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니무스's pro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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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ername | valfar (number: 20188) | ||
Name (Nick) | 유로니무스 (ex-valfar) | ||
Average of Ratings | 89.3 (266 albums) [ Rating detail ] | ||
Join Date | May 28, 2019 19:21 | Last Login | February 17, 2024 13:07 |
Point | 31,984 | Posts / Comments | 279 / 347 |
Login Days / Hits | 112 / 147 | ||
Country | – | Gender / Birth year | |
Interests | 노르웨이 전통문화, 민속예술 | ||
writer, editor interested in Norse traditions, old Norwegian farming culture, Norwegian history, Norwegian folk tunes, folktales and folk art loves Norwegian traditional music, Norwegian hardanger fiddle music, Norwegian classical music, Norwegian metal music favourite metal bands are Windir, Vreid, Cor Scorpii, Sigtyr | |||
Album Photos (82)
Lists written by 유로니무스
Title | Items | D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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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data |
39 artists
Artist | Genres | Country | Albums | Votes | Dat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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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urd | Pagan Black Metal | Germany | 4 | 2 | Jun 12, 2022 | |
Absurd | Black Metal, RAC | Germany | 4 | 6 | Jun 12, 2022 | |
Spells of Fog | Black Metal, Dungeon Synth | Australia | 1 | 1 | Jun 10, 2022 | |
Vomit | Death Metal | Norway | 6 | 1 | Sep 15, 2020 | |
Thyabhorrent | Death Metal, Thrash Metal | Norway | 3 | 1 | Sep 15, 2020 | |
Disgusting | Death Metal | Norway | 4 | 0 | Sep 15, 2020 | |
Balvaz | Death Metal | Norway | 3 | 0 | Sep 15, 2020 | |
Nightmare Visions | Death Metal, Doom Metal | United Kingdom | 8 | 0 | Sep 15, 2020 | |
Perdition Hearse | Black Metal | Norway | 3 | 1 | Jul 10, 2020 | |
Herr Der Qual | Black Metal | Finland | 1 | 1 | May 9, 2020 |
129 albums
cover art | Artist | Album | Release date | Rating | Votes | Date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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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datenlieder | 2022-11-09 | - | 0 | Jul 8, 2023 | ||||
Blutgebunden | 2022-11-09 | - | 0 | Jul 8, 2023 | ||||
In Memoriam | 2016-04-29 | - | 0 | Jan 29, 2023 | ||||
The Sight [Single] | 2012 | - | 0 | Jan 29, 2023 | ||||
Weltenfeind [EP] | 2020-05 | - | 0 | Jun 12, 2022 | ||||
Grimmige Volksmusik die Folterkammer-Sitzung [Demo] | 2019-12-24 | - | 0 | Jun 12, 2022 | ||||
Live & Raw in the North [Live] | 2015-10-03 | - | 0 | Jun 12, 2022 | ||||
Grösser als der Tod [EP] | 2014-06-08 | - | 0 | Jun 12, 2022 | ||||
Grabgesang [EP] | 2021-08-02 | 85 | 2 | Jun 12, 2022 | ||||
Pure Darkness [EP] | 2020-05-29 | - | 0 | Jun 12, 2022 |
31 reviews
Mayhem – De Mysteriis Dom. Sathanas (2020) [Boxed set] | 100/100 Jan 27, 2023 |
한 사람의 성격, 개성, 그리고 삶을 가장 정확하고 깊이 있게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남긴 기록물과 창작물을 보면 된다. 이 박스셋은 유로니무스의 음악과 글을 통해, 그라는 존재에 대해 깊이 고찰하고 심취하게 한다.
살해되기 얼마 전, 27. 7. 93에 유로니무스가 입고 있던 티셔츠의 문구는 ‘WHAT DO YOU WANT FOR NOTHING’이었다. ‘당신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소름 돋는 것은 유로니무스는 이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갖고 살았던 이였다는 것이다. 그가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추구했던 자신만의 음악적 소신과 비전, 그의 치밀하고도 치열했던 삶은 한마디로 예술 그 자체이며, 영혼에 전율을 흐르게 한다. 그리고 파면 팔수록 이 앨범이 유로니무스라는 인물과 참으로 많이 닮았다는 것, 이 앨범은 유로니무스의 존재 그 자체라 느껴진다. 1집 작업 당시에 관한 자료들을 통해 드러나는 메이헴 멤버들의 노력과 개별적 특색, 생각, 가치관, 진정성 있던 삶에 대해 제대로 알고 들으면, 더욱더 이 음반에 애착과 흥미가 생김은 물론이고 그동안 느껴왔던 음악적 감동 너머 한 차원 더 거대한 감동의 문이 열리리라 확신한다. 물론 이 박스셋을 구해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음원들을 접하며, ‘이미 알고 있던 완벽한 음악적 진가에 그 너머가 또 있다’는 충격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음악이 주는 엄청난 압도감과 영적 경험, 그리고 최고치로 끌어 올려지는 정신적 고양감에 대해서는 당장 박스셋에 포함된 96페이지짜리 하드커버 책 속 많은 뮤지션들의 리뷰, 그리고 먼저 이곳에 올리신 똘복님의 리뷰에서도 이미 잘 나타나 있기에, 본인은 이러한 위대한 음악적 업적을 남긴 장본인이자 메이헴, 나아가 노르웨이 블랙메탈의 선구자였던 ‘유로니무스’가 자신의 음악에 갖고 있던 아이디어와 비전을 적어보려 한다. 1. 유로니무스는 자신이 만든 이 앨범의 곡들에 어떠한 아이디어와 비전을 가지고 있었는가 첫 번째로, 본인은 유로니무스가 이 앨범을 작업하기 위해 Grieghallen 스튜디오에 방문하기 전, 프로듀서 Pytten에게 리허설 녹음테이프와 함께 보냈던 서신을 번역해 보았다. 이는 사운드 프로덕션의 지침으로서, 유로니무스가 자신이 만든 이 앨범의 각 수록곡에 대해 가지고 있던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비전이 여실히 드러난다. 더불어 유로니무스의 계획성 있는 꼼꼼한 성격을 엿볼 수 있다. (예전에 만하임이 ‘유로니무스가 밴드에서 까다로운 현학자 역할을 했다’라고 말했었는데, 진짜다.) 2. 이 앨범의 프로듀서는 메이헴과 작업하며 어떤 생각과 경험을 하였는가 두 번째로, 이 앨범의 프로듀서 Pytten의 인터뷰를 번역해 보았다. 그가 그리그할렌의 프로듀서로서 메이헴과 함께 스튜디오 작업을 했던 일화를 들어볼 수 있고, 이 앨범의 여러 레코딩 정보들에 관해 알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터뷰에는 유로니무스에 대한 그의 생각 또한 잘 드러나 있다. 당시 스튜디오 작업을 통해 메이헴뿐만 아니라 Burzum, Emperor, Immortal, Enslaved 등 많은 블랙메탈 밴드들을 지켜보았던 그였기에, 세상 밖에 잘 드러나지 않은 진귀한 이야기들 또한 접할 수 있다. 3. 유로니무스가 블랙메탈 및 자신의 음악에 대해 가진 비전은 무엇이었는가 세 번째로, 유로니무스의 음악성과 관련해 본인은 Enslaved의 Ivar Bjørnson(Enslaved의 음악적 철학을 정립한 주요 멤버)의 인터뷰 기사(Born To Rune: Enslaved On The History Of Enslaved by Dan Franklin) 일부를 발췌하여 번역하였다. Ivar는 유로니무스가 장르의 선구자이자 일종의 멘토로서 당대 자신의 밴드, 그리고 블랙메탈 전체에 주었던 영향 및 그가 가졌던 비전에 관해 잘 묘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 외 유로니무스에 대한 기타 흥미로운 사실들 및 그와 생전에 음악 외적으로 친했던 주변인들의 몇몇 회상을 간략히 적어봄으로써 그와 이 앨범의 존재를 기리는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유로니무스=외스타인(Øystein) 1. 외스타인이에요. 시간이 걸려서 미안한데 그간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어요. 어쨌든, 여기 우리 앨범에 넣을 트랙들이 실린 테이프예요. 곡들의 순서는 아직 못 정했어요. 테이프에는 먼저 4개의 예전 곡들과, 그 뒤의 새로운 4곡들이 수록돼 있어요. 새로운 곡들에 적용할 세부사항이 더 많은데, 이 레코딩에는 드러나 있지 않아요. 뒤에서 각 곡에 관해 이야기해드릴게요. 그거 외에도, 베이스 소리가 너무 날카로운데 이건 적합한 베이스 기타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스튜디오에 녹음하러 갈 땐 제대로 된 모델을 가져갈게요. 드럼 소리는 끔찍해요. 드럼이 중얼중얼거리는 것 같아요. 실제 빠르기대로 제대로 내달리는 소리가 나오는 게 중요한데 말이에요. 녹음테이프의 B면에는 참고를 위해 폴란드 밴드 Vader 곡들(Morbid Reich 데모 곡들)을 함께 넣었는데, 좋은 곡은 아니지만 프로덕션상 예시로서 드럼이 빠르게 잘 빠졌어요. 특히 두 번째 트랙이요. 우리는 스네어 드럼이 뒤집어진 플라스틱 양동이처럼 소리나는 문제를 겪고 있어요. 드러머가 빠르게 연주하면 타격감이 사라져버리는데, 빠른 템포에서는 더 부드럽게 치게 되니까 오직 톤만 남는 거예요. 이거 엄청나게 중요한 시정 사항이고, 우린 항상 이 같은 문제로 골치 아팠어요. 또한 탐스 소리는 천둥소리 같아야 하는데, 우린 이것에 리버브를 충분히 걸지 못하고 있어요. 레코딩에서 완전히 부재해요. 드럼에 13개나 14개의 마이크를 쓸 거예요. 이 중 2개는 오버헤드 마이크고요. 우리는 4개의 하이햇과 2개의 스네어 드럼을 사용해요. 좋아요. 첫 번째 트랙은 “Funeral Fog”에요. 상당히 단순하고 단도직입적인 곡이에요. 짚고 넘어갈 유일한 것은 두 번째 절 뒤에 나오는, 기타가 특별한 멜로디를 연주하는 후렴 같은 부분이에요. 어디에 있는 부분인지 금방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우린 여기에 뚜렷한 기타 하나를 추가해야 해요. 그런데 기타 파트를 일반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확실치 않아요, 아마도 다른 사운드를 내는 2개의 기타 트랙을 내내 둘 수 있겠고, 추가 멜로디를 그 위에 첨가하는 식으로 갈 수도 있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기타는 3개 트랙이 될 거예요. 우리는 오직 두 곡에서만 기타 솔로가 있는데, 아마도 솔로와 추가 멜로디들은 같은 트랙을 사용할 수 있겠지요. 베이스 기타는 두 개가 될 거예요, 하나는 퍼지한 일반 베이스로 카운트가 연주할 것이고, 다른 것은 프렛이 없는, 퍼즈 없는 베이스요. 가능하면 당신 베이스를 좀 빌리고 싶어요. 사운드가 명료하고 뚜렷해야 하지만, 너무 튀어나오면 안 돼요. 두 번째 트랙 - “The Freezing Moon”은 쉬워요. 기타와 베이스는 몇몇 부분들에서 각기 다른 것을 연주해요, 기타가 올라가면 베이스는 내려가고, 베이스가 올라가면 기타는 내려가는 식으로요. 그러나 둘은 떠다니며 하나로 통합되는 양상이기에, 청자는 어차피 이를 자세히 듣기 힘들 거예요. 3) “Pagan Fears”. 쉬운 부분 뒤에 오는 베이스 소리가 아주 뚜렷하게 도드라져야 해요, 왜냐면 이게 꽤나 멋진 멜로디거든요. 한 번에 하나의 음표만 있는 파트로서 비브라토가 있을 것인데, 정말 뚜렷하게 만든다면 경탄할 만한 사운드가 나올 거예요. 4) “Buried by Time and Dust”. 이 곡에는 피크를 온 현에 슬라이딩하고 곧바로 각각의 현을 피킹하며 올라가는 마이너 코드의 첫 트랙이 있어요. 템포가 빨라지고 바로 나오는 부분인데,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머지 트랙은 쉬워요, 다만 곡이 아주 빠르고 모든 걸 뚜렷하게 소리내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요. 흠, 혹여나 당신이 모든 게 매우 뚜렷해야 한다는 인상을 받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건 아니에요. 우린 언제나 엄청나게 육중하고 압도적인 사운드를 내왔고, 여전히 그걸 가져가야 해요. 그냥 세부적인 사항들 또한 잘 표현해내려는 것뿐이지요. 5) “Life Eternal”. 아주 특별한 트랙이에요, “The Freezing Moon”과 같은 스타일이에요. 오프닝 리프의 기타 멜로디가 뚜렷이 튀어나와야 하고, 동시에 마이너 코드의 기타를 추가할 거예요. 같은 리프가 끝부분에서도 반복되는데 거기서도 동일하게 적용하면 돼요. 곡이 진행됨에 따라 나오는 더 멋진 리프 속에서 또렷하게 튀어나와야 하는 베이스 멜로디가 있을 거예요. 이 테이프에서는 반밖에 들리지 않아요. 나중에 동일한 것을 연주하는 기타를 트랙에 추가해 실험해 볼 수 있어요. 곡이 다시 속도를 내면서 기타로 연주되는 추가 멜로디가 나올 거예요. 두 개의 기타 솔로가 서로의 위에서 층층이 연주되는 솔로 파트를 고려해 볼 수 있겠어요, 예를 들어 솔로의 절반이 끝나고 난 뒤에. 우린 아직 6, 7, 8번 곡들에는 이름을 정하지 않았어요, 아직 몇몇 부분 가사도 비어있어요. 그리고 보컬은 지금 레코딩하지 않을 거예요, 헝가리에서 오는 보컬리스트가 더 나중에 도착하거든요. 우리는 모든 악기군을 녹음한 뒤 믹스할 거예요. 그러면 보컬리스트가 리허설 할 때 우린 몇 주간 녹음된 곡들을 들을 수 있겠지요. 그리고 이곳에 다시 와 보컬을 녹음하고, 필요시 믹스에 변화를 줄 수도 있어요. 음, 6번 트랙(From the Dark Past)은 도입부에 슬라이딩 코드 및 스케일에서 벗어난 코드들로 이루어진 이상한 리프들이 있어요. 이 부분에서 매우 뚜렷한 기타가 필요해요.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하면, 여기(리허설 테이프)에서는 거의 들리지 않는 기타 멜로디가 계속 나와요. 그리고 매 4번째 마디는 기타의 베이스(6번째) 현을 동시에 피킹하는 마이너 코드가 있어요. 나는 이것을 두 대의 기타로 나누는 방법에 대한 몇몇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요. 그 뒤엔 마이너 코드로 넥을 아래위로 글라이드하는 리프와 동시에 기타 피크가 현들을 아래위로 슬라이드하는 리프가 있어요. 제정신이 아닌 사운드지만, 제대로 된 프로덕션이라면 아주 멋질 거예요. 