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ognametal Legacy Review
Band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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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 The Sognametal Legacy |
Type | Boxed set |
Released | April 2, 2021 |
Genres | Melodic Black Metal, Black Metal |
Labels | Season of Mist |
Album rating : 100 / 100
Votes : 1 (1 review)
Votes : 1 (1 review)
September 3, 2022
Windir라는 밴드와 음악, Valfar라는 뮤지션에 대한 글은 Sognametal 리뷰에 소상히 적어놓았으므로, 오늘은 발파르의 생일을 기념하여 2014년 1월 11일에 발파르의 고향 Sogn 지역신문에 실렸던 인터뷰 기사 전체를 번역해 올려 본다.
기사는 총 3파트로서, 기사 소개와 발파르의 생전 인터뷰 구절들이 실린 1, 발파르의 어머니와 형의 인터뷰가 담긴 2, 발파르의 절친이자 윈디르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야를레 크볼레의 인터뷰가 담긴 3으로 구성된다.
*문장 속 (괄호) 안에 든 부연 설명은 본인이 직접 덧붙인 것이다.
1. 영원히 기억될 전설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Jan Inge Fardal 작성
다가오는 1월 14일은 타르예 바켄(발파르)이 비극적인 상황으로 죽은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곳 Stedje(송달 내 발파르의 묘지가 있는 곳)에는 그의 묘를 순례하는 유럽 전역의 팬들이 온다.
이 송달 출신의 다재다능했던 뮤지션은 국제 메탈 씬에서 대단한 입지를 갖고 있고, 이번 기사의 제목은 유튜브의 많은 댓글들 중 하나에서 따 온 것이다.
송나메탈(송달 지역의 메탈)을 창시한 이 뮤지션에 대한 많은 글, 음악으로서의 헌사들이 있다.
Sogn 신문은 이 특별한 사람이 소년으로서 자라나며 가장 가까이 지냈던 형제, 어머니, 친한 친구이자 뮤지션(Hvàll)을 만나보았다.
“저는 감히 자주 행동하지 않습니다(발파르가 당시 노르웨이 블랙메탈 씬과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에 선을 그으며 했던 말). 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블랙메탈)이 사타니즘과 교회 방화와만 관련이 있다고 믿어요.” -21.6.1991.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작곡하기로 마음먹었다 해서 쉽게 작곡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많은 시간을 혼자 앉아서 보내고, 그러다 보면 가끔 좋은 노래가 나옵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타니즘에 반대하며 언제나 그래왔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송나메탈이나 바이킹메탈입니다.” -14.6.1997. 그가 하고있는 것이 사타니즘과 관련이 있냐는 Sogn 신문의 질문에 대한 발파르의 답변
“저는 뿌리 깊은 송달 사람(sogndøl)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를 다루는 글(가사들)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저는 지역 역사에 아주 관심이 많고, 마을에 관한 책은 저에게 있어 위대한 성경과 같습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음반이 해외에서 이렇게나 잘 될 줄 알았다면, 저는 영어로 가사를 쓰는 것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타르예 바켄이 Arntor 음반에 대해
“그것이(음악이) 엄청나게 멀리 퍼져서, 가령 이탈리아 출신의 사람들이 제가 사는 곳을 알아내려고 할 때, (짜릿함으로) 미쳐버려요.”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2. 공허함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발파르의 어머니와 형 인터뷰)
Bjørg(발파르의 어머니)가 몇 년 전 무덤가에서 발견한 이 그림 액자는 러시아 팬들이 두고 간 것이다. -타르예를 그린 그림 사진
Bjørg: “타르예는 집안일이든 농장일이든 기꺼이 돕는 존재였고, 친절한 아들이었습니다.” -트랙터를 타고 있는 타르예의 사진
뵤르그 하우케라이(Bjørg Haukereid: 발파르의 어머니)와 베가르 바켄(Vegard Bakken: 발파르의 친형)은 타르예에 관한 기억으로 가득 찬 관(관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중세적인 앤티크 보관함의 모양으로, 발파르의 무덤가에 놓인 물건 등을 거두어 이곳에 보관 중이다.)을 살펴본다. -타르예를 기념하기 위한 보관함을 열어 보여주는 뵤르그와 베가르의 사진
타르예의 무덤에 서포트가 시작되었던 거의 10년 전부터, 그의 어머니 뵤르그 하우케라이는 세계 곳곳으로부터의 인사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겨우 25세의 나이에 숨을 거둔, '발파르'로 알려진 뮤지션 타르예 바켄의 무덤을 순례하기 위해 유럽 전역의 팬들이 이곳에 온다. 이번 1월 14일은 그 비극적 죽음이 있은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이것은 특별합니다. 매우 특별해요.” 타르예의 어머니 뵤르그가 말한다.
그녀는 아들에 관한 추억을 담은 작은 관(보관함)을 꺼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스테뎨 교회 묘지에 있는 아들의 무덤에서 여러 다양한 인사들을 받아왔다.
