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 Obliviscaris - Citadel (2014) 리뷰.
전곡은 한 3주 전부터 먼저 다 들었지만 며칠 전에 가사집이 도착하고나서야 드디어 써봅니다. 편의상 반말을 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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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 같이 있어야 성립할 수 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작품은 예술가를 만든다. 둘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생각하면 한 쪽은 산소만 축내는 인간 모양의 껍질, 다른 쪽은 아무렇게나 배열된 점, 선, 면, 색의 연속일 뿐이다. 이 둘을 같이 놓고 생각한 뒤에야 예술가는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느냐 바꾸느냐는 결정을 할 수 있고, 작품은 예술가의 시대상과 심리로부터 비롯된 의미를 얻는다.
NeO의 전작 Portal of I는 음악가된 입장에서 시각 예술을 흉내내어 강렬한 시각적인 심상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7개 그림으로 이루어진 단편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래에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의 흐름이란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부수고 시간축에 고정된 심상을 음악을 통해 묘사하면서 데뷔작에서 기대하는 참신함과 함께 묘사의 노련함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이 것이 필자가 Portal of I에 100점을 준 이유였다.
하지만 Portal of I를 통해 보여준 단편선은 완벽한 작품은 아니었다. Forget Not을 제외한 나머지 곡은 NeO라는 밴드 자신과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심상과 감정의 연속이었다. 밴드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탐미였다. 다른 밴드에 비교하면야 이 정도로 순수하게 탐미를 추구하는 메탈 곡이 드물기에 그만큼 주목을 받았던 것이지만, 다른 밴드를 생각하지 않고 NeO만을 염두에 둔다고 하면 청자의 공감을 얻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이들 작품은 청자들에게 NeO라는 밴드의 정체성을 각인시키기는 했다. 하지만 NeO가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들 작품, 더 나아가 청자에게 더해주는 경험이나 의미는 미흡했다. 작품 자체는 환상적이지만 작품을 만든 예술가와는 동떨어져있다는, 뭔가 말로 표현하기 미묘하지만 허전하거나 찝찝한 기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Portal of I와 본작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Citadel의 곡에는 앨범의 3개 곡을 묶어주는 화자가 있다. 이 화자가 3개 곡을 어떻게 묶는지에 대한 힌트는 곡의 제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첫번째 곡의 이름은 Triptych Lux, 즉 빛의 세 폭 그림인데, 곡 자체가 세 폭 그림처럼 3개의 장(Movements)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앨범의 3개 곡을 세 폭 그림으로 보고 해석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준다.
세 폭 그림(Triptych)은 하나의 그림 작품에 3개의 촛점이 존재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이 3개의 촛점은 교회의 제단 그림처럼 가운데에 있는 성모 마리아 그림을 성자 그림이 양 옆에서 보좌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고, 풍경화처럼 하나의 시점만으로는 다 볼 수 없는 드넓은 공간감을 나타낼 수도 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물리적으로 그림이 나누어지지는 않았지만 주목을 받는 사람이나 물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촛점이 나누어지는 등 여러가지 형태로 그려질 수 있다. 본 앨범은 음악 앨범인 만큼 하나의 그림, 하나의 촛점에 해당하는 내용이 음악의 재생 방향에 따라 일차원적으로 전개되는 형태를 띈다. "3개 부분으로 만들어진 곡"과 "3개 곡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레시브 메탈 앨범"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세 폭 그림(Triptych)라는 단어 하나로 함축한 것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로 멋진 작명이다.
화자가 세 폭 그림의 형식으로 그려내려는 심상은 비유 위에 비유가 걸쳐 다시 무언가를 비유하는, 국문학 식으로 표현하자면 돌려말하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가사를 쓴 Xenoyr는 이전작에서 그랬듯 서양화와 서양화가를 통해서 바탕이 되는 심상을 깔아주고 있다. Triptych Lux에서 보스(Hieronimus Bosch)의 "세속적 쾌락의 동산(Der Garten der Lüste)"은 세 폭 그림 양식의 원형으로 인용되었고,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의 작품 "반란 천사들의 추락(Der Sturz der rebellierenden Engel)"은 1번 코러스에서 말 그대로 천사가 캔버스로 떨어지는 묘사로 쓰였다. 벡신스키(Beksiński)의 황량하고 그로테스크한 작품세계 역시 Phyrric 전반부의 황량함을 표현하기 위해 인용되었다.
