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쟁이의 고민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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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글을 올려주신 분의 고민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제가 느껴온 바를 토대로 개인적인 답을 해봅니다.
내가 좋은 음악 들으면 됩니다. 그런데, 문득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쓴이께서 말씀하신바대로, 때로 내가 너무 좋고 미치겠는 음악이, 앨범이, 밴드가, 어떨 때 남들에게 “이것만 듣는다.”라고 말하기에는, 혹은 그런 말을 들을까 부끄러운 느낌이 들 때, 있어요.
이건 팝이나 가요를 들을 때는 딱히 느껴지지 않는 감정 아닐까요? 조용필만 듣는 게 부끄러워서 남진을 들어보려고 노력하거나, 뉴진스만 듣는 게 싫어서 아이유를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좀 낯설게 느껴져요. 오히려 이런 일은 메탈을 비롯해 클래식이나 재즈, 힙합 장르의 리스너에게 생길 법 합니다. 이 현상은 해당 장르가 ‘소수의 매니아 층’을 가지고 있으며, 구체적이고 분명한 계보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더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이유는 그냥 아이유지요. 아이유를 깊이 이해하려고 한국 여성 솔로 가수의 계보를 타고 백지영이나 이미자로 올라갈 필요는 없지요. 그러나 메탈그룹인 Twilight Force를 듣는 사람을 보면 누군가는 그 위에 랩소디와 카멜롯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지고, 그 옆 누군가는 앙그라와 스트라토바리우스 이야기가 입에 맴돌고, 그 옆의 다른 이는 감마레이나 헬로윈이 생각나고, 그 줄의 끝 쪽 어딘가에는 누군가가 아이언 메이든의 ‘아’자가 입에 맴도는 거지요.
뉴진스 듣는 사람에게 ‘핑클은 좀 아냐?’라고 말하는 건 우습지만, 트와일라잇포스를 듣는 사람에게 아이언 메이든을 말하는 건 왠지 뭔가 새겨들어야 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어요.
LP, 콜렉터, 고수, 올드팬 등등의 낱말이 어딘지 멋스럽게 들린다면 바로 지금 말하는 그런 장르에 대한 이야기인 겁니다. 이런 식의 위계주의나 전통을 옹호하거나 이를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뭔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의 계보를 찾아 올라가 보고 싶다면 나쁜 생각은 아니라는 게, 제 경험상 나온 답입니다.
음악을 듣다보면, 서서히 취향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오래 걸리진 않아요. 결국 우린 모두 어떤 한 곡에 꽂혀서 여기 들어왔습니다. 드림씨어터의 풀미언더를 들었고, 들어버렸고, 이제 안들은 시절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와 비슷한 걸 찾아 헤매다가, 조금씩 넓어지는 거지요. 근데 꼭 넓어질 필요는 없어요. 40년 동안 드림씨어터만 듣는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나요.
그렇지만 지겨울 수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가 메탈음악을 몇 십 년 들었는데 아는 건 드림씨어터 밖에 없다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감정을 단순히 남들 눈치 보는 거라고 매도하고 싶진 않아요. 뭔가 더 넓은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혹은, 같은 드림씨어터를 듣는 내 음악친구들이, 나는 잘 모르는 다른 밴드(예를 들어 Between the buried and Me 라든지, 혹은 Opeth)를 즐기면서 환호하는 걸 보면 왠지 소외감을 느낄 뿐 아니라 ‘내가 뭘 잘 모르고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요. 특히 내 귀에는 잘 안 들어오는 ‘다른 새로운 음악’이, 단지 취향 차이가 아니라 ‘내가 뭔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 일종의 열패감? 열등감 같은 게 느껴질 지도 모르죠. (쟤들은 뭘 저딴걸 듣나, 하고 넘겨도 좋고요!)
