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valera –
Schizophrenia (2024) |
90/100 Jun 22, 2024 |
솔직히 믹싱이 그다지 맘에 들진 않는다. 녹음하는 동안 막스랑 이고르 사이에 뭔가 트러블이라도 있었나? 왜이렇게 드럼 소리가 과하게 크고 기타가 주눅이 들은 것 같은지... 처음 듣자마자 머릿속에 바로 스쳐간 앨범이 메탈리카 4집이다. 메탈리카 4집은 라스가 막판에 몰래 베이스 소리를 거의 죽여놓은 것으로 아주 유명한데 혹시 이 앨범도? 하는 생각이 들은 것이다. 녹음의 자체의 질은 원본보다 확실히 올라갔어도 더 듣기 좋아진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고전 작품을 재녹음 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해서 당분간이야 자주 듣겠지만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원본을 자꾸 찾게 될 것 같다. 아니면 반반 씩 섞어 듣던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든다는거 자체가 이미 나한테는 재녹음반이라는 이 앨범의 정체성이 상당히 흐릿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은근슬쩍 음악의 내용을 많이 건드렸는데 그게 상당히 거슬리는 편이다. To the Wall의 러닝타임이 길어져서 뭐지 싶었는데 끝부분에 이상한 사족을 붙인 건 그냥 이상하다 정도로 넘어갈 수준이지만 Inquisition Symphony에서는 굳이 긁어부스럼을 만들었다. 어디가 긁어부스럼이냐면 이 곡의 후반부에서 다시 초반 리프로 돌아오기 직전에 연결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만든 드르륵 거리는 리프가 있다. 원본의 드르륵 리프는 박자에 맞춰서 초반 리프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맛이 일품이었고 그런 역할을 수행했기에 의미가 있는 리프였는데 이걸 재녹음반에서는 그루브감을 더하고 싶었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박자를 그냥 갈아엎어버렸다.
막스가 부르는 방식도 좀 맘에 안들어졌다. Septic Schizo에서 세 번 등장하는 후렴구에서 원래 조금씩 다르게 불러서 같은 리프라도 다르게 느껴지는 효과가 있었는데 것도 그냥 똑같은 느낌으로 일관되게 불러버렸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원본 감성을 살리는데 너무 몰두해서인지 심하게 울려퍼져서 마이너스로만 느껴지는데다가 곡들 중간중간에 보컬을 동반한 이상한 곡소리 같은걸 많이 추가해서 솔직히 좀 어지럽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그 밖에도 거슬리는 점이 여러 군데 있지만 뭐 그래도 이 고전 명작을 현대적으로 녹음된 버전으로 다시 듣게 된다는 것 자체가 즐거운 이벤트고 또 원본이 워낙 좋다보니 원본을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들을만한 앨범으로 나와준 것 같다.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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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tral Voice –
Sparagmos (2024) |
100/100 Feb 9, 2024 |
Spectral Voice가 1집이 출시된 지 무려 7년만에 신보를 냈다. 개인적으로 1집을 크게 즐겨 듣지 않았는데 워낙 여기저기서 좋다고 평가받는 밴드다보니 분위기에 휩쓸려서 나도 모르게 이번 신보의 발매 소식에 큰 기대를 하게 됐다. 심상치 않게 사악해 보이는 앨범 커버와 쿨한 앨범명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이번 신보는 내 기대에 딱 부합하는, 극도로 헤비하면서 어두운 음악이 담겨있었다. 이렇게까지 본격적으로 사악한 기운을 내뿜는 앨범은 꽤나 보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1집과 마찬가지로 dISEMBOWELMENT에서 영향을 받은, 클린기타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둠데스인건 똑같지만 전작이 러브크래프트적으로 사악했다면 이번 앨범은 직접적으로 반종교적인 주제를 차용한 덕분에 리프 멜로디가 덜 추상적이고 좀 더 단순해졌다. 또 프로덕션은 더욱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 것 같은데도 1집보다 악기가 더 선명하게 들리게 됐다. 특히 드럼 사운드가 아주 육중해진 것이 너무 맘에 든다. 보컬 창법도 살짝 바뀌었는데, 마치 고통에 몸부림치는 산제물 같이 쥐어짜는 느낌으로 부른다. 그래서 약간은 정제된 창법으로 부르던 1집에 비해 광기와 공격성의 측면에서 본작이 더 앞선다.