그와 동시에 작품 전반에는 블랙홀에 대한 비유가 매우 많다. 특히 관찰자가 블랙홀을 볼 때 발생하는 세가지 시점에 대한 묘사를 위 서양화의 묘사를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폭풍과 폭발하는 빛, 캔버스에 빨려들어가는 천사는 블랙홀 주변에서 (각운동량 보존으로 인해) 빨려들어가며 회전하는 성간 물질과 양극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질파에 대한 비유이고, Phyrric과 Devour Me, Colossus: Blackholes에서 보여주는 고통스럽지만 빠져나올 수 없이 빨려들어가는 묘사는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는 관찰자의 시점이고, Triptych Lux의 2~3번째 파트(Cynosure - Curator)에서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아이들(Lost Children)은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대상이 사건의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상대성 효과에 의해) 느려지다가 멈추는 것 처럼 관측되는 현상에 대한 묘사이다. 블랙홀에 대해 과학적으로 정확한 묘사를 가사로 표현하는 시각 예술로 했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다. 이 쯤만 해도 본작은 이미 음악계의 인터스텔라에 버금가는 위치를 확보했다.
이렇게 3개 트랙에 걸쳐서 노래한 블랙홀은 다시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한 비유로 쓰인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서 어떻게 삶에 대한 비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블랙홀이 형성되기 전, 항성을 이루는 물질은 자기 중력에 의해 뭉치다가 초신성으로 폭발하여 성간물질로 흩어지면서 성운을 이루고, 이 성운에서 새로운 항성이 다시 탄생한다. Blackholes의 마지막 2분간 역시 중력에 이끌려 빨려들어가던 무언가가 뭉치다가 빛나게 폭발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첫번째 트랙과 마지막 트랙의 주제가 수미상관을 이루고, Triptych Lux의 첫번째 파트가 탄생을 노래하다가 죽음을, Blackholes의 초중반까지 죽음의 고통을 노래하다가 후반에서 탄생을 노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블랙홀을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을 노래한 NeO는 이 순환의 과정은 변하지 않는, 성채처럼 튼튼한 진리라는 뜻에서 앨범 제목으로 성채(Citadel)라는 단어를 선정했다. 마지막 트랙 Blackholes에서 Citadel은 죽음의 장이자 삶의 장이라는 상반된 의미로 묘사되는데, 이는 사실 상반된 의미가 아니라 성채의 어디에 서있느냐에 따라 성채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듯이, 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어느 과정에 서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겪게 되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과정일 뿐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블랙홀이라는 3차원 공간 심상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Citadel이라는 단어로 함축했으니 한마디로 4차원적인 비유가 되는 셈인데, 필자가 4차원이라는 비유를 바보같다는 뜻이 아니라 멋있다는 뜻에서 한 것은 아마 본작이 처음일 것이다.
본작의 많은 해외 리뷰에서는 본작을 처음 들었을 때 예측이 불가능한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필자가 볼 때 본작이 이렇게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되는 이유는 Citadel이라는 4차원적인 비유와 심상을 3차원의 존재인 화자의 눈을 통해 음악이라는 2차원적인 좌표계에 투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높은 차원의 물체를 낮은 차원으로 투영시킬 때 좌표계에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났다 사라지는 현상과 같다. 사실 이런 특징은 명작으로 인정받는 시각 예술이 모두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앞뒤 사정이 있는 것을 그린 모든 2차원적인 그림은 앞뒤라는 시간의 흐름을 지닌 4차원의 존재가 3차원 공간에 투영된 이미지를 2차원으로 옮겨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NeO라는 밴드는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렸던 수많은 유명 화가나 예술가와 궤를 같이한다. 기타와 드럼, 베이스는 그림의 밑바탕인 동시에 강세를 주고, 그로울링과 클린 보컬은 그림의 주제와 명암을,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은 색채를 더한다. 작곡은 매우 세심하면서도 소포모어 징크스를 두려워하여 위축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자기 파트가 필요하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어 그림이 필요로 하는 요소를 더하지만, 전작과 다르게 쓸 데 없이 끼어드는 행위를 지양하고 오히려 음을 절제하는 동안 추진력을 모으다가 터뜨린다. 특히 전작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클린 보컬은 본작에서 화자의 기쁨과 슬픔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바이올린은 여기에다가 기타로 들려줄 수 없는 숙연함과 공포감까지 경험하도록 해주기에 해당 앨범에서 절대 빠지면 안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가사 쓰고 그로울링에 앨범 커버 담당인 Xenoyr, 클린 보컬과 바이올린을 담당하는 Tim Charles, 왼손잡이 베이스 Cygnus, 드럼 담당 Dan Presland, 그리고 (이상하게 해당 밴드에서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는) 기타리스트 Matt Klavins와 Benjamin Baret. 이들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작곡을 할 수 있도록 내한 공연을 꼭 가라. 두번 가라. 나가는 길에 티셔츠도 사라. 앨범을 두장 사서 친구에게 한 장 줘라. (LP를 구매하셨다는 분은 좋은 음악을 알아보시는 멋진 분이시다.)