팬들이 가져다 놓는 것들은 사실상 모든 형태의 것들이다. 타르예를 위해 특별 제작한 티셔츠, 인터넷에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그린 어떤 러시아 팬의 그림, 많은 서면 인사말, 꽃, 작은 천사 등이 있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에서 온 것들이다.
“사람들이 두고 간 물건들은 그대로 방치하면 망가질 것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수집해 왔습니다.” 뵤르그가 말한다.
그 보관함에는 아들이 만든 각 cd들(윈디르 앨범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그렇게 자주 보관함을 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열어보기에 좋은 기회이군요.”
뵤르그가 말하며 국내외 많은 팬들이 타르예에게 전한 인사말들로 가득한 두꺼운 책을 보여주었다.
“알다시피, 저는 그의 엄마로서 그것을(그를 그리워하는 것을) 절대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렇게 젊은 나이의 아들을 잃어버린 것.
그리움이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매일.
하지만 삶은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허함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형 베가르에게 있어서도 공허함은 거대하다. 두 형제는 자라면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크고 힘이 센 베가르는 연약하고(섬세하고) 말이 빠른 타르예의 보디가드라는 놀림을 종종 받았다. 둘은 항상 함께였다.
또한 베가르는 거의 모든 윈디르 콘서트에 참석했었다.
그래서 타르예가 살아있었다면 26세가 되었을 그날 밤, 오슬로의 Rockefeller에서 있었던 추모 공연에서 그가 윈디르의 보컬을 맡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망 당시 타르예는 겨우 25세였다. 그에게 닥친 비극의 전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추측이 있어 왔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타르예가 Fagereggji에 있는 가족 오두막에 가고 싶어 했다는 것과, 그가 그에게 다가올 눈과 추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Reppastølen(송달에 있는 농지)을 지난 어느 시점에서, 그는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악화되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그는 Reppastølen에서 몇 미터 안 되는 곳에 누워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저체온증이 심해졌을 때, 뇌간이 잘못되어 극한 속에서 오히려 더위를 느끼게 되는 이상 탈의 증상). 그는 그렇게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고, 돌아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베가르가 조용히 말했다.
타르예가 26살이 되었을 그 밤에 있었던 Rockefeller에서의 추모 공연은 매진되었다.
뵤르그에게 이는 매우 특별한 밤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이 만든 음악과 함께한 첫 콘서트였던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분들이 타르예의 음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되어, 그의 어머니로서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더군요.
무대 위에서는 굉장히 무서워 보였던 뮤지션들이, 공연 뒤에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었어요.”
뵤르그가 Finntroll, Enslaved와 같은 밴드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했다.
오늘날에는, 그 음악 장르가 Melodi Grand Prix(노르웨이 공영 방송인 NRK에서 매년 주최하는 음악 경연)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들은 타르예가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슬퍼했습니다.” 베가르가 말했다.
- 집에 음악가이자 소년으로서 타르예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땠나요, 뵤르그?
“그가 죽기 전, 타르예는 우리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저에게 자원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친절했어요.
그는 여동생들인 힐데, 세실리에, 브레데를 집으로 데려오고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던, 지극히 일반적인 청년이었어요.” 뵤르그가 말한다.
딸들인 힐데와 세실리에의 이야기에 이어, 뵤르그는 정말 멋지고 좋은 오빠로서의 타르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진정한 양육자(노르웨이어로 omsorgsperson, 다른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였습니다.
어린 여동생을 Meieriet(송달에 있는 Studenthuset Meieriet. 펍이자 공연장으로, 지역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 Windir도 2002년에 이곳에서 공연한 바 있음)에서의 콘서트에 처음으로 데려가 주기도 했고, 차에 태워 Fjøra(가이랑에르 피오르 위쪽에 있는 동네)로 råning(노르웨이에서 주로 작은 마을들을 오가면서 목적 없이 배회하며 운전하는 여가 활동을 뜻하는 단어) 가주기도 했어요.”
그는 여동생을 위해 CD들도 만들어 주었는데,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것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좋아하는 여동생을 위해 음원을 구해다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한다.
“타르예는 메탈 음악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보다 차분한 것들도 작곡했습니다.”
자라면서, 타르예는 A4 인간 같은 부류(평범한 사람)가 아니었다. 그는 매우 까다롭고,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해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은 제대로 설명해 드려야겠군요. 그는 예술가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림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고요. 타르예는 진정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형 베가르가 그를 기억하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완벽하게 했습니다.
생각이 많고, 생각이 깊은 훌륭한 동생이었어요.”
어머니 뵤르그는 무대에서 그녀의 아들을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무대 위 사진은 동생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던 아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무대 위에서의 발파르 사진
“그가 무대에서 했던 것은 일종의 연극이었다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그는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뵤르그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뿌리와 방언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절대 타협이란 없었다.
“타르예만큼 진정한 송달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보다 더 폭넓은 지역 방언을 구사하지 못했어요. (실제 타르예의 방언은 송달 지역색이 매우 짙어서, 보통 타국 출신이더라도 같은 북유럽인들끼리는 인터뷰 등을 들을 때 대충 다 이해가 가능한데, 발파르의 말은 도통 알아듣질 못하는 반응이 많다.)