수록된 곡은 4개밖에 없지만 전체 러닝타임이 45분이 넘어갈 정도로 곡 하나하나의 무게감이 엄청나고 앞의 두 곡, 뒤의 두 곡이 서로 이어져 있어 부피감 또한 상당하다. 그 중에 다행스럽게도 질질 끈다고 느껴지는 곡은 없긴 한데 더 좋은 곡이 될 수 있었던 몇 가지의 여지를 남겨둔 채 끝났다는 느낌이 있어 아쉬운 부분은 있다. 그 여지들이 단점으로 작용할 정도는 아니라서 다행이다.
이번 신보는 전작에 비해 변화무쌍하지 않아 지루하다는 해외평가들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작곡 방식이 바껴서 생긴 차이 때문이다. 전작은 리프의 연결이 자연스럽긴 해도 한 리프가 끝나면 완전히 새로운 리프가 등장하는 방식으로, 매번 새로운 장소를 모험하듯이 흘러간다. 반면 Sparagmos는 다음 리프로 나아가기 전에 앞의 리프와 같이 등장시켜 더욱 물 흐르는 듯 한 전개를 선보이는 순간이 많이 보인다. 예컨대 리프가 이런 식으로 전환된다.
A -> AB -> B
이런 전개방식을 채택해 프레이즈가 상대적으로 더 길어져 그 부분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리스너가 많다. 하지만 덕분에 1집보다 더 엇나간 느낌에 광기로 가득 찼음에도 불구하고 1집 특유의 차분하게 스멀스멀 기어오는 듯 한 느낌은 그대로 유지됐고, 개인적으로는 더욱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만드는 앨범이 완성됐다고 생각한다.
또 한 가지 특기할 점이 있다면, 본작의 수록곡들은 아무래도 통째로 들을 것을 전제로 작곡된 것 같다. 앨범 제목이 Sparagmos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산제물이 스스로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과정, 혹은 의식 집행자와 관전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기승전결에 맞춰 담아낸 컨셉앨범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 흐름에 맞게 4곡이 작곡된 것으로 보이며, 단일곡으로 떼어 들어도 큰 하자는 없지만 연속으로 들을 때의 시너지는 아무래도 받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시간이 널널할 때 한 번에 들을 것을 추천한다.
1. Be Cadaver
12분 가까이 되는 대곡이지만 앞의 절반 가까이는 리프 하나로만 전개된다. 물론 그 사이에 미시적인 변화들이 있고 앨범 전체로 놓고 봤을 때 45분 중에 5분 가량의 인트로가 있는 셈이다.
처음엔 클린기타가 홀로 운을 떼다가 디스토션기타가 뒤에서 불길한 소리를 내면서 천천히 개입한다. 악기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며 보컬까지 다 등장하고 난 후에 조금 시간이 지나면 기타가 주법을 바꿔 드라이아이스가 깔리듯이 음산하게 저음 트레몰로 피킹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그렇게 5분을 넘겨 조금 지나면 모든 악기가 멈추고 앞서 연주되던 트레몰로 리프를 좀 더 빠르게 연주하며 홀로 남아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 이후부터는 리프 전환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탄다. 적절한 타이밍에 첫 리프로 회귀하기도 하고 드럼이 더블베이스와 탐을 세차게 두들기면서 무저갱 속으로 처박힐 듯이 헤비한 분위기를 형성하기도 하면서 지루할 틈 없이 연주를 이어나간다. 황량한 멜로디의 클린기타를 앞세운 리프를 끝으로 자연스럽게 다음 곡으로 이어질 준비를 한다.