우린 이번 트랙을 “스노레”라 부르는데, 얘한테서 몇몇 멋있는 리프들을 얻었기 때문이에요. 7) 이번 곡(Cursed In Eternity)은 아르페지오와 마이너 코드로 시작해요, 그리고 처음으로 우리가 메이저 코드도 사용해요. 무엇이 연주되는지 듣기 쉬울 텐데, 여기서도 우리는 기타를 둘로 분할해야 해요. 그 뒤엔 서서히 디미니쉬드 코드로의 이행이 있어요. 우리가 훨씬 빠르고 더 효율적인 사운드를 위해 재배열한 부분이에요. 그 뒤를 잇는 리프는 빠르고 꽤나 소음을 만드는데, 여기에 우리는 마이너 코드를 추가해야 해요. 테이프에서는 거의 안 들려요. 드럼이 빠르게 계속되는 부분 뒤에 오는 느린 기타 리프는 굉장히 헤비해야 해요. 여기에서 라이드 심벌이 기타 멜로디를 따라 연주되는 일은 없을 거예요, Jan(헬해머)이 항상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리허설 테이프에서는 그렇게 된 거예요. 드럼은 빠르게 가야 하는데, 우린 기타를 따라오는 징(gong)이나 케틀드럼(kettledrum) 소리를 추가하고 싶어요. Grieghallen에서 이와 같은 것들을 빌리는 것이 가능한가요? 모든 종류의 브루탈한 퍼커션 악기들이면 다 관심 있어요. 음, 아까 그 느린 파트 이후 드럼이 다시 빨라지고 나면, 얼마 후 마이너 코드의 아르페지오가 다시 시작돼요. 각 현의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음표끼리 서로 잘 섞여야 해요. 그럼에도 선명해야 하죠. 8) 이 곡(De Mysteriis Dom. Sathanas)이 가장 어려운 곡이에요. 많은 세부사항이 있고, 두드러져야 하는 코드들이 있어요. 시작 파트를 유지할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이걸 향상할 무언가 방법이 취해질 수 있다면 아마도요. 절이 시작할 때(처음에서 두 번째 리프), 기타와 베이스에서 마이너 코드와 추가 멜로디들의 믹스가 있어요. 이 리프들에 대해 더 이상 깊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니 스튜디오에서 우리가 연주하는 것을 직접 보여드리는 게 낫겠어요. 잠시 후에 후렴 같은 리프가 나오는데, 네 번째 마디마다 매번 한 음씩 올라가는 마이너 코드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거예요. 이 위에, 계속해서 다른 음들을 피킹하는 것이 있고, 나머지 리프는 초반에 연주되었던 아르페지오 마이너 코드와 스케일을 벗어난 코드의 조합이에요. 우리는 좋게 만들기 위해 이 리프들에 노력을 기울여야 할 거예요. 계속 다른 것을 연주함에도 사운드가 끔찍하게 단조로워요. 위에서 언급한 후렴에서는 네 번째 마디마다 기타와 비슷하게 조율된 탐이 필요해요. 그런 다음 상단 현에 아르페지오 마이너 코드가 다시 오기 전에 정지가 발생하는데, 이 또한 조화시키면서 구별시키기가 상당히 어려워요. 좋아요. 이게 모든 트랙에 대한 몇몇 것들이에요. 우린 “Funeral Fog”의 도입부를 위해 뭔가 하고 싶을 수도 있어요, 두고 봐야겠어요. 드럼용 마이크에 관하여; 2개의 베이스 드럼에 각각 하나씩, 플로어 탐을 포함한 4개의 탐에 각각 하나씩, 2개의 팀발에 하나, 그 외 다양한 심벌즈 등이 있어요. 나는 Jan(헬해머)이 어떻게 원하는지 잘 몰라요. 우리가 녹음 전날에 들러서 당신이 제안한 대로 드럼을 리깅할 수 있다면 아주 좋을 것 같아요. 보컬이 어떤 사운드인지 인상을 드리기 위해 테이프 마지막에 헝가리에서 온 보컬리스트의 곡을 넣었어요. 질문이 있으시면 저에게 전화해 주세요. 우리는 16일 화요일에 베르겐으로 떠날게요. 그나저나, 방금 Jan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가 탐을 트리거 할 수 있는지 궁금해하네요. 그런 다음 엄청 빠른 속도와 높은 음조의 탐 소용돌이를 쳐댈 수 있도록 아주 높게 튜닝하려고요. 좋아요, 이게 다예요. 또 봐요. 외스타인 2. 괄호 안의 내용은 본인의 부연 설명이다. Rødland: Grieghallen은 Old Funeral이 1990년에 첫 데모를 녹음한 이후로 노르웨이 블랙메탈 밴드들이 믿고 찾는 스튜디오가 되었습니다. Tore Brathseth (Old Funeral의 기타리스트)의 아버지가 당신을 예전부터 알고 지냈다고 하던데, 어떻게 된 건지 알려주실 수 있나요? Pytten: 네, 우리는 Os에 있는 같은 학교에 다녔는데, 그의 반에는 여학생들이 많고 내 반에는 적어서, 파티 같은 곳에 함께 모이다 보니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몇 년 후, 그가 전화를 걸어 내게 스튜디오가 있는지 물어보더군요. 밴드를 하는 자신의 아들이 음악을 녹음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을 도와줄 수 있냐는 물음에, 나는 “물론 도울 수 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음, 그들의 음악을 들어볼 때까지 기다리라”라고 말했어요. 그 밴드는 Old Funeral이었고, 당시 그들은 16세였습니다. 나는 이들이 헌신적이라는 것을 빠르게 알아챘고, 그들 중 일부는 자신들의 음악에 깊이 빠져있었으며 나머지는 그 음악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중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나는 한발 물러서서 그들이 성취하고자 하는 바를 배우고 이해하려 노력했습니다. 당시 그들은 매우 어렸어요. 다른 예로 Enslaved의 Ivar의 경우 저와 처음 대화했을 때 14~15세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Rødland: 그 후 Mayhem, Immortal, Burzum, Enslaved, Emperor, Gorgoroth 등의 밴드들이 당신의 스튜디오에서 그들의 명반들을 녹음했습니다. 이 새로운 장르와, 당신이 그들의 예술을 돕는 데 큰 역할을 한 그 밴드들을 어떻게 묘사하시겠습니까? Pytten: Old Funeral은 음악적으로 일종의 무정부 상태였습니다. 나는 락 음악에 익숙했고 그것에는 일정한 질서가 있었는데, 이 젊은이들이 혼돈과 함께 찾아온 것이었죠. 나는 새로운 용어들을 많이 배워야 했어요. 토레는 자신들의 음악엔 bonderiff와 pinneriff가 있다고 하더군요. Pinneriff는 나중에 블라스트 비트로 알려진 것이었죠. 그리고 bonderiff는 더 낭만적이고 유쾌했습니다. 나는 내 장비들을 다르게 사용해야 했고, 다르게 생각해야 했고, 테이프에 보컬을 녹음할 때 정말 큰 볼륨으로 다른 레벨을 적용하는 등 기존의 규칙들을 많이 깼습니다. Old Funeral 이후에 Amputation이 뒤따랐고, 더 많은 사람과 밴드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3~4개의 앨범 뒤에는 베르겐 밖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죠. Rødland: 이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기 전, 우리는 Grieghallen을 돌아보며 앨범 녹음에 사용된 여러 스튜디오 룸들을 살펴보았습니다. Pytten: 시간순으로 해봅시다. 모든 것은 Grieghallen 외부의 로딩 구역에서 시작됐습니다. Tore와 그의 밴드 멤버들이 장비와 악기를 가지고 처음 왔을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초기 블랙메탈 프로덕션에 꽤 많이 사용했던 무대로 짐들을 옮겼었습니다. 조정실은 창문이 있는 무대에 연결되어 있고, 조정실 옆에는 작은 녹음실이 있는데 이곳에도 무대 쪽으로 창이 있습니다. 이 방은 NRK(노르웨이 공영 방송) 사운드 스튜디오였습니다. 녹음실은 매우 건조해서 에코나 음색 같은 것들이 들리지 않고, 악기에서 들리는 소리는 주변 환경이 아닌 단순히 그 악기 자체가 주는 소리일 뿐입니다. 이 방들이 “De Mysteriis Dom. Sathanas”를 녹음하는 데 사용되었던 방들로, 지금까지 원래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를 재현하는 가장 진실된 방들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녹음실은 라이브 클래식 녹음의 논평을 위한 NRK의 더빙 스튜디오로서, 우리는 종종 NRK가 없는 밤이나 휴일에 몰래 들어가야 했습니다. Rødland: 건조한 음향 때문에 이 스튜디오 룸을 사용하셨나요? Pytten: 아니요, 단순히 실용적인 고려 사항 때문에 그 방을 선택했습니다. 음악, 장르 등의 발전 과정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미리 계획된 것이 아니라 실용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Rødland: 나중에 Grieghallen의 다른 스튜디오 룸도 사용했습니까? Pytten: 초기 앨범들은 NRK 룸과 콘서트홀에서 녹음되었습니다. 무대를 이용하는 사람이 없을 때만 작업을 할 수 있었는데, 이유는 두 가지에서였습니다. 나는 무대를 사용하고 싶었고, 우리가 작업하는 것들이 대부분 소리가 큰 것들이라 옆방 사람들에게 ‘소음’이 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레코드들을 밤늦게까지 많이 작업했습니다. 그 뒤에 나는 지하층으로 몇 년 동안 옮겼고, Enslaved가 그들의 첫 번째 앨범을 그곳에서 녹음했습니다. 그 녹음실은 아직 거기에 있어요. Immortal이 “Pure Holocaust”를 작업하기도 했지요. Harald(데모나즈)은 기타 소리가 매우 차가워야 한다는 비전이 있었어요. “Pure Holocaust”에서인지 “Battles in the North”에서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는 이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사운드를 원했고, 그의 밴드가 리허설 장소에서 사용하던 뿔 붙인 이상한 PA 스피커를 가져왔었어요. 우리는 밤새도록 작업했어요. 그리고 아마도 96년, 나는 3층에 큰 창문들로 Ulriken 산이 보이는 스튜디오 룸을 얻었습니다. Enslaved는 지하에서 Eld를 녹음하고 3층으로 올라왔어요. Emperor도 이곳에서 녹음했습니다. 그들은 매우 정교했어요. 그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한 비평가가 부정적인 의미에서 그 기타 소리가 벌떼 소리처럼 들린다고 말했던 것이 기억나는군요. Rødland: 당신은 Burzum이 이곳에서 데뷔 앨범을 녹음하면서 Euronymous를 알게 되었습니다. Euronymous는 그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였으며 War의 기타와 “Dungeons of Darkness”의 징 벨에도 기여했습니다. Pytten: 네, 유로니무스와 저는 음악에 대한 생각과 아이디어로써 즉시 유대감을 형성했고, 제가 믿기로, 그는 제가 그의 비전에 맞는 이런 종류의 음악을 다루는 방법과 경험을 (버줌 음악의 프로듀싱 과정을 통해) 얻었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만나서 앨범 작업을 시작하며 그것이 확인되었다고 생각해요. Rødland: 메이헴이 앨범을 녹음하러 왔을 때 어떤 기대와 방향성을 가지고 있었나요? 당신이 들어보고 프로덕션상 알맞은 방향으로 인도하게끔 그들이 사전에 녹음물을 주었었나요? Pytten: Øystein은 우리가 스튜디오에서 만나기 전에 각 곡에 대한 꽤 자세한 설명과 함께 리허설 테이프를 보냈습니다. 리허설 테이프에는 트랙들의 특징, 도전 과제 및 각 곡에서 달성해야 할 중요한 사항들이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프리프로덕션(pre-productions) 작업물처럼 미리 자료를 너무 많이 듣는 것에는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전에 프리프로덕션을 만든 밴드가 있었는데 그들은 계속해서 프리프로덕션을 언급했고 결국 나는 “내가 당신들에게 필요한 이유를 모르겠다, 당신들은 이미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해냈다”라고 말했지요. 앨범에서 Grieghallen 사운드를 원한다면, 내가 사전 프로덕션에서와 똑같이 해야 할 때는 얻을 수 없습니다. 나는 리허설에서 밴드가 앨범을 연주하는 것을 들으며 내 휴대폰으로 녹음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이는 앨범을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려하는 좋은 시작점이 됩니다. Rødland: Mayhem은 Bergen에 머물렀고 Grieghallen으로 오기 전에 일주일 정도 Os에 있는 Old Funeral의 장소에서 리허설을 했습니다. (옆에 있는 토레에게 한 말) Tore: 네, 저희 장소에 몇 번 와서 리허설을 했어요. 한 번은 Old Funeral 리허설 때였는데, 그들은 그곳에 앉아 우리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리허설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라인업으로 연주하는 것을 본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일 것입니다. Rødland: 메이헴은 녹음 당시에 보컬이 없었고, 1992년 6월 22일부터 29일까지 일주일 정도 기악 녹음을 했습니다. 밴드가 그 곡들로 오래간 리허설 해왔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순조로운 과정이었나요, 아니면 번거로움이 있었나요? Pytten: 메이헴 멤버들은 매우 준비가 잘 되어있었고, 함께 일하는 데 있어 축복이었습니다.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Jan Axel, Øystein, 그리고 저는 “자폐적인” 작업 방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우리는 오직 작업에만 집중했어요. Grieghallen은 여름 휴일 동안 문을 닫았기에, 우리는 메인 스테이지를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드럼 세팅부터 시작했습니다. Jan Axel은 매우 훌륭한 드러머이고, 그의 모든 드럼과 심벌에 관한 매우 상세한 관계를 숙지하고 있었기에, 자신의 드럼 사운드에서 무엇을 기대할지를 명확히 알고 있었어요. 아침 9시경, 나는 워밍업을 위해 체육관에 들른 Jan Axel을 만났습니다. 그가 준비된 10시 30분경, 우리는 드럼으로 시작했고 그는 더 이상 칠 수 없을 때까지 연주를 계속했습니다. 우리는 곡들에 매우 집중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우리는 모든 곡의 드럼부터 먼저 진행했습니다. 그는 나중에 몇 가지 추가 작업을 했어요. 그런 다음 기타 사운드를 진행했는데, 초반에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사람은 우리 세 명뿐이었습니다. 우리는 NRK의 작은 방, 그 더빙 스튜디오에서 Øystein의 기타를 리깅했고, 우리가 앨범을 작업하고 싶은 기본 사운드를 잡아냈습니다. 그 과정은 논쟁 없이 아주 순조로웠고, 우리 모두가 동의했던 세팅을 찾았으며, 우리는 더 이상의 번거로움 없이 앨범을 계속 녹음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세부사항에 대한 진정한 안목이 있었고 매우 훌륭한 음악가였으며 음색으로 자신들을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베이스를 녹음했습니다. Varg는 앨범에서 아주 좋은 업적을 냈고, 그는 내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음악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베이스는 음악에 아주 멋지게 추가되었습니다. Øystein이 베이스 라인의 개발에 상당히 관여했고, 그것을 Varg가 녹음했습니다. 정말 좋은 일이었어요. 