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 the INNOVATION Begin
1988년 기타리스트 Tony Lazaro를 주축으로 결성된 데스 메탈 밴드 Vital Remains는 노골적인 반기독교적 테마와 대곡 지향적 작곡이라는 특색을 지닌 밴드이다. 본격적인 리뷰에 앞서 흔히 이들은 Deicide와 함께 사타니즘, 반기독교적 성향이 강한 데스 메탈 밴드의 대표주자로 알려져 있지만 이들이 진심으로 “기독교인들을 다 죽이자”하는 식으로 반사회적인 선동을 시도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고 한다. 단지 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의 결함과 위선적인 태도, 그리고 종교라는 이름에 의해 자행되는 폭력과 전쟁 등을 비판하기 위해 노골적인 반기독교적 테마를 차용한 것일 뿐 타인에게 특정 사상을 강요할 의도는 전혀 없다고 단정 지었다. 오히려 이들은 자유롭게 생각하고 의견을 피력하며 스스로 선택할 권리를 주장하며, 그런 의미에서 현대 기독교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신앙과 사상을 강요하기에 반기독교적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다시 음악적인 측면으로 돌아와서 이들이 첫 데모부터 대곡들을 시도한 것은 아니지만, 1, 2집 정규 앨범들을 거치며 때때로 7~8분 이상의 대곡들을 시도하거나 키보드를 적극 활용하는 등 특색 있는 데스 메탈 사운드를 점차 구축해 나갔다.
조금씩 성장해 나가던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큰 전환점으로 작용한 것은 바로 다재다능한 인물 Dave Suzuki의 영입이었다. 리드 기타, 드럼, 베이스, 백킹 보컬, 작사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못하는 것이 없던 그의 영입으로 인해 Vital Remains는 한 단계 더 진보할 수 있었는데,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 3집 Forever Underground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스페인풍 어쿠스틱 기타나 5집 Dechristianize부터 대폭 강조된 네오클래시컬한 기타 솔로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이렇듯 Dave Suzuki 영입 이후 더욱 대곡 위주의 작곡을 지향하기 시작했던 Vital Remains는 평균 7분 이상의 대곡들로 구성된 데스 메탈을 구사하는 독보적인 위치에 올라설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이들의 최고 히트작인 5집 Dechristianize는 그 유명한 Deicide의 Glen Benton을 메인 보컬로 내세우며 그야말로 반기독교적 데스 메탈의 어벤져스라고 할법한 라인업을 이루어냈다. 사실 이들은 2집 Into Cold Darkness 시절부터 Glen Benton과 협업할 기회가 있었으나 결국 성사되지 못했던 것이 Dechristianize에 이르러 마침내 성사된 것이며, 마침내 그와 함께하게 된 Tony Lazaro는 Glen Benton의 보컬에 매우 만족스러워했다고 한다.
당시 Vital Remains의 작사는 전부 Dave Suzuki가 맡았었기 때문에 Glen Benton이 가사에 따라 노래를 할 때 Deicide와는 운율 등의 면에서 차이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무리 없이 보컬 파트를 소화해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Dave Suzuki또한 Tony Lazaro가 작곡한 리프나 드럼 비트를 곧잘 연주해내며 하모니를 추가하거나 멋진 솔로를 더하는 등등 멤버들 간의 협동이 잘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렇듯 이 작품을 녹음하는 데에 소요된 시간은 고작 2주였다고 하지만 그 결과물은 실로 훌륭한 것이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도프 엔터테인먼트 라이센스반에는 인트로인 Let the Killing Begin의 앞에 한국 팬들에게 보내는 Dave Suzuki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한국계라고 알려진 Dave Suzuki의 어눌하지만 감동적인(?) 