앨범의 컨셉에 맞춰 감상을 말해보자면, 제물이 될 자가 희생의 재단에 이르는 계단을 한 걸음씩 올라가면서 공포를 맛보며 인생의 허무함을 곱씹는 것 같은 곡이다. 음악적인 표현력이 대단하고, 중반 이후부터는 여러가지 리프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오면서 절망적인 분위기의 표현에 가속력이 붙어 정말로 좋다. 좀 문제가 되는 구간이 있다면 리프 하나로만 진행되는 첫 5분인데 리스너의 취향에 따라 평가가 꽤 갈릴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질질 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당장 이들의 정신적 지주인 dISEMBOWELMENT의 A Burial at Ornans만 들어봐도 역체감이 들을 것이다. 악기를 순차적으로 등장시켜 반복적인 느낌을 줄이고 도중에 기타가 주법을 바꾸기도 하고 드러밍도 기계적인 반복은 아니라서 적어도 무미건조한 구간은 아니라고 본다. Enslaved의 Norvegr 급이 아니다 뿐이지, 이런 류의 곡들 중에서는 최상급에 해당된다.
2. Red Feasts Condensed Into One
앨범의 하이라이트. 재단에 도착한 제물을 둘러싸고 본격적으로 신체를 찢어내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낸 것 같은 광기의 대곡이다. 그 표현력과 분위기도 대단하지만 작곡을 특히 잘해서 러닝타임이 제일 긴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잘 집중하게 만든다. 본 앨범에서 비슷한 러닝타임을 가진 마지막 곡은 물론이고 1집의 13분짜리 곡인 Visons of Psychic Dismembermemt와 비교했을 때도 훨씬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앞을 향해 나아간다. 그 전개 과정을 풀어보면 일단 다음과 같다.
intro-a-a'-a''-b-c-d-a'''-e-outro
메인이 되는 리프 a를 무려 네 번에 걸쳐 기승전결의 흐름에 맞춰서 조금씩 다르게 연주하는 것이 특징이다. 앞뒤로는 인트로와 아웃트로를 배치해 깔끔한 서사가 될 수 있게 울타리를 형성한다. 또 곡의 중심(d)에 분기점을 만들어 긴 러닝타임동안 집중력과 중심을 잃지 않게 지탱시킨다. 프레이즈가 둠데스답게 긴 편이지만 리프의 음정 변화와 드러밍의 변주 등을 적재적소에 넣어 미시적인 변화에 신경을 많이 쓴다.
먼저 이전 트랙에서 바로 이어지는 인트로는 과격한 리프와 함께 블래스트 비트로 빠르게 몰아붙인다. Be Cadaver에서는 이렇게 빠른 구간이 없었기 때문에 리스너로 하여금 순식간에 다음 곡에 정신을 집중시키기 딱 좋다. 인트로 뒤에 바로 등장하는 a는 곡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주술적이면서도 헤비한 리프다. 너무 단순한 리프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는 이 뒤로 살을 붙여나가며 점차 진화하기 때문에 그 성질상 단순하게 가는 편이 더 좋다고 보고 밴드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본다.
a 다음으로 기타만 남겨두고 주법을 트레몰로로 바꿔 연주하면서 최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a'가 등장한다. a'는 단순히 다른 악기를 빼고 주법만 바꾼 버전이 아니라 음을 아래로 찍어누르던 a와 반대로 위로 솟아오르는 듯 하게 바꾼 것이 큰 차이점이다(동시에 더 깊게 찍어누르기도 한다). 물론 웅장하게 솟아오르는 긍정적인 느낌이 아니라 광기로 가득 차있다.
a''는 a의 리프를 클린기타로 바꿔 연주하되 백킹 리프로 떼어놓고, 클린기타를 한 대 더 등장시켜 그 기타가 황량한 멜로디를 연주하면서 리드하도록 하며 b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초반부의 끝이다. 인트로를 빼면 리프 하나만을 사용하지만 지겹게 반복된다는 느낌이 전혀 없고, 오히려 의식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게 시각적으로 그려지면서 여러 체험을 가능케 한다. 구체적으로 이미지를 그려보자면 재단의 탁자 위에 올려져 손발이 묶이는, 느긋하면서도 살떨리는 순간을 포착한 것 같다.