그리고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애향심이 깊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그는 어디에서나 목청껏 ‘송달이 최고다!’라고 외쳤어요.”
베가르는 동생이 좋은 유머 또한 지녔었고 종종 무대에서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그저 ‘블랙’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거리가 멀었어요. 우리는 정말 재미있는 추억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이 음악적 환경에서 길이 살아있을 하나의 형제이자, 아들, 뮤지션, 그리고 송달 사람(sogndøl).
그는 송달의 진정한 전설이다.
전설은 매일 오는 것이 아니다...
3. 타르예를 생각하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다
(Windir 베이시스트 Hvàll 인터뷰)
- Jarle Kvåle: 밴드 Vreid의 프론트맨이자 타르예 바켄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야를레 크볼레(Windir, Vreid의 베이시스트 Hvàll)는 타르예 바켄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둘은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타르예의 친형 베가르, 타르예, 그리고 야를레 세 명은 친밀한 3인조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필드에서 풋볼을 하고 놀았는데, 타르예는 골키퍼였다.
“우리는 우리만의 løkke(내야, 인필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저 위의 사우아파를라 경기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치열한 경기들을 하고는 했습니다.” 야를레는 말한다.
하지만 12~13세가 되자 풋볼은 점점 줄어들고, 두 친구 사이에는 음악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제 자라나면서의 음악 취향은, 아마도 타르예의 형(Vegard)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Kiss와 Metallica로 시작했지만, 곧 더 강한 음악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타르예는 마을의 아코디언 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1살에 아코디언을 갖게 되었고, 연주하는 법을 빠르게 배웠습니다. 그는 그곳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았습니다.” 야를레는 말한다.
1994년, 타르예는 원맨 밴드로서 Windir를 시작했다. 그는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첫 두 장의 음반들에서 모든 가사와 모든 음악을 직접 만들었다.
이웃에 사는 세 번째 음악 친구인 Jørn Holen(윈디르 드러머)은 타르예가 만든 모든 것에 드럼을 쳤는데, 당시 그는 야를레와 함께 Ulcus Molle라는 다른 밴드에 멤버로 소속되어 있었다.
그 십대 소년들이 적절한 음악적 플랫폼을 갖추는 데 가장 중요한 외적 요인을 제공했던 것은 Jørn의 아버지인 Svein Holen이었을 것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헛간에서 악기를 연습하도록 해주었다. 처음에는 작고 비좁은 방에서, 나중에는 훨씬 더 큰 곳에서 연습하게 해주어서, 젊은이들은 그곳을 개조하고 실내를 새로 장식했다고 한다.
“우리는 스바인에게 영원히 감사하고, 타르예도 그분께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고정된 리허설 시간이나 어른들의 결정도 필요 없이, 우리가 원할 때마다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인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양한 악기들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두 밴드(Windir, Ulcus Molle)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타르예에게는 그가 Windir를 확장할 준비가 되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었다.
“타르예는 탐구하는 사람이었고,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내기 좋아하는, 쉼 없는 영혼이었습니다.”
야를레는 다른 사람들이 타르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고 전한다.
1999년까지 각자 다른 두 밴드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긴밀히 협력했고 거의 항상 리허설을 함께 했다.
그들은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밤새도록 앉아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앉아서 송 오 피오라네 주(Sogn og Fjordane fylke, 그들의 고향 송달이 이곳에 위치)의 병원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한 아침처럼요.
우리가 어쩌다가 그 주제까지 오게 됐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그리하여 1999년, 타르예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준비가 되었고, 6인조 밴드로서의 Windir가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뒤 가장 친한 친구 야를레와 타르예 사이의 협력 또한 더 발전했다.
그들은 대부분의 가사와 곡들을 함께 작업했는데, 가급적이면 우선 서로 각자 작업한 뒤, 함께 앉아 각자 작업한 것들을 꿰매어 잇는 방식이었다. 또는 서로 팁을 공유했다.
야를레와 요른이 현재 함께 하고 있는 밴드인 Vreid는 거의 10년 전 빛을 보았고, 오늘날에는 훌륭한 국제적 경력을 지닌 밴드다.
Vreid는 국내(노르웨이) 및 국제 가장 큰 메탈 페스티벌들의 하이라이트이다. 그리고 많은 큰 투어들을 다닌다.
그때마다 밴드 멤버들은 어디에서나 Windir 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팬들에게서 Windir의 엠블럼이 있는 티셔츠들, 우리 밴드의 엠블럼과 타르예가 만들었던 윈디르 엠블럼 문신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타르예 본인은 문신을 전혀 하지 않았었음)
타르예를 크게 그린 문신들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CD, 레코드, 사진, 요컨대 가능한 모든 것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타르예, 또는 발파르가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주 큰 입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콘(우상)입니다. 많은 뮤지션들과 팬들 모두에게 위대한 롤 모델이지요.
그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 그가 어떻게 그런 입지를 갖게 되었다 생각합니까?