점수: 100/100
킬링 트랙: 다 듣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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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예술가와 예술 작품이 같이 있어야 성립할 수 있다. 예술가는 작품을 만들고 작품은 예술가를 만든다. 둘을 따로 떨어뜨려놓고 생각하면 한 쪽은 산소만 축내는 인간 모양의 껍질, 다른 쪽은 아무렇게나 배열된 점, 선, 면, 색의 연속일 뿐이다. 이 둘을 같이 놓고 생각한 뒤에야 예술가는 이전 작품에서 보여준 자신의 방식을 고수하느냐 바꾸느냐는 결정을 할 수 있고, 작품은 예술가의 시대상과 심리로부터 비롯된 의미를 얻는다.
NeO의 전작 Portal of I는 음악가된 입장에서 시각 예술을 흉내내어 강렬한 시각적인 심상을 만들어내려는 시도였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7개 그림으로 이루어진 단편선이었다고 할 수 있다. 노래에는 과거로부터 미래로 나아가는 시간의 흐름이란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고정 관념을 부수고 시간축에 고정된 심상을 음악을 통해 묘사하면서 데뷔작에서 기대하는 참신함과 함께 묘사의 노련함을 아낌없이 선보였다. 이 것이 필자가 Portal of I에 100점을 준 이유였다.
하지만 Portal of I를 통해 보여준 단편선은 완벽한 작품은 아니었다. Forget Not을 제외한 나머지 곡은 NeO라는 밴드 자신과는 별다른 연관성이 없는 심상과 감정의 연속이었다. 밴드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탐미였다. 다른 밴드에 비교하면야 이 정도로 순수하게 탐미를 추구하는 메탈 곡이 드물기에 그만큼 주목을 받았던 것이지만, 다른 밴드를 생각하지 않고 NeO만을 염두에 둔다고 하면 청자의 공감을 얻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이들 작품은 청자들에게 NeO라는 밴드의 정체성을 각인시키기는 했다. 하지만 NeO가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들 작품, 더 나아가 청자에게 더해주는 경험이나 의미는 미흡했다. 작품 자체는 환상적이지만 작품을 만든 예술가와는 동떨어져있다는, 뭔가 말로 표현하기 미묘하지만 허전하거나 찝찝한 기분이 생길 수 밖에 없다.
Portal of I와 본작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Citadel의 곡에는 앨범의 3개 곡을 묶어주는 화자가 있다. 이 화자가 3개 곡을 어떻게 묶는지에 대한 힌트는 곡의 제목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첫번째 곡의 이름은 Triptych Lux, 즉 빛의 세 폭 그림인데, 곡 자체가 세 폭 그림처럼 3개의 장(Movements)으로 이루어져있음을 알려주는 동시에, 앨범의 3개 곡을 세 폭 그림으로 보고 해석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해준다.
세 폭 그림(Triptych)은 하나의 그림 작품에 3개의 촛점이 존재하는 작품을 일컫는다. 이 3개의 촛점은 교회의 제단 그림처럼 가운데에 있는 성모 마리아 그림을 성자 그림이 양 옆에서 보좌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고, 풍경화처럼 하나의 시점만으로는 다 볼 수 없는 드넓은 공간감을 나타낼 수도 있고, 피카소의 게르니카처럼 물리적으로 그림이 나누어지지는 않았지만 주목을 받는 사람이나 물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촛점이 나누어지는 등 여러가지 형태로 그려질 수 있다. 본 앨범은 음악 앨범인 만큼 하나의 그림, 하나의 촛점에 해당하는 내용이 음악의 재생 방향에 따라 일차원적으로 전개되는 형태를 띈다. "3개 부분으로 만들어진 곡"과 "3개 곡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레시브 메탈 앨범"이라는 두가지 의미를 세 폭 그림(Triptych)라는 단어 하나로 함축한 것은 무릎을 탁 치게 만들 정도로 멋진 작명이다.