b는 a''의 리드 멜로디를 기괴하게 꼬아놓은 것 같은 리프다. 템포는 블래스트 비트를 동반해 다시 과격해진다. 한 프레이즈 뒤에는 리프의 음정을 한 차례 높이고 사운드 채널까지 빙빙 돌려가며 프로듀싱의 힘을 동원해 정신을 더욱 혼탁하게 만든다. 손발이 묶여 옴짝달싹 못하는 제물이 공포에 사로잡힌 감정상태를 묘사한 것 처럼 느껴진다. 이후 본격적으로 의식이 진행되기 전의 비장한 리프 c를 지나 곡의 중심인 d에 이르게 된다. d는 앰비언트 구간으로, 곡의 중심부이자 후반부로 나아가기 전 환기구 역할을 수행한다. 또한 이 구간이 있기에 a가 한 번 더 재활용되어 다시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다. 의식 참여자들이 단체로 흔들어대는 것 같은 방울 소리와 트럼펫 소리 등으로 가득 채우며 한바탕 거하게 의식을 치루고 나면 본격적으로 a'''가 등장하면서 후반부가 시작된다.
이번엔 클린기타를 활용하진 않지만 원래의 리프를 보다 빠르게 연주하며 불길함에 박차를 가하고 뒤에 새로운 리프 꼬리표를 붙여넣는 식으로 전개해 나간다. 새로 추가된 리프는 따로 언급해도 될 정도로 프레이즈 내에서 상당히 공간을 차지하지만 독립된 리프로 분류하기엔 너무 애매하고, 어디까지나 a를 보조하는 식으로만 쓰인다고 봐야 맞다. 대신 a와 같이 붙어서 전개되기 때문에 똑같은 리프가 반복된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한 번 반복될 때마다 드럼소리가 거꾸로 재생되는 것 같은 효과를 넣어주기도 하는 등, 미시적인 변화들에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지루할 일은 없다. 또한 가장 헤비하게 찍어누르면서 점차 느려지는 구간이라 의식의 끝이 가까워졌다는 걸 알리기에 알맞다.
a''' 뒤에 악기들이 서서히 뒤로 빠지면서 리프 e의 클린기타 버전이 먼저 등장해준 후에 본격적인 e가 전개된다. 절망적이면서도 장렬한 멜로디의 리프이며, 백킹 리프를 연주하는 기타가 나중에 따로 남아 멜로디만 살짝 변경해 그대로 아웃트로의 리프로 활용된다. 아웃트로의 리드 기타 연주 구간도 따로 있어서 e의 연장선으로만 그치지 않고 독립된 아웃트로로써 역할을 수행한다.
개인적으로도 둠데스 장르에서 12분이 넘어가는 대곡 중에 이정도로 집중이 잘 되고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곡은 이게 처음이다. 곡 길이에 비해 리프 갯수는 많지 않아도 하나의 모티브(a)를 다양한 방식으로 발전시켜 구조에 단단함을 부여하고 리스너가 이해하기 쉬운 서사를 제공하면서 인트로, 아웃트로, 앰비언트 중심부라는 세 개의 철근을 박아넣어 완전무결한 곡이 됐다. dISEMBOWELMENT의 대곡에서 발견됐던 단점들을 극복하면서 악기 활용은 물론이고 20년 세월동안 발전한 프로듀싱 기술력을 음악의 내적 완성도를 높이는데 적극 활용하기까지 해, 이들이 단순한 선대밴드의 카피캣으로만 남을 그릇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증명해주는 명곡이다.
3. Sinew Censer
후반부의 시작을 담당하는 곡이다. 앨범 전체로 놓고 봤을 때는 기승전결의 '전'에 해당하는 곡으로, 그에 걸맞게 7분대의 짧은 곡이지만 가장 변화무쌍하고 멜로디가 화려하면서 사타닉하다. 이러한 이유로 앨범 내에서 가장 일반적인 데스메탈스럽다. Red Feasts 에서 사지가 다 잘려나간 제물이 고통에 몸부림치며 사경을 헤매는 것 같은 인상을 주는 곡이다.
