데 그것은 이미 헝가리출신중에 Tormentor라는 이름의 밴드가 이미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리에이터는 그들의 데뷔 앨범인 Endless Pain을 10일만에 발매합니다. 많은 블랙/데쓰메탈 밴드들은 이 앨범을 매우 영향력있는 앨범이라고 평가합니다. 밴드는 후에 Sodom에 들어가는 Michael Wulf를 세션 기타리스트로 하여 공연을 진행합니다.
Wulf는 잠시 밴드를 떠났고 1986년에 나온 다음앨범인 Pleasure to Kill에 참여하지 않습니다만 크레딧에는 그의 이름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이 앨범은 Thrash Metal Classic이라고 불리우는 앨범중 하나이며 멤버들의 실력과 테크닉의 성장을 보여주는 동시에 –논쟁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가장 헤비하고 빠른 앨범중 하나입니다. 수록곡중 Flag of Hate는 일찍부터 히트를 치게되고 밴드는 유럽에서 가장 기대되는 밴드가 됩니다. 새로운 기타리스트인 Tritze와 함께, 밴드는 첫번째 투어를 진행합니다. 또한 밴드는 그해를 첫번째 EP인 Flag of Hate를 발매하면서 마무리짓습니다.
[명성을 얻다 (1987~1991)]
1987년, 크리에이터는 그들의 3번째 정규앨범인 Terrible Certainty를 발매합니다. 앨범은 복잡한 구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전보다 더욱 다양해진 템포로 구성된 우수한 앨범으로 평가받습니다. 수록곡중 Behind the Mirror가 히트를 쳤으며, 밴드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갔습니다. 그들은 또한 EP인 Out of the Dark…Into the Light를 발매하기도 합니다.
크리에이터는 메이저 레이블인 Epic Records와 1988년에 계약합니다. LA에서 녹음된 그들의 4번째 앨범인 Extreme Aggression이 그곳에서 발매 되었으며, 1989에 대히트를 기록합니다. Terrible Certainty에서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밴드는 여전히 음악을 진보시켰고, Randy Burns의 질높은 프로듀싱을 받아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수록곡중 Extreme Aggression과 Betrayer는 첫 싱글로 발매되기도 했고 뮤직비디오로도 제작되었고 MTV의 Headbangers Ball에서 호응을 얻습니다. 그들은 Suicidal Tendencies와 함께 북미를 투어하면서 유럽 밖에서도 튼튼한 명성을 얻게 됩니다.
1989년, 독일 감독인 Thomas Schadt는 크리에이터를 다룬 Thrash Altenesssen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합니다. 그무렵, Tritze는 크리에이터를 떠나게 되고, 1990년 새로운 기타리스트인 Frank “Blackfire” Gosdzik을 영입하고 Coma of Souls를 발매합니다. 그 앨범은 이전의 앨범들에 비해 호평을 받지는 못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이 서두르는듯하고 반복적이라고 평합니다), 여전히 앨범은 잘팔렸고 싱글로 커트된 People of The Lie의 히트와 함께 그들의 명성도 그대로 유지합니다.
[실험기 (1991~2000)]
1990년 초에는 전통 스래시 메탈의 인기가 수그러드는 시기였습니다. Metallica, Megadeth, Anthrax등이 그들의 악곡을 상업적으로 바꾸었고, 크리에이터는 데쓰메탈과 인더스트리얼메탈로 실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물은 1992년 발매된 Renewal인데요, 그 앨범은 데쓰 메탈과 인더스트리얼 메탈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좀더 넓은 층의 청중을 획득한 반면, 밴드는 오랫동안 팬이었던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게 됩니다. 한때 폭발적인 공연으로 잘 알려졌던 밴드는 인더스트리얼의 영향으로 인해 매우 실망스런 공연을 보여주게 됩니다.