화자가 세 폭 그림의 형식으로 그려내려는 심상은 비유 위에 비유가 걸쳐 다시 무언가를 비유하는, 국문학 식으로 표현하자면 돌려말하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우선 가사를 쓴 Xenoyr는 이전작에서 그랬듯 서양화와 서양화가를 통해서 바탕이 되는 심상을 깔아주고 있다. Triptych Lux에서 보스(Hieronimus Bosch)의 "세속적 쾌락의 동산(Der Garten der Lüste)"은 세 폭 그림 양식의 원형으로 인용되었고, 브뤼헐(Pieter Brueghel de Oude)의 작품 "반란 천사들의 추락(Der Sturz der rebellierenden Engel)"은 1번 코러스에서 말 그대로 천사가 캔버스로 떨어지는 묘사로 쓰였다. 벡신스키(Beksiński)의 황량하고 그로테스크한 작품세계 역시 Phyrric 전반부의 황량함을 표현하기 위해 인용되었다.
그와 동시에 작품 전반에는 블랙홀에 대한 비유가 매우 많다. 특히 관찰자가 블랙홀을 볼 때 발생하는 세가지 시점에 대한 묘사를 위 서양화의 묘사를 통해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폭풍과 폭발하는 빛, 캔버스에 빨려들어가는 천사는 블랙홀 주변에서 (각운동량 보존으로 인해) 빨려들어가며 회전하는 성간 물질과 양극에서 뿜어져나오는 물질파에 대한 비유이고, Phyrric과 Devour Me, Colossus: Blackholes에서 보여주는 고통스럽지만 빠져나올 수 없이 빨려들어가는 묘사는 블랙홀에 빠져들어가는 관찰자의 시점이고, Triptych Lux의 2~3번째 파트(Cynosure - Curator)에서 이야기하는 잃어버린 아이들(Lost Children)은 외부 관찰자의 입장에서 볼 때 블랙홀에 빨려들어가는 대상이 사건의 지평선에 가까워질수록 (상대성 효과에 의해) 느려지다가 멈추는 것 처럼 관측되는 현상에 대한 묘사이다. 블랙홀에 대해 과학적으로 정확한 묘사를 가사로 표현하는 시각 예술로 했다는 것이 상당히 놀랍다. 이 쯤만 해도 본작은 이미 음악계의 인터스텔라에 버금가는 위치를 확보했다.
이렇게 3개 트랙에 걸쳐서 노래한 블랙홀은 다시 삶과 죽음의 순환에 대한 비유로 쓰인다.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에서 어떻게 삶에 대한 비유를 찾을 수 있을까? 그 해답은 간단하다. 블랙홀이 형성되기 전, 항성을 이루는 물질은 자기 중력에 의해 뭉치다가 초신성으로 폭발하여 성간물질로 흩어지면서 성운을 이루고, 이 성운에서 새로운 항성이 다시 탄생한다. Blackholes의 마지막 2분간 역시 중력에 이끌려 빨려들어가던 무언가가 뭉치다가 빛나게 폭발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첫번째 트랙과 마지막 트랙의 주제가 수미상관을 이루고, Triptych Lux의 첫번째 파트가 탄생을 노래하다가 죽음을, Blackholes의 초중반까지 죽음의 고통을 노래하다가 후반에서 탄생을 노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블랙홀을 통해 삶과 죽음의 순환을 노래한 NeO는 이 순환의 과정은 변하지 않는, 성채처럼 튼튼한 진리라는 뜻에서 앨범 제목으로 성채(Citadel)라는 단어를 선정했다. 마지막 트랙 Blackholes에서 Citadel은 죽음의 장이자 삶의 장이라는 상반된 의미로 묘사되는데, 이는 사실 상반된 의미가 아니라 성채의 어디에 서있느냐에 따라 성채의 모습이 다르게 보이듯이, 삶과 죽음의 순환에서 어느 과정에 서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모습을 겪게 되지만 사실은 모두 같은 과정일 뿐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블랙홀이라는 3차원 공간 심상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Citadel이라는 단어로 함축했으니 한마디로 4차원적인 비유가 되는 셈인데, 필자가 4차원이라는 비유를 바보같다는 뜻이 아니라 멋있다는 뜻에서 한 것은 아마 본작이 처음일 것이다.