단일곡 기준으로 따졌을 때는 Be Cadaver보다 더 좋게 느껴지고 많은 리프가 등장해서 가장 호불호가 덜 갈릴 곡이지만 어딘가 2% 부족하다고 느껴진다. Be Cadaver가 Sinew Censer보다 나은 점이 있다면, 다음 곡과의 연계나 앨범 단위의 진행에 있어 더 납득이 되는 전개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앨범 단위로 들었을 때 가장 시너지를 많이 받는 곡이 바로 Be Cadaver다.
한편 Sinew Censer는 '전'에 걸맞게 과격하다는 점은 좋지만 '결'과 이어지는 매끄러운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끝나버렸다는 느낌을 준다. 간단한 아웃트로 리프 하나 정도만 넣어줬어도 더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것도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가 일순간 확 하고 풀려서 '결'을 여운을 남기는 용도로 쓰는 경우도 있으니 말이다(대표적인 예시로 Burzum의 Hvis Lyset Tar Oss가 있다. 똑같은 4곡 구성이라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어쨌든 중요한 건 이것을 취향의 영역으로 여길 정도로 눈에 띄는 단점은 아니라는 점이다.
4. Death's Knell Rings in Eternity
Red Feasts Condensed Into One와 러닝타임이 거의 똑같은 곡이지만 아쉽게도 내용물의 퀄리티까지 똑같진 못하다. 그래도 여전히 좋고 앨범 클로저로서의 역할을 잘 수행한다. 고통에 몸부림치던 제물이 더 이상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죽음이 임박한 순간에 스쳐가는 주마등을 표현한 것 같은 곡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리프들이 차례차례 나열되듯이 곡이 진행된다.
등장하는 리프의 갯수 자체는 Red Feasts보다 2배 가량 더 많지만(알파벳으로 분류하면 i까지 나온다) 퀄리티는 리프 갯수에 따라오는 기대만큼 보답하지 못한다. 1집에서 느꼈던 단점들을 여기서 일부 느낄 수 있었달까. 일단 중반부까지는, 더 쳐주면 3분의 2 구간까지는 정말 좋다. 리프를 적절히 재활용 하기도 하고 러닝타임 중간지점에 이르기까지 리프 연결의 자연스러움에서 흠잡을 데가 없다. 하지만 베이스 솔로연주 구간 이후부터 진행되는 후반부는 분명 진행이 어색하지 않은데도 살짝 안일하게 이어붙인 것 같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느껴진 이유를 생각해봤는데, 아무래도 템포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필자는 리프가 많고 반복이 없는 구조를 가진 곡들은 템포 조절이 생명이라고 보는데, 경험상 이런 류의 곡들이 템포가 너무 일정하면 리프로 뇌절하는 것 같은 느낌을 항상 받아왔다. 안타깝게도 Death's Knell이 바로 그런 케이스고, 후반부와 크게 차이 없는 초반부가 더 좋게 느껴진 이유는 딱 거기까지가 뇌절이 아니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반부의 템포변화가 유동적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이렇듯 마지막 곡의 뒷심이 살짝 딸리다 보니 여러모로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것 같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본 앨범의 '결'이 긴 여운을 남기기 위한 용도라고 친다면 앞선 트랙 Sinew Censer의 갑작스러운 끝맺음도 납득이 되면서 Death's Knell의 다소 평탄한 전개 자체도 이해는 충분히 가능하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모든 곡이 최소한 준명곡 이상인 건 맞고 앨범 단위로는 두 말 할 여지 없이 명반이다. 이쯤 되면 dISEMBOWELMENT가 Spectral Voice보다 우세한 점이 이젠 거의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세대교체를 확실히 이룬 것으로 보이며,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언급했던 단점들은 그냥 들었을 땐 절대 단점으로 다가오지 않는 것들이다. 하나하나 자세하게 뜯어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거슬리게 되는 것 뿐이고, 그마저도 어쩔 땐 단점이 아닌 것 처럼 들리기도 한다. 특히 Red Feasts Condensed Into One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100점짜리 명곡이라서, 일단 이것만으로도 모던 데스메탈 중에서도 충분히 상위권에 들어갈만한 앨범을 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이 너무 취향저격이라 다소 맘에 안들었던 1집을 간만에 다시 들어봤는데 여전히 그 앨범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내 취향때문인건지 밴드의 음악이 2집에 와서 마침내 열매를 맺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것은 다음 신보를 통해 확인해보면 될 일이고, 지금은 그저 이 앨범을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즐겨야겠다.
