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한국서 메탈은 얼마나 인기 였는가? 아재들의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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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80년대 이야기를 10년째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80년대 한국의 메탈씬에 대하여 거대한 착각을 하고 계시는 젊은 메탈 팬들이
많은것 같아서 여기서 한번 그 시절에 관한 진부한 글을 다시 한번 써야 되겠습니다.
흔히들 79년 이하 락/메탈 팬들은 80년대 한국 메탈씬에 대하여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한국도 헤비메탈 문화가 발달되었다 내지는 그 시절에는 헤비메탈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그리하여 요즘 세상에 80년대 메탈을 듣는 40대 이상 아저씨들은 다 꼰대들이고 80년대 메탈은 꼰대들의 전유물이다.
특히 마이클 쉥커, 랜디 로즈, 게리 무어 이러한 뮤지션들은 사실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연주인인데도 불구하고 꼰대들의 성원
을 받아 영웅시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들 말씀하시곤 하는데~~
어떤 40대 남자가 80년대 메탈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글을 남기면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꼰대의 푸념 정도로 매도하고 꼰대
정신은 혐오한다고 말하곤 한다.
지난 10년간 만나본 79년 이하 락/메탈 팬들의 거의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절대적인 통계는 아니다.
그 시절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80년대 메탈과 꼰대 정신은 별개이 것이라는 것을 아주 명쾌하게 잘 알고 있는 젊은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80년대를 혐오하고 그 시절을 주름잡았던 락스타들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서
좀 많이 안타깝다.
이렇게 된 것은 그 젊은이들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그 시절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현재 40대 이상 사람들이 그들에게 80년대의
한국 메탈씬의 현실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80년대에 한국에서 메탈이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거짓이다.
날조된 뻥이다.
80년대에 한국에서는 헤비메탈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헤비메탈에 대한 비중이 어느 정도 높았던 '월간팝송'이라는 잡지가 하나 있긴 했지만 87년 1월에 폐간되었다.
87년이면 한참 시나위, 백두산, 부활, H20같은 밴드가 인기가 많을 무렵인데 그 시절에 그나마 메탈에 대한 비중이 높았던 잡지
가 폐간되었다는 것은 분명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왜 폐간되었을까??
당연히 많이 팔리지 않았으니까 폐간된 것이다.
그 말인즉슨 그 시절에 실제로 헤비메탈에 관심이 많았던 팬들이 그만큼 적었다는 것의 증거중 하나이다.
월간팝송은 시나위나 백두산, 부활, 작은 하늘 같은 밴드가 앨범을 내기 전 언더 그라운드 생활을 할때부터 그들의 음악세계를
조명하여 매니아들에게 소개한 제법 전문성을 띤 친 메탈 잡지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나위, 백두산, 부활이 공중파 TV에 나온 후로 만개는 커녕 시들어 버렸다.
요즘 시대의 락/메탈 팬들은 그 시절 시나위나 백두산이 아주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그들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분명 많았다.
하지만 그 젊은이들중에 하드락이나 메탈을 사랑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들은 주다스 프리스트를 모른다. 블랙 사바스도 모른다. 베놈이나 킹 다이아몬드는 커녕 아이언 메이든도 모른다.
그들이 아는 것은 고작해야 본 조비와 유럽의 인기곡 몇 개 정도였다.
그들은 메탈 팬이 아니라 단지 시나위, 백두산, 부활이라는 특정 밴드의 팬이었다.
이러한 팬들의 특징은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안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시나위나 백두산, 부활의 앨범을 사지 않았다.
같은 반 애들 중에 진짜 메탈을 듣는 소수의 락덕후에게 부탁하여 시나위, 백두산, 부활의 음악을 공테이프에 담아갔고,
그것마저 귀찮게 생각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냥 그 밴드들이 텔레비젼에 나왔을때 그때 보고 '아 좋군 역시 이게 바로 메탈이야.
난 존나 메탈빠야.' 이렇게 자위하며 TV를 끈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금 이 말은 모든 시나위, 백두산, 부활의 그 시절 팬들이 다 이랬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팬들 중에 실제로 그들의 음반을 사고 공연장도 가고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한달에 두 세번씩 공중파 TV에 나와 공연을 했건만 앨범은 썩 많이 팔리지 않았으며 이들의 생명은 길지 않았다.
대통령이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바뀌면서 장발의 뮤지션들은 하나 하나 브라운관에서 사라져갔다.
이들이 사라진 이유 중엔 머리를 어깨 이상 기른 남자들은 TV에 출연할수 없다는 새로운 정부의 방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시절의 락커들이 생활이 되지 않아 밴드가 해체되고 다른 길을 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시절의 신문에 락 밴드들이 라인업을 꾸준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 매우 크다고 쓰여 있었다.
그 시절의 락 밴드들의 실제 앨범 판매고는 그리 신통치 않았으며 그 시절의 락 밴드들은 자존심 때문에 여타 유명 가수들처럼
나이트 클럽에 나가서 오부리를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시절의 판매고가 지금보다 높긴 하다. 그건 현재의 음반 시장이 너무나도 조악하기 때문이지 결코 그 시절 밴드들의
앨범이 많이 팔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시절에 '전영혁의 1시 데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헤비메탈이 그나마 많이 송출되었고 그 외에 다른 FM 방송에서는 메탈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전영혁의 1시 데이트는 왜 새벽 1시에 송출되었을까??
모두가 잠든 새벽에 왜 그렇게 늦은 시간에 송출되었을까??
만약 헤비메탈이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인기 음악이었다면 그렇게 늦은 시간에 송출되었을까??
전영혁의 1시 데이트 이전에 황인용의 영팝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방송같은 경우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제법 황금 시간대에 장장 2시간이나 방송되며 한때 메탈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86년 봄을 전후하여 그냥 다른 방송과 별 차이 없는 프로그램으로 변질되었다.
헤비메탈을 안 틀었다 그 말이다.