본작의 많은 해외 리뷰에서는 본작을 처음 들었을 때 예측이 불가능한 작품이라고 평가하였다. 필자가 볼 때 본작이 이렇게 예측 불가능하게 전개되는 이유는 Citadel이라는 4차원적인 비유와 심상을 3차원의 존재인 화자의 눈을 통해 음악이라는 2차원적인 좌표계에 투영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높은 차원의 물체를 낮은 차원으로 투영시킬 때 좌표계에 없던 것이 갑자기 생겨났다 사라지는 현상과 같다. 사실 이런 특징은 명작으로 인정받는 시각 예술이 모두 가지고 있는 공통점이다. 앞뒤 사정이 있는 것을 그린 모든 2차원적인 그림은 앞뒤라는 시간의 흐름을 지닌 4차원의 존재가 3차원 공간에 투영된 이미지를 2차원으로 옮겨 그린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NeO라는 밴드는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그렸던 수많은 유명 화가나 예술가와 궤를 같이한다. 기타와 드럼, 베이스는 그림의 밑바탕인 동시에 강세를 주고, 그로울링과 클린 보컬은 그림의 주제와 명암을, 마지막으로 바이올린은 색채를 더한다. 작곡은 매우 세심하면서도 소포모어 징크스를 두려워하여 위축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자기 파트가 필요하다 싶으면 주저하지 않고 뛰어들어 그림이 필요로 하는 요소를 더하지만, 전작과 다르게 쓸 데 없이 끼어드는 행위를 지양하고 오히려 음을 절제하는 동안 추진력을 모으다가 터뜨린다. 특히 전작에서 호불호가 갈렸던 클린 보컬은 본작에서 화자의 기쁨과 슬픔을 나타내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바이올린은 여기에다가 기타로 들려줄 수 없는 숙연함과 공포감까지 경험하도록 해주기에 해당 앨범에서 절대 빠지면 안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가사 쓰고 그로울링에 앨범 커버 담당인 Xenoyr, 클린 보컬과 바이올린을 담당하는 Tim Charles, 왼손잡이 베이스 Cygnus, 드럼 담당 Dan Presland, 그리고 (이상하게 해당 밴드에서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있는) 기타리스트 Matt Klavins와 Benjamin Baret. 이들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작곡을 할 수 있도록 내한 공연을 꼭 가라. 두번 가라. 나가는 길에 티셔츠도 사라. 앨범을 두장 사서 친구에게 한 장 줘라. (LP를 구매하셨다는 분은 좋은 음악을 알아보시는 멋진 분이시다.)
점수: 100/100
킬링 트랙: 다 듣자.
Quanic 2014-11-16 13:52 | ||
굉장합니다.. 이런 초고차원 가사를 쓴 Xen도 그렇고 그걸 이해하시는 Deftcrow님도... 엄청나네요... 혹시 이 분야에 교양이 있으신가요? 근데 이렇게글이 길면 실제 리뷰란에 다 넣어질까요? ㅎㅎ | ||
rag911 2014-11-16 14:33 | ||
대단하십니다..똑같은 앨범을 들었는데 이처럼 다양한 표현력에 곡마다 해석하는 능력까지 이정도로 리뷰쓸려면 얼마나 공부하고 음악을 들어야 하는지.. | ||
DeepCold 2014-11-16 14:41 | ||
내공이 아주 그냥... 혹시 미술 전공하신 분인가요? | ||
제주순둥이 2014-11-16 14:53 | ||
뭐지...여기서 나가야 겠어.. | ||
IntraVenus 2014-11-16 15:34 | ||
이야..... 리뷰 잘 읽었습니다. | ||
녹터노스 2014-11-16 17:56 | ||
엄청 멋진 리뷰네요 잘 읽었습니다. 확실히 전작에 비해서는 앨범 전체적으로 짜임새있는 맛이 느껴지는 앨범이더군요 | ||
caLintZ 2014-11-16 20:13 | ||
엄청난 리뷰입니다. 리뷰에 평점을 드리고싶을정도에요. | ||
Redretina 2014-11-17 00:30 | ||
대단합니다.. 개인적으로 미술에 정말 조예가 없는 편인데 가사라도 천천히 읽어보면서 계속 들어봐야겠네요 | ||
TheBerzerker 2014-11-17 01:32 | ||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 ||
Southern Kor 2014-11-17 02:49 | ||
걍 망설이면 품절일테고 그래서 엘피 질러서 운좋게 득했네요 ㅋㅋㅋㅋ 시디로도 구하고싶어 미칠지경입니다. 너무좋은작품. | ||
DevilDoll 2014-11-17 08:24 | ||
명반에 명리뷰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
Anon-kun 2014-11-17 15:13 | ||
읽는것도 어렵네요 ;;; 올해 수험생들 국어시험볼때 이런기분이였으려나 ㅋㅋ | ||
구르는 돌 2014-11-17 20:18 | ||
잘 읽었습니다. | ||
marineblues 2014-11-18 00:10 | ||
이런 리뷰가 달려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구매욕구가 생기네요 | ||
▶ Ne Obliviscaris - Citadel (2014) 리뷰. [14]
2014-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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