나중에 앨범을 내고 나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Rødland: 이 과정에서 Øystein과 Varg의 관계는 어떠했습니까? Pytten: 그들은 음악의 영적 형제(spiritual brothers of music)와 같았습니다. Øystein은 초기 Burzum 앨범의 공동 프로듀서였고, Varg에게 익숙하지 않은 요구들을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지켜보기에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Varg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기를 원했어요. 92년 1월, 보름달이 뜬 주말에 Dungeons of Darkness의 징 소리를 즉흥 연주했을 때처럼, 그들은 아주 좋은 작업들을 같이 하는 것 같았어요. 그때 Øystein은 서서 챙그랑 울리는 징 소리를 내었고, Varg는 10-15미터 거리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마이크를 사용해서요. 그들은 한 팀이었습니다. Rødland: 앨범의 믹싱은 1년 뒤인 1993년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 어떤 변화를 인식하셨나요? Pytten: 둘 사이에서 약간의 긴장이 있음을 관찰했지만,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별개의 사회적 양극화라고 생각했지요. 밴드 멤버끼리 휴식 시간에 서로 떨어져 있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기에, 당시에는 별다른 생각 않고 그저 일반적인 밴드 멤버 간 의견 충돌이라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인지 방문자들이 왔을 때, 일부는 Varg와, 다른 일부는 Øystein과 함께 어울렸습니다. Rødland: 그때 일주일로 충분했나요? Pytten: 나는 이 소년들에게서 전혀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습니다. 나는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성취할 때까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첫 주에 모든 것을 했던 것 같지는 않아요, 나중에 한 번 더 세션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나와 Jan Axel은 탐 더빙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앨범에 총 16개의 트랙을 사용했고, 나머지 녹음을 위한 트랙 확보를 위해 탐의 다운믹스/더빙을 진행했습니다. Jan Axel에게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타이트하게 원하는지였습니다. 절대 흠잡을 데가 없었어요. 그에게는 그런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했던 유일한 다운믹스였습니다. 그 후, 나머지 녹음을 위한 충분한 트랙이 있었습니다. Rødland: “De Mysteriis Dom. Sathanas”의 드럼 사운드는 정말 크고 대담합니다. 당신과 Hellhammer는 어떻게 이를 이뤄냈나요? Pytten: 수년 동안 나는 이 혼돈의 음악에 있어 그리그할렌의 어느 곳에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떤 다른 솔루션들이 필요할지 알아내게 되었습니다. Jan Axel의 경우, 우리는 그의 드럼 키트를 위한 충분한 음향 공간이 있는 콘서트홀의 무대에 그의 드럼을 배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벽들에서 반사되는 소리를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5x5미터의 두꺼운 카펫/다리가 있는 방을 만들고, 거기에 드럼을 배치한 뒤, 마이크를 설치했습니다. 무대는 콘서트 무대이기 때문에 위쪽으로 엄청난 양의 공간이 있고, 드럼 키트 위에는 9층의 공기가 있던 셈이었습니다. 나는 이러한 환경이 Jan Axel의 드럼 사운드와 더불어, 그 앨범을 위해 만들어진 개방성과 섬세한 톤에 중요하게 작용했다 생각합니다. 마이크는 조정실에 연결되었고 테이프에 2인치 16트랙 Lyrec으로 녹음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날로그 형식입니다. 2인치에 16개 트랙만 있어서 2인치에 24개 트랙에 비해 매우 좋은 품질을 제공했습니다. 각 트랙에 더 많은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는 모두 바닥 카펫 위에 놓였고 키트 위 매우 높은 곳에 두 개의 밝은 톤 마이크를 배치했습니다. 우리는 약간의 경험을 거쳐 우리가 원하는 해결책을 찾았습니다. Rødland: (이전에 언급되었던) 건조한 스튜디오 룸과 콘서트홀에서 기타를 녹음하셨습니까? Pytten: 메인기타는 NRK에서 빌린 그 녹음실에서 녹음했는데 굉장히 건조한 방이었습니다. 우리는 4x12 Marshall 캐비닛을 가지고 있었고, Øystein은 초기 제품 중 하나인 Marshall 800 또는 900으로 연주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우리는 스피커가 있는 조정실로 스피커 리드를 연결했고 적절한 사운드를 찾을 때까지 앰프 작업을 한 뒤에 녹음했습니다. 그런 다음 콘서트홀에서 추가 작업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곳 전체를 음색과 대기(atmosphere)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이 앨범에는 기타에 있어 꽤 많은 추가 사항이 있습니다. 기타 솔로는 많지 않지만, 우리가 음악적 요소들을 보강하기 위해 추가한, 멜로디 기타와도 같은 리드 기타가 있거든요. 우리는 객석이 있는 콘서트홀에 마샬 장비를 설치했습니다. 그 홀은 진동하는 공기가 많고 거대합니다. 우리는 Øystein의 기타에 적합한 음색을 찾을 때까지 마이크 하나를 이리저리 이동시켰습니다. 하나의 스피커 캐비닛에서 마이크를 멀리 옮기면,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공간으로부터 더 많은 소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콘서트홀은 거대하고, 뛰어난 음향과 균형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앨범의 리드 기타 사운드에 있어 이 홀은 매우 중요했습니다. 보컬과 같은 다른 모든 것은 작은 방인 NRK 더빙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베이스는 조정실에서 테이프에 직접 연주되었습니다. Rødland: 베르겐에서 다른 밴드를 결성한 현지 뮤지션들이 세션 중에 스튜디오에 들렀나요? 만약 그렇다면, 그들이 들은 것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Pytten: 네, 다른 밴드 친구들과 사람들이 이곳에 들렀습니다. 녹음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한, 나는 그런 사교상의 측면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Rødland: 음악이 녹음되고 보컬이 1993년 4월 26일에 녹음되기까지 거의 1년이 걸렸습니다. 당시 Attila의 보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습니까? 그런 색다른 보컬 스타일에 준비되어 있었나요? Pytten: Attila는 거의 1년 후에 보컬을 하러 왔습니다. 당시에 나는 전형적인 블랙메탈 보컬인 고음의 스크리밍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Attila의 보컬은 매우 달랐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엄청난 킥을 가했고, 나는 “fucking hell”이라 생각하며 Øystein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또한 같은 느낌을 받았더군요. 블랙메탈 보컬에 있어 타이밍은 매우 중요하고, 나는 오늘날까지도 그 측면에 있어선 유능한 블랙메탈 보컬을 안내할 수 없습니다. 타이밍이 필요해요. Attila가 테이블에 가져온 것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대단했어요. 나는 어떠한 것이 기존의 장벽들을 부술 때를 좋아합니다. Attila의 보컬 녹음도 작은 방인 NRK 스튜디오에서 이루어졌습니다. Rødland: Attila는 보컬을 녹음할 때 촛불을 켠 채 어둡게 진행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의식과 같았습니다. 이에 대한 기억은 어떻습니까? Pytten: 저는 보컬리스트들이 선호하는 작업 방식에 간섭한 적이 없습니다. 아티스트들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방식은 특히 보컬리스트들에 있어선 지극히 개인적이기 마련이지요. 나의 의견은, 스튜디오에 있을 땐 자신의 예술을 행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찾는 데에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강한 집중력을 갖고, 알맞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안전한 환경에서요. Rødland: 보컬을 하기 전과 후, 이 앨범에 대한 인상이 달라졌나요? Pytten: 전적으로요. 이전에 말했듯이, 나는 그의 보컬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는 기존과는 완전히 다른 태도의 보컬을 가져왔습니다. 한 단계 발전된 테크닉으로서 마치 세련된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는 듯했지요. 그는 잘 준비되어 있었고, 자신의 일을 했습니다. 그는 Øystein과 몇 가지를 논의했고, 아마 약간의 조정을 했을 테지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Rødland: “Funeral Fog”를 위해 녹음된 드럼 인트로는 나중에 앨범에서 제거되었습니다. 이 결정은 어떻게/왜 내려졌습니까? Pytten: 불행히도 그 세부사항은 더 이상 기억하지 못합니다. Rødland: 세션 중에 녹음한 것 중 사용되지 않은 자잘한 것들이 있었습니까? 아니면, 스튜디오에 들어갔을 때부터 모든 음악적인 아이디어들이 이미 완벽하게 갖추어져 있었나요? 스튜디오 안에서 새로 만들어졌거나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파트들이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Pytten: 모든 것이 세세한 부분까지 전부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실상 즉흥 연주는 없었어요. 있었다면 아주 작은 세부사항이었을 것입니다. (Øystein의 꼼꼼한 사전 계획은 그가 Pytten에게 녹음 전 보냈던 서신에 잘 드러나 있음.) Rødland: Euronymous와 Hellhammer 두 사람 모두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했으며, 앨범을 믹싱한 1993년 7월 11일부터 15일까지 당신과 합류했습니다. 작업에 있어 특히 완성이 까다로웠나요? 그들이 대부분 파트에 있어 동의했습니까? Pytten: 매우 순조로운 과정이었습니다. 나는 일반적으로 원칙에 따라 작업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여 결정 내리길 원하는 상황에서는 더 지루한 믹스가 됩니다. 우리는 스튜디오에서 소수의 인원으로 작업했고, 대부분 나와 Øystein이 했습니다. 때로는 Jan Axel, 그리고 아마 Snorre가 관여했습니다. 믹스에 얼마나 많은 대기 효과(atmosphere)와 리버브를 사용했는지 묻는다면, 아마도 조금 들어갔다고 답할 것이지만, 얼마만큼이라 말하기 위해서는 앉아서 음악을 들어봐야 할 것입니다. 나는 드럼, 탐에 약간씩 사용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 후엔 콘서트홀 자체를 음색을 위한 방으로 활용해 Øystein의 멜로디 라인과 솔로 파트들을 위한 자연스러운 음색을 갖췄습니다. 베이스에는 많은 이펙트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베이스를 좀 더 팽팽히 압축한 뒤, 전체 사운드스케이프로 옮겼어요. 내 기억상 모든 베이스 라인은 내 노란색 프렛리스 Fender P(Precision)로 더빙되었습니다. Rødland: 프로듀서로서 작업 중에 이것이(D.M.D.S.) 진정으로 특별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을 경험한 적 있으십니까? Pytten: 당시에는 그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결과물과 우리가 작업한 방식은 정말 만족스러웠습니다. Rødland: 다른 밴드들의 멘토로서 유로니무스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Pytten: 그는 매우 강력한 위치를 갖고 있었어요. 그는 무엇이 허용되고 허용되지 않는지를 정의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다른 많은 이들에 비해 음악적 탐색에 있어 더 먼 길을 걸어왔고, 디스토션 페달의 사용을 거의 중단했습니다. 그는 간소한 장비를 사용했고, 앰프로 많은 작업을 했습니다. 그는 아마도 가장 전통적인 록 장비를 가진 블랙메탈 기타리스트였을 것입니다. 그는 빨간색 Les Paul 기타를 사용했는데 싱글 코일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Marshall 800 또는 900과 4x12 스탠다드 Marshall 캐비닛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예컨대 페달을 서너 개 연속으로 시도하는 것처럼 황당한 시도는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아티스트들이 이런 식으로 스튜디오에 가져오는 괴상망측한 기타 사운드와 페달들에 대해 잘 몰랐기에, 유로니무스의 전통적인 접근 방식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왜 그에게 주의를 기울이고 기대를 거는지 완벽히 이해했어요. 그는 방향을 정의할 수 있었고, 이 앨범에서처럼 매우 훌륭한 작곡을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그의 작곡을 경험한 가장 인상 깊은 순간 중 하나는, 그가 Attila, Enslaved와 함께 USF(옛 정어리 공장을 문화 행사장으로 개조한 베르겐 최대 규모의 콘서트장. 가끔 블랙메탈 공연도 열려왔음)에서 연주했을 때였습니다. 나는 무대 옆에서 Ivar(Enslaved)를 쳐다보았는데, 그때 우리는 이것이 일생에서 한 번뿐인 경험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정말 강렬한 경험이었습니다. Rødland: 사람이자 친구로서 유로니무스를 어떻게 묘사하시겠습니까? Pytten: 아주 흥미로운 사람이요. 그는 직관적이었습니다. 강한 의견들을 가지고 있었고요. 음악적 아이디어들이 많았어요. 그중 일부는 참신하고도 복잡했습니다. 우리는 다음 앨범을 위한 것들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Grateful Dead(미국의 록 밴드)를 알고 계신다면, 그들은 사운드를 만드는 데 있어 매우 실험적이었고, 베이시스트는 모든 스트링이 각각의 전용 앰프로 연결되는 별도의 픽업을 장착한 커스텀 베이스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Øystein도 이같이 할 것을 생각 중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음 앨범을 위해 외스타인의 기타를 이와 유사하게 만들어줄 기술 인력을 찾길 바랐고, 모든 현이 전용 사운드를 가지는 이 스테레오 사운드를 생성하기 위해 프리프로덕션에 많은 시간을 들이기를 희망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 열렬히 이야기 나누고 있었어요. 