한국어 메시지로 팬들에게 깜짝 선물을 남겨 주었다. 한편 Let the Killing Begin 인트로는 Carl Orff의 O Fortuna와 1965년도 영화 The Greatest Story Ever Told를 샘플링하여 예수의 마지막 재판을 재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곧이어 Glen Benton과 Dave Suzuki의 Let the Killing Begin!!!으로 앨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
이어지는 타이틀곡 Dechristianize는 시작하자마자 광폭한 연주와 두 보컬의 절규가 더해지며 곧바로 청자의 정신을 뒤흔든다. Glen Benton의 걸쭉한 보컬로 기독교에 대한 날 선 비난을 뿜어내며 훌륭한 리프들과 질주감 속에서 곡을 이어나가다 느닷없이 네오클래시컬 메탈의 영향이 느껴지는 스윕 피킹 솔로가 치고 나오며 신선한 충격을 준다. 곧이어 템포가 전환되고 한층 더 비장미를 더하는 스타일로 분위기가 전환되며 훌륭한 완급조절을 선보인다. 이후 다시 도입부의 구성이 되풀이되다가 후반부에서 다시 비장미를 돋우는 전개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뒤 수미상관적인 구성으로 완벽한 마무리를 선사한다. 곡 막바지에 백마스킹으로 삽입된 정체불명의 메시지가 담겨 있는데 Tony Lazaro에 따르면 특별한 뜻은 없고 Glen Benton이 “I'll crush your bones...Dechristianize you!” 등의 표현들을 스튜디오에서 장난식으로 내뱉은 말을 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뒤를 잇는 곡 Infidel은 한층 더 직설적인 스타일로 몰아붙이는 곡이다. Dechristianize와 마찬가지로 도입부부터 격렬하기 짝이 없는 연주를 선보이는데 Dave Suzuki의 통통 튀는 드럼 사운드가 은근 재미있다. 이 곡에서도 멜로딕한 속주로 이루어진 솔로들이 계속 등장하여 짧지 않은 6분대의 곡을 좀 더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특히 곡 후반부에서는 드럼+리드 기타+배킹 보컬+베이스를 전부 소화한 Dave Suzuki의 다재다능함을 엿볼 수 있다.
인트로를 제외하고 앨범 내에서 가장 짧은 Devoured Elysium은 비록 짧지만 대곡들에 뒤지지 않는 임팩트를 남겨준다. 격렬함 속에서도 귀에 착착 감기는 리프들이 인상적이며, 역시나 멜로딕한 리드 기타 플레이가 어우러지는 비장미가 독보적이다. 곡 중후반부에선 육중한 브레이크다운으로 한 번 더 이목을 집중시키고, 마무리까지 깔끔하게 소화해내며 비교적 짧아도 있을 건 다 있는 구성을 보여준다.
5번 트랙 Savior to None... Failure for All...도 마찬가지로 이전까지의 스타일을 유지하며 빡세게 달려주는데, 한편 이 곡에서는 중독성 있는 후렴구 파트 등이 기억에 남았다. Glen이 Your lord...을 선창하면 Dave가 뒷부분의 가사를 이어받는 부분이 재미있었고, Savior To None... Failure For All 을 되풀이하는 후렴구 파트도 인상적이었다.
이어지는 곡 Unleashed Hell은 "Vaipro diabo seu filho da puta!"라는 문장을 거칠게 내뱉으며 시작하는데, 포르투갈어로 ‘지옥에나 가라 개자식아!’라는 뜻이다. 아무튼 이 곡도 초반부터 내달리다가 중반부 즈음부터 리드 기타가 주도하는 비장미를 연출하는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Dave의 쏟아지는 리드 기타 멜로디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한편 앨범 후반부로 접어들며 다시 7분 이상의 곡들이 등장하기 시작하고, 그 첫 번째 곡인 Rush of Deliverance에서 대곡다운 뚜렷한 완급조절을 느낄 수 있다. 이 곡도 맛깔나는 리프들과 멋진 멜로디가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제법 탄탄한 구성도 눈여겨 볼만하다.
여덟 번째 곡 At War with God 또한 여전히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제는 슬슬 늘어지는 것 같다 싶다가도 적재적소에서 솔로가 터져 나오며 분위가 전환되는 곡 구성 덕분에 집중력을 유지해나가며 들을 수 있다.