“그는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노르웨이 포크 멜로디들과 블랙메탈을 혼합했지요.
타르예는 지역 역사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이것을 ‘송달 지역의 메탈’을 위한 음악과 결합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송나메탈은 세계 메탈 씬에서 잘 알려진 스타일이고, 새로운 밴드들이 사용하려는 접근 방식과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모두 한 사람 덕분이지요. 모든 것을 독학하고, 매우 재능있던 한 사람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타르예는 위대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야를레 크볼레가 말한다.
봄에는 Vreid, Windir, 그리고 Ulcus Molle를 기념하는 투어를 계획 중이고, 여기서 타르예의 친형 Vegard가 Windir의 곡들에 보컬을 맡을 것이다.
“특별할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갔는지 참 우스울 지경입니다. 10년 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타르예에 대한 상실감은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그가 완전히 깨어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는 우리들 삶 속에 존재합니다.” 야를레 크볼레가 말한다.
야를레는 투어에서 오랜 곡들을 연주하는 것이 좋은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지만, 타르예를 그렇게 높이 여기는 팬들에게도 분명히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적절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저는 먼저 헛간으로 가서 옛 노래들(Windir 곡들)을 연습해야 합니다.
타르예 없이 하려니, 이상할 것 같네요...”
성장기 사진 1: 훗날 노르웨이와 세계 메탈 씬에 흔적을 남기게 될 두 남자. -타르예와 야를레의 어린 시절 사진
성장기 사진 2: 두 남자의 사진, 야를레가 왼쪽. -야를레와 타르예의 청년 시절 사진
1999년, Fimreite 전투(노르웨이 내분 시대 속 1184년에 송달 피오르에서 왕손 망누스와 섭정 스베레 세력 간 일어났던 해전으로, 발파르가 이에 관해 ‘1184’라는 곡과 이를 타이틀로 하는 3집 음반을 만들었음) 기념비 앞에서 촬영됨. -Windir 사진
리허설 방: 헛간의 리허설 방에 있는 Jørn Holen(윈디르 드러머)과 Jarle Kvåle(윈디르 베이시스트).
-
(번역 마침)
Gje han evig kvile
Gje han sjelefred
Gje han sælt minne
Pris hans sæle minne
Pris han evig liv
3. September 2022, In memory of Terje "Valfar" Bakken
기사는 총 3파트로서, 기사 소개와 발파르의 생전 인터뷰 구절들이 실린 1, 발파르의 어머니와 형의 인터뷰가 담긴 2, 발파르의 절친이자 윈디르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야를레 크볼레의 인터뷰가 담긴 3으로 구성된다.
*문장 속 (괄호) 안에 든 부연 설명은 본인이 직접 덧붙인 것이다.
1. 영원히 기억될 전설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Jan Inge Fardal 작성
다가오는 1월 14일은 타르예 바켄(발파르)이 비극적인 상황으로 죽은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곳 Stedje(송달 내 발파르의 묘지가 있는 곳)에는 그의 묘를 순례하는 유럽 전역의 팬들이 온다.
이 송달 출신의 다재다능했던 뮤지션은 국제 메탈 씬에서 대단한 입지를 갖고 있고, 이번 기사의 제목은 유튜브의 많은 댓글들 중 하나에서 따 온 것이다.
송나메탈(송달 지역의 메탈)을 창시한 이 뮤지션에 대한 많은 글, 음악으로서의 헌사들이 있다.
Sogn 신문은 이 특별한 사람이 소년으로서 자라나며 가장 가까이 지냈던 형제, 어머니, 친한 친구이자 뮤지션(Hvàll)을 만나보았다.
“저는 감히 자주 행동하지 않습니다(발파르가 당시 노르웨이 블랙메탈 씬과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에 선을 그으며 했던 말). 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블랙메탈)이 사타니즘과 교회 방화와만 관련이 있다고 믿어요.” -21.6.1991.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작곡하기로 마음먹었다 해서 쉽게 작곡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많은 시간을 혼자 앉아서 보내고, 그러다 보면 가끔 좋은 노래가 나옵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타니즘에 반대하며 언제나 그래왔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송나메탈이나 바이킹메탈입니다.” -14.6.1997. 그가 하고있는 것이 사타니즘과 관련이 있냐는 Sogn 신문의 질문에 대한 발파르의 답변
“저는 뿌리 깊은 송달 사람(sogndøl)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를 다루는 글(가사들)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저는 지역 역사에 아주 관심이 많고, 마을에 관한 책은 저에게 있어 위대한 성경과 같습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음반이 해외에서 이렇게나 잘 될 줄 알았다면, 저는 영어로 가사를 쓰는 것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타르예 바켄이 Arntor 음반에 대해
“그것이(음악이) 엄청나게 멀리 퍼져서, 가령 이탈리아 출신의 사람들이 제가 사는 곳을 알아내려고 할 때, (짜릿함으로) 미쳐버려요.”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2. 공허함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발파르의 어머니와 형 인터뷰)
Bjørg(발파르의 어머니)가 몇 년 전 무덤가에서 발견한 이 그림 액자는 러시아 팬들이 두고 간 것이다. -타르예를 그린 그림 사진
Bjørg: “타르예는 집안일이든 농장일이든 기꺼이 돕는 존재였고, 친절한 아들이었습니다.” -트랙터를 타고 있는 타르예의 사진
뵤르그 하우케라이(Bjørg Haukereid: 발파르의 어머니)와 베가르 바켄(Vegard Bakken: 발파르의 친형)은 타르예에 관한 기억으로 가득 찬 관(관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중세적인 앤티크 보관함의 모양으로, 발파르의 무덤가에 놓인 물건 등을 거두어 이곳에 보관 중이다.)을 살펴본다. -타르예를 기념하기 위한 보관함을 열어 보여주는 뵤르그와 베가르의 사진
타르예의 무덤에 서포트가 시작되었던 거의 10년 전부터, 그의 어머니 뵤르그 하우케라이는 세계 곳곳으로부터의 인사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겨우 25세의 나이에 숨을 거둔, '발파르'로 알려진 뮤지션 타르예 바켄의 무덤을 순례하기 위해 유럽 전역의 팬들이 이곳에 온다. 이번 1월 14일은 그 비극적 죽음이 있은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이것은 특별합니다. 매우 특별해요.” 타르예의 어머니 뵤르그가 말한다.