그리고 나서 생긴게 전영혁의 1시 데이트......
결국 이 말은 메탈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소수 매니아들이나 쳐들으라는 건데~~
과연 이것이 메탈이 전성기였던 시절에 벌어짐직한 시추에이션인가??
나와 비슷한 또래 중에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때 자기 반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 어제 전영혁 들었냐며 그 방송에 나온 음악에
대하여 대화를 하곤 했다는데~~ 만약 그렇게 수많은 학생들이 전영혁씨의 방송을 들었다면 전영혁씨의 방송이 계속 새벽 시간에
묶여 있었을까??
전영혁씨와 그의 청취자들은 일부러 1시에 방송하고 듣는 것을 좋아했다구??
그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전영혁씨와 1시 데이트 애청자들은 80년대부터 방송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당기길 요구했지만 그 요구는 끝내 관철되지
못하고 말았다.
특정한 학교의 특정한 반에서 그런 컬트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이겠지......
내가 90년 이후로 만난 거의 백여명이 넘는 80년대 고교생들에게 물어본 바로는(거기에는 주혹새 회원들도 포함되어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반에 헤비메탈 좋아하는 학생들은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다가 표준이다.
나같은 경우만 해도 중3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한 학년당 같은 반에 메탈 듣는 애들이 다섯 명 안되었다.
두 세명 많아야 네 다섯??
마지막으로.....
그 시절에 라이센스 되어 나오던 해외앨범들을 보면 그 시절에 한국에서 헤비메탈이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 알만하다.
베놈, 켈틱 프로스트, 머시풀 페이츠는 커녕
80년대 해외에서 가장 많이 사랑 받았던 머틀리 크루의 앨범들이 80년대에 단 한 장도 한국에 라센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그 시절 한국에서 헤비메탈이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 능히 짐작할수 있지 않을까??
아이언 메이든 같은 경우도 piece of mind가 처음 발매되었을때 무려 네 곡이나 잘려나가고 앨범 재킷까지 변경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든의 음반이 한국에 출시된게 어디냐고 감격해하곤 했다.
앨리스 쿠퍼 같은 경우는 아예 말을 말자.
전곡이 금지곡인 금지 가수였고~~
그 유명한 딥 퍼플의 child in time도 금지곡이었다.
오지 오스본 다이어리 오브 어 매드맨과 박 앳 더 문 재킷에 나오는 오지의 흉물스러운 사진 짤려나간것도 그렇구......
한국 메탈 밴드들 엘피 뒷 면에 강제로 건전가요 삽입하게 하는 것도 그렇구......
그 시절에 헤비메탈 문화는 지나친 검열로 인하여 많이 변형되거나 삭제되어 한국에 들어왔다.
물론 그 시절이 살벌한 철권 군부 시대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헤비메탈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그렇게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은 그 시절 메탈이 대중들로부터 찬밥을 먹던 비인기 쟝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라~~ 난 생각해.
헤비메탈이 해외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헤비메탈이 젊은이들로부터 유행하는 주류 음악이
아니었다.
비주류 음악이었다.
고로 그 시절에 헤비메탈을 좋아했던 소수의 청소년들은 일종의 보편적인 기준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매니아들이다.
그렇기에 그 시절에 헤비메탈을 즐겨듣고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헤비메탈을 듣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꼰대라 볼 수 없고,
그들이 즐겨듣고있는 80년대 메탈 음악은 꼰대들의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순전히 나이로 따졌을때는 그들도 꼰대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메탈 팬의 입장에서 그들을 전형적인 꼰대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꼰대들의 음악은 헤비메탈이 아니라 80년대 한국 가요나 팝송 그리고 트로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80년대 대학 가요제, 강변 가요제에서 유명해진 곡들~~ 그러한 것들이 보편적인 40대들이 즐기고 좋아하는 음악.
소위 말하는 꼰대 음악이라 볼 수 있겠다.
한쪽 벽이 엘피로 도배된 아날로그 엘피 바를 가면 30분에 한번 꼴로 80년대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꼰대들을
상징하는 음악이다. 그 시절 보편적인 청소년들이 좋아했던 일반적인 음악.
그런 엘피 바에서 아저씨 아줌마들 존나 많을때 머틀리 크루나 그림 리퍼 한번 신청해봐라~~
아마 절대 안 틀어줄껄......
아저씨 아줌마들 다 빠지면 그때서야 틀어주겠지.
트로트같은 경우도 말을 말자.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 한국 가요계는 트로트가 꽉 잡고 있었다.
난 아직도 잊을수 없다.
내가 대학교 막 들어갔을때 그러니까 90년 연합 엠티때 잘못 들어간 예비역 모임 방에서 보았던 그 그로테스크한 현장을~~
그 방을 가득 채운 이십여명의 예비역들은 모두 술에 취해 트로트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허어 그 광경이란 실로 기괴했다.
그 예비역들은 가죽 재킷을 입고 머틀리 크루 노래를 연습하고 있던 나를 보며 '너도 나이가 들면 트로트가 좋아지게 될꺼야'
라고 말했다.
ㅋ 생각해보면 그 예비역들 고작 해야 스물 서너살 정도일텐데 그땐 왜 그렇게 다들 무섭고 쭈글쭈글하고 늙게들 보였는지~~
암튼 나는 그때 그 예비역들이 말했던 것처럼 트로트에 빠지지 않고 그 시절 좋아했던 메탈을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다.
그래서 난 내가 꼰대라 생각하지 않거든~~
그리고 난 그 *끼들과 달리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에게 '너희들도 나이가 들면 쌍팔년도 메탈이 좋아지게 될꺼야' 라고 말한적
없거든~~
근데 왜 사람들은 나를 포함한 지금도 그 시절 메탈, 락 듣는 사람들을 꼰대 취급할까??