대미를 장식하는 10분짜리 마지막 대곡 Entwined by Vengeance는 타이틀곡 Dechristianize와 함께 Tony Lazaro가 개인적으로 애착을 지니고 있는 곡이라고 한다. 그만큼 도입부부터 좀 더 캐치한 리프가 돋보이고, 거칠게 몰아붙이는 전개를 펼쳐나가다가 어쿠스틱 기타 솔로가 등장하며 분위기를 바꾼다. 3집 Forever Underground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스페인풍 어쿠스틱 기타가 다시 등장한 것인데, 마지막 비밀병기로 숨겨두다가 이 마지막 곡에서 사용한 느낌을 준다. 그 뒤로 이어지는 비장미 넘치는 전개 역시 Dechristianize에 못지않게 멋진 멜로디가 수를 놓으며, 곡 막바지에는 도입부가 되풀이되는 수미상관적 구조를 통해 앨범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한다.
이렇듯 이 작품은 1번 트랙 인트로를 제외하고 평균 7분이 넘는 대곡들로 구성된 한 시간에 달하는 데스 메탈 대작이다. 보통 올드스쿨 데스 메탈 밴드들의 앨범 러닝 타임은 대개 40분대 내외이며 대곡 위주의 작곡 또한 보기 어렵다는 것을 고려하면(프로그레시브/둠 계열과 혼합된 경우는 제외) 이들의 곡과 앨범 구성이 갖는 특색은 실로 독보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의 대곡 지향적인 시도가 최대치에 달했던 것은 4집 Dawn of the Apocalypse였지만, 이 작품은 더욱 혁신적인 시도를 더하며 다른 올드스쿨 데스 메탈 밴드들이 지지부진하던 2000년대에 오히려 이들의 전성기를 누리게 해준 앨범이다.
다만 이들 후기작들의 대곡 위주 곡과 앨범의 긴 러닝타임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은 다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요인이라고도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Metallica의 경우처럼 대곡 위주의 앨범 구성은 흔히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곤 하는데, Vital Remains의 경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멜로딕한 솔로와 좀 더 다채롭고 비장미 있는 구성을 선보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한 시간짜리 데스 메탈 앨범을 정주행하는 것에서 오는 약간의 피로감은 미처 지우지 못한 느낌을 주기도 했다. 특히 전작 Dawn of the Apocalypse와도 달리 중간에 쉬어 가는 짤막한 트랙조차 없이 모든 트랙들이 강강강강 정공법을 택하고 있어서 이러한 피로감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녹음 측면에서 메인 보컬의 목소리가 리듬 기타에 비해 다소 커서 몇몇 리프들이 잘 들리지 않는 느낌도 약간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은 굳이 끄집어낸 지엽적인 문제이며 어디까지나 이 앨범은 분명히 크게 성공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의 영향력을 보여주는 일례로 이 작품 이후 Glen Benton의 본가 Deicide에서 좀 더 멜로딕한 솔로가 강조되었으며 특히 The Stench of Redemption 앨범에서 Vital Remains 못지않게 멜로딕한 솔로가 등장하는 것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이 작품이 성공한 이유를 데스 메탈의 스타 Glen Benton이 참여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도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작품의 성공 요인을 꾸준히 성장해오며 점차 혁신적인 시도를 계속해온 밴드 내부적인 측면에서 찾고 싶다. 이들은 정규 1, 2집부터 7~8분대의 대곡을 첫 번째 트랙에 배치하는 등의 시도를 했을 뿐 아니라 때때로 키보드를 활용하여 더욱 스산하고 웅장한 분위기를 연출해내기도 했다. 또한 Dave Suzuki가 들어온 3, 4집에서는 어쿠스틱 기타 솔로와 점차 멜로딕해지는 기타 솔로, 그리고 아예 대곡 위주로 만들어가는 앨범 구성을 보여주었는데, 이와 같이 이들은 안주하는 법 없이 지속적으로 변화해나가며 혁신을 추구해 온 것이다.