함께 음악을 즐기는 동료나 친구가 없더라도, 이와 유사한 경험은 메킹이나 해외 평점 사이트들을 통해서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드림씨어터를 즐기던 당신은, 이제 이 밴드의 음악이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는 장르에 속함을 알게 됩니다. 그 비슷한 음악으로 심포니 엑스나 쉐도우 갤러리 같은 그룹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요.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깊이 들어가 봅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에서의 원탑은 당연히 드림씨어터겠지? 프로그레시브 메탈 자체를 좀 알아볼까?’
RYM 같은 사이트에 가봅니다. 이게 웬걸? 프로그레시브 메탈에서 드림씨어터는 그저 하나의 가지에 불과하고(꽤나 엄청나게 굵은 가지겠지만요), 실제로 정말 마니아들이 미쳐있는 ‘레전드’들은 또 따로 존재해 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툴Tool? 얘들은 뭐지? 그런지/얼터 록 아니었어? 오페쓰Opeth? 이건 뭐지? 블랙메탈 아닌가? 고지라Gojira? 이건 그냥 뉴메탈 아니었어? 포큐파인 트리Porcupine Tree? 이건 또 뭐지? 라디오헤드 아류인가?
그렇게 엄청난 프로그레시브 메탈 앨범들이라니! 한번 들어봅니다. 그런데, 영... 드림씨어터랑 아무 상관이 없지요. 툴을 들은 당신은 2분도 버티지 못하고 지루해 할 겁니다. 드림씨어터랑 아무 상관도 없는 건조한 그런지 록. 오페쓰요? 전기 오페쓰라면 10초도 버티기 힘들지요. 괴물 소리내는 블랙/데쓰에 금세 불쾌해 질 겁니다.
물론 장르 내에서도 세부 장르가 있지요. 드림씨어터가 창조해낸 러쉬+메탈리카 풍의 스타일은 하나의 일가를 이루었고 그 스타일을 여전히 모방하고 있는 유사밴드들이 2023년에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류는 원조를 따라오긴 힘들고, 오리지널로 이미 귀가 틔어버린 당신은 그런 아류, 혹은 신예밴드들로는 더 이상 만족을 얻지 못하는 거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밴드가 매년 등장할 수는 없는 거고, 정말 내 마음을 다 줄만큼 대단한 밴드들은 하나의 장르에서 10년에 한 팀 나와도 감사한 거라고 생각해요.
한 세부장르에서 이제 더 들을게 없다면 거기서 나와서 다른 걸 찾아보는 것도 좋은 대안입니다. 드림씨어터에서 머물고, 그 밖으로는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대안은 드림씨어터 비슷한 신예 아류 밴드들을 듣는 걸로 고착되게 되어있어요.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제 ‘더 좋은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더 하급의 음악들을 전전하며 만족하게 된다는 겁니다. 꼭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드림씨어터 비슷한 음악들만 찾는다면, 그 중에 제일 좋은 건 아무래도 드림씨어터 말고는 없으니까요.
새로운 음악을 귀에 익히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데쓰메탈, 그것도 그닥 난이도가 높다고도 할 수 없는 멜로딕 데쓰를 처음 듣던 때가 기억나요. 인플레임스, 지금은 팝음악 같이 쉽고 좋게 들리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시끄럽기만 했습니다. 특히나 블라스트 비트 드러밍이랑 보컬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죠. 그렇지만, 가만히 듣고 있어보면, 여기도 빌드업이라는 게 있습니다. 멜로딕 데쓰는 지금도 최애장르지만, 블라스트 비트로 때리는 부분은 수 십 년이 지금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들도 마냥 그렇게 두들기고 있지만은 않아요. 곧 갑자기 멜로딕한 리프가 등장하거나 아니면 그루브하고 쓰래쉬한 리프가 등장합니다. 그게 블라스트 비트와 결합되거나 교차하면서 강약을 만들어 내는데, 그때서야 이제 이게 뭔지 알게 되고 그 맛을 알게 되는 거죠. 여전히 블라스트 비트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루브한 스래쉬 리프와 ‘섞여’ 있을 때, 그 맛은 단순히 파워메탈이나 스래쉬메탈, 혹은 코어 류에서는 느낄 수 없는 데쓰 메탈만의 맛이 되는 거죠. 그 맛을 알게 된 지 수십 년이 됐습니다. 그 시절 처음 인플레임스를 듣고 ‘아 뭐야, 시끄럽고 구리다’라고 말았다면 제게 말도 안 되는 쾌감을 준 수 백장의 앨범들을 아마 모르고 살아왔겠죠. 손해는 본인의 몫이 되는 겁니다.