그녀는 아들에 관한 추억을 담은 작은 관(보관함)을 꺼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스테뎨 교회 묘지에 있는 아들의 무덤에서 여러 다양한 인사들을 받아왔다.
팬들이 가져다 놓는 것들은 사실상 모든 형태의 것들이다. 타르예를 위해 특별 제작한 티셔츠, 인터넷에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그린 어떤 러시아 팬의 그림, 많은 서면 인사말, 꽃, 작은 천사 등이 있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에서 온 것들이다.
“사람들이 두고 간 물건들은 그대로 방치하면 망가질 것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수집해 왔습니다.” 뵤르그가 말한다.
그 보관함에는 아들이 만든 각 cd들(윈디르 앨범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그렇게 자주 보관함을 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열어보기에 좋은 기회이군요.”
뵤르그가 말하며 국내외 많은 팬들이 타르예에게 전한 인사말들로 가득한 두꺼운 책을 보여주었다.
“알다시피, 저는 그의 엄마로서 그것을(그를 그리워하는 것을) 절대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렇게 젊은 나이의 아들을 잃어버린 것.
그리움이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매일.
하지만 삶은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허함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형 베가르에게 있어서도 공허함은 거대하다. 두 형제는 자라면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크고 힘이 센 베가르는 연약하고(섬세하고) 말이 빠른 타르예의 보디가드라는 놀림을 종종 받았다. 둘은 항상 함께였다.
또한 베가르는 거의 모든 윈디르 콘서트에 참석했었다.
그래서 타르예가 살아있었다면 26세가 되었을 그날 밤, 오슬로의 Rockefeller에서 있었던 추모 공연에서 그가 윈디르의 보컬을 맡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망 당시 타르예는 겨우 25세였다. 그에게 닥친 비극의 전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추측이 있어 왔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타르예가 Fagereggji에 있는 가족 오두막에 가고 싶어 했다는 것과, 그가 그에게 다가올 눈과 추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Reppastølen(송달에 있는 농지)을 지난 어느 시점에서, 그는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악화되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그는 Reppastølen에서 몇 미터 안 되는 곳에 누워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저체온증이 심해졌을 때, 뇌간이 잘못되어 극한 속에서 오히려 더위를 느끼게 되는 이상 탈의 증상). 그는 그렇게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고, 돌아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베가르가 조용히 말했다.
타르예가 26살이 되었을 그 밤에 있었던 Rockefeller에서의 추모 공연은 매진되었다.
뵤르그에게 이는 매우 특별한 밤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이 만든 음악과 함께한 첫 콘서트였던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분들이 타르예의 음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되어, 그의 어머니로서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더군요.
무대 위에서는 굉장히 무서워 보였던 뮤지션들이, 공연 뒤에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었어요.”
뵤르그가 Finntroll, Enslaved와 같은 밴드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했다.
오늘날에는, 그 음악 장르가 Melodi Grand Prix(노르웨이 공영 방송인 NRK에서 매년 주최하는 음악 경연)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들은 타르예가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슬퍼했습니다.” 베가르가 말했다.
- 집에 음악가이자 소년으로서 타르예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땠나요, 뵤르그?
“그가 죽기 전, 타르예는 우리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저에게 자원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친절했어요.
그는 여동생들인 힐데, 세실리에, 브레데를 집으로 데려오고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던, 지극히 일반적인 청년이었어요.” 뵤르그가 말한다.
딸들인 힐데와 세실리에의 이야기에 이어, 뵤르그는 정말 멋지고 좋은 오빠로서의 타르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진정한 양육자(노르웨이어로 omsorgsperson, 다른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였습니다.