ㅋ
그 시절에 메탈 듣던 청소년들은 보편적인 아이들이 아니라 요즘 메탈 듣는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는데~~
일반적인 꼰대들로부터 따로 분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똑같나??
ㅋㅋㅋㅋㅋ 다음 정통 락메탈 카페 주다스 혹은 새버스의 화랑님이 작성하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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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한국에서 메탈 인기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몇가지 예를 들께요. 저는 실제로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거친 (중/고) 현장인입니다. 방구석매니아도 아니었구요.
인기 없었다는건,, 한반에 메탈 좋아하는 친구 3~5명 정도 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겁니다. 전체적인 퍼센티지를 본거죠. (그런데 당시는 3~5명이라고 해도.. 학교 전체로 따지면 나오는 인기 메탈 앨범은 대략 한 학교에서 50장은 팔리는 수준입니다. 중/고등학교 단 한곳에서... ) 제가 학교앞 레코드가게서 알바까지해서 잘 압니다.
1. 블랙신드롬이나 제로지같은 당시 인기밴드(?) 공연... 아침 12시에 공연해도 500~800명씩 왔어요. 클럽인 송설이나 좀 큰 락월드같은곳에서도 난리났죠. 종로파고다나 심지어 3류밴드들이 많이 공연한 서초동에 는깨소극장같은곳에서도 300명씩 왔어요. 저 가장 기억에 남은건... 이태원 비바 아트홀 공연은 아침에 매진되어서 못들어갔어요. 크래쉬 오프닝/ 블랙신드롬 이런 라인업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저는 서울이나 인천기준..
2. 영상회를 하면... 주로 김광한 선배님같은분들이 주최하는... 락카페 빌려서 하는데 아침 10시부터해도 200명 공간이 다 차서 들어가지를 못했어요.
3. 저위에 퍼오신 글 좀 전 이해가 안가는데... 저 고딩때만해도.. 공중파 FM 에서 SEPULTURA나 심지어 SLAYER도 나왔어요. METALLICA는 자주 나왔구요. 그게 황금시간대인 7~9시 사이에요. 김광한/배철수 두분 프로에서 특히 많이 나왔죠. 저는 그때 당시 녹음하면서 들었는데 메탈 신보는 거의 다 거기서 듣고 샀어요. 제가 뭘 알고 CORONER나 RUNNING WILD. RAGE 같은 밴드를 샀겠어요. 정말 선곡이 팝은 기본이고 하드록/메탈은 2시간동안 최소한 5~6곡은 나옵니다. 새벽에 가면 전영혁 선배님 방송에서도 서브장르까지 파고 들었죠.
4. 스트라이퍼 내한 공연 난리 그 자체였습니다. 심지어 ANTHEM이나 LOUDNESS는 말할것도 없었죠.지금의 무슨 브이홀 정도가 아니예요... 천명 단위가 무조건 넘어가고
5. 저위에 댓글 퍼오신것 또 이해가 안가는게 하나 있는데 무조건 본조비와 유럽이라고 하는데... 실제 한국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던 밴드는 헬로윈이었죠. 포이즌.본조비도 있었지만.. 그리고 대부분 메탈 박사였어요. 왜냐하면 메탈 전문지는 없었어도 만화잡지를 사도 Skid Row가 나오고 틴에이저 잡지를 사도 Megadeth. Metallica 영화잡지를 사도 Dokken이 나왔거든요.
6. 또 저위에 댓글을 보고 이해가 안가는건... 80년대 진정한 매니아라면 (한반에 꼭 한명은 있었죠) 빽판을 안살수가 없었고 웬만한 동네 버스타고 조금만 나가면 빽판 다 팔았어요. 그런데 금지곡으로 인해 말씀하시니 좀 이해가 안갑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비인기 장르였지만 탄탄한 팬층을 갖고 소비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상입니다. 밤에 댓글보다가 실제로 80년대에 안계셨던 분 (혹은 라이트 유저였거나)들의 추측성글도 있는것 같아 댓글 남겨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한국에서 80년대 메탈의 전성 시대같은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장르로서의 그 위치는 분명히 가지고 있었고, 공급과 소비가 탄탄하게 이루어졌다는 건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게 팩트입니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건...제가 메탈을 파기 시작한것이 86/87년도 부터이니 80년대 중/후반으로 해야겠네요. 저위에 크래쉬/블신 공연도 실제로는 91/92년 정도였겠구요.
여기까지가 락뉴 도프 레코드 운영자이신 김윤중 대표님의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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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메탈인기가 무슨 마이클잭슨급으로 인기가 있었냐고 한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겠지만 질문의 요지가 80년대와 2000년 초반중 어느 시절이 메틸이니가 많았냐고 물으신다면 그 질문도 말도 안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아에 비교조차 할 수도 없이 80년대의 인기가 월등햇습니다. 한반에 메탈듣는 애들이 열명 가깝게 되고 주말에 종로에 나가 빽판 사모으고 월요일에 뭘 샀는지 얘기할 때 둥그렇게 그룹을 만들어서 얘기할 정도면 이게 얼마나 대단햇던 것이며, 심지어는 메탈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가 머틀리 크루를 사서 집에 가던 때가 그 시절입니다.