실용적인 추천은, 장르나 계통의 명반들을 찾아서 차분히 들어보는 겁니다. 평가도 찾아보고, 코멘트도 읽어보면 그 음악들의 감상 포인트가 뭔지 알게 됩니다. 나는 단 하나의 밴드만 좋아했을지라도, 그 밴드는 여러 밴드에게서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랩소디는 파워메탈이기도 하지만 심포닉메탈로도 분류되고, 에픽으로 부르기도 하고, 네오클래시컬의 영향도 받았고 프로그레시브 메탈과도 꼭 멀다고 할 수 없지요. 각 장르를 찾아들어보면, 거기서도 ‘아 내가 좋아하던 게 이런 부분 이었구나’, 하면서 그 요소를 찾아서 새로운 밴드들을 듣게 되고, 그럼 ‘내가 몰랐던 내 취향’을 또 발견하게 됩니다. 그 전에는 못 들어봐서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발견을 할 수 있지요. 그렇게 가지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결국 그 장르의 클래식들로 향하거나, 혹은 예상치 못했던 다른 장르들로 취향이 변해갈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추천방식은, 지금 내 귀에 안 들어와도 언젠가 깨닫게 될 음악도 있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감이 올지도, 안 그럴지도 몰라요. 예컨대, 어떤 밴드나 그들의 앨범들이 너무 평이 좋은 겁니다. 그래서 나도 들어봐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뭔가 그럴싸한데, 막 좋지는 않아요. 내가 이해를 못한 건가? 그냥 이 밴드가 구린 건가? 헷갈려요. 근데 포기하는 싫은데, 막 듣고 싶을 만큼 좋은지도 모르겠어요. 많이 듣다보면 그런 밴드들이 꽤 보일 겁니다. 처음에 안 들리더라도 ‘이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곁에 두시고, 잊지 마시고 항상 신경을 쓰세요.
그렇지만 첫 귀에 안 들리는데, 별로 알아보고 싶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으면 더 시도하지 마세요. 본인의 귀와 뇌는 알고 있습니다. 취향에도 안 맞고, 시간을 쓰는 것도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경우에는 더 신경 쓰지 말고 버리세요. 별로 멋지지도 않은 것에 시간을 쓰기에는 못 들어 본 음악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나중에 깨닫고 찾아듣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럼 그때 받아들여도 되니, 별로 안 좋게 들리는 음악 들어보려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는 말씀)
저도 25년 정도 메탈음악을 들어왔습니다. 그리 오래된 건 아닌데, 저의 경우에는 오페쓰가 그 사례였어요. 메탈 마니아들의 절대적인/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그룹이라 이미 20년 전 쯤에 몇 번 들어봤는데, 그다지 귀에 안 들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포기하기 싫었어요. 뭔가 멋진 밴드, 멋진 음악은 맞는 것 같은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나? 라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습니다. 10년 전쯤에도 꽤 들었는데, 뭔가 알긴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좋은가? 라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저는 거의 오페쓰만 들어요. 초등학생 시절 처음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펫, 드림써어터의 풀미언더를 들었을 때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충격을 이 나이 먹고 받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다양하게 듣고 싶어서 꽤 노력을 해왔고, 수 십 년 간 이런 경험을 여러번 해왔지만 오페쓰를 이제야 발견한 건 정말 노다지/잭팟이라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런 전설적인 밴드 오페쓰(Opeth)의 오픈 채팅방이 개설됐습니다!