어린 여동생을 Meieriet(송달에 있는 Studenthuset Meieriet. 펍이자 공연장으로, 지역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 Windir도 2002년에 이곳에서 공연한 바 있음)에서의 콘서트에 처음으로 데려가 주기도 했고, 차에 태워 Fjøra(가이랑에르 피오르 위쪽에 있는 동네)로 råning(노르웨이에서 주로 작은 마을들을 오가면서 목적 없이 배회하며 운전하는 여가 활동을 뜻하는 단어) 가주기도 했어요.”
그는 여동생을 위해 CD들도 만들어 주었는데,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것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좋아하는 여동생을 위해 음원을 구해다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한다.
“타르예는 메탈 음악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보다 차분한 것들도 작곡했습니다.”
자라면서, 타르예는 A4 인간 같은 부류(평범한 사람)가 아니었다. 그는 매우 까다롭고,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해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은 제대로 설명해 드려야겠군요. 그는 예술가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림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고요. 타르예는 진정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형 베가르가 그를 기억하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완벽하게 했습니다.
생각이 많고, 생각이 깊은 훌륭한 동생이었어요.”
어머니 뵤르그는 무대에서 그녀의 아들을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무대 위 사진은 동생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던 아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무대 위에서의 발파르 사진
“그가 무대에서 했던 것은 일종의 연극이었다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그는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뵤르그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뿌리와 방언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절대 타협이란 없었다.
“타르예만큼 진정한 송달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보다 더 폭넓은 지역 방언을 구사하지 못했어요. (실제 타르예의 방언은 송달 지역색이 매우 짙어서, 보통 타국 출신이더라도 같은 북유럽인들끼리는 인터뷰 등을 들을 때 대충 다 이해가 가능한데, 발파르의 말은 도통 알아듣질 못하는 반응이 많다.)
그리고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애향심이 깊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그는 어디에서나 목청껏 ‘송달이 최고다!’라고 외쳤어요.”
베가르는 동생이 좋은 유머 또한 지녔었고 종종 무대에서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그저 ‘블랙’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거리가 멀었어요. 우리는 정말 재미있는 추억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이 음악적 환경에서 길이 살아있을 하나의 형제이자, 아들, 뮤지션, 그리고 송달 사람(sogndøl).
그는 송달의 진정한 전설이다.
전설은 매일 오는 것이 아니다...
3. 타르예를 생각하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다
(Windir 베이시스트 Hvàll 인터뷰)
- Jarle Kvåle: 밴드 Vreid의 프론트맨이자 타르예 바켄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야를레 크볼레(Windir, Vreid의 베이시스트 Hvàll)는 타르예 바켄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둘은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타르예의 친형 베가르, 타르예, 그리고 야를레 세 명은 친밀한 3인조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필드에서 풋볼을 하고 놀았는데, 타르예는 골키퍼였다.
“우리는 우리만의 løkke(내야, 인필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저 위의 사우아파를라 경기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치열한 경기들을 하고는 했습니다.” 야를레는 말한다.
하지만 12~13세가 되자 풋볼은 점점 줄어들고, 두 친구 사이에는 음악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제 자라나면서의 음악 취향은, 아마도 타르예의 형(Vegard)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Kiss와 Metallica로 시작했지만, 곧 더 강한 음악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타르예는 마을의 아코디언 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1살에 아코디언을 갖게 되었고, 연주하는 법을 빠르게 배웠습니다. 그는 그곳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았습니다.” 야를레는 말한다.
1994년, 타르예는 원맨 밴드로서 Windir를 시작했다. 그는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첫 두 장의 음반들에서 모든 가사와 모든 음악을 직접 만들었다.
이웃에 사는 세 번째 음악 친구인 Jørn Holen(윈디르 드러머)은 타르예가 만든 모든 것에 드럼을 쳤는데, 당시 그는 야를레와 함께 Ulcus Molle라는 다른 밴드에 멤버로 소속되어 있었다.
그 십대 소년들이 적절한 음악적 플랫폼을 갖추는 데 가장 중요한 외적 요인을 제공했던 것은 Jørn의 아버지인 Svein Holen이었을 것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헛간에서 악기를 연습하도록 해주었다. 처음에는 작고 비좁은 방에서, 나중에는 훨씬 더 큰 곳에서 연습하게 해주어서, 젊은이들은 그곳을 개조하고 실내를 새로 장식했다고 한다.
“우리는 스바인에게 영원히 감사하고, 타르예도 그분께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고정된 리허설 시간이나 어른들의 결정도 필요 없이, 우리가 원할 때마다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인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양한 악기들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두 밴드(Windir, Ulcus Molle)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타르예에게는 그가 Windir를 확장할 준비가 되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었다.
“타르예는 탐구하는 사람이었고,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내기 좋아하는, 쉼 없는 영혼이었습니다.”
야를레는 다른 사람들이 타르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고 전한다.
1999년까지 각자 다른 두 밴드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긴밀히 협력했고 거의 항상 리허설을 함께 했다.
그들은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밤새도록 앉아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앉아서 송 오 피오라네 주(Sogn og Fjordane fylke, 그들의 고향 송달이 이곳에 위치)의 병원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한 아침처럼요.