그리고 나는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성공했을 것이라는 걸 압니다. Rødland: 노르웨이 국립도서관에 마스터 테이프들을 기증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연에서였습니까? (블랙메탈이라는) 장르가 그들의 자연스러운 지식 범위를 벗어날 텐데, 그들은 이러한 녹음물들의 역사적 가치를 이해하고 있었습니까? Pytten: 어느 시점에서, 내가 언젠가는 앨범 제작을 그만둘 것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나는 내 모든 테이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어느 시점에 가서는 결혼하거나 테이프를 유지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지경이었죠. 나는 내 메탈 컬렉션을 보관하고 안전히 보존하고 싶었어요. 나는 베르겐의 도서관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매우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녀는 국립도서관에 이야기했고, 그곳 사람들이 나를 찾아와 내 컬렉션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가져가겠다, 200년 후의 누군가가 90년대 베르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것은 완전히 유일무이한 컬렉션이 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기증하게 되었습니다. Rødland: 그들은 이것이 노르웨이의 국가적 보물이라는 것을 사실상 깨닫고 있었나요? Pytten: 글쎄요, 그런 단어들을 정확히 사용하진 않았습니다, 하하! 하지만 내가 미래에 가치를 가져올 이러한 공헌을 국립도서관에 했다는 것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Rødland: 당신은 노르웨이 블랙메탈 씬에서 매우 중요한 앨범들을 많이 작업하셨습니다. “De Mysteriis Dom. Sathanas” 앨범을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Pytten: 내가 높이 평가하는 앨범들이 꽤 있는데, 그것들은 서로 어깨를 나란히 놓고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절대적인 하이엔드로 평가합니다. Rødland: 노르웨이 음악의 역사에서는요? Pytten: 나를 자만하다 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했던 많은 작업들이 그리그(Edvard Grieg, 노르웨이 각지의 다양한 민속 음악을 아름답게 접목해 민족적 정체성을 일깨웠던 낭만주의의 선구자이자, 노르웨이 음악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곡가로 여겨짐. 베르겐 태생으로, 이 ‘Grieghallen’ 스튜디오 이름의 주인공)의 다음으로 오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Rødland: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Pytten: 진심입니다. (블랙메탈을 듣지 않는) ‘보통’ 사람들과의 모임에서 이걸 한 번 말한 적이 있는데, 다들 거의 기절하는 소리를 내더군요. Rødland: 저도 항상 같은 말을 합니다. 이 음악은 Grieg 옆의 ‘벽’에 걸려야 마땅합니다. (Tore의 추가 멘트) Rødland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정확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Rødland에게) 당신의 말은 전적으로 옳아요! MAYHEM AND GRIEG. 3. ... Bjørnson은 Euronymous에 대해 기억하며, 그를 ‘기타를 들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그의 레이블에 속한 밴드들에게 새로운 테크닉들을 보여주고 음반들을 들려주었던 방랑 교사’로 그립니다. 유로니무스는 Vikingligr Veldi의 신디사이저 사운드베드와 ‘Midgards eldar'에서 들을 수 있는 공간 에코 효과에 영감을 준 Klaus Schulze 및 Brian Eno와 같은 시퀀서 음악의 선구자들을 Enslaved에게 소개했습니다. “...콘라드 슈니츨러에게 Deathcrush 앨범의 인트로를 부탁하기도 할 만큼, 유로니무스는 독일의 모더니즘, 미니멀리즘, 일렉트로니카, 그리고 Krautrock(Can과 같은 밴드)에 열광했습니다. 그는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권장하려 노력했지만 많은 이들이 부응하지는 않았습니다. Emperor는 심포닉 사운드에 더 관심이 많았고, Immortal과 Gorgoroth는 전체적으로 로큰롤적 접근 방식에 더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Enslaved에게는 정말 유로니무스가 소개해준 독일 신스 음악 스타일이 먹혔고, 우리 멤버들은 그 앨범들을 연구하고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Euronymous가 블랙메탈에 대해 갖고 있던 비전은 본질적으로 프로그레시브 음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십대 음악가들이 기타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을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2~3개의 현과 형식적인 파워 코드를 사용하는 대신, 유로니무스는 클래식 음악의 글리산도와 그랜드 디미니쉬드 코드, 반음계의 음계, 블랙메탈의 독특한 ‘분위기’를 불러일으키는 화음 레이어 등의 특성을 도입했습니다. “그는 블랙메탈 또는 익스트림 메탈을 이러한 것의 연속으로 보았습니다. 피를 튀기며 사람들의 머리에 오줌을 갈기는 새로운 펑크 음악이 아니라, 흑백의 인상파 음악에 가깝습니다.”라고 Bjørnson은 회상합니다. “고딕 대성당은 그가 음악으로 그리고 싶어 했던 그림입니다. ... "노스페라투" 영화처럼, 사물이 차갑고 인간의 감정에서 파생되지만 더 큰 원초적 에너지를 담고 있는 곳 말입니다.” 이는 블랙메탈의 분기점, 즉 블랙메탈을 펑크 록의 돌연변이로 보는 사람들과 진보주의자 사이에서의 분기점을 나타냅니다. Euronymous의 죽음은 이 젊은이들의 삶에 파괴적이고 무분별한 타격이었습니다. ... 그 외 몇몇 흥미 위주의 사실들 네크로부처: “우리는 84년에 메이헴을 시작했다. 처음 몇 달은 커버 트랙들을 리허설했고 우리가 쓴 첫 번째 곡은 ‘Ghoul’이었다. 내 기억상 85년 초에, 우리는 초등학교를 갓 졸업했다. 만하임과 유로니무스는 고등학교에 갔고, 나는 벽돌 쌓기 등을 가르치는 기술 학교에 갔다. 그해 나는 학교를 중퇴했고, 유로니무스는 이듬해쯤 학교를 그만두었다.” “밴드명 Mayhem은 유로니무스가 지은 것이다. 그는 졸업식 날 친구 몇 명과 밴드 몇 팀을 데리고 두어 곡 연주 후 그것을 ‘메이헴’이라 불렀다.” 만하임: “유로니무스는 사실 굉장히 학업에 뛰어났다. 그는 마지막 해를 최고점으로 끝냈는데, 밴드에 집중하기 위해 시험을 모두 마치지 않았다.” Liv Anita Nielsen (여자 사람 친구): 외스타인에 관한 루머가 너무 많아서, 난 내 두 명의 친구들 이레네와 레나와 함께 몇몇 루머들은 일축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80년대 후반에 함께 친한 그룹이었고 특히 레나가 그와 친했다. 레나와 외스타인은 가장 친한 친구였다. 게이 루머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나와 레나는 그가 게이가 아니었음을 명확히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난 사실 그가 나에게 살짝 반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는 행동에 옮기진 않았다. 외스타인은 shy boy였고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친절한 사람이었다. 내가 이레네에게 외스타인과의 몇몇 기억들을 공유하자고 하자, 그녀가 적어주었다. “외스타인은 언제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는 부모님을 사랑했고 부모님과 자주 일요일 저녁을 함께했다. 그는 음악을 사랑했고 나는 그와 함께 많은 Pink Floyd 비디오들을 본 적이 있다. 그는 담배를 피우거나 약물을 하지 않았고, 술도 과음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마음을 썼으며, 내게도 항상 괜찮냐 묻고 잘 돌봐주었다. 외스타인은 콜라를 따를 때 항상 조심스럽게 따라서 거품이 유지되도록 했다. 나는 163cm인데 외스타인은 나보다 아주 약간 더 컸다.” 168cm의 레나는 그와 있을 때마다 플랫슈즈를 신었는데, 그 자신이 그녀보다 키가 작아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외스타인이 담배를 싫어했기에, 그녀는 발코니에 나가 담배를 피워야 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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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ndir – The Sognametal Legacy (2021) [Boxed set] | 100/100 Sep 3, 2022 |
Windir라는 밴드와 음악, Valfar라는 뮤지션에 대한 글은 Sognametal 리뷰에 소상히 적어놓았으므로, 오늘은 발파르의 생일을 기념하여 2014년 1월 11일에 발파르의 고향 Sogn 지역신문에 실렸던 인터뷰 기사 전체를 번역해 올려 본다.
기사는 총 3파트로서, 기사 소개와 발파르의 생전 인터뷰 구절들이 실린 1, 발파르의 어머니와 형의 인터뷰가 담긴 2, 발파르의 절친이자 윈디르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야를레 크볼레의 인터뷰가 담긴 3으로 구성된다. *문장 속 (괄호) 안에 든 부연 설명은 본인이 직접 덧붙인 것이다. 1. 영원히 기억될 전설 2014년 1월 11일 토요일, Jan Inge Fardal 작성 다가오는 1월 14일은 타르예 바켄(발파르)이 비극적인 상황으로 죽은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이곳 Stedje(송달 내 발파르의 묘지가 있는 곳)에는 그의 묘를 순례하는 유럽 전역의 팬들이 온다. 이 송달 출신의 다재다능했던 뮤지션은 국제 메탈 씬에서 대단한 입지를 갖고 있고, 이번 기사의 제목은 유튜브의 많은 댓글들 중 하나에서 따 온 것이다. 송나메탈(송달 지역의 메탈)을 창시한 이 뮤지션에 대한 많은 글, 음악으로서의 헌사들이 있다. Sogn 신문은 이 특별한 사람이 소년으로서 자라나며 가장 가까이 지냈던 형제, 어머니, 친한 친구이자 뮤지션(Hvàll)을 만나보았다. “저는 감히 자주 행동하지 않습니다(발파르가 당시 노르웨이 블랙메탈 씬과 자신을 비교하는 질문에 선을 그으며 했던 말). 많은 사람들이 이 음악(블랙메탈)이 사타니즘과 교회 방화와만 관련이 있다고 믿어요.” -21.6.1991.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작곡하기로 마음먹었다 해서 쉽게 작곡이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저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기에, 많은 시간을 혼자 앉아서 보내고, 그러다 보면 가끔 좋은 노래가 나옵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타니즘에 반대하며 언제나 그래왔습니다. 말하자면, 이건 송나메탈이나 바이킹메탈입니다.” -14.6.1997. 그가 하고있는 것이 사타니즘과 관련이 있냐는 Sogn 신문의 질문에 대한 발파르의 답변 “저는 뿌리 깊은 송달 사람(sogndøl)이기 때문에, 우리 역사를 다루는 글(가사들)을 쓰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저는 지역 역사에 아주 관심이 많고, 마을에 관한 책은 저에게 있어 위대한 성경과 같습니다.”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음반이 해외에서 이렇게나 잘 될 줄 알았다면, 저는 영어로 가사를 쓰는 것을 고려했을 것입니다.” -타르예 바켄이 Arntor 음반에 대해 “그것이(음악이) 엄청나게 멀리 퍼져서, 가령 이탈리아 출신의 사람들이 제가 사는 곳을 알아내려고 할 때, (짜릿함으로) 미쳐버려요.” -29.1.2000. Sogn 신문에게 발파르가 2. 공허함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발파르의 어머니와 형 인터뷰) Bjørg(발파르의 어머니)가 몇 년 전 무덤가에서 발견한 이 그림 액자는 러시아 팬들이 두고 간 것이다. -타르예를 그린 그림 사진 Bjørg: “타르예는 집안일이든 농장일이든 기꺼이 돕는 존재였고, 친절한 아들이었습니다.” -트랙터를 타고 있는 타르예의 사진 뵤르그 하우케라이(Bjørg Haukereid: 발파르의 어머니)와 베가르 바켄(Vegard Bakken: 발파르의 친형)은 타르예에 관한 기억으로 가득 찬 관(관이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는 중세적인 앤티크 보관함의 모양으로, 발파르의 무덤가에 놓인 물건 등을 거두어 이곳에 보관 중이다.)을 살펴본다. -타르예를 기념하기 위한 보관함을 열어 보여주는 뵤르그와 베가르의 사진 타르예의 무덤에 서포트가 시작되었던 거의 10년 전부터, 그의 어머니 뵤르그 하우케라이는 세계 곳곳으로부터의 인사말들을 찾을 수 있었다. 겨우 25세의 나이에 숨을 거둔, '발파르'로 알려진 뮤지션 타르예 바켄의 무덤을 순례하기 위해 유럽 전역의 팬들이 이곳에 온다. 이번 1월 14일은 그 비극적 죽음이 있은 지 10년째 되는 날이다. “이것은 특별합니다. 매우 특별해요.” 타르예의 어머니 뵤르그가 말한다. 그녀는 아들에 관한 추억을 담은 작은 관(보관함)을 꺼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녀는 스테뎨 교회 묘지에 있는 아들의 무덤에서 여러 다양한 인사들을 받아왔다. 팬들이 가져다 놓는 것들은 사실상 모든 형태의 것들이다. 타르예를 위해 특별 제작한 티셔츠, 인터넷에 있는 그의 사진을 보고 그린 어떤 러시아 팬의 그림, 많은 서면 인사말, 꽃, 작은 천사 등이 있었다.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러시아, 영국 등에서 온 것들이다. “사람들이 두고 간 물건들은 그대로 방치하면 망가질 것입니다. 저는 그것들을 수집해 왔습니다.” 뵤르그가 말한다. 그 보관함에는 아들이 만든 각 cd들(윈디르 앨범들)도 포함되어 있다. “이제 그렇게 자주 보관함을 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열어보기에 좋은 기회이군요.” 뵤르그가 말하며 국내외 많은 팬들이 타르예에게 전한 인사말들로 가득한 두꺼운 책을 보여주었다. “알다시피, 저는 그의 엄마로서 그것을(그를 그리워하는 것을) 절대 끝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렇게 젊은 나이의 아들을 잃어버린 것. 그리움이 항상 그곳에 있습니다. 매일. 하지만 삶은 계속 진행되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공허함은 항상 그곳에 있을 것입니다.” 형 베가르에게 있어서도 공허함은 거대하다. 두 형제는 자라면서 가장 친한 친구였다. 크고 힘이 센 베가르는 연약하고(섬세하고) 말이 빠른 타르예의 보디가드라는 놀림을 종종 받았다. 둘은 항상 함께였다. 또한 베가르는 거의 모든 윈디르 콘서트에 참석했었다. 그래서 타르예가 살아있었다면 26세가 되었을 그날 밤, 오슬로의 Rockefeller에서 있었던 추모 공연에서 그가 윈디르의 보컬을 맡은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사망 당시 타르예는 겨우 25세였다. 그에게 닥친 비극의 전체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많은 추측이 있어 왔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타르예가 Fagereggji에 있는 가족 오두막에 가고 싶어 했다는 것과, 그가 그에게 다가올 눈과 추위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Reppastølen(송달에 있는 농지)을 지난 어느 시점에서, 그는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날씨가 악화되었고, 결국 그렇게 되었다. 