각 곡에 대한 점수
Be Cadaver 97점
다 좋지만 초반부가 살짝 아쉬워서 3점 감점.
Red Feasts Condensed Into One 100점
둠데스라는 장르 안에서는 아마 올드스쿨까지 다 포함해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갈 명곡.
Sinew Censer 97점
조금 갑작스럽게 끝나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아서 3점 감점.
Death's Knell Rings in Eternity 94점
후반부가 어물쩡 끝나는 감이 있지만 전반부는 엄청 좋고, 후반부도 썩어도 준치라 6점 감점.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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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b Mold –
Planetary Clairvoyance (2019) |
95/100 Jan 26, 2024 |
작년 신보와 비교했을 때 일단 그 끅극거리는 보컬이 이 앨범하고 훨씬 더 잘 맞는 것 같다. 근데 워낙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앨범이라 어느 게 더 낫다 말하긴 어렵지만 연주의 스킬 면에서는 아무래도 프록데스를 표방하는 신보쪽이 더 우세한 듯 하다. 대신 본 앨범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미드템포로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쾌감같은 것이 있다. 요즘 나오는 것들이 하나같이 느리거나 엄청 빠른 모 아니면 도 느낌이라 오히려 적당한 템포로 일관되게 유지하는 음악이 더 독특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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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b Mold –
The Enduring Spirit (2023) |
100/100 Jan 7, 2024 |
메탈의 암흑기인 2000년대 초중반(물론 예외적인 밴드는 항상 있음)을 지나 올드스쿨을 계승하는 리바이벌 밴드가 하나 둘씩 나타나던 시절엔 다들 음악적으로 '계승'하는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래서 굳이 찾아들을 생각까지 들진 않았고 원조격이면서 상위호환격인 올드스쿨이나 더 디깅하면서 간간히 괜찮은 2000년대 밴드들 한번씩 들어주자는 마인드로 지금까지 리스너 생활을 이어왔는데...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계승만 하던 범주에서 벗어나 더욱 프로그레시브하게 나아가기 까지 하면서 올드스쿨과 차별화된 면모를 보이며, 또 그것이 차곡히 쌓여 하나의 풀까지 형성하게 되니까 이젠 올드스쿨과는 아예 다른 길을 걷게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이 앨범을 들으면서 하게 됐다. 리바이벌 밴드들이 올드스쿨과 다른 길을 걷고 있다는 것 자체는 벌써 몇 년 전부터 체감하고 있었지만 이런 새삼스러운 말이 나올 정도로 고유의 아이덴티티로 똘똘 뭉친 음악을 들려준다. 2023년 데스메탈 영역 1등이라고 본다.
계승만 하전 시기를 벗어나 이젠 독자적인 영역으로 떨어져나간 리바이벌 밴드들을 응원하게 되면서, 리스너의 나의 입장에서는 청취의 선택의 폭이 하나 더 늘어난 것 같아 정말 기쁘다.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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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es Warning –
Awaken the Guardian (1986) |
100/100 Dec 23, 2023 |
Fates Warning의 3집은 단적으로 말해서 진입장벽이 높다. 귀에 완전히 붙은 지금 와서는 내 마음 속 환상적인 명반 중에 하나지만 이 앨범은 "단숨에 빠져들어야 명반" 이라는 내 생각을 완전히 부숴줬다.