우리가 어쩌다가 그 주제까지 오게 됐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그리하여 1999년, 타르예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준비가 되었고, 6인조 밴드로서의 Windir가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뒤 가장 친한 친구 야를레와 타르예 사이의 협력 또한 더 발전했다.
그들은 대부분의 가사와 곡들을 함께 작업했는데, 가급적이면 우선 서로 각자 작업한 뒤, 함께 앉아 각자 작업한 것들을 꿰매어 잇는 방식이었다. 또는 서로 팁을 공유했다.
야를레와 요른이 현재 함께 하고 있는 밴드인 Vreid는 거의 10년 전 빛을 보았고, 오늘날에는 훌륭한 국제적 경력을 지닌 밴드다.
Vreid는 국내(노르웨이) 및 국제 가장 큰 메탈 페스티벌들의 하이라이트이다. 그리고 많은 큰 투어들을 다닌다.
그때마다 밴드 멤버들은 어디에서나 Windir 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팬들에게서 Windir의 엠블럼이 있는 티셔츠들, 우리 밴드의 엠블럼과 타르예가 만들었던 윈디르 엠블럼 문신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타르예 본인은 문신을 전혀 하지 않았었음)
타르예를 크게 그린 문신들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CD, 레코드, 사진, 요컨대 가능한 모든 것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타르예, 또는 발파르가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주 큰 입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콘(우상)입니다. 많은 뮤지션들과 팬들 모두에게 위대한 롤 모델이지요.
그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 그가 어떻게 그런 입지를 갖게 되었다 생각합니까?
“그는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노르웨이 포크 멜로디들과 블랙메탈을 혼합했지요.
타르예는 지역 역사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이것을 ‘송달 지역의 메탈’을 위한 음악과 결합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송나메탈은 세계 메탈 씬에서 잘 알려진 스타일이고, 새로운 밴드들이 사용하려는 접근 방식과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모두 한 사람 덕분이지요. 모든 것을 독학하고, 매우 재능있던 한 사람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타르예는 위대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야를레 크볼레가 말한다.
봄에는 Vreid, Windir, 그리고 Ulcus Molle를 기념하는 투어를 계획 중이고, 여기서 타르예의 친형 Vegard가 Windir의 곡들에 보컬을 맡을 것이다.
“특별할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갔는지 참 우스울 지경입니다. 10년 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타르예에 대한 상실감은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그가 완전히 깨어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는 우리들 삶 속에 존재합니다.” 야를레 크볼레가 말한다.
야를레는 투어에서 오랜 곡들을 연주하는 것이 좋은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지만, 타르예를 그렇게 높이 여기는 팬들에게도 분명히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적절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저는 먼저 헛간으로 가서 옛 노래들(Windir 곡들)을 연습해야 합니다.
타르예 없이 하려니, 이상할 것 같네요...”
성장기 사진 1: 훗날 노르웨이와 세계 메탈 씬에 흔적을 남기게 될 두 남자. -타르예와 야를레의 어린 시절 사진
성장기 사진 2: 두 남자의 사진, 야를레가 왼쪽. -야를레와 타르예의 청년 시절 사진
1999년, Fimreite 전투(노르웨이 내분 시대 속 1184년에 송달 피오르에서 왕손 망누스와 섭정 스베레 세력 간 일어났던 해전으로, 발파르가 이에 관해 ‘1184’라는 곡과 이를 타이틀로 하는 3집 음반을 만들었음) 기념비 앞에서 촬영됨. -Windir 사진
리허설 방: 헛간의 리허설 방에 있는 Jørn Holen(윈디르 드러머)과 Jarle Kvåle(윈디르 베이시스트).