그는 Reppastølen에서 몇 미터 안 되는 곳에 누워 있었다. 그곳에서 그는 옷을 벗기 시작했다(저체온증이 심해졌을 때, 뇌간이 잘못되어 극한 속에서 오히려 더위를 느끼게 되는 이상 탈의 증상). 그는 그렇게 발견되었다. “우리는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했고, 돌아오려 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베가르가 조용히 말했다. 타르예가 26살이 되었을 그 밤에 있었던 Rockefeller에서의 추모 공연은 매진되었다. 뵤르그에게 이는 매우 특별한 밤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아들이 만든 음악과 함께한 첫 콘서트였던 것이다. “그토록 많은 분들이 타르예의 음악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게 되어, 그의 어머니로서 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생각보다 무섭지 않더군요. 무대 위에서는 굉장히 무서워 보였던 뮤지션들이, 공연 뒤에는 세상에서 가장 착한 사람들이었어요.” 뵤르그가 Finntroll, Enslaved와 같은 밴드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말했다. 오늘날에는, 그 음악 장르가 Melodi Grand Prix(노르웨이 공영 방송인 NRK에서 매년 주최하는 음악 경연)에서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들은 타르예가 이것을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 슬퍼했습니다.” 베가르가 말했다. - 집에 음악가이자 소년으로서 타르예와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어땠나요, 뵤르그? “그가 죽기 전, 타르예는 우리 집에서 살았습니다. 그는 모든 면에서 저에게 자원이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심하게 친절했어요. 그는 여동생들인 힐데, 세실리에, 브레데를 집으로 데려오고 저녁 식사를 만들어 주던, 지극히 일반적인 청년이었어요.” 뵤르그가 말한다. 딸들인 힐데와 세실리에의 이야기에 이어, 뵤르그는 정말 멋지고 좋은 오빠로서의 타르예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진정한 양육자(노르웨이어로 omsorgsperson, 다른 가족 구성원을 돌보고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였습니다. 어린 여동생을 Meieriet(송달에 있는 Studenthuset Meieriet. 펍이자 공연장으로, 지역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 Windir도 2002년에 이곳에서 공연한 바 있음)에서의 콘서트에 처음으로 데려가 주기도 했고, 차에 태워 Fjøra(가이랑에르 피오르 위쪽에 있는 동네)로 råning(노르웨이에서 주로 작은 마을들을 오가면서 목적 없이 배회하며 운전하는 여가 활동을 뜻하는 단어) 가주기도 했어요.” 그는 여동생을 위해 CD들도 만들어 주었는데, 마지막으로 만들어 준 것이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좋아하는 여동생을 위해 음원을 구해다 만들어 준 것이라고 한다. “타르예는 메탈 음악만 만든 것이 아닙니다. 그는 보다 차분한 것들도 작곡했습니다.” 자라면서, 타르예는 A4 인간 같은 부류(평범한 사람)가 아니었다. 그는 매우 까다롭고, 가능한 모든 것에 대해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이었다. “이 부분은 제대로 설명해 드려야겠군요. 그는 예술가의 영혼이었습니다. 그림에도 남다른 소질이 있었고요. 타르예는 진정한 완벽주의자였습니다.” 형 베가르가 그를 기억하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완벽하게 했습니다. 생각이 많고, 생각이 깊은 훌륭한 동생이었어요.” 어머니 뵤르그는 무대에서 그녀의 아들을 본 적이 없지만, 그의 무대 위 사진은 동생들을 위해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던 아들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라고 한다. -무대 위에서의 발파르 사진 “그가 무대에서 했던 것은 일종의 연극이었다 생각합니다. 무대 위에서 자신의 역할을 했던 것이지요. 그는 실제로 그렇지 않았습니다.” 뵤르그가 말한다. 그리고 그는 뿌리와 방언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았다. 절대 타협이란 없었다. “타르예만큼 진정한 송달 사람은 없었습니다. 누구도 그보다 더 폭넓은 지역 방언을 구사하지 못했어요. (실제 타르예의 방언은 송달 지역색이 매우 짙어서, 보통 타국 출신이더라도 같은 북유럽인들끼리는 인터뷰 등을 들을 때 대충 다 이해가 가능한데, 발파르의 말은 도통 알아듣질 못하는 반응이 많다.) 그리고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애향심이 깊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그는 어디에서나 목청껏 ‘송달이 최고다!’라고 외쳤어요.” 베가르는 동생이 좋은 유머 또한 지녔었고 종종 무대에서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한다. “그저 ‘블랙’만이 아니었습니다. 이와 거리가 멀었어요. 우리는 정말 재미있는 추억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이 음악적 환경에서 길이 살아있을 하나의 형제이자, 아들, 뮤지션, 그리고 송달 사람(sogndøl). 그는 송달의 진정한 전설이다. 전설은 매일 오는 것이 아니다... 3. 타르예를 생각하지 않고는 하루가 지나가지 않는다 (Windir 베이시스트 Hvàll 인터뷰) - Jarle Kvåle: 밴드 Vreid의 프론트맨이자 타르예 바켄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야를레 크볼레(Windir, Vreid의 베이시스트 Hvàll)는 타르예 바켄을 가장 잘 알았던 사람 중 한 명이다. 둘은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타르예의 친형 베가르, 타르예, 그리고 야를레 세 명은 친밀한 3인조를 형성했다. 처음에는 필드에서 풋볼을 하고 놀았는데, 타르예는 골키퍼였다. “우리는 우리만의 løkke(내야, 인필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저 위의 사우아파를라 경기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많은 치열한 경기들을 하고는 했습니다.” 야를레는 말한다. 하지만 12~13세가 되자 풋볼은 점점 줄어들고, 두 친구 사이에는 음악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제 자라나면서의 음악 취향은, 아마도 타르예의 형(Vegard)과 그의 친구들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이었습니다. 저는 Kiss와 Metallica로 시작했지만, 곧 더 강한 음악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타르예는 마을의 아코디언 클럽에서 음악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11살에 아코디언을 갖게 되었고, 연주하는 법을 빠르게 배웠습니다. 그는 그곳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았습니다.” 야를레는 말한다. 1994년, 타르예는 원맨 밴드로서 Windir를 시작했다. 그는 모든 악기를 연주하고, 첫 두 장의 음반들에서 모든 가사와 모든 음악을 직접 만들었다. 이웃에 사는 세 번째 음악 친구인 Jørn Holen(윈디르 드러머)은 타르예가 만든 모든 것에 드럼을 쳤는데, 당시 그는 야를레와 함께 Ulcus Molle라는 다른 밴드에 멤버로 소속되어 있었다. 그 십대 소년들이 적절한 음악적 플랫폼을 갖추는 데 가장 중요한 외적 요인을 제공했던 것은 Jørn의 아버지인 Svein Holen이었을 것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헛간에서 악기를 연습하도록 해주었다. 처음에는 작고 비좁은 방에서, 나중에는 훨씬 더 큰 곳에서 연습하게 해주어서, 젊은이들은 그곳을 개조하고 실내를 새로 장식했다고 한다. “우리는 스바인에게 영원히 감사하고, 타르예도 그분께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고정된 리허설 시간이나 어른들의 결정도 필요 없이, 우리가 원할 때마다 음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행운인지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이곳에서 청년들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양한 악기들을 다루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두 밴드(Windir, Ulcus Molle)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성장해나갔다. 그러나 타르예에게는 그가 Windir를 확장할 준비가 되기 전에, 가야 할 길이 남아 있었다. “타르예는 탐구하는 사람이었고,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 했습니다. 그는 자신만의 길을 내기 좋아하는, 쉼 없는 영혼이었습니다.” 야를레는 다른 사람들이 타르예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거의 없다고 전한다. 1999년까지 각자 다른 두 밴드로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긴밀히 협력했고 거의 항상 리허설을 함께 했다. 그들은 서로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에게서 배웠다. 그리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밤새도록 앉아 토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앉아서 송 오 피오라네 주(Sogn og Fjordane fylke, 그들의 고향 송달이 이곳에 위치)의 병원 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던 한 아침처럼요. 우리가 어쩌다가 그 주제까지 오게 됐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그리하여 1999년, 타르예는 한 단계 더 나아갈 준비가 되었고, 6인조 밴드로서의 Windir가 빛을 보게 되었다. 그 뒤 가장 친한 친구 야를레와 타르예 사이의 협력 또한 더 발전했다. 그들은 대부분의 가사와 곡들을 함께 작업했는데, 가급적이면 우선 서로 각자 작업한 뒤, 함께 앉아 각자 작업한 것들을 꿰매어 잇는 방식이었다. 또는 서로 팁을 공유했다. 야를레와 요른이 현재 함께 하고 있는 밴드인 Vreid는 거의 10년 전 빛을 보았고, 오늘날에는 훌륭한 국제적 경력을 지닌 밴드다. Vreid는 국내(노르웨이) 및 국제 가장 큰 메탈 페스티벌들의 하이라이트이다. 그리고 많은 큰 투어들을 다닌다. 그때마다 밴드 멤버들은 어디에서나 Windir 팬들을 보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팬들에게서 Windir의 엠블럼이 있는 티셔츠들, 우리 밴드의 엠블럼과 타르예가 만들었던 윈디르 엠블럼 문신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타르예 본인은 문신을 전혀 하지 않았었음) 타르예를 크게 그린 문신들도 많이 보아왔습니다. 그들은 CD, 레코드, 사진, 요컨대 가능한 모든 것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타르예, 또는 발파르가 떠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아주 큰 입지를 갖고 있습니다. 그는 아이콘(우상)입니다. 많은 뮤지션들과 팬들 모두에게 위대한 롤 모델이지요. 그는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입니다.” - 그가 어떻게 그런 입지를 갖게 되었다 생각합니까? “그는 이전에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했습니다. 노르웨이 포크 멜로디들과 블랙메탈을 혼합했지요. 타르예는 지역 역사에 매우 관심이 많았고, 이것을 ‘송달 지역의 메탈’을 위한 음악과 결합했습니다.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송나메탈은 세계 메탈 씬에서 잘 알려진 스타일이고, 새로운 밴드들이 사용하려는 접근 방식과 스타일이기도 합니다. 모두 한 사람 덕분이지요. 모든 것을 독학하고, 매우 재능있던 한 사람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타르예는 위대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야를레 크볼레가 말한다. 봄에는 Vreid, Windir, 그리고 Ulcus Molle를 기념하는 투어를 계획 중이고, 여기서 타르예의 친형 Vegard가 Windir의 곡들에 보컬을 맡을 것이다. “특별할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나 빨리 흘러갔는지 참 우스울 지경입니다. 10년 전을 생각해 보십시오. 타르예에 대한 상실감은 여전히 그곳에 있지만, 그가 완전히 깨어있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이렇게 그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는 우리들 삶 속에 존재합니다.” 야를레 크볼레가 말한다. 야를레는 투어에서 오랜 곡들을 연주하는 것이 좋은 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좋을 것이지만, 타르예를 그렇게 높이 여기는 팬들에게도 분명히 좋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적절한 방식으로 기억하고 기릴 것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저는 먼저 헛간으로 가서 옛 노래들(Windir 곡들)을 연습해야 합니다. 타르예 없이 하려니, 이상할 것 같네요...” 성장기 사진 1: 훗날 노르웨이와 세계 메탈 씬에 흔적을 남기게 될 두 남자. -타르예와 야를레의 어린 시절 사진 성장기 사진 2: 두 남자의 사진, 야를레가 왼쪽. -야를레와 타르예의 청년 시절 사진 1999년, Fimreite 전투(노르웨이 내분 시대 속 1184년에 송달 피오르에서 왕손 망누스와 섭정 스베레 세력 간 일어났던 해전으로, 발파르가 이에 관해 ‘1184’라는 곡과 이를 타이틀로 하는 3집 음반을 만들었음) 기념비 앞에서 촬영됨. -Windir 사진 리허설 방: 헛간의 리허설 방에 있는 Jørn Holen(윈디르 드러머)과 Jarle Kvåle(윈디르 베이시스트). - (번역 마침) Gje han evig kvile Gje han sjelefred Gje han sælt minne Pris hans sæle minne Pris han evig liv 3. September 2022, In memory of Terje "Valfar" Bakken ... See More 4 likes | |
Alkonost – The Path We've Never Made (2006) | 95/100 Jun 10, 2022 |
노르웨이 본토의 포크 음악 이외에, 본인이 살면서 가장 많이 접했던 민속 음악은 여타 노르딕 포크와 게르만, 슬라빅 포크다. 그 중 슬라빅 포크는 메탈 음악과 접목한 형태로 듣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는데, 러시아로 대표되는 방대한 슬라빅 포크 음악은 분명 그 특유의 신비함과 뽕스러운 매력 때문에 잠시 잊고 지내다가도 어느새 그리워지기를 반복해왔다.