한창 이 앨범과 씨름을 할 때 가장 마지막으로 좋아하게 된 곡이 1번 트랙 The Sorceress와 5번 트랙 Prelude To Ruin 이었다. 전통적인 리프들로 직접적으로 귀에 착 감기게 만들어놓은 느낌의 2집과 다르게 3집이 대체 무엇이 다르길래 이토록 듣기 어려워 했던 것인지, 최근 이 앨범을 다시 들으면서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다. 지금도 1번과 5번 트랙은 상당히 난해하게 느껴진다.
보통 메탈음악 에서 "난해하다" 는 표현은
1. 테크니컬한 속주의 리프나 리듬 파트가 등장할 때, 혹은 리프의 멜로디 자체가 괴랄할 때
2. 작곡을 할 때 한 곡 안에 여러 곡을 어거지로 덕지덕지 이어붙인 것 같은 뇌절을 하는 경우
에 쓰인다.
일단 페이츠 워닝은 절대 2번에는 해당이 안된다.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Master of Puppets(이하 MoP)와 비교해보자면, MoP의 후렴구와 어쿠스틱 브레이크 사이의 연결이 어색하게 느껴지게 만들 정도로 리프와 리프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에 있어서 도가 틀 대로 튼 밴드가 페이츠 워닝이다. 그 예시로 대표적인 곡이 Exodus다.
Exodus는 앨범 내에서 가장 긴 곡이고 가장 눈에 띄는 독립적인 어쿠스틱 브레이크가 있다. 여러모로 MoP와 비슷한데, 그 곡을 절대 낮춰보려는 것은 아니지만 난 Exodus가 더 훌륭한 곡이라고 본다. 아마 빌드업과 온도차이가 그 이유인 것 같다. MoP의 어쿠스틱 브레이크 자체가 문제라기보단 격렬한 스래쉬 구간과의 괴리감이 문제라고 할까... Exodus는 어찌됐든 장엄한 판타지의 구현이라는 하나의 목표의식을 철저하게 지켜나가며 어쿠스틱 브레이크 또한 파워메탈이라는 장르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전개해 나간다. MoP는 그런 점에 있어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빌드업에 의한 차이가 있다고 본다. MoP는 인트로 뒤에 절과 후렴이 두 번씩 반복되는데, 이런 진행방식은 브레이크가 등장하기 이전에 이미 곡이 반 이상은 완결됐으면서도 단결된 형태이기 때문에 뒤에 어쿠스틱 브레이크를 넣으려면 파격적인 만큼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MoP같은 곡에 브레이크를 집어넣을 때는 특히나 장르적 통일감을 유지하도록 신경써야 했다(더더군다나 격렬한 스래쉬와 온도차이가 상당한 멜로딕한 어쿠스틱 브레이크니...). 혹은 후렴구와 브레이크 사이에 조인트 역할을 하는 새로운 리프 하나를 넣던지.
한편 Exodus는 브레이크 이전에 절이 두 번 등장하되, 그 사이에 조인트 역할을 하는 리프가 있고 후렴구가 한 번만 등장하는 대신 길이 자체가 길다. 이런 구조는 이미 절과 후렴이 두 번 반복될 때와 다르게 아예 처음부터 뒤의 내용이 예측이 안가는 모험적인 형태이기 때문에, 어쿠스틱 브레이든 뭐든 등장시켜도 심한 뇌절만 하지 않는다면 절-후렴 두 번 반복 구조에 비해 어색함을 느끼게 하는 그 커트라인이 현저히 낮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들을 통해 봤을 때 Exodus로 대표되는 페이츠 워닝의 특징은 변화무쌍하면서도 자연스러운 작곡의 대가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페이츠 워닝이 난해해서 진입장벽이 높은 이유는 1번 때문이란 소린데, 우선 리프가 굉장히 불협화음적이고 괴랄하면서도 파워메탈답지 않게 멜로디가 많이 거세된 편이다. 게다가 프로덕션도 어딘가 블랙메탈스러워서 리프의 괴랄함이 더욱 부각되는 것 같다. 이런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곡이 바로 The Sorceress와 Prelude To Ruin이다. 특히 The Sorceress의 절 리프가 이 앨범의 가장 큰 유입절단기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하필이면 첫 곡이라... 그런데 단순히 괴랄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괴랄한 리프들이 다른 밴드들과 비교해봤을 때도 차별화됐다고 느껴질 만큼 한껏 꼬인 드럼 박자의 패턴에 종속되어 맞춰서 연주된다는 것이 페이츠 워닝의 또 다른 특징이다. 초창기 프로그레시브 메탈을 책임졌던 밴드지만 그 독특한 연주와 감성은 지금도 같은 장르 내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다.