마찬가지로 5집 Dechristianize에서의 혁신적인 면모는 네오클래시컬한 기타 솔로의 대두와 에픽함과 격렬함이 공존하는 스타일로 이루어졌으며, 여기에 Glen Benton이라는 유명 보컬이 제 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하면서 이전까지 볼 수 없었던 특색 있고 거대한 데스 메탈 앨범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작품의 성공은 끊임없이 새로운 혁신을 추구해온 Vital Remains가 얻을 수 있었던 값진 성과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안 그래도 격렬한 데스 메탈에 대곡 위주의 구성과 한 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까지 더해지면서 필히 늘어지고 지루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들은 멜로디가 부각되는 솔로와 이에 맞게 전환되는 곡의 완급조절을 통해 염려스러웠던 점을 100%는 아니더라도 상당 부분 극복해 냈다. 특히 적재적소에 배치된 Dave Suzuki의 솔로들은 마치 기름진 음식을 먹을 때 마시는 청량 음료 수준으로 기가 막힌 조화를 이루며 자칫하면 쉽게 물릴 수 있는 한 시간짜리 데스 메탈 앨범의 성공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한다.
솔로 등을 제외하고 작곡의 99%를 담당한 Tony Lazaro의 역량 또한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밴드의 유일한 원년 멤버로서 그는 앨범들을 만들어 오며 이전 앨범들이 성공했다고 해서 거기서 멈추지 않고 항상 더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뷰에서 Dechristianize 녹음 당시 미처 수록되지 못하고 남은 곡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는 필러 트랙은 만들지 않는다. 우리가 가진 것들은 100% 전부 앨범에 담아냈다.”라고 답한 것처럼 음악에 모든 열정을 쏟아붓는 인물이다.
실제로 그는 Dave Suzuki가 12년간 밴드에 재직한 이후 개인적 사정으로 인해 밴드에서 탈퇴하기 전 “우리 둘 중에 한 명이 밴드를 그만두게 될지라도 나머지 한명이 꼭 밴드를 계속해나가자”라고 결의를 다졌다고 하며, 이를 증명하듯 Tony Lazaro는 계속해서 밴드를 이끌어나가고 있다.
하지만 Dave Suzuki의 빈자리가 너무 컸던 것인지 Vital Remains는 2007년 발매된 6집 Icons of Evil 이후 2021년 현재까지 새 앨범을 발매하지 못하고 있다. 2010년대의 몇몇 인터뷰에서 Tony Lazaro는 그동안 투어 등의 사정으로 인해 계속 앨범 제작이 지연되었으나 이번엔 진짜로 곧 녹음을 시작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런 말은 몇 년 단위로 되풀이되며 팬들은 10년이 넘도록 새 앨범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이들을 위해 약간의 변명을 하자면 물론 이들이 계속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2020년 1월까지 이들은 계속 투어를 돌았고, 2018년에는 최초로 동남아시아 투어를 돌기도 했다. 또한 그들은 미발매 신곡 ‘In A World Without God’를 2015년~2016년 사이에 공연하기도 했고, Tony Lazaro는 자신이 이미 20여 곡의 작곡을 마친 상태라고도 했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2020년 Tony Lazaro의 건강이 악화된 것이 밴드의 가장 큰 위기가 되고 있다. 그는 2020년 4월 뇌종양 진단을 받은 이후 급격히 건강이 악화되어 결국 뇌수술을 받아야 했고, 수술 이후에도 당뇨와 뇌수막염 진단을 받는 등의 심각한 상황을 견뎌내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그의 의료비 등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행사가 진행되었고 여기에 Dave Suzuki 또한 모금을 독려하기 위해 미공개 음원을 한정적으로 발매하여 돈을 보태기도 했다.
그 뒤로는 2021년 현재까지 Vital Remains에 관한 별다른 소식은 없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듯이 Tony Lazaro의 건강에 더는 문제가 없기를 바랄 따름이다. Dave Suzuki의 탈퇴 이후 멤버들이 자주 바뀌었던 Vital Remains는 현재 2008년 영입된 베이시스트 Gator Collier와 Tony Lazaro만이 남아 있으며 사실상 활동이 중단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20~30년여 만에 새 앨범을 발매한 몇몇 올드스쿨 스래쉬, 데스 메탈 밴드들(Possessed, Exhorder 등)의 사례를 보면 이들도 음악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해 보고 싶다.
97/100 ... See More
8 lik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