주소: https://open.kakao.com/o/gsWs7uYe
자유롭게 들어오셔서 눈팅만 하셔도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많이 많이 들어오세요 :)
원글을 올려주신 분의 고민에 공감하는 바가 있어, 제가 느껴온 바를 토대로 개인적인 답을 해봅니다.
내가 좋은 음악 들으면 됩니다. 그런데, 문득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글쓴이께서 말씀하신바대로, 때로 내가 너무 좋고 미치겠는 음악이, 앨범이, 밴드가, 어떨 때 남들에게 “이것만 듣는다.”라고 말하기에는, 혹은 그런 말을 들을까 부끄러운 느낌이 들 때, 있어요.
이건 팝이나 가요를 들을 때는 딱히 느껴지지 않는 감정 아닐까요? 조용필만 듣는 게 부끄러워서 남진을 들어보려고 노력하거나, 뉴진스만 듣는 게 싫어서 아이유를 들어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좀 낯설게 느껴져요. 오히려 이런 일은 메탈을 비롯해 클래식이나 재즈, 힙합 장르의 리스너에게 생길 법 합니다. 이 현상은 해당 장르가 ‘소수의 매니아 층’을 가지고 있으며, 구체적이고 분명한 계보나 전통을 가지고 있는 경우에 더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아이유는 그냥 아이유지요. 아이유를 깊이 이해하려고 한국 여성 솔로 가수의 계보를 타고 백지영이나 이미자로 올라갈 필요는 없지요. 그러나 메탈그룹인 Twilight Force를 듣는 사람을 보면 누군가는 그 위에 랩소디와 카멜롯이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지고, 그 옆 누군가는 앙그라와 스트라토바리우스 이야기가 입에 맴돌고, 그 옆의 다른 이는 감마레이나 헬로윈이 생각나고, 그 줄의 끝 쪽 어딘가에는 누군가가 아이언 메이든의 ‘아’자가 입에 맴도는 거지요.
뉴진스 듣는 사람에게 ‘핑클은 좀 아냐?’라고 말하는 건 우습지만, 트와일라잇포스를 듣는 사람에게 아이언 메이든을 말하는 건 왠지 뭔가 새겨들어야 할 수도 있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어요.
LP, 콜렉터, 고수, 올드팬 등등의 낱말이 어딘지 멋스럽게 들린다면 바로 지금 말하는 그런 장르에 대한 이야기인 겁니다. 이런 식의 위계주의나 전통을 옹호하거나 이를 옳다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뭔가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의 계보를 찾아 올라가 보고 싶다면 나쁜 생각은 아니라는 게, 제 경험상 나온 답입니다.
음악을 듣다보면, 서서히 취향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오래 걸리진 않아요. 결국 우린 모두 어떤 한 곡에 꽂혀서 여기 들어왔습니다. 드림씨어터의 풀미언더를 들었고, 들어버렸고, 이제 안들은 시절로 절대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와 비슷한 걸 찾아 헤매다가, 조금씩 넓어지는 거지요. 근데 꼭 넓어질 필요는 없어요. 40년 동안 드림씨어터만 듣는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나요.
그렇지만 지겨울 수도,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지요. 사람에 따라서는 자기가 메탈음악을 몇 십 년 들었는데 아는 건 드림씨어터 밖에 없다면 부끄러움을 느끼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감정을 단순히 남들 눈치 보는 거라고 매도하고 싶진 않아요. 뭔가 더 넓은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혹은, 같은 드림씨어터를 듣는 내 음악친구들이, 나는 잘 모르는 다른 밴드(예를 들어 Between the buried and Me 라든지, 혹은 Opeth)를 즐기면서 환호하는 걸 보면 왠지 소외감을 느낄 뿐 아니라 ‘내가 뭘 잘 모르고 있나보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지요. 특히 내 귀에는 잘 안 들어오는 ‘다른 새로운 음악’이, 단지 취향 차이가 아니라 ‘내가 뭔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순간 일종의 열패감? 열등감 같은 게 느껴질 지도 모르죠. (쟤들은 뭘 저딴걸 듣나, 하고 넘겨도 좋고요!)