그리고 훌륭한 음악적 소재이자 테마인 이 슬라빅 포크 요소를 블랙메탈, 둠메탈, 멜데스, 심지어는 메탈코어 등 다양한 여러 장르들과 섞은 음악들이 많이 나와있는 상황이다. 여기 포크, 페이건, 에픽, 심포닉, 둠, 블랙적 속성을 모두 가졌다고 할 수 있는, 하지만 장르적 정의를 넘어서, 모든 악기 파트가 오로지 순수하게 ‘슬라빅 포크’를 추구하듯 ‘메탈’ 음악으로서 천연의 아름답고도 독특한 음색을 내는 ‘슬라빅 포크 메탈’ 밴드가 있다. 이 밴드의 이름인 알코노스트는 슬라빅 전설 속의 존재로, 아름다운 여성의 머리를 달고 있는 새다. 이 새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소리를 내어, 이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더이상 원하는 것이 없게 된다. 이 전설 속 존재는 밴드의 음악적 특색 및 지향점과 연관이 깊다. 슬라빅 포크 요소가 제대로 살아 숨쉬는 기타 멜로디, 신비한 슬라빅 에너지와 앳모스피어를 빚어내는 키보드, 그리고 실제 슬라빅 포크에 자주 쓰이는 리듬감을 곳곳에 살리려 애쓰며 새의 퍼덕이는 날갯짓처럼 알코노스트에게 날개를 달아주는 드러밍은 이 오래된 전설 속 존재를 불러와 다시금 깨어나게 한다. 여성보컬의 순박하지만 애수 어린, 동시에 치명적으로 중독적인 페이건적 노래는 그 음악 속에 날아든 알코노스트 그 자체다. 알코노스트가 지하세계의 여신적 존재인 만큼, 포크 음악이 지니는 정겨움 뒤의 어두운 우수와 구슬픈 그리움의 정서 또한 묻어난다. 곡의 구조와 악곡 구성은 단순하고 솔직담백하며 꼬임 없이 소탈하다. 이 밴드가 뛰어난 점은 곡마다 아름다운 주제를 반복 및 변형해가되, 그렇게 심플한 구조와 기본 악기 편성만으로도 슬라브 포크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점은 모든 기타 멜로디와 리프, 그리고 키보드에도, 온통 슬라빅 포크의 터치와 그 신비로운 기운이 묻어있다는 것이다. 더구나 마치 지고지순한 여인처럼 그 기운이 담긴 단지를 품에 안고 앨범 내내 통일감 있게 가져간다. 얼핏 평범하고 단순해 보이는 리프들도 듣다 보면 결국 그러한 분위기의 발판이자 일부로서 일조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여보컬을 잘 받쳐주며 메탈적인 흥을 돋우는 남성 보컬도 좋다. 즉, 특이한 중세 악기나 전통 악기 없이도 잘 들어보면 이미 슬라빅 포크 그 자체다. 이렇게 슬라빅 전통 음악적 요소를 심플한 악곡 구성과 메탈 악기들만으로 깊이 있고 자연스럽게 녹여낸 것 자체가 실력의 반증이라 생각된다. 곡들에서 알코노스트의 역할을 하는 여보컬에 대해 호평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포크메탈에는 흔치 않은 오페라틱한 창법의 여보컬로, 중저음의 톤이라 듣기 안정적이면서도 이들이 추구하는 진중한 주제의 음악과 매우 잘 어우러진다. 이 여보컬이 이들의 사운드에 강력한 힘과 서정성, 서사성을 모두 부여하며, 흡인력 있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유도한다. 특정 곡조를 반복하는 절과 후렴 등의 부분에서는 특히나 알코노스트에게 홀려 이야기를 듣는 느낌을 준다. 그 어떤 과장이나 인위적 느낌 없이 침착한 톤으로 시종일관 자연스럽게, 그러나 정서의 전달은 매우 풍부하고 확실하게 한다. 슬라브 전설 속 알코노스트처럼, 이 여보컬은 청자를 이들의 이야기에 몰입시키고 매료되게 하며, 각 곡마다 주된 정서와 주제를 그 보컬 멜로디라인에 담아내 애수어리게 표현하고 있다. 멜로디 뿐만 아니라 그 표현 방식 또한 아주 포크적이고 또 페이건적인 것이다. 이 앨범의 여보컬인 알료나는 밴드의 전성기 시절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실력 있고 귀여운 여보컬이다. 현재는 세니야라는 미모의 여성분으로 교체된 상태다. 본인은 사실 어떤 음악에서든 여보컬 자체를 선호하지 않지만, 간혹 Dismal Euphony나 이 밴드처럼 그 존재가 정신 속에 깊이 와닿는 경우 급속도로 빠져들고는 한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마법 주문 혹은 수수께끼 같기도 한 시적인 가사들에서는 슬라브 특유의 민속적 색채와 민족적 기개를 느낄 수 있다. 이 밴드의 음악은 심포닉한 민속적 사색이자, 슬라빅 포크가 메탈 음악을 통해 발현된 감각적 산물이다. 그저 방방 뛰고 깊이 없는 놀자판의 트렌디 포크, 혹은 화려한 전통 악기빨로 버티는 포크 메탈이 아닌, 다소 느긋한 템포 위에서 멜로디 하나하나에 감각을 기하여 과거를 불러내고 현재와 이어내는, 진정성 있는 포크 정신을 갖춘 포크 메탈이다. 그리고 특유의 달관한 듯한 정서와 통찰이 매력적인 사운드다. 과거의 악기 없이 과거의 소리를 순도 높고 아름답게 재현해내고자 하는 순수한 열망과 이상주의가 여실히 드러난다는 점은 본인의 인생 밴드이자 가장 이상적인 ‘노르웨이 포크 메탈’이라고 생각되는 윈디르와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각자의 전통과 문화적 소산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이를 음악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 예술적 동기에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가치 있고, 또 숭고한 일이다. 수많은 포크 메탈 밴드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그 탓에 접근성 또한 그리 높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메탈 음악으로서의 정체성을 갖고 그 표현적 장점을 잘 활용하여 포크적 이상을 달성하기란 극도로 어려운 일이다. 아니, 애초에 그 포크적 이상을 갖기도 쉽지 않다. 이 과정은 과거 전통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민속적 지식 등 다방면에 대한 탐구를 필요로 하고, 마치 발파르가 그러했듯 과거의 음악들을 끊임없이 감상하며 나름의 연구를 하고 또 자신의 향방을 잡아야 하기에, 포크 메탈러는 술꾼이 아닌 연구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단순히 음주가무를 위한 음악을 만들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엘크’라 불리는 알코노스트의 리드 기타리스트 안드레이 로세프는 밴드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줄곧 밴드를 이끌어온 리드 멤버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분 역시 러시아, 슬라빅 포크 음악에 조예가 깊음이 드러난다. Canonis라는 멜로딕 둠 메탈 밴드도 했었는데 그래서인지 간혹 그 흔적이 드러나는 곡들도 보인다. 앨범커버 그림 속 인물들은 이 앨범 시절의 밴드 멤버들로서, 개인적으로 이 라인업에서 슬라빅 사운드가 가장 독창적으로 발현된 최강 곡들과 앨범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최근 작품들은 다소 평범해졌다.) 음악도 사람과의 관계에서처럼 유난히 케미와 궁합이 잘 맞는 밴드가 있다. 그러려면 참으로 많은 조건들을 충족해야 하기에, 그런 음악을 만났을 때 반가움은 운명적 사랑의 행복감마저 선사한다. 본인은 알코노스트의 ‘동류’라고 선뜻 칭할만한 유사한 스타일의 밴드를 찾지 못했다. 이쪽 계열에서 이미 유명한 Arkona 등의 밴드들도 있을 테지만,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슬라빅 포크 메탈 씬에서, 특히 여보컬의 비중이 큰 밴드들 중에서 이 밴드만큼 곡의 흐름과 그 감정선에 공감하고 만족스러움을 느꼈던 경우는 드물다. ‘귀에 들어온다’,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 지극히도 적합하다. 포크메탈에서 무엇을 기대하느냐에 따라, 혹자에게는 많고 많은 포크 밴드들 중 하나로 스쳐갈 수도 있겠지만, 민속 색채와 민족혼이 구현된 '전통성'과 밴드만의 '독창성'을 두루 갖춘 슬라빅 포크 사운드가 간절한 본인에게는 여타 슬라빅 포크 밴드들로 대체 불가능한 무언가를 지닌 소중한 밴드이다. 페이보릿 트랙: 2,3,5 Долга ночь перед битвой, Кратка жизнь до неё. Тенью птицы летящей Утро бессмертье несёт. Бурей в море, ветром в поле- В век бесславный заклинаю! Заклинаю встретить Солнце, Правым, правым боем! Звоном стали, жаром крови, Ярым кличем призываю! В звоне стали, в жаре крови, В битве пасть, но с правым боем! (Long is the night before the battle, Short is the life before it. The shadow of a bird flying Morning brings immortality. Storm in the sea, wind in the field In an inglorious age I conjure! I conjure to meet the Sun, Right, right fight! The ringing of steel, the heat of blood, I call with a fierce cry! In the sound of steel, in the heat of blood, Fall in battle, but with the right fight!) -3번 트랙 가사 중 ... See More 4 likes | |
Vomit – Still Rotting (2007) [Compilation] | 100/100 Mar 22, 2021 |
분명 유로니무스랑 사진도 많이 찍었고(밴드 프로필에 사진 올려놨음) 데드랑 헬해머 오기 전에 잠깐(1987-88) 메이헴에 있었다는데 얘네는 뭐냐 싶은 뮤지션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노르웨이 올드스쿨 데스메탈밴드 Vomit의 멤버들이고, 그냥 넘겨버리기엔 노르웨이 익스트림씬 팬으로서 천추의 한이 맺히도록 아쉬울만큼 흥미로운 곡들을 남겼다는 사실은 본국 노르웨이에서도 많이 알려져있지 않다. 이들에 비해 비교적 잘 알려진 노르웨이의 동류 밴드들인 Old Funeral, Amputation, Cadaver 등보다도 2-3년 이른 시기에 이미 뛰어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하였음에도, Vomit은 짧았던 활동 시기 그리고 멤버들의 향후 메탈음악 활동 단절 때문인지 아마도 ‘뛰어나지만 가장 잊혀진’ 노르웨이 올드스쿨 데스메탈 밴드가 되어버렸다. 본인이 Vomit에 가장 호감과 정이 가는 이유인즉슨 Vomit은 보기 드문 노르웨이적 패기와 흥이 넘치고 시대정신 충만한 담백한 데스 밴드였기 때문이다.
☆ 메이헴과의 인연과 추억 서두에서 언급한 김에 Mayhem과의 관계 및 유로니무스와의 추억을 이야기해보면, Vomit은 같은 노르웨이 언더그라운드 익스트림 씬의 초창기 주역이었던 Mayhem과 인연을 맺는다. Vomit 멤버 대부분이 오슬로 윗동네 Nittedal 출신이었는데, Mayhem은 오슬로 아랫동네 Langhus를 본거지로 80년대 중반부터 활동을 시작하였으니 거리상 서로 멀지 않았던지라, 위치도 시기도 취향도 잘 맞아떨어진 음악적 동료가 된 것이다. 1987년 메이헴이 Deathcrush를 발매한 뒤 보컬 매니악과 드러머 만하임이 밴드를 나가는데, 이 공백기 때 유로니무스는 Vomit의 베이시스트 Kittil Kittilsen과 드러머 Torben Grue를 각각 보컬, 드러머로 메이헴에 초청하여 함께 리허설을 하였다. 그 둘은 네크로부처와도 친하였기에 십여년 뒤 그와 셋이서 Kvikksølvguttene라는 재미있는 데스메탈 밴드를 결성하기도 한다. Vomit의 핵심 멤버인 기타리스트 Lars는 메이헴에서 활동한 바는 없지만 유로니무스, 데드와도 친분이 깊었다. Lars는 특히 유로니무스와 아주 친했다. Lars의 회상 내용에 따르면, Vomit과 Mayhem은 오슬로 근교 농장에 원래 돼지들 거처로 만들어졌었던 장소를 구해서 함께 리허설을 하곤 하였는데, 드러머가 없을 시절에 Mayhem이 Vomit의 드러머 Torben을 많이 빌려갔다고 한다. Lars와 유로니무스는 같은 기타리스트로서 많은 프로젝트 밴드들을 함께 구상했고, 같이 음악도 많이 만들었다. 대부분 데스메탈이나 블랙메탈류였는데, 가끔은 키보드나 신디사이저(1982년 출시됐던 Roland 303 썼음)가 잔뜩 첨가된 탈메탈 곡들도 만들었다. 당시 십대 중후반의 이 어린 분들은 어찌나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몰두했던지, 하루 웬종일 리허설 장소에 머물러 음악에 매진하다 배가 고플 때만 가게에 들르러 방을 나갔다고 할 정도이다. Lars는 유로니무스의 죽음을 ‘음악계에 있어 엄청나게 큰 상실’이라 표현하며, 그와 좋은 친구였던 자신에게는 더욱 큰 상실이라 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친구를 칼부림하여 잔혹하게 죽인 바르그는 엿같은 나치라며 반감을 표하였다. Lars의 당시 노르웨이 메탈씬에 대한 회상이 흥미로운데, 유로니무스가 들어본 뒤 좋다고 한 밴드는 ‘좋은 밴드’라는 라벨이 붙었고, 이는 밴드에게 시작부터 막중한 PR 효과가 되었다고 한다. 반대로 유로니무스가 구리다고 한 밴드는 ‘구린 밴드’라는 라벨이 붙게 되었다. 유로니무스의 영향력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는데,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유로니무스가 자신의 동료 밴드 Vomit은 좋은 밴드라고 했다는 것이다. 유로니무스도 그 진가를 알아뵀던 Vomit은 활동 당시 노르웨이 언더그라운드 씬에서 인정받던 실력파 밴드였다. 또한 유로니무스는 Mayhem 리허설과 Vomit의 86년 리허설 스플릿 테잎을 본인의 레코드샵 Helvete에서 판매한 바 있다. 87년 초에 발매된 Rot in Hell 데모테잎은 2006년 메이헴 전 보컬 매니악에 의해 원본에 충실한 CD로 발매되었는데 정작 Lars는 본인 밴드의 카피가 없어 이때 주문을 넣어야 했다. ☆ Vomit은 이런 밴드 Vomit 멤버들의 음악 활동은 고작 13, 14살 먹은 기타리스트 Tommy와 Lars를 주축으로 드러머 Torben과 베이시스트 Kittil과 함께 1982-83년쯤부터 시작된다. 초기에는 주로 헤비메탈 커버곡을 연주하던 Kabel 등의 밴드로 활동하였고, 본격적으로 익스트림 메탈을 연주하며 본인들의 곡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85년에 4인조로 Vomit을 결성하고 나서부터였다. 그런데 십대 중반의 새파랗게 어리신 분들이 곡 만드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당대 언더그라운드 익스트림 데모들 중 가히 상급으로 분류될만한 매력있는 곡 구성과 진취적인 기타솔로 및 몸을 흔들어 남아나지 않게 하는 정직하면서도 흥겹고 재치 있는 리프 전개, 그리고 그때 그 시절만의 시대 감성 즉 시대적 아우라의 컬트적 플러스 요소 그 모든 것을 갖췄다. 스래쉬적 윤곽 안에서 오목조목 잘도 생긴 이 올드 데스 곡들을 쭉 듣다보면 Vomit이 얼마나 양질의 아이디어로 가득한 괴짜 밴드였는지 감이 잡힌다. 