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th Biography Pt.II]]
요새 일드랑 음악듣는거에만 빠져 메킹 활동은 거의 안했네요 ㅎㅎ 이따금씩 새로산 앨범 마이콜렉션란에 추가시키는게 활동이라면 활동이랄까요 ㅎㅎㅎ
From Wikipedia // Translated, Edited by Mefisto
*추가 에딧 사항: 오페쓰에 대해 기술한 사람이 앨범마다 Allmusic의 평을 인용하곤 하는데, 개인적으로 불필요한 미사여구라 생각하는데다가 글의 흐름에서도 전혀 도움이 안되므로 임의로 삭제하겠습니다. 굳이 알고 싶으신분은 쪽지 주시면 따로이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Deliverance and Damnation (2002?2004)]
오페쓰는 Blackwater Park투어 후에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다음 앨범의 작곡을 시작합니다. Akerfeldt는 자신이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음악보다 더 헤비한 음악을 하고싶었던 동시에, 지금까지의 부드러운 부분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에 대해 Katatonia의 멤버이면서 Akerfeldt의 오랜 친구이기도 한 Jonas Renkse는 2가지 버전ㅡ헤비한 버전과 부드러운 버전ㅡ으로 앨범을 발매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러한 전망에 힘입어, Akerfeldt는 오페스멤버들과 레이블의 자문도 받지 않은채 이 제안에 동의합니다. 오페스 멤버들은 그러한 생각에 동의를 표한 반면에 Akerfeldt는 레이블을 설득시켜야만 했습니다. "난 거짓말을 좀 해야 했다. 이를테면, 우리가 굉장히 빨리 레코딩을 끝낼수 있다던가, 보통 앨범들보다 비용이 덜 들어갈것이라는 등..." 곡의 대부분이 쓰여졌을때, 밴드는 단 한번의 리허설만을 한후에 다시금 Steven Wilson을 프로듀서로 대동하여 2002년, Nacksving Studio에 들어갑니다. 2개의 앨범을 동시에 완성시켜야 한다는, 그당시의 압박감을 Akerfeldt는 "우리 밴드의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시험"이라고 표현합니다. 기초적인 트랙들이 녹음되고, 밴드는 헤비한 앨범인 "Deliverance"를 먼저 믹싱하기 위해 작업물들을 가지고 영국으로 이동하여 Andy Sneap과 함께 Backstage Studio에 들어갑니다. "Deliverance는 어떠한 구체적 계획없이 굉장히 서투르게 녹음되었다. Sneap은 그 많은 부실한 부분을 보완해주었기에 'Mixer(믹싱하는 사람)'이 아닌 'Saviour(구원자)'로 부클릿에 기재되었다."고 Akerfeldt는 주장합니다.
"Deliverance"는 2002년 11월 4일에 발매되어 미국 상위 독립앨범 차트에 19위로 랭크되는 동시에 미국 차트에 처음 출현하기도 합니다. 오페쓰는 스톡홀름에서의 하루공연을 마친후 영국에 소재한 Steven Wilson이 운영하는 No Man's Land Studio로 돌아와 두번째 앨범인 "Damnation"의 보컬 녹음을 완료하였습니다. Akerfeldt가 처음엔 두 앨범을 완성시키는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페쓰는 "Deliverance"와 "Damnation"을 단 7주만에(스튜디오에서 보낸시간을 가리킴) 완성시켰습니다. ("Blackwater Park"앨범 하나를 작업하는데도 7주이 걸렸음) "Damnation"은 2003년 4월 14일에 발매되어 밴드를 빌보드차트 192위에 올립니다. 또한 이 앨범은 2003년 스웨덴 그래미 어워드에서 Best Hard Rock Performance를 수상하기도 합니다.