빡빡한 공연일정은 그들을 남미까지 인지도를 확보시켜 주었지만 당연하게도 그들을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완전히 지치게 했습니다. 밴드는 이 시기에 점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결성멤버인 Rob Fioretti가 그의 시간을 가족과 좀더 보내기 위해 밴드를 떠나고, Andreas Herz가 그자리를 대신합니다. 또다른 결성멤버인 Reil도 1994년 떠나게 되고, Joe Cangelosi가 새로이 드럼을 맡음으로써, Petrozza는 유일한 결성멤버로 남게됩니다. 그해, Herz가 Christian Giesler로 교체되기도 합니다. 또 엎친데 덮친격으로, Epic레코드와의 계약 역시 결렬됩니다. 그후 GUN Records에 들어가 그 새로운 라인업으로 Cause for Conflict를 발매합니다. 그 앨범은 밴드의 가장 현대적인 악곡을 담고있으며 판테라나 머신헤드로부터의 영향도 보이는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즉, 바로 전 앨범보다는 조금이나마 거친 사운드로 복귀했습니다.
Gosdzik과 Cangelosi가 1996년에 밴드를 떠나고 Coroner출신의 Tommy Vetterli와 –놀랍게도- Jurgen Reil로 교체됩니다. 밴드는 Outcast와 Endorama를 발매하면서 음악적 실험을 계속합니다. 두앨범 모두 고딕/앰비언트 영향의 사운드를 들려줍니다. 또한 Petrozza의 창법이 다소 바뀌었습니다. 음반 판매량은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90년 말에는 상업적으로나 비평적으로나 최악을 기록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론트맨인 Mille Petrozza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성공이란 음반판매량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앨범은 모두 우리에게 있어서는 성공적이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가 목표하던 것들은 모두 이루었기 때문이다…”
[본래의 스타일로 되돌아오다, 그리고 최근 근황(2000~2009)]
2001년, 새로운 기타리스트 Sami Yli-Sirniö와 함께 크리에이터는 ‘컴백’앨범인 Violent Revolution을 발매합니다. 많은 멜로디와, 이른바 ‘Gothenburg metal’에서 차용한 리프를 많이 구사했지만, 앨범은 팬들과 평론가들에게 많은 찬사를 받았습니다. 투어는 극적으로 성공적이었고 크리에이터의 이름은 메탈팬중 젊은 층에 많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라이브앨범인 Live Kreation와 DVD인 Live Kreation : Revisioned Glory가 2003년에 발매됩니다. 또한 여전히 올드스쿨 스래쉬메탈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신보인 Enemy of God이 2005년 발매됩니다. 이 앨범은 Enemy of God : Revisited라는 이름으로 2006년에 스페셜판으로 재발매되기도 합니다. 크리에이터는 네이팜데쓰와 함께 북미투어를 벌입니다. 또한 크리에이터는 2008년에 킹 다이아몬드와 리브스 아이와 함께 투어를 계획하였지만 안타깝게도 킹다이아몬드의 내부적인 사정으로 인해 취소됩니다.
2008년 3월에 At the Pulse of Kapitulation라는 이름으로 DVD가 발매됩니다. 또한 그들은 2007년 말부터 2008년 초까지 그들의 12번쨰 앨범을 위한 작업에 돌입하고 2008년 7월부터 레코딩을 시작합니다. 8월에 녹음을 마치고 Hordes Of Chaos라고 명명된 이 앨범은 2009년 1월에 발매됩니다. 2009년 1월 23일부터 밴드는 Chaos Over Europe투어를 시작합니다. 2009년 4월에는 North American 투어에서 엑소더스와 함께 헤드라이너가 되어 공연을 벌입니다.
슬홀 2009-07-16 19:51 | ||
작살간지스래쉬밴드. | ||
EXODUSholic 2009-08-01 12:20 | ||
잔인함을 보여주는 밴드. 이런거 해주시는 분께 Mefisto 님께 참 감사할 따름. | ||
SpreaD 2009-08-08 19:07 | ||
익스트림 어그레션 흑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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