토요일/일요일에는 김광한이 한시간도 넘게 디오의 라이브를 틀어주고, 메탈하고는 별로 상관도 없는 박원웅/이종환도 메탈을 틀고.. 백두산이 공중파에 출연하고 한강에서 시나위 라이브가 열렷는데 만명도 넘는 숫자가 보려오고.. 시간을 몇년 뒤로 넘겨보면 80년대 말에는 여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신데렐라 팬클럽 스키드 로우 팬클럽, 포이즌 팬클럽등 무수한 메탈밴드 팬클럽이 만들어지고 그 팬클럽이 행사할 때 수십명씩 몰려오고, 번은 백권을 수입했는데 이틀만에 다 팔려버리고 김기덕이 만들어던 팝피엠 투라는 잡지는 금강제화에서 배포했는데 그 표지에 존 노럼이 나오고 .. 그 무렵 한국은 메탈이 주류는 아니었지만 매우 큰 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댓글중에 오류가 있는게 월간팝송은 메탈기사가 많았는데 이게 왜 망했느냐 안팔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월간팝송이 망한건 안팔려서가 아니라 회사사장의 뻘짓이 크고 그 당시 중앙일보에서 음악세계라는 음악잡지를 만들어 호화부록으로 물량공세를 할 당시라 월갑팝송이 자연스럽게 망햇다고 봐야죠.. 이 말은 뭘 의미하냐면 메탈에 대한 기사 비중이 제법있었던 음악세계인데, 중앙일보같은 큰 신문사가 메탈기사를 적지 않게 다루는 음악잡지를 창간할 정도였으면 당시 메탈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역설적으로 설명해준다 하겟죠
당시의 음악세계는 팝/락이 주류였고 가요는 그냥 사이드메뉴같은 비중이었습니다.
아니 당시 사회분위기가 가요보다 팝의 인기가 더 클 때라 당연하다 하겠지만요
기타 유저분의 의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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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윤중님과 제가 나이가 같거나 비슷할거 같네요...
스트라이퍼 공연때 난리였죠...
윤중님 말씀대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나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에서는 메탈 음악이 종종 흘러 나왔드랬죠...
기억 나는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해외 메탈밴드의 프로모션투어 (공연과는 별개)를 많이 했었는데 내한 기자회견 할때 꽤 많은 기자들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라디오 프로에도 출연 했었죠...심지어 가요톱10에선 데프레파드가 립싱크로 공연 했었죠...ㅋ 아뭏든 그 시기엔 인기가 없을지언정 확실한 기반은 있었던거 같네요...
저는 오비츄어리 음악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처음 들었어요...ㅋㅋ
기타 유저분의 의견 2
(펌)
후우~~
80년대 이야기를 10년째 해오고 있지만 아직도 80년대 한국의 메탈씬에 대하여 거대한 착각을 하고 계시는 젊은 메탈 팬들이
많은것 같아서 여기서 한번 그 시절에 관한 진부한 글을 다시 한번 써야 되겠습니다.
흔히들 79년 이하 락/메탈 팬들은 80년대 한국 메탈씬에 대하여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절에는 한국도 헤비메탈 문화가 발달되었다 내지는 그 시절에는 헤비메탈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이었다.
그리하여 요즘 세상에 80년대 메탈을 듣는 40대 이상 아저씨들은 다 꼰대들이고 80년대 메탈은 꼰대들의 전유물이다.
특히 마이클 쉥커, 랜디 로즈, 게리 무어 이러한 뮤지션들은 사실은 그다지 대단하지 않은 연주인인데도 불구하고 꼰대들의 성원
을 받아 영웅시 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들 말씀하시곤 하는데~~
어떤 40대 남자가 80년대 메탈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글을 남기면 제대로 읽지도 않고 그냥 꼰대의 푸념 정도로 매도하고 꼰대
정신은 혐오한다고 말하곤 한다.
지난 10년간 만나본 79년 이하 락/메탈 팬들의 거의 대부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물론 절대적인 통계는 아니다.
그 시절에 대하여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고 80년대 메탈과 꼰대 정신은 별개이 것이라는 것을 아주 명쾌하게 잘 알고 있는 젊은
사람들도 더러는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80년대를 혐오하고 그 시절을 주름잡았던 락스타들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것을 너무나 많이 봐서
좀 많이 안타깝다.
이렇게 된 것은 그 젊은이들이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그 시절에 젊은 시절을 보냈던 현재 40대 이상 사람들이 그들에게 80년대의
한국 메탈씬의 현실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많은 젊은이들이 80년대에 한국에서 메탈이 인기가 많았다고 하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거짓이다.
날조된 뻥이다.
80년대에 한국에서는 헤비메탈을 전문으로 다루는 잡지가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헤비메탈에 대한 비중이 어느 정도 높았던 '월간팝송'이라는 잡지가 하나 있긴 했지만 87년 1월에 폐간되었다.
87년이면 한참 시나위, 백두산, 부활, H20같은 밴드가 인기가 많을 무렵인데 그 시절에 그나마 메탈에 대한 비중이 높았던 잡지
가 폐간되었다는 것은 분명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다.
왜 폐간되었을까??
당연히 많이 팔리지 않았으니까 폐간된 것이다.
그 말인즉슨 그 시절에 실제로 헤비메탈에 관심이 많았던 팬들이 그만큼 적었다는 것의 증거중 하나이다.
월간팝송은 시나위나 백두산, 부활, 작은 하늘 같은 밴드가 앨범을 내기 전 언더 그라운드 생활을 할때부터 그들의 음악세계를
조명하여 매니아들에게 소개한 제법 전문성을 띤 친 메탈 잡지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시나위, 백두산, 부활이 공중파 TV에 나온 후로 만개는 커녕 시들어 버렸다.
요즘 시대의 락/메탈 팬들은 그 시절 시나위나 백두산이 아주 인기가 많았던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그들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은 분명 많았다.
하지만 그 젊은이들중에 하드락이나 메탈을 사랑하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들은 주다스 프리스트를 모른다. 블랙 사바스도 모른다. 베놈이나 킹 다이아몬드는 커녕 아이언 메이든도 모른다.
그들이 아는 것은 고작해야 본 조비와 유럽의 인기곡 몇 개 정도였다.
그들은 메탈 팬이 아니라 단지 시나위, 백두산, 부활이라는 특정 밴드의 팬이었다.
이러한 팬들의 특징은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도 안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시나위나 백두산, 부활의 앨범을 사지 않았다.
같은 반 애들 중에 진짜 메탈을 듣는 소수의 락덕후에게 부탁하여 시나위, 백두산, 부활의 음악을 공테이프에 담아갔고,
그것마저 귀찮게 생각한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냥 그 밴드들이 텔레비젼에 나왔을때 그때 보고 '아 좋군 역시 이게 바로 메탈이야.