밴드는 2003년에서 2004년사이에 거의 200차례정도나 되는 공연을 수행합니다. 오페쓰는 유럽에서 'Acoustic Set' 와 'Heavy Set'으로 나누어 3번의 특별공연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그때의 실황을 담은 영상이 "Lamentations"라는 DVD에 담기게 되는데, 이 영상은 영국 런던에 있는 Shepherd's Bush Empire라는 곳에서의 공연을 녹화한 것입니다. 이 DVD는 "Damnation"수록곡 전체와 "Deliverance" 및 "Blackwater Park"의 수록곡중 일부를 포함한 2시간의 공연과 "Deliverance","Damnation"에 대한 1시간분량의 메이킹비디오가 담겨있습니다. 이 DVD는 캐나다에서 골드판매량(역자주1)을 기록합니다.
오페쓰는 요르단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었으나, 중동에서의 테러리스트 사건이후의 불안감때문에 직원들 없이 진행하게 됩니다. 오페쓰의 투어 메니저는 6천장의 티켓을 유통시켰으나 오페쓰가 요르단으로 떠나기 전에 드러머 Lopez가 자신은 불안해서 공연을 같이 할수 없다고 말하여 밴드는 공연을 취소하게 됩니다. 2004년 초, Lopez는 투어중에 심해진 불안감으로 인해 캐나다 투어도중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오페쓰는 투어를 취소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Lopez의 드럼테크니션을 다음 2개의 공연에 참가시킵니다. Lopez는 가능한한 빨리 복귀하겠노라고 약속했지만 밴드는 빈자리를 Strapping Young Lad출신의 드러머 Gene Hoglan으로 메웁니다. 결국에는 Lopez가 오페쓰로 돌아오게 되고 "Deliverance" 및 "Damnation"투어의 마지막인 시애틀공연을 성공적으로 완수시킵니다. Per Wiberg 역시 키보드 주자로 밴드에 들어오고, 오페쓰는 2004년에 다음 앨범 작업을 개시합니다.
[Ghost Reveries (2005?2007)]
밴드의 유럽레이블인 Music for Nations가 2005년 폐쇄를 하게되고 여러 레이블과의 교섭이후 밴드는 Roadrunner Records와 계약하기로 결정합니다. Akerfeldt는 Roadrunner와 계약한 일차적 이유는 그 레이블이 가진 방대한 유통 시스템 때문이라고 밝힙니다. 오페쓰가 트렌드지향적인 Roadrunner 레이블과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몇몇 팬들은 밴드가 셀링 아웃했다며 비난합니다. 이에 대해 Akerfeldt는 "솔직히 말해서, 그것(셀링아웃이라는 비난)은 15년된 밴드와 8개 앨범에 대한 모욕이다. 나는 우리가 이 수많은 해동안 오페쓰팬의 신용을 받지 못했다는 것을 믿을수 없다. 한가지 말해 두지만, 우리 곡들은 거의 10분씩 된다."고 말했습니다.
오페쓰는 2004년후반에 새앨범에 들어갈 곡의 작곡을 다 끝냈습니다. 밴드는 3주간의 리허설을 거친후, 밴드는 스웨덴의 Fascination Street Studio에 들어갑니다. 리허설을 하는 동안에 키보디스트인 Wiberg가 정식 멤버로 가입됩니다. 2005년 3월 18일부터 6월 1일까지 레코딩된 이 앨범은 "Ghost Reveries"라는 이름으로 그해 8월 30일 발매됩니다. 이 앨범은 미국에서 64위, 스웨덴에서 9위라는 이제까지의 앨범중에서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합니다.
2006년 5월 12일, 드러머 Martin Lopez가 건강문제로 인해 밴드에서 나갔다고 공식선언합니다. 그 빈자리는 Martin Axenrot이라는 드러머에 의해 채워집니다. 그무렵 오페쓰는 Megadeth와 함께 Gigantour 2006의 메인 스테이지를 맡게됩니다. 딥퍼플의 "Soldier of Fortune"을 커버한 보너스트랙이 포함된 Ghost Reveries앨범의 재발매반이 발매됩니다. 또, 런던 Camden Roundhouse에서의 공연실황이 더블라이브 앨범인 "The Roundhouse Tapes"가 발매됩니다.