-
(번역 마침)
Gje han evig kvile
Gje han sjelefred
Gje han sælt minne
Pris hans sæle minne
Pris han evig liv
3. September 2022, In memory of Terje "Valfar" Bakken
4 likes
Track listing (Songs)
title | rating | votes | ||
---|---|---|---|---|
Vinyl 1 - Sóknardalr | ||||
1. | Sognariket Sine Krigarar | 5:35 | - | 0 |
2. | Det som var Haukareid | 5:40 | - | 0 |
3. | Mørket sin Fyrste | 7:26 | - | 0 |
4. | Sognariket si Herskarinne | 4:17 | - | 0 |
5. | I ei Krystallnatt | 5:15 | - | 0 |
6. | Røvhaugane | 5:32 | - | 0 |
7. | Likbør | 8:08 | - | 0 |
8. | Sóknardalr | 5:54 | - | 0 |
Vinyl 2 - Arntor | ||||
1. | Byrjing | 3:18 | - | 0 |
2. | Arntor, ein Windir | 6:57 | - | 0 |
3. | Kong Hydnes Haug | 6:37 | - | 0 |
4. | Svartesmeden og Lundamyrstrollet | 9:02 | - | 0 |
5. | Kampen | 6:37 | - | 0 |
6. | Saknet | 10:04 | - | 0 |
7. | Ending | 3:39 | - | 0 |
Vinyl 3 - 1184 | ||||
1. | Todeswalzer | 4:54 | - | 0 |
2. | 1184 | 5:28 | - | 0 |
3. | Dance of Mortal Lust | 5:45 | - | 0 |
4. | The Spiritlord | 6:11 | - | 0 |
5. | Heidra | 8:18 | - | 0 |
6. | Destroy | 6:30 | - | 0 |
7. | Black New Age | 4:54 | - | 0 |
8. | Journey to the End | 9:34 | - | 0 |
Vinyl 4 - Likferd | ||||
1. | Resurrection of the Wild | 5:52 | - | 0 |
2. | Martyrium | 5:00 | - | 0 |
3. | Despot | 6:01 | - | 0 |
4. | Blodssvik | 5:46 | - | 0 |
5. | Fagning | 8:31 | - | 0 |
6. | On the Mountain of Goats | 5:24 | - | 0 |
7. | Dauden | 4:18 | - | 0 |
8. | Ætti Mørkna | 7:42 | - | 0 |
10,437 reviews
cover art | Artist | Album review | Reviewer | Rating | Date | Like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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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óknardalr Review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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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모 시절(1994-1995)의 두 테이프 녹음을 거쳐, 윈디르는 1997년 3월 23일, 드디어 첫 정규 앨범인 “Sóknardalr(송달)”을 발표한다. 앨범 제목은 발파르의 고향 ‘송달’의 옛 노르웨이식 이름이다. (1집과 2집의 가사는 전곡이 모두 송달 방언(sognemål)으로 작성되었고, 노래 제목들은 송달의 공식... Read More
Arntor Review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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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c 27, 2021 Likes : 6
어떻게 보면, 당시 1998년은 분명 노르웨이 블랙메탈, 특히 심포닉 블랙메탈에 있어서는 다양한 시도와 함께 ‘탈 정통화’가 가속되던 때였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심포닉과 포크, 바이킹의 특징을 조화시켜 특유의 ‘민족색’을 굳건히 지키고 발전해 오는 밴드의 앨범이 있었으니... Read More
Arntor Review (1999)
유로니무스 100/100
May 28, 2019 Likes : 6
첫 스튜디오 앨범부터 굉장한 음악적 의미와 완성도를 보여준 윈디르는 1999년 10월 11일 두 번째 작품 “Arntor”를 발표한다. 앨범 제목은 옛 송달의 지역민이자 전사였던 지역 영웅의 이름이다.
이미 수립한 자신만의 뚜렷한 테마적, 음악적 정체성을 더욱더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발전시킨... Read More
SognaMetal Review (2005) [Vi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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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 3, 2019 Likes : 3
Viking Black Metal이라는 통칭으로는 온전히 설명이 불가능한, 마치 그 무게를 잴 수 없는 거대한 바이킹선 혹은 그 높이를 알 수 없는 장엄한 피오르와 같은 음악적 역량과 깊이의 메탈밴드가 있다. 밴드의 정체성은 Viking 외에도 Folkloric, Melodic 등의 수식어들로 보완되며, national romanticism의 결... Read More
Likferd Review (2003)
유로니무스 100/100
May 28, 2019 Likes : 2
이전 작품들로써 노르웨이 전역은 물론 전 세계에 깊은 감동을 전한 윈디르는 2003년 3월 27일, 4집 “Likferd(송달 방언으로 ‘매장’ 혹은 ‘장례식’을 뜻한다)”를 낸다. 그때는 아무도 이 앨범이 그 제목처럼 윈디르의 마지막 정규 앨범이 될지 몰랐다.
발파르의 음악적 역량과 기량이 최... Read More
1184 Review (2001)
유로니무스 100/100
May 28, 2019 Likes : 2
2집 Arntor의 성공 이후, 윈디르는 2001년 11월 19일 대망의 3집 “1184”를 발표한다. 앨범 제목은 송달의 Fimreite 해전(Slaget ved Fimreite)이 일어난 해인 1184년을 의미한다.
이미 전작들부터 윈디르는 정체성과 독창성을 갖췄었고 그 자체로 완벽했지만, 발파르는 자신의 음악적 감수성과 능력치로... Read More
Likferd Review (2003)
구르는 돌 80/100
Aug 25, 2014 Likes : 1
젊은 나이에 사고로 요절한 Valfar 최후의 작품. Likferd는 마지막 작품답게 이전에 나온 앨범들보다 한층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구성이다. 이전 앨범들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은 바로 작품의 구성이었다. Arntor와 1184는 멜로디 부분에서는 Viking Metal, Melo... Read More
Arntor Review (1999)
구르는 돌 85/100
Sep 5, 2010 Likes : 1
Windir는 내가 외국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알게 된 밴드다. 상당히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구하기도 힘들어서 부득이하게 다운 받아서 들어봤다. 개인적으로 블랙메탈을 그렇게 까지 많이 들어보진 않았지만, 본작에서 발산하는 멜로디는 그 동안 들어본 것 중에서도 가장...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