난 존나 메탈빠야.' 이렇게 자위하며 TV를 끈 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지금 이 말은 모든 시나위, 백두산, 부활의 그 시절 팬들이 다 이랬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팬들 중에 실제로 그들의 음반을 사고 공연장도 가고 그런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하다.
중요한 것은 결과이다.
한달에 두 세번씩 공중파 TV에 나와 공연을 했건만 앨범은 썩 많이 팔리지 않았으며 이들의 생명은 길지 않았다.
대통령이 전두환에서 노태우로 바뀌면서 장발의 뮤지션들은 하나 하나 브라운관에서 사라져갔다.
이들이 사라진 이유 중엔 머리를 어깨 이상 기른 남자들은 TV에 출연할수 없다는 새로운 정부의 방침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그 시절의 락커들이 생활이 되지 않아 밴드가 해체되고 다른 길을 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시절의 신문에 락 밴드들이 라인업을 꾸준하게 유지하지 못하고 해체되는 이유는 경제적인 것이 매우 크다고 쓰여 있었다.
그 시절의 락 밴드들의 실제 앨범 판매고는 그리 신통치 않았으며 그 시절의 락 밴드들은 자존심 때문에 여타 유명 가수들처럼
나이트 클럽에 나가서 오부리를 하지 않았다.
물론 그 시절의 판매고가 지금보다 높긴 하다. 그건 현재의 음반 시장이 너무나도 조악하기 때문이지 결코 그 시절 밴드들의
앨범이 많이 팔린 것이 아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 시절에 '전영혁의 1시 데이트'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헤비메탈이 그나마 많이 송출되었고 그 외에 다른 FM 방송에서는 메탈이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전영혁의 1시 데이트는 왜 새벽 1시에 송출되었을까??
모두가 잠든 새벽에 왜 그렇게 늦은 시간에 송출되었을까??
만약 헤비메탈이 그 시절 젊은이들에게 최고의 인기 음악이었다면 그렇게 늦은 시간에 송출되었을까??
전영혁의 1시 데이트 이전에 황인용의 영팝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이 방송같은 경우는 저녁 8시부터 10시까지 제법 황금 시간대에 장장 2시간이나 방송되며 한때 메탈이 많이 나오긴 했지만~~
86년 봄을 전후하여 그냥 다른 방송과 별 차이 없는 프로그램으로 변질되었다.
헤비메탈을 안 틀었다 그 말이다.
그리고 나서 생긴게 전영혁의 1시 데이트......
결국 이 말은 메탈은 모두가 잠든 새벽에 소수 매니아들이나 쳐들으라는 건데~~
과연 이것이 메탈이 전성기였던 시절에 벌어짐직한 시추에이션인가??
나와 비슷한 또래 중에 어떤 사람은 고등학교때 자기 반에 있는 수많은 학생들이 어제 전영혁 들었냐며 그 방송에 나온 음악에
대하여 대화를 하곤 했다는데~~ 만약 그렇게 수많은 학생들이 전영혁씨의 방송을 들었다면 전영혁씨의 방송이 계속 새벽 시간에
묶여 있었을까??
전영혁씨와 그의 청취자들은 일부러 1시에 방송하고 듣는 것을 좋아했다구??
그건 절대 아니다.
실제로 전영혁씨와 1시 데이트 애청자들은 80년대부터 방송 시간을 조금 더 앞으로 당기길 요구했지만 그 요구는 끝내 관철되지
못하고 말았다.
특정한 학교의 특정한 반에서 그런 컬트적인 현상이 일어난 것이겠지......
내가 90년 이후로 만난 거의 백여명이 넘는 80년대 고교생들에게 물어본 바로는(거기에는 주혹새 회원들도 포함되어있다.)
고등학교 시절 자신의 반에 헤비메탈 좋아하는 학생들은 다섯 명이 채 되지 않았다가 표준이다.
나같은 경우만 해도 중3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때까지 한 학년당 같은 반에 메탈 듣는 애들이 다섯 명 안되었다.
두 세명 많아야 네 다섯??
마지막으로.....
그 시절에 라이센스 되어 나오던 해외앨범들을 보면 그 시절에 한국에서 헤비메탈이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 알만하다.
베놈, 켈틱 프로스트, 머시풀 페이츠는 커녕
80년대 해외에서 가장 많이 사랑 받았던 머틀리 크루의 앨범들이 80년대에 단 한 장도 한국에 라센되지 않았다는 것을 보면
그 시절 한국에서 헤비메탈이 얼마나 인기가 없었는지 능히 짐작할수 있지 않을까??
아이언 메이든 같은 경우도 piece of mind가 처음 발매되었을때 무려 네 곡이나 잘려나가고 앨범 재킷까지 변경되는 수모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메이든의 음반이 한국에 출시된게 어디냐고 감격해하곤 했다.
앨리스 쿠퍼 같은 경우는 아예 말을 말자.
전곡이 금지곡인 금지 가수였고~~
그 유명한 딥 퍼플의 child in time도 금지곡이었다.
오지 오스본 다이어리 오브 어 매드맨과 박 앳 더 문 재킷에 나오는 오지의 흉물스러운 사진 짤려나간것도 그렇구......
한국 메탈 밴드들 엘피 뒷 면에 강제로 건전가요 삽입하게 하는 것도 그렇구......
그 시절에 헤비메탈 문화는 지나친 검열로 인하여 많이 변형되거나 삭제되어 한국에 들어왔다.
물론 그 시절이 살벌한 철권 군부 시대라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헤비메탈이 한국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그렇게 많은 상처를 받은
것은 그 시절 메탈이 대중들로부터 찬밥을 먹던 비인기 쟝르라는 증거였기 때문이라~~ 난 생각해.