2007년 5월 17일, 오페쓰에 16년간 있었던 Peter Lindgren이 밴드를 탈퇴합니다. "그 결정은 매우 어려웠지만 내 인생에 있어 올바른 결정이다. 단순히 말하자면 나는 단지 몇명이 모여 연주하는 수준에서 세계적으로 공연을 다니는 수준으로 성장한 밴드에서 연주할만큼의 열정이라던지 영감을 잃어버렸다."고 Lindgren은 말합니다. 전(前) Arch Enemy 기타리스트인 Fredrik Akesson이 Lindgren을 대신하였습니다. Akerfeldt는 Akesson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Fredrik은 Peter의 후임자로 생각해볼수 있는 유일한 이름이었다. 내 생각에, 그는 스웨덴의 가장 뛰어난 세 기타리스트중 한 사람이다. 우리는 대략 4년간 알고 지내왔고 그는 오페쓰의 멤버들이 그러하듯이 서커스같은 삶의 방식을 경험하게될 것이다."
[Watershed (2008년 이후)]
거의 200회나 되는 Ghost Reveries투어 공연이후, Akerfeldt가 프로듀서를 맡은 채 오페쓰는 Fascination Street Studio에 들어갑니다. 2008년 1월까지 오페쓰는 커버곡 3곡을 포함한 13곡을 녹음했습니다. 완성된 앨범인 "Watershed"는 7곡 담고 있었으며 몇몇 커버곡들이 발매 버전에 따라 달리 담기게 되었습니다. "Watershed"는 2008년 6월 3일 발매됩니다. AKerfeldt는 앨범이"약간이나마 더 생기 있다"고 말합니다. 오페쓰는 Watershed투어를 계획했는데, 그중에는 Arch Enemy와 함께하는 Defenders of the Faith 영국투어와 Wacken Open Air공연, Dream Theater와 공동 헤드라이너를 맡은 Progressive Nation투어가 포함되었습니다.
"Watershed"는 미국 빌보드 차트 23위에 데뷔하는 기염을 토해냅니다. 미국외의 다른 나라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적을 기록해내는데, 호주 ARIA앨범차트에서 7위, 핀란드 오피셜 앨범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후 부분에서는 최근에 진행된 투어와 그에 함께한 밴드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관계로 과감히 삭제하고, 필요 부분만을 말씀드리는것을 알아주세요.
2009년 5월 16일, Akerfeldt는 Hollywood공연에서 2009년 말까지만 공연을 진행시킨뒤, 잠시 휴식을 갖고 새 앨범 작업에 착수할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2009년 11월 25일 호주 공연에서 오페쓰가 2010년으로 20주기를 맞는다는것, 그리고 그들이 2010년에 있을 새 앨범 녹음으로 인해 호주에 2-3년간 올수 없겠다는 말을 하였습니다.
[현재 멤버]
Mikael Åkerfeldt: lead vocals, lead and rhythm guitars, acoustic guitars
Martin Mendez: bass
Per Wiberg: keyboards, backing vocals
Martin "Axe" Axenrot: drums, percussion
Fredrik Åkesson: rhythm and lead guitars, backing vocals
주1: 당시의 기준으로 5만장이상을 판매한 음반에 붙이는 칭호로 음반수에 따라 골드,플래티넘,다이아몬드로 나뉘어집니다.참고로, 2008년 1월에는 골드라는 칭호를 주는 판매량을 4만장으로 낮추었습니다.
타루김 2009-12-09 15:56 | ||
잘 읽었습니다...ㅎ 수고 많으셧어요 감사합니다 | ||
슬홀 2009-12-09 17:47 | ||
잘 읽었어요^^ | ||
scratch 2009-12-09 21:26 | ||
잘 읽었습니다. 저도 영어 좀 잘했으면 좋겠군요ㅠ | ||
Silencer 2009-12-10 11:11 | ||
감사히 잘읽었습니다. opeth 그들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 ||
아리엘라 2010-09-23 21:31 | ||
어떻게 보면 아커펠트가 오페스 그 자체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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