함께 음악을 즐기는 동료나 친구가 없더라도, 이와 유사한 경험은 메킹이나 해외 평점 사이트들을 통해서 쉽게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드림씨어터를 즐기던 당신은, 이제 이 밴드의 음악이 ‘프로그레시브 메탈’이라는 장르에 속함을 알게 됩니다. 그 비슷한 음악으로 심포니 엑스나 쉐도우 갤러리 같은 그룹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되요. 더 많이 알고 싶어서 깊이 들어가 봅니다. ‘프로그레시브 메탈에서의 원탑은 당연히 드림씨어터겠지? 프로그레시브 메탈 자체를 좀 알아볼까?’
RYM 같은 사이트에 가봅니다. 이게 웬걸? 프로그레시브 메탈에서 드림씨어터는 그저 하나의 가지에 불과하고(꽤나 엄청나게 굵은 가지겠지만요), 실제로 정말 마니아들이 미쳐있는 ‘레전드’들은 또 따로 존재해 왔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툴Tool? 얘들은 뭐지? 그런지/얼터 록 아니었어? 오페쓰Opeth? 이건 뭐지? 블랙메탈 아닌가? 고지라Gojira? 이건 그냥 뉴메탈 아니었어? 포큐파인 트리Porcupine Tree? 이건 또 뭐지? 라디오헤드 아류인가?
그렇게 엄청난 프로그레시브 메탈 앨범들이라니! 한번 들어봅니다. 그런데, 영... 드림씨어터랑 아무 상관이 없지요. 툴을 들은 당신은 2분도 버티지 못하고 지루해 할 겁니다. 드림씨어터랑 아무 상관도 없는 건조한 그런지 록. 오페쓰요? 전기 오페쓰라면 10초도 버티기 힘들지요. 괴물 소리내는 블랙/데쓰에 금세 불쾌해 질 겁니다.
물론 장르 내에서도 세부 장르가 있지요. 드림씨어터가 창조해낸 러쉬+메탈리카 풍의 스타일은 하나의 일가를 이루었고 그 스타일을 여전히 모방하고 있는 유사밴드들이 2023년에도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류는 원조를 따라오긴 힘들고, 오리지널로 이미 귀가 틔어버린 당신은 그런 아류, 혹은 신예밴드들로는 더 이상 만족을 얻지 못하는 거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밴드가 매년 등장할 수는 없는 거고, 정말 내 마음을 다 줄만큼 대단한 밴드들은 하나의 장르에서 10년에 한 팀 나와도 감사한 거라고 생각해요.
한 세부장르에서 이제 더 들을게 없다면 거기서 나와서 다른 걸 찾아보는 것도 좋은 대안입니다. 드림씨어터에서 머물고, 그 밖으로는 나가지 않겠다고 생각하면 대안은 드림씨어터 비슷한 신예 아류 밴드들을 듣는 걸로 고착되게 되어있어요. 문제는 그렇게 되면 이제 ‘더 좋은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더 하급의 음악들을 전전하며 만족하게 된다는 겁니다. 꼭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드림씨어터 비슷한 음악들만 찾는다면, 그 중에 제일 좋은 건 아무래도 드림씨어터 말고는 없으니까요.