헤비메탈이 해외에서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던 1980년대 대한민국에서는 헤비메탈이 젊은이들로부터 유행하는 주류 음악이
아니었다.
비주류 음악이었다.
고로 그 시절에 헤비메탈을 좋아했던 소수의 청소년들은 일종의 보편적인 기준의 대상에서 제외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매니아들이다.
그렇기에 그 시절에 헤비메탈을 즐겨듣고 지금까지도 그 시절의 헤비메탈을 듣는 사람들은 일반적인 꼰대라 볼 수 없고,
그들이 즐겨듣고있는 80년대 메탈 음악은 꼰대들의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순전히 나이로 따졌을때는 그들도 꼰대가 될 수 있겠지.
하지만 메탈 팬의 입장에서 그들을 전형적인 꼰대라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꼰대들의 음악은 헤비메탈이 아니라 80년대 한국 가요나 팝송 그리고 트로트라고 생각한다.
특히 80년대 대학 가요제, 강변 가요제에서 유명해진 곡들~~ 그러한 것들이 보편적인 40대들이 즐기고 좋아하는 음악.
소위 말하는 꼰대 음악이라 볼 수 있겠다.
한쪽 벽이 엘피로 도배된 아날로그 엘피 바를 가면 30분에 한번 꼴로 80년대 한국 가요가 흘러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꼰대들을
상징하는 음악이다. 그 시절 보편적인 청소년들이 좋아했던 일반적인 음악.
그런 엘피 바에서 아저씨 아줌마들 존나 많을때 머틀리 크루나 그림 리퍼 한번 신청해봐라~~
아마 절대 안 틀어줄껄......
아저씨 아줌마들 다 빠지면 그때서야 틀어주겠지.
트로트같은 경우도 말을 말자.
80년대 말과 90년대 초까지 한국 가요계는 트로트가 꽉 잡고 있었다.
난 아직도 잊을수 없다.
내가 대학교 막 들어갔을때 그러니까 90년 연합 엠티때 잘못 들어간 예비역 모임 방에서 보았던 그 그로테스크한 현장을~~
그 방을 가득 채운 이십여명의 예비역들은 모두 술에 취해 트로트를 신나게 부르고 있었다.
허어 그 광경이란 실로 기괴했다.
그 예비역들은 가죽 재킷을 입고 머틀리 크루 노래를 연습하고 있던 나를 보며 '너도 나이가 들면 트로트가 좋아지게 될꺼야'
라고 말했다.
ㅋ 생각해보면 그 예비역들 고작 해야 스물 서너살 정도일텐데 그땐 왜 그렇게 다들 무섭고 쭈글쭈글하고 늙게들 보였는지~~
암튼 나는 그때 그 예비역들이 말했던 것처럼 트로트에 빠지지 않고 그 시절 좋아했던 메탈을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다.
그래서 난 내가 꼰대라 생각하지 않거든~~
그리고 난 그 *끼들과 달리 나보다 한참 어린 사람들에게 '너희들도 나이가 들면 쌍팔년도 메탈이 좋아지게 될꺼야' 라고 말한적
없거든~~
근데 왜 사람들은 나를 포함한 지금도 그 시절 메탈, 락 듣는 사람들을 꼰대 취급할까??
ㅋ
그 시절에 메탈 듣던 청소년들은 보편적인 아이들이 아니라 요즘 메탈 듣는 청소년과 마찬가지로 조금 특이한 케이스였는데~~
일반적인 꼰대들로부터 따로 분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 똑같나??
ㅋㅋㅋㅋㅋ 다음 정통 락메탈 카페 주다스 혹은 새버스의 화랑님이 작성하신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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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 한국에서 메탈 인기 없었어요. 하지만 제가 몇가지 예를 들께요. 저는 실제로 80년대에 학창 시절을 거친 (중/고) 현장인입니다. 방구석매니아도 아니었구요.
인기 없었다는건,, 한반에 메탈 좋아하는 친구 3~5명 정도 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겁니다. 전체적인 퍼센티지를 본거죠. (그런데 당시는 3~5명이라고 해도.. 학교 전체로 따지면 나오는 인기 메탈 앨범은 대략 한 학교에서 50장은 팔리는 수준입니다. 중/고등학교 단 한곳에서... ) 제가 학교앞 레코드가게서 알바까지해서 잘 압니다.
1. 블랙신드롬이나 제로지같은 당시 인기밴드(?) 공연... 아침 12시에 공연해도 500~800명씩 왔어요. 클럽인 송설이나 좀 큰 락월드같은곳에서도 난리났죠. 종로파고다나 심지어 3류밴드들이 많이 공연한 서초동에 는깨소극장같은곳에서도 300명씩 왔어요. 저 가장 기억에 남은건... 이태원 비바 아트홀 공연은 아침에 매진되어서 못들어갔어요. 크래쉬 오프닝/ 블랙신드롬 이런 라인업으로 기억합니다. 물론 저는 서울이나 인천기준..
2. 영상회를 하면... 주로 김광한 선배님같은분들이 주최하는... 락카페 빌려서 하는데 아침 10시부터해도 200명 공간이 다 차서 들어가지를 못했어요.
3. 저위에 퍼오신 글 좀 전 이해가 안가는데... 저 고딩때만해도.. 공중파 FM 에서 SEPULTURA나 심지어 SLAYER도 나왔어요. METALLICA는 자주 나왔구요. 그게 황금시간대인 7~9시 사이에요. 김광한/배철수 두분 프로에서 특히 많이 나왔죠. 저는 그때 당시 녹음하면서 들었는데 메탈 신보는 거의 다 거기서 듣고 샀어요. 제가 뭘 알고 CORONER나 RUNNING WILD. RAGE 같은 밴드를 샀겠어요. 정말 선곡이 팝은 기본이고 하드록/메탈은 2시간동안 최소한 5~6곡은 나옵니다. 새벽에 가면 전영혁 선배님 방송에서도 서브장르까지 파고 들었죠.