리프가 괴랄한 것 만으로도 충분한데 시종일관 박자를 비트는 드럼와 협업을 하는 것이 아닌 종속적인 관계에 놓여있고 심지어 테크니컬하지도, 멜로디컬하지도 않다... 언뜻 보면 작곡력과 스타일이 위기에 다다른 것 처럼 보이는데, 이 모든 애매한 요소들을 단번에 최상급 재료로 승화시킨 조커카드가 바로 보컬 존 아치다. 사실 이 모든 것은 보컬이 존 아치이기 때문에 밴드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스타일이라고도 볼 수 있다. 혹은 밴드의 스타일이 이러하기 때문에 존 아치가 특히나 더 힘을 빡 준 것일 수도 있다. 즉,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자 결과인 것이고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내 다신 없을 결과물이 된 것이 바로 이 3집 Awaken the Guardian인 것이다. 그 독특함이 이 앨범에 쉽게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존 아치는 창법이 화려하고 내 인상으로는 거의 리드기타 한 대 분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멜로디 면에서 앨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고 실제 기타의 괴랄한 연주와 다르게 난해하지 않으면서 직접적으로 와닿는 멜로디를 구사한다. 특히 복수의 트랙을 사용해 성가대같은 연출을 하기도 하면서 약점이었던 멜로디 영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준다. 이로 인해 투박한 리프의 전개가 진행되는데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진다.
만약 이들이 불협화음적인 리프에 멜로디가 상당히 배제된 연주를 하는 것이 존 아치가 그만큼 날라다닐 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면, 유기적이고 서사적인 작곡을 철저하게 고집하는 면모를 보인 이유 또한 납득이 된다. 그니까 이들은 파워메탈의 기본소양이라고 할 수 있는 화려한 멜로디를 상당 부분 거세한 대신 그 틈을 보컬과 작곡력으로 메우기로 한 것이다. 리프 하나하나는 언뜻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대신 그 리프의 양을 폭발적으로 늘리면서 지루함을 덜고 부족한 부분은 보컬이 감당해주는 것... 그것이 이들의 방식인 것이다.
이런 방식을 내세우는 밴드는 정말로 흔치 않다고 생각한다. 진입장벽이 당연히 높을 수 밖에 없다. 리프의 양을 늘리니 곡 길이는 평균적으로 길 수밖에 없고 "이 밴드의 참맛은 복잡하고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도 결코 뇌절하지 않는 작곡력이다!" 라고 단번에 느낄 수 있는 내공이란 게 쉽게 쌓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점이 숨겨진 만큼 여러번 들으면 들을 수록 대단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들이다.
물론 Valley of the Dolls, Fata Morgana, Guardian 같이 표면적으로도 화려한 곡들 또한 있다. 특히 발라드인 Guardian을 이 앨범의 최고 명곡이자 유일한 명곡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그런 평가가 납득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밴드의 숨은 가치를 정말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나로써는 아쉬움이 남을 수 밖에 없다. 이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하나같이 깊이가 있고 투박한 만큼 진중하고 진심이 담겨있고(어떤 곡들은 멤버들의 개인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드럼 박자에 맞춘 펀치력 강한 리프가 주를 이루다보니 그야말로 밴드 멤버가 일심동체로 쾌속전진하는 듯한 와일드함이 느껴지며 80년대 초창기 프록메탈의 실험정신의 정수가 담겨있다. 옛날에 자주 들었던 이 앨범이 몇 년 전부터 촌스럽다고 느끼기 시작했었는데 현재는 그 생각을 다시 한번 고치고 코멘트 삭제 후 이 리뷰를 작성해본다. ... See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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