새로운 음악을 귀에 익히는 게 쉽지는 않습니다. 데쓰메탈, 그것도 그닥 난이도가 높다고도 할 수 없는 멜로딕 데쓰를 처음 듣던 때가 기억나요. 인플레임스, 지금은 팝음악 같이 쉽고 좋게 들리지만 처음 들었을 때는 시끄럽기만 했습니다. 특히나 블라스트 비트 드러밍이랑 보컬이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죠. 그렇지만, 가만히 듣고 있어보면, 여기도 빌드업이라는 게 있습니다. 멜로딕 데쓰는 지금도 최애장르지만, 블라스트 비트로 때리는 부분은 수 십 년이 지금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그들도 마냥 그렇게 두들기고 있지만은 않아요. 곧 갑자기 멜로딕한 리프가 등장하거나 아니면 그루브하고 쓰래쉬한 리프가 등장합니다. 그게 블라스트 비트와 결합되거나 교차하면서 강약을 만들어 내는데, 그때서야 이제 이게 뭔지 알게 되고 그 맛을 알게 되는 거죠. 여전히 블라스트 비트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루브한 스래쉬 리프와 ‘섞여’ 있을 때, 그 맛은 단순히 파워메탈이나 스래쉬메탈, 혹은 코어 류에서는 느낄 수 없는 데쓰 메탈만의 맛이 되는 거죠. 그 맛을 알게 된 지 수십 년이 됐습니다. 그 시절 처음 인플레임스를 듣고 ‘아 뭐야, 시끄럽고 구리다’라고 말았다면 제게 말도 안 되는 쾌감을 준 수 백장의 앨범들을 아마 모르고 살아왔겠죠. 손해는 본인의 몫이 되는 겁니다.
실용적인 추천은, 장르나 계통의 명반들을 찾아서 차분히 들어보는 겁니다. 평가도 찾아보고, 코멘트도 읽어보면 그 음악들의 감상 포인트가 뭔지 알게 됩니다. 나는 단 하나의 밴드만 좋아했을지라도, 그 밴드는 여러 밴드에게서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랩소디는 파워메탈이기도 하지만 심포닉메탈로도 분류되고, 에픽으로 부르기도 하고, 네오클래시컬의 영향도 받았고 프로그레시브 메탈과도 꼭 멀다고 할 수 없지요. 각 장르를 찾아들어보면, 거기서도 ‘아 내가 좋아하던 게 이런 부분 이었구나’, 하면서 그 요소를 찾아서 새로운 밴드들을 듣게 되고, 그럼 ‘내가 몰랐던 내 취향’을 또 발견하게 됩니다. 그 전에는 못 들어봐서 내가 그걸 좋아하는지도 몰랐던 발견을 할 수 있지요. 그렇게 가지를 타고 올라가다보면 결국 그 장르의 클래식들로 향하거나, 혹은 예상치 못했던 다른 장르들로 취향이 변해갈 수도 있습니다.
또 한 가지 추천방식은, 지금 내 귀에 안 들어와도 언젠가 깨닫게 될 음악도 있다는 겁니다. 처음부터 감이 올지도, 안 그럴지도 몰라요. 예컨대, 어떤 밴드나 그들의 앨범들이 너무 평이 좋은 겁니다. 그래서 나도 들어봐요. 근데 잘 모르겠어요. 뭔가 그럴싸한데, 막 좋지는 않아요. 내가 이해를 못한 건가? 그냥 이 밴드가 구린 건가? 헷갈려요. 근데 포기하는 싫은데, 막 듣고 싶을 만큼 좋은지도 모르겠어요. 많이 듣다보면 그런 밴드들이 꽤 보일 겁니다. 처음에 안 들리더라도 ‘이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면, 곁에 두시고, 잊지 마시고 항상 신경을 쓰세요.