4. 스트라이퍼 내한 공연 난리 그 자체였습니다. 심지어 ANTHEM이나 LOUDNESS는 말할것도 없었죠.지금의 무슨 브이홀 정도가 아니예요... 천명 단위가 무조건 넘어가고
5. 저위에 댓글 퍼오신것 또 이해가 안가는게 하나 있는데 무조건 본조비와 유럽이라고 하는데... 실제 한국에서 엄청나게 인기가 많았던 밴드는 헬로윈이었죠. 포이즌.본조비도 있었지만.. 그리고 대부분 메탈 박사였어요. 왜냐하면 메탈 전문지는 없었어도 만화잡지를 사도 Skid Row가 나오고 틴에이저 잡지를 사도 Megadeth. Metallica 영화잡지를 사도 Dokken이 나왔거든요.
6. 또 저위에 댓글을 보고 이해가 안가는건... 80년대 진정한 매니아라면 (한반에 꼭 한명은 있었죠) 빽판을 안살수가 없었고 웬만한 동네 버스타고 조금만 나가면 빽판 다 팔았어요. 그런데 금지곡으로 인해 말씀하시니 좀 이해가 안갑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비인기 장르였지만 탄탄한 팬층을 갖고 소비가 되었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이상입니다. 밤에 댓글보다가 실제로 80년대에 안계셨던 분 (혹은 라이트 유저였거나)들의 추측성글도 있는것 같아 댓글 남겨봅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한국에서 80년대 메탈의 전성 시대같은건 없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한 장르로서의 그 위치는 분명히 가지고 있었고, 공급과 소비가 탄탄하게 이루어졌다는 건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게 팩트입니다.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건...제가 메탈을 파기 시작한것이 86/87년도 부터이니 80년대 중/후반으로 해야겠네요. 저위에 크래쉬/블신 공연도 실제로는 91/92년 정도였겠구요.
여기까지가 락뉴 도프 레코드 운영자이신 김윤중 대표님의 논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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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메탈인기가 무슨 마이클잭슨급으로 인기가 있었냐고 한다면 말도 안되는 소리겠지만 질문의 요지가 80년대와 2000년 초반중 어느 시절이 메틸이니가 많았냐고 물으신다면 그 질문도 말도 안되긴 마찬가지입니다.
아에 비교조차 할 수도 없이 80년대의 인기가 월등햇습니다. 한반에 메탈듣는 애들이 열명 가깝게 되고 주말에 종로에 나가 빽판 사모으고 월요일에 뭘 샀는지 얘기할 때 둥그렇게 그룹을 만들어서 얘기할 정도면 이게 얼마나 대단햇던 것이며, 심지어는 메탈은 아무것도 모르는 여자애가 머틀리 크루를 사서 집에 가던 때가 그 시절입니다.
토요일/일요일에는 김광한이 한시간도 넘게 디오의 라이브를 틀어주고, 메탈하고는 별로 상관도 없는 박원웅/이종환도 메탈을 틀고.. 백두산이 공중파에 출연하고 한강에서 시나위 라이브가 열렷는데 만명도 넘는 숫자가 보려오고.. 시간을 몇년 뒤로 넘겨보면 80년대 말에는 여자들이 주축이 되어서 신데렐라 팬클럽 스키드 로우 팬클럽, 포이즌 팬클럽등 무수한 메탈밴드 팬클럽이 만들어지고 그 팬클럽이 행사할 때 수십명씩 몰려오고, 번은 백권을 수입했는데 이틀만에 다 팔려버리고 김기덕이 만들어던 팝피엠 투라는 잡지는 금강제화에서 배포했는데 그 표지에 존 노럼이 나오고 .. 그 무렵 한국은 메탈이 주류는 아니었지만 매우 큰 시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위의 댓글중에 오류가 있는게 월간팝송은 메탈기사가 많았는데 이게 왜 망했느냐 안팔렸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월간팝송이 망한건 안팔려서가 아니라 회사사장의 뻘짓이 크고 그 당시 중앙일보에서 음악세계라는 음악잡지를 만들어 호화부록으로 물량공세를 할 당시라 월갑팝송이 자연스럽게 망햇다고 봐야죠.. 이 말은 뭘 의미하냐면 메탈에 대한 기사 비중이 제법있었던 음악세계인데, 중앙일보같은 큰 신문사가 메탈기사를 적지 않게 다루는 음악잡지를 창간할 정도였으면 당시 메탈의 인기가 어느정도였는지 역설적으로 설명해준다 하겟죠
당시의 음악세계는 팝/락이 주류였고 가요는 그냥 사이드메뉴같은 비중이었습니다.
아니 당시 사회분위기가 가요보다 팝의 인기가 더 클 때라 당연하다 하겠지만요
기타 유저분의 의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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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윤중님과 제가 나이가 같거나 비슷할거 같네요...
스트라이퍼 공연때 난리였죠...
윤중님 말씀대로 배철수의 음악캠프나 김광한의 팝스다이얼에서는 메탈 음악이 종종 흘러 나왔드랬죠...
기억 나는건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까지 해외 메탈밴드의 프로모션투어 (공연과는 별개)를 많이 했었는데 내한 기자회견 할때 꽤 많은 기자들과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라디오 프로에도 출연 했었죠...심지어 가요톱10에선 데프레파드가 립싱크로 공연 했었죠...ㅋ 아뭏든 그 시기엔 인기가 없을지언정 확실한 기반은 있었던거 같네요...