본격적인 오늘날의 데스메탈에 대한 사운드적 예시와 정의가 충분히 제공되기 이전 80년대 초중반에 노르웨이의 작은 마을 십대 소년들이 만든 곡들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결과물이 아닐 수 없다. ☆ 감상 리뷰 리뷰하려는 것은 이들의 86년, 87년 데모 곡들을 한데 모아 2007년 발매된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본인이 86년도 리허설 데모(6곡짜리)에 아주 큰 애착을 갖고 있으므로 이 곡들이 온전히 수록되어있는 CD버전의 리뷰인데, 실제 녹음된 시기순대로 그리고 본인의 페이보릿 곡들 위주로 적어보려 한다. 6번~11번 트랙은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86년 리허설 곡들이다. (1986.11.25.) Tormentor는 호기심과 기대감을 불어넣는 intro로 평화롭게 도입부를 이어가다 중독성 강한 데스 리프로 청자를 집중시킨 뒤 앞부분부터 압도적인 기타솔로를 터뜨려버린다. 그리고 청량감있게 쏴주는 절정 솔로 부분이 나올 때까지 여유있는 템포로 태평스럽게 곡을 전개시키는 데에 매력이 깃든 곡이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내지르는 스래쉬스러운 보컬이 귀에 척척 감기는데, 이처럼 보컬 톤과 창법에서 느껴지는 스래쉬적 흥취+독창적인 올드스쿨 데스 리프+스래쉬와 올드데스의 밀고 땡기는 드럼의 조합은 본작의 모든 곡들에 적용되는 특성이다. Armies of Hell은 진지빨고 시작하다 마구잡이로 내달리기 시작한다. 제목처럼 사기를 북돋우는 전투적인 리프와 드럼 그리고 본능적으로 날뛰는 한 마리 야생동물 같은 전개가 특징적인 짤막한 곡이다. 보컬은 목에 걸걸히 긴장감을 걸었다가 유유히 박자를 타기도 하며 리프 위에서 한껏 즐기는 듯하다. 달리는 비트에서 미드템포 파트로 수축이완을 하는 드러밍 등 각 악기군에서 스래쉬적 올드데스의 감성도 강하게 묻어난다. Sadistic Mind는 제목처럼 어두운 내면을 잠시 보여주는 듯하다가 극단적으로 신나는 축제를 열어제끼는 쾌활성이 돋보이는 곡이다. 마치 사디즘이란 이렇게 생기 넘치는 것임을 어필하는 듯한 장난끼 다분한 기조를 띠고 있다. 멜로디를 타는듯한 보컬과 덩실대는 기타리프, 오르막길의 분주다사한 기타솔로 진행도 곡 분위기를 제대로 치켜올리며 축제에 일조한다. 어쩌면 청자들을 음악에 굴복시켜 머리통을 얼굴 잃어버릴 때까지 흔들게 만드는 사디스트적 임무를 완수하는 곡일지도 모르겠다. 곡의 마지막은 액자식 구성마냥 서두의 어두운 리프로 마무리짓는데 마치 흥에 취해 흔들던 머리를 가장 예기치 못할 때 다시 어둑한 심연 속으로 침강시키는 것 같다. 진정한 사디즘이란 이런 것인가 싶다. Rotting Flesh는 유튜브에 낱곡으로도 올려져 있어 아마 가장 잘 알려진 곡 중 하나일 듯한데, 기본적 구성 틀 속에서 찰진 전개를 해나가며 캐치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고퀄 리프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계속적으로 통솔력있게 곡의 분위기를 띄우는 박력있는 보컬과 지적인 리프, Vomit이 작곡에서 빼놓지 않고 애용하여 곡에 대망의 포인트장식을 풀어넣는 기타솔로 파트가 일품이다. 기타솔로로 이어지는 다리를 놓는듯한 리듬기타 리프도 좋다. Lord of Death는 도입부가 언질을 주듯 신명나는 완급조절이 뛰어난 곡이다. 고농축 데스에 고열량 스래쉬의 고명을 얹은 진수성찬이 밀고 땡기는 완급조절의 훌륭한 전개 속에서 오븐에 들어간 것마냥 푹 익어서 곡의 마지막까지 그 풍미가 푹푹 발산된다. 86년 리허설 곡들 중 다음 트랙과 함께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기도 하다. 너무 명곡이라 어떤 수식어도 이 곡의 맛을 표현해내기에 충분치 못하다. 인간 언어 대 음악에서 음악 승이다. Lust of Terror는 86년 리허설을 정리하는 마지막 곡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는 명곡이다. 듣기 좋은 멜로딕 데스적인 리프가 첨가되어 독특한 곡이기도 한데, 멜로딕한 리프가 그윽하게 퍼져나올 때의 감동이란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과 조우했을 때 가슴이 뭉클히 와락 무너져내리는 기쁨과도 같다. 도입부 리프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답게 변주해 후렴처럼 끼워넣을 생각을 했을는지, 기타리스트의 재치와 감각이 돋보이는 곡이다. 이 곡을 듣고 있자면 Vomit과 같은 밴드들이 활동했던 옛 시절이 재현되어 머릿속에 그려진다. 오랜 추억을 묘하게 건드리는 리프들의 향연이 조성하는 길을 따라 걷다 마주하게 되는 감정 깊이 파고드는 멜로딕한 후렴리프 그리고 기타솔로의 감동의 물결을 타고 옛날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비록 본인 그때 아직 태어나지 않았지만 아련한 과거 시절이 직감적으로 떠오르게 되는 아늑한 곡이다. 87년 녹음된 새로운 곡들은 패기와 리프 자체로 승부를 보았던 86년 리허설 곡들보다 좀더 복잡다양한 구성을 시도하였고 이성적인 느낌의 리프들을 계산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완성도에 노력을 기해 꽉 찬 느낌의 사운드라고 할 수 있다. 1번~5번 트랙은 87년 데모인 Rot in Hell의 곡들이다. (1987.1.31.) Armies of Hell, Rotting Flesh는 86년 리허설 버전보다 빠른 템포로 녹음되어 더 심술이 난 폭군적 모습을 취하고 있다. Damnation Of Sin과 Dark Abyss는 이전에 작곡해 놓았지만 처음 녹음된 곡들로서 역시 Vomit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여전히 흥미롭고도 유려한 리프들로 가득 채워져있다. 개인적으로 녹음된 템포와 음질, 추가 리프 등의 이유로 다음의 2월 리허설 버전을 선호한다. 12번~14번 트랙은 87년 초반의 리허설 곡들이다. (1987.2.) 본인은 이 버전의 Damnation of Sin, Dark Abyss, Demonoid를 많이 들었다. 음질이 개선되었으며 속도감 또한 안정감 있고 완벽하다. 이 리허설 녹음을 마지막으로 밴드를 떠난(그리고 세상을 떠난) Tommy Berg의 재능 넘치는 리프 구성력과 86년도보다 한층 더 정제되고 섬세해진 테크닉, 그리고 청자를 압도하는 무지막지한 기타솔로력은 그가 자신의 기량을 전력투구해 털어넣은 백조의 노래처럼 들린다. Damnation of Sin은 노르웨이 데스의 새로운 장을 여는듯한 비장한 데스적 음계의 서막 리프로 시작하여, 동력을 공급하는 드럼에 의해 톱니바퀴들이 하나둘씩 맞물려 돌아가는듯한 공장 기계음적인 리프로 이어지는 초반부부터 먹고들어가는 곡이다. 이후 Vomit이기에 믿고 듣는 데스리프들이 때로는 박자 변화에 때로는 속도 변화에 힘을 주며 기타솔로 파트까지 이어진다. 기타솔로는 이전 파트들이 우직하게 공들여 주조해놓은 무언가를 재파괴하려 작정한 듯한 기세로 곡의 전개 자체를 농간에 빠뜨리는 치명적인 매력을 선보인다. Dark Abyss는 전 악기군이 손색없는 명곡으로서 5/8 비트로 변화있는 시작과 스래쉬적 팜뮤트로 수축 이완 갈기다 모터달고 부릉부릉하는듯한 뮤트맥인 슬라이딩으로 이어지는 리프, 우주적 함정에 빨려들어가는듯한 하이테크 느낌을 발산하는 투기타 음찍기 리프 등이 독창적이며 곳곳에 배치된 뇌리에 박히는 연결 파트들이 곡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분위기 고조에 열일하는 트랙이다. 곡 구성에 있어서도 기존 애용하던 틀에서 벗어나 절의 메인리프 외에는 반복이 거의 없이 전진하여 지루할 틈이 없는 탐험정신의 곡이기도 하다. 87년 리허설 곡들 중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다. Demonoid는 Vomit이 피를 투석하여 보다 테크닉적 면모가 부각된 이성의 차갑고도 시니컬한 피를 다량 투입하였음을 확실하게 고하는 곡이다. 후반부 기타솔로 직후에 등장하는 절정 파트가 인상적인데, 이는 맨처음 도입부에 제시되었던 복선의 절망적이고도 극적인 심화라고 할 수 있다. 지구 멸망의 날 같다. 15번~22번 트랙은 87년 중후반의 리허설 곡들이다. (1987.6.24., 1987.12.3.) Tommy Berg가 있었을 당시 만들었던 곡들보다 전개상 개연성이 덜하고 몇몇 곡들은 완성도가 아쉽지만 리프 자체는 나쁘지 않다. Orgie of Piss는 이전의 스래쉬적 감성의 천진난만한 데스에서 벗어나 데스메탈의 본연에 충실해진 곡으로서 무정하게 뚝뚝 끊기는 리프와 불길하고도 어두운 트레몰로가 특징적인 곡이다. 이와 같은 음악적 성향의 변화는 Boiling Puke에서도 잘 드러난다. 육중한 쇳덩이로 칼을 갈 듯 어둡고 비장해진, 더불어 평범해진 데스메탈 곡이다. 이제 정겨웠던 86년 시절처럼 청자를 쉽사리 놀아주지 않는다. 소리로 군림할 뿐이다. 이 마지막 활동기에 녹음된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Animal Bizarre로, ABR이 이 곡의 앞선 버전이다. 흉악한 음질 덕분에 온전히 들리지는 않지만 키틸 키틸센의 개처럼 으르릉 짖어대는 악에 받친 보컬은 꽤나 사악하고 귀엽다. 말을 우라지게 듣지 않아 행동교정 제보 당한 문제견 같다. ☆ Vomit 멤버들의 향후 삶 Vomit 멤버중에 현재 메탈밴드를 하고 있는 멤버는 하나도 없다. 오직 기타리스트 Lars만이 비록 활동은 접었을지언정 아직 메탈 음악에 애정을 두고 있는 듯하다. Lars는 십여년 전까지 함께 연주하던 음악적 동료가 있었으나 그가 약물 과다로 죽어 혼자 연주하는 중이라고 한다. Lars 자신도 헤로인을 비롯한 각종 약물에 꽤 심한 중독이 되었다가(1989년쯤 Vomit이 해산한 이유 중 하나가 Lars의 약물중독 때문이었음) 현재는 메타돈 치료를 받고 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Tommy Berg는 Vomit의 가장 특징적이고도 훌륭한 곡들을 쓰는데 기여한 보컬기타로서 Vomit을 결성하고 이끌었으며 그 밴드로고까지 직접 그렸을 만큼 밴드의 주역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Rot in Hell 데모를 비롯한 거의 대부분의 곡들에서 모든 기타솔로를 치고 보컬까지 맡았던 능력자였다. 하지만 그 또한 어린 나이에 약물중독의 길을 걷게 되었는데, 카를 요한 거리에서 떠돌며 구걸하는 처지에 이르렀고 결국 오슬로의 온갖 약물중독자들이 모여 사는 호스텔에 투숙하며 헤로인을 하였다고 한다. Lars는 그를 찾아가 봤지만 약물을 끊을 의지가 없어보였고, 호스텔에 들어간 이상 유일한 출구는 관 속에 들어가 나오는 것 뿐임을 알고 있기에 유감을 표했다. Tommy는 결국 약물 과용으로 2014년에 사망하였다. 심각한 재능 낭비를 하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된 Tommy에 대해 회상하며 Lars는 그가 계속 기타를 쳤더라면 가장 뛰어난 기타리스트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도 정말 안타깝다) 베이시스트이자 87년에는 보컬도 겸했었던 Kittil Kittilsen은 현재 기독교 근본주의자가 되어 메탈 음악을 접은 상태다. 구약성서에 따라 생활하는 Fredrikstad 지역의 요상한 컬트 집단 소속이라는데, 여성을 남성에게 복종시켜야 된다는 등의 지침을 엄격수행 한다고 한다. 당찬 드러밍과 밝은 미소가 유난히 해맑던 Vomit의 드러머 Torben Grue는 오페라 음악을 전공해 가수가 되어 오슬로의 노르웨이 국립 오페라단에서 활동중이라고 한다!!! 락밴드들에서도 악기를 연주하고 예전에 헬리콥터 면허를 땄다고 라스한테 연락도 했다는데 아무래도 멤버들 중에 가장 건전한 삶을 영위중인 듯하다. Lars는 Vomit 활동 시절을 회상하며 이 당시에 자신을 포함한 멤버들은 어린 애들이었고, 리프에 리프를 꼬리물려 조금은 과하게 리프들을 채워넣은 감이 있다고 시인하였다. 한마디로 리프 욕심을 좀 부렸다는 것이다. 허나 본인이 듣기엔 그 시절의 그러한 욕심이 더욱 Vomit의 곡들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 같다. 워낙 리프가 좋아서 95 언저리만 채워도 걸작으로 남을 것을 100 넘치게 (그것도 건성으로 때우는 파트나 어떠한 꾸밈장치도 없는 순도 백퍼센트 리프들만을) 정성맞게도 꾹꾹 눌러담아 주는 정직하고도 순박한 노르웨이인의 인심, 그리고 그 시절 그들의 열정과 근성이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곡들마다 밴드의 재능과 능력치가 최고로 끌어올려져 최대로 발휘된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덕분일 것이다. 유익한 욕심이다. ☆ 사심 가득한 마지막 말 본인은 86년의 11월 25일자 리허설 레코딩으로 처음 Vomit을 접했을 때 퍼뜩 머릿속에 나는 이것을 만나려고 여태 데스메탈을 좋아했나보다 하는 깨달음을 얻음과 동시에 경건해졌다. 개인적으로 이런 어린 분들의 패기넘치는 파릇파릇한 올드스쿨 작품들에는 뭐라 형용하지 못할 특별한 애정과 정감이 간다. 노르웨이 올드스쿨 음악에 콩깍지가 씌인 본인의 취향 탓일지는 모르겠으나 올드스쿨 데스메탈에 있어 본인에게 이 밴드가 갖는 의미를 대체할 밴드는 찾지 못하였다. 그만큼 정들었고 특유의 담백함에 매력을 느꼈다. 데스메탈이 이렇게도 정답고 흥겹고 아기자기하고 아늑하게 좋아도 되는 것인지 듣는 내내 끝없는 의문을 던진다. 스래쉬적 영향 아래 젊은 뮤지션들의 자존감과 패기, 노르웨이적 소박 솔직 담백한 리프스타일, 그리고 그 시절만의 감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에 본인에게는 마치 희귀한 천연기념물처럼 소중한 음악이다. 당대의 동류 밴드들과는 다른 성향의 노르웨이 데쓰를 써나갔던 단명 밴드 Vomit은 이 컴필 앨범 한 장으로 그 업적을 고하며 본인의 최애 데스밴드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딸랑 데모만 몇 장 있는 밴드면 어떠하리.. 첫술에 배부르고 단방에 명중인 밴드 세 줄 요약 - 80년대 초중반 만든 음악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매우 뛰어났던 노르웨이 올드스쿨 데스의 샛별같은 존재 Vomit - 유로니무스도 그 진가를 인정한 밴드이며 온종일 함께 음악 작업을 했을 만큼 서로 친분이 각별했다. - 멤버들 중 현재 음악활동을 이어가는 뮤지션은 없지만, 당시 어린 나이였던 기타리스트 Lars와 기타 겸 보컬이었던 Tommy Berg(RIP)의 천재적인 열연이 감동적인 밴드이다. 최강곡들: 86년도 리허설 데모와 87년도 2월 리허설 데모 전곡 페이보릿: Lord of Death, Rotting Flesh, Lust of Terror, Dark Abyss 3월 22일 유로니무스의 생일을 축하하며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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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yn Muil – Túrin Turambar Dagnir Glaurunga (2013) | 95/100 Dec 1, 2020 |
투린 투람바르 다그니르 글라우룽가.. 이는 영웅 투린의 묘비에 도리아스의 엘프들이 새겨넣은 글귀로서 ‘투린, 운명의 주인(스스로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용을 죽인 자신의 검은 칼 구르탕으로 마지막에는 자결을 택함)이자 글라우룽을 죽인 자(이 골칫덩이 용을 결국 죽이는 데 성공한 난세의 영웅임)’라는 뜻이다.