그렇지만 첫 귀에 안 들리는데, 별로 알아보고 싶지도 않고, 멋있지도 않고, 궁금하지도 않으면 더 시도하지 마세요. 본인의 귀와 뇌는 알고 있습니다. 취향에도 안 맞고, 시간을 쓰는 것도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경우에는 더 신경 쓰지 말고 버리세요. 별로 멋지지도 않은 것에 시간을 쓰기에는 못 들어 본 음악이 너무 많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에도 나중에 깨닫고 찾아듣는 경우가 생깁니다. 그럼 그때 받아들여도 되니, 별로 안 좋게 들리는 음악 들어보려고 스트레스 받지 마시라는 말씀)
저도 25년 정도 메탈음악을 들어왔습니다. 그리 오래된 건 아닌데, 저의 경우에는 오페쓰가 그 사례였어요. 메탈 마니아들의 절대적인/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그룹이라 이미 20년 전 쯤에 몇 번 들어봤는데, 그다지 귀에 안 들어 왔었습니다. 그런데 왠지 포기하기 싫었어요. 뭔가 멋진 밴드, 멋진 음악은 맞는 것 같은데, 내가 이해하지 못하나? 라는 의구심이 계속 들었습니다. 10년 전쯤에도 꽤 들었는데, 뭔가 알긴 알겠는데 그렇게까지 좋은가? 라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년부터, 저는 거의 오페쓰만 들어요. 초등학생 시절 처음 메탈리카의 마스터 오브 퍼펫, 드림써어터의 풀미언더를 들었을 때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충격을 이 나이 먹고 받게 될지는 몰랐습니다. 저는 다양하게 듣고 싶어서 꽤 노력을 해왔고, 수 십 년 간 이런 경험을 여러번 해왔지만 오페쓰를 이제야 발견한 건 정말 노다지/잭팟이라고 느끼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런 전설적인 밴드 오페쓰(Opeth)의 오픈 채팅방이 개설됐습니다!
주소: https://open.kakao.com/o/gsWs7uYe
자유롭게 들어오셔서 눈팅만 하셔도 언제나 대환영입니다! 많이 많이 들어오세요 :)
TwilightDragon 2023-05-02 08:29 | ||
우와... 아침부터 정말 많은 걸 깨닫고 갑니다.. 새로운 음악을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도 좋지만 그게 아직은 아닌거 같다 싶으면 잠시 접어놓고 가도 상관 없고, 결국 언젠가는 귀가 트이며 그 음악의 진가를 깨닫는 날이 온다는 것 이군요! 영향을 받은 타 장르, 혹은 선배 밴드의 음악을 거슬러 타고 올라가며 들으면 제 취향이 어떤 거였는지 더 잘 알 수 있게 되구요! 그리고 오페스가 짱짱맨이란거..ㅋㅋㅋ 긴 글 쓰시느라 수고많으셨습니다! sixdit님을 포함한 많은 베테랑 매니아분들 덕분에 새로운 음반을 듣는 것에 부담 느낄 필요 없다는 걸 가슴 깊이 새기고, 많은 걸 배우고 갑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 ||
OUTLAW 2023-05-02 09:15 | ||
글을 참 잘 쓰십니다! 추천이나 좋아요 버튼이 있다면 누르고 싶어지는 글이네요^^ | ||
Blacksburg 2023-05-02 11:24 | ||
저는 Nine inch nails가 그랬습니다. 불협화음 같고, 보컬이 시원시원한 것도 아니고, 다른 밴드들이 NIN 커버한 건 좋은데 원곡은 적응이 안되고.. 그러던 어느날 갑자기 그 세계에 빠져들어서 넋놓고 듣던 기억이 있습니다. | ||
쇽흐 2023-05-02 12:22 | ||
아...낚였어요...ㅋㅋ 근데 워낙 달필이셔서 불평도 못하겠네요ㅎㅎ | ||
앤더스 2023-05-02 13:55 | ||
세세하고 객관성 있는 멋진 글이십니다~!! | ||
MelodicHeaven 2023-05-02 16:19 | ||
막줄보고 조금 웃었지만 정말 좋은글입니다 | ||
Bloodhound갱 2023-05-03 01:11 | |||
큰 그림 ㅋㅋㅋ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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