저는 오비츄어리 음악을 배철수의 음악캠프에서 처음 들었어요...ㅋㅋ
기타 유저분의 의견 2
krisiunking 2018-12-05 20:47 | ||
잼나게 정독한 40대 입니다. 그시절 지방사는 나는 백판마져 구하기 힘들었고, 간혹 별책메틀 책자라도 구했을땐 족보만큼 귀하게 다뤘던 기억이 납니다. 위 언급한 내용중 예전 명반이라 칭하던 것들이 요즘분들(젊은?)에게 까이는걸 보면 안스럽게 생각합니다. 그시절 같이 들었다면 쉽게 까이진 않았지 싶습니다. | ||
버닝앤젤 2018-12-06 10:31 | |||
그런가요? 제가 느끼기에는 예전 명반들 까이는거 잘 보지 못했던거 같은데요 어떤 앨범인지 궁금하군요 오히려 까여도 요즘 밴드 앨범들이 더 많이 까이죠ㅎㅎ | |||
q4821747 2018-12-05 20:57 | ||
고딩이지만 이글이 맞는거같아요 지금은 메탈듣는사람이 제 나이대에선 더 줄어든거같네요 저는 학교에서 ARCHGOAT 나시입고 메탈전파하고 다닙니다ㅋㅋㅋ 밴드부친구들이나 악기하는애들 아님 관심있는애들은 mp3제꺼 빌리러오네요...아마 재조명된 퀸의 영향도 있는거 같습니다..메탈이 우리나라에서 다시 일어선다면.. | ||
lastsummerdream 2018-12-05 21:00 | ||
그래도 메탈은 지금 수요라도 있지 재즈쪽은 구매자가 있는지 궁금하더군요. 작년 음반샵 다니면서 들어본 이야기지만 클래식 담당자분이 메탈은 안팔리죠? 하니 의외로 메탈 판매량은 늘었는데 더 메이저일거 같은 재즈만 내려갔다는 이야기한거 보면 재즈는 뭐 그런 소품 수준인거 같더군요 | ||
q4821747 2018-12-05 23:02 | |||
여기 재즈 좋아하는사람 한명이요 근데 재즈는 요새 음반보단 하이레조 음원이 더 팔리는 추세라 음원수요가 더 높은걸로 알고있습니다ㅎㅎ | |||
scratch 2018-12-06 17:14 | |||
맞는 것 같아요. 음반보다는 고음질 음원 쪽에서 재즈랑 클래식이 강세인 것 같더군요. | |||
츠보미 2018-12-05 22:09 | ||
90년대 말부터 메탈러로 산 사람으로써, 그 시절엔 한 반에 락커한다는 친구들이 한두명씩은 있었쥬 | ||
휘동이 2018-12-06 02:00 | ||
트로트 듣는다고 꼰대이고 메탈듣는다고 꼰대아니고 라기보단 생각이나 사상이 편협하고 편견 선입견 꽉 막힌 고집불통 등등 나이만 먹은 사람이겠죠. 저도 꼰대나이지만 꼰대 안되려 노력중입니다.^^ 중3때인지 고딩시절이었는지 어렴풋한데 반에 드럼치는 아이가있어 어느날 공연이 있다해서 우르르 몰려가서 봤습니다. 신대철님께서 기타를 연주하시던 장면 아직도 선하네요. 그놈아 덕분에 좋은구경했던 80년대 중후반이었습니다. 올리신 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내용이네요. | ||
운영자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IP : 211.36.131.53 | ||
Takatalvi 2018-12-06 11:26 | ||
우리나라에서 메탈이 인기 있던적은 없었죠.. . 70~80년대에 세계적으로 락, 메탈이 흥행 했으니 우리나라에서도 지금보다는 많은 인원들이 듣거나 좋아했을거고 메탈이 인기 많다고하는 북유럽 같은곳도 사실 다른곳보다 인기가 많다 이지 주류음악은 아니니까요.. | ||
scratch 2018-12-06 17:15 | ||
재미있게 읽었네요. 당시를 살지 못해 잘 알기는 어렵지만, 락/메탈을 좋아한다는 분위기는 확실히 있었던 것 같네요. | ||
순수한아이 2018-12-07 23:06 | ||
현재 10대로서 락 좋아하는 친구는 간혹 보이는데, 음악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고음역대 락커들을 추종하는 경향이 있는듯 합니다. 물론 메탈 좋아하는 친구도 보이긴 하는데 대부분 뉴메탈 계열이나 메탈코어 쪽을 선호 하더군요. 그래서 하드락하고 올드스쿨, 익스트림 듣는 입장에서 너무 외롭습니다 ㅠㅠ | ||
강아지똥 2018-12-08 06:14 | ||
예전에도 지금도 메탈이 인기있던적은 없었던것 같습니다. 메탈 그룹의 발라드곡 혹은 락/메탈그룹의 고음곡 정도나 인기있었죠.. 90년대에 가장 대표적인게 stratovarius - forever, steelheart - she's gone 일겁니다. 전자 같은 경우엔 드라마에 삽입되서 앨범이 많이 팔렸는데 첫곡부터 메탈이 나와서 환불해달라고 요청이 많이 들어왔다고 레코드가게 주인분이 얘기해주셨거든요. 저야 헐값에 잘 샀지만요..ㅎ 후자같은 경우엔 어느정도 나이 되시는 분들이야 모두 아시겠지만 스틸하트의 다른 곡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요? ㅎㅎ | ||
세인아빠 2018-12-10 17:22 | ||
ㅋ 재미있는 글 잘봤습니다. 스트라이퍼 내한공연 세대로써 한마디 하자면. 그래도 그때 고딩들한테는 현재의 랩 같은 의미를 락/메탈이 갖던 시절이었다 할수 있겠네요.. 당시 음악이 그리 다양하지 않았어서 그런지 몰라도 밴드다 하면 일단 “뷁킹덜로~~”. 로 시작하던 때였으니. 친구들과 많은 이야기 주제가 락 메탈이었고 그런 친구들이 여럿 있았던걸로 되짚어보면. 메탈이 주류는 아니었어도 쌍팔년도 남고생들한테는 꽤 인기 있었다. 정도일겁니다. 암튼. 빽판사러 레코드가게 가던. 아련한 시절입니다. ㅎ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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