앨범명부터 덕심이 묻어나는 본작은 Nartum의 원맨밴드 Emyn Muil의 첫 작품이자 지금까지 나온 그의 세 앨범들 중 전체적으로 가장 내용상 통일감 있으면서도, 가장 다양한 극적인 시도를 해내는 마법적인 힘을 보여주는 앨범이다. 후린과 그의 아들 투린에게까지 이어지는 모르고스의 저주, 혹은 글라우룽(앨범자켓에 있는 용)의 사악한 눈알과 피 그리고 마법 주문처럼, 이 앨범에는 기타가 자아내는 비밀스러운 어둠와 키보드가 자아내는 신비로운 몽환이 깔려있다. 배경 스토리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힘든 앨범이기도 한데, 음악과 가사가 이렇게도 잘 어우러지는 톨킨 메탈은 드물 것이다. 가사가 마치 음악에 마법적인 힘을 부여하는 주문과도 같다. 1번 트랙은 판타지 책 읽어주듯이 이 앨범의 주인공인 투린의 근원과 외모, 먼 곳으로 떠도는 운명, 그리고 엘프들과 자라난 과거 이야기를 부르짖으며 시작된다. (투린은 후린의 아들로서 제1시대 모르고스와의 다섯 번째 대전쟁에서 아버지 후린이 적들과 싸우다 끌려가자 어머니 모르웬에 의해 엘프 왕국 도리아스로 보내져 그곳에서 자라나게 된다) 아무튼 쭉 이야기 읊어주다가 결연한 리프와 함께 간지 터지게 “Túrin Turambar, Dagnir Glaurunga”를 외치며 투린의 진정한 아이덴티티를 고하는데 이루 말하기 힘든 거센 감동이 치솟았다. 곡의 후반부에는 서정적이면서도 옛 느낌 풍기는 포크 판타지 전용 키보드 멜로디를 사이에 두며 투린이 자신의 또다른 이름(별칭)들인 Adanedhel, Agarwaen, Mormegil, Turambar를 회상하며 곡이 막을 내린다. 투린의 전사로서 고매한 이상과 한 인간으로서 슬픈 운명을 전부 통찰하는 듯한 명곡이다. 2번 트랙은 투린의 아버지 후린에 관한 이야기로, 모르고스에 대항하여 엘프와 인간의 연합군이 진격하는 전투씬을 다루고 있다. 앞서 언급한 다섯 번째 대전쟁에서 후린은 페아노르의 첫째 아들 마에드흐로스가 이끄는 일곱 왕자의 군대와 나르고스론드에서 온 군대, 그리고 후오르 등 하도르의 자손들과 놀도르 엘프 투르곤 등 동료 전사들과 함께 모르고스의 오크군에 맞서 피바람 부는 전투를 치루게 되나, 전쟁에서 패배한다. 후린은 전쟁터에서 재회한 엘프 투르곤만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조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곡의 후반에 “Go now my lord, you’re the last hope of the elves, I can’t let you die, retreat for your life, remember this day in your eyes, when the world will shine into a new light!” 이 부분은 쓰러져가는 자신의 군대에서 동료 투르곤에게 하는 후린의 말로 이해된다.) 하지만 정작 후린 자신을 포함한 나머지 전사들은 끝까지 오크군에 대항해 싸우기를 택한다. 그들은 오크군에게 계속 열세로 밀려나 강을 한 발짝 앞에 둘 때까지 싸웠고, 황혼까지 싸웠으나 후오르 등 동료 전사들이 모두 죽어버려 결국 후린만이 오크군들 사이에 홀로 남게 된다. 혼자 남아 오크군에 맞서던 후린은 곡의 제목이자 명대사인 “Aure entuluva!" ("Day will come again!")을 외치며 오크와 트롤들을 죽인다. 트롤들의 피(부식성임)에 의해 그의 도끼 날이 삮아버릴 때까지, 그는 적군을 죽일 때마다 이렇게 70번을 외쳤다고 전해진다. 비록 적군의 조소 속에 포로로 잡혀갔고 모르고스의 저주를 받았을지언정, 그는 진정한 전사의 격을 갖춘 영웅이었다. 기타와 키보드로 후린의 처절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동시에 표현해낸 곡의 마지막 부분이 흘러감에 따라 울부짖는 후린의 대사가 압권이다. 이 부분의 키보드라인에서 윈디르의 Journey to the End가 생각났다. 곡의 도입부와 중간부에 전사들이 돌격하는 리프는 써모닝의 The Shadow Lies Frozen on the Hills를 떠오르게 하기도 한다. 3번 트랙은 2번 곡에서 목숨을 사수해 돌아간 놀도르족 엘프 투르곤의 비밀 왕국 Gondolin을 노래한다. 투르곤은 모르고스의 눈을 피해 숨겨진 왕국을 세워 다스렸으나 마에글린의 배신으로 인해 몰락한다. 가사 중 모르고스의 대사 속 treachery는 곤돌린의 위치를 모르고스에게 발각시켜 왕국을 몰락시킨 마에글린의 배신을 지칭한다. 곡이 상당히 깔끔하면서도 신선한데 Nartum 본인도 이 곡이 마음에 들었는지 이번에 나온 신작에 extended version으로 재수록해놨다. 4번 트랙은 투린의 여정에 등장하는 난쟁이 밈의 배신을 instrumental 음악으로 표현한 곡이다. 밈은 아몬 루드흐라는 바위언덕에 보물들을 숨겨 보관하였는데, 투린 일행에게 밉보여 붙잡혀 목숨을 구걸하게 된다. 투린 일행은 그를 살려주는 대신 그에게 아몬 루드흐까지 안내하도록 하였고, 이 과정에서 밈은 투린을 존경하게 되며 투린이 친애하던 벨레그(신다르족 엘프)에게 질투마저 느끼게 된다. 심지어 벨레그는 밈이 증오하는 엘프족이었고, 아몬 루드흐에 엘프가 오자 이를 계기로 화가 난 밈은 훗날 모르고스에게 아몬 루드흐를 내어주는 배신을 저지른다. 짤막한 곡 속에 난쟁이 특유의 심술궂음과 모략을 꾸미는듯한 비밀스러움이 드러나 있다. 5번 트랙은 불길한 효과음과 사악한 키보드 그리고 전투적인 드럼에서 알 수 있듯 모르고스 세력에 관한 노래이다. 모르고스가 화력을 키우는 본거지이자 어둠의 요새인 앙반드에서 악의 무리들이 주군을 찬양하며 엘프들과 인간들, 그리고 발리노르의 발라르들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후반부 기타와 키보드 멜로디가 전투 주제곡 같다. 6번 트랙은 투린의 Black Sword 구르탕을 음악으로 표현한 instrumental 곡이다. 투린의 운명적인 순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명검 구르탕의 위엄이 격조있는 키보드 소리로 고스란히 형상화 되어있다. 7번 트랙은 앞선 4번에서 언급한 아몬 루드흐에서 모르고스 세력과 맞서는 투린 일파의 모습을 그린 곡이다. 투린과 함께 했던 도망자 무리는 결국 언덕을 피로 물들이며 오크군에 의해 죽는다. 곡 자체는 좋으나 익숙한 멜로디와 예상 가능한 전개에 상대적으로 많이 듣지 않은 트랙이다. 8번 트랙은 나르고스론드의 왕 오로드레스에게 신임을 얻은 투린이 전투들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진두지휘하고, 모르고스의 오크들을 해치우기 위한 용도로 도시 외곽에 다리를 건설하는 내용이다. 울모(물의 신)는 사신을 통해 오로드레스에게 나르고스론드가 침략받을 위험에 놓여있어 해변으로 대피할 것을 사전에 경고하지만, 왕은 말을 듣지 않았고 도시에 그대로 머무른다. 그리하여 투린이 지은 다리는 훗날 그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앙반드에서 오는 모르고스의 세력에게 침략의 발판이 되어 나르고스론드를 파멸로 이끌게 된다. 오로드레스의 왕좌와 투린의 권력이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의 곡이다. 9번 트랙은 모르고스의 수하이자 모든 용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거대 용 글라우룽의 죽음을 다룬 곡이다. 투린은 Cabed-en-Aras(10번곡 마지막에 읊조리는 지명) 협곡에서 두 명의 동료 도를라스, 훈토르와 함께 글라우룽을 대적하려 하였으나, 도를라스는 도중에 겁에 질려 도망쳐버리고, 훈토르는 용의 열기와 악취에 정신을 가누기 힘들어하는 투린을 돕다가 용이 쳐낸 바위에 머리를 맞고 협곡에 빠져 죽는다. 혼자 남은 투린은 우여곡절 끝에 앨범 커버와 같이 자신의 검 구르탕으로 파괴자 용을 죽이는데 성공한다. 10번 트랙은 반영웅 투린의 삶을 요약하며 되돌아보는 곡이다. 그는 뛰어난 전사이자 글라우룽을 퇴치한 영웅이었으나, 모르고스의 저주에 의해 자신의 친여동생 니에노르와 혼인하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니에노르가 아이를 밴 채 협곡에 몸을 던져 자결하는 비극적 운명을 맞아야 했다. (투린과 니에노르 둘 다 저주에 의해 서로 오누이임을 모르고 있었으나, 지독한 용의 피에 손을 적신 투린이 혼절해 있는 동안 그를 찾아 협곡으로 온 니에노르가 그가 죽은 줄 알고 울부짖자 그옆에 글라우룽이 죽어가다 잠깐 깨어나 마지막 말로서 둘의 관계를 폭로해버렸음. 앨범 뒤편에도 이러한 슬픈 전설이 있다는 것..) 투린은 끝내 모르고스의 마력에 놀아난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며 죽음을 택하는데, 그의 죽음의 순간을 표현한 구절(the truth can kill even the strongest heart)이 인상적이다. 이 앨범명(그의 묘비명)처럼 투린은 용감한 전사이자 삶의 개척자였지만, 동시에 어찌할 수 없는 저주스러운 운명의 희생양이기도 했다. 본작은 후린과 그의 아들 투린의 감동적이고도 비극적인 일화들을 곡들로 제대로 풀어내었다. 음악도 음악이겠으나 곡들의 서사 맥락 속에서 가산점을 두지 않고는 배기기 힘든 앨범이다. 구성이 참신하고 리프나 멜로디의 퀄도 좋은 편이지만, 무엇보다 곡의 전개 및 표현이 가사의 내용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하나의 음성 스토리북이라는 점을 간과하기 어렵다. 그렇기에 이 앨범은 뭇 에픽 블랙 팬들은 물론 , 실마릴리온, 후린의 아이들 등 톨킨 신화에 관심이 많아 관련 스토리를 꿰고 있는 톨킨메탈 팬들의 심장을 마치 투린의 검이 글라우룽을 찔렀던 것처럼 가슴 아리게 관통할 것이다. 페이보릿 트랙: 1, 2, 3 ... See More 10 like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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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eland – Fire Chariot of Destruction (2005) | 85/100 Jul 1, 2022 | |
일관성 있는 컨셉, 음악적 무게와 서사성, 뮤지션의 지긋한 덕심 모두 잘 알겠는데 재미가 없다. 차라리 이런 사운드 원류인 바쏘리의 바이킹 메탈이나 다른 페이건 메탈을 듣고 싶다. 형식미는 갖췄을지언정 이 밴드만의 신선한 내용미가 있었던 미가공의 초기작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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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eland – Creed of Iron (2000) | 95/100 Jul 1, 2022 | |
개인적으로 그레이브란드 작품들 중 제일 취향이다. 앞에 냈던 앨범들과 뒤에 낼 앨범들의 장점 축약판이라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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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eland – Immortal Pride (1998) | 75/100 Jul 1, 2022 | |
버줌 음악처럼 오랜 과거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내면 세계를 되찾으며 깨달음을 얻는 유익한 최면이 아닌, 별 의미 없는 반수면 상태를 유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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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veland – Following the Voice of Blood (1997) | 90/100 Jul 1, 2022 | |
기타 톤이 유럽 전통 현악기에 디스트 건 듯한 짤랑짤랑 소리가 나서 놀랐었음. 드럼도 포크음악 퍼커션같고 전체적으로 이쪽을 겨냥한듯함 근데 리프가 중세적이고 포크적인 매력이 있어 그런 프로덕션이 어울림. 중세 중부유럽 음악이 떠오르는 멜로디와 스트러밍이 인상적. 2집에서 잡아낸 밴드의 raw한 아이덴티티에 페이건 색채를 개성적으로 잘 더했다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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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urd – Schwarze Bande (2022) | 95/100 Jun 13, 2022 | |
친형 Wolf와 갈라져 독립적인 Absurd를 시작한 Hendrik Möbus의 음악이다. 옛 극단성에 원숙한 기량이 더해진 명쾌, 명석한 사운드다. 특유의 득의만면한 원기를 내뿜는, 초심으로 돌아간 본격 Absurd라고 생각한다. Wolf와 Unhold의 음악도 좋아하지만 내심 '진짜'인 Hendrik의 귀환을 바랐기에 만족스러웠다. Intro, Outro까지 컨셉에 맞게 완벽하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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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urd – Grabgesang (2021) [EP] | 85/100 Jun 13, 2022 | |
기존 페이건, 포크 블랙 스타일보다는 더 펑크 색이 짙어진 블랙이다. 밴드의 핵심멤버인 Wolf와 Unhold는, 원조멤버 JFN(Hendrik Möbus)과 이번에 확실히 각자노선을 가게 되었는데, 커버아트의 피리 부는 감성적인 해골이 Hendrik Möbus가 새로 낸 앨범커버의 빡침으로 타오른 해골과 대조되며 각각의 음악적 스타일의 차이를 시사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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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konost – На Крыльях Зова (On the Wings of the Call) (2010) | 95/100 Jun 10, 2022 | |
모든 악기와 보컬, 음악적 주제에 있어 '슬라빅 포크'를 순도 높게 표현한, 희귀성 있는 슬라빅 포크 메탈이다. 밴드명 알코노스트는 슬라브 신화 속 여인의 얼굴과 새의 몸을 가진 존재인데, 밴드가 음악을 연주함에 따라 이 새(여보컬)를 부화시키고 날개를 달아주며 슬라브 민속풍의 시적 언어로 마법 주문과도 같은 노래를 하게 만든다. 페이보릿 트랙: 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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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lorn Citadel / Mirkwood / Spells of Fog – Forlorn Citadel / Mirkwood / Spells of Fog (2021) [Split] | 85/100 Jun 10, 2022 | |
Mirkwood 새로운 곡 들으려고 감상했는데 의외로 Forlorn Citadel의 존재감을 느꼈다. 나는 Windir탐지기라서 조금이라도 Windir스러운 멜로디나 리프가 감지되면 사족을 못 쓰고 작동하는데 잠깐 그것이 작동되었다. 또한 이쪽 계열이 대개 그렇듯이 Summoning적 정취를 느낄 수 있다. 페이보릿 트랙: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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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evum – Fedrelandets alter (2021) [EP] | 90/100 Jun 10, 2022 | |
10년 만에 돌아왔는데 기본기와 역량이 그대로 남아있음. 특유의 냉소적이고 고결하게 번뜩이는 리프들이 듣기 좋음. 선조들이 피땀 흘려 지켜내고 일구어낸 땅을 향한 이들의 신조가 드러남. 윗동네라 덜하겠지만, 지난 십여 년간 얼마나 더 착잡했을까... 고뇌의 산물. 아무리 들어도 음악적으로 최하점 받을 작품은 아닌데 terror 당하신 듯하다. 피는 물보다 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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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putation – Achieve the Mutilation (1989) [Demo] | 90/100 Mar 22, 2021 | |
Immortal의 전신인 올드스쿨 데스메탈 밴드. Demonaz on vocals, Jørn Tunsberg(바르그랑 92년 크리쓰마스 이브에 오사네 교회 태워먹고 2년 빵살았음) on drums. 음악은 좋은데 노르웨이적이기보다는 남미적임. 이 시절 뛰어난 노르웨이 데모들 특징: 본작처럼 Thanks to 리스트에 유로니무스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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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 ratings added by 유로니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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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um lyrics added by 유로니무스
cover art | Band Lyrics | Album Lyrics | Dat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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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 | Date | Hi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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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헴 내한 기념) 유로니무스가 직접 만든 카세트 테이프 올립니다. [28] | Jan 27, 2023 | 317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