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ca –
The Quantum Enigma (2014) |
90/100 Jul 6, 2014 |
<맥시멀리즘(Maximalism)>
Epica의 6번째 정규앨범 [The Quantum Enigma]의 사운드는 심포닉 고딕 메탈에서 끌어올 수 있는 모든 피쳐(Feature : 특징)들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 결정체라고 정리할 수 있을 듯 하다. '심포닉'한 면을 사운드의 베이스로 삼으며 Simone의 보컬이 '고딕'의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출중한 드러밍과 파워풀한 기타 리프에서 볼 수 있듯이 '메탈'적인 부분도 놓지 않고 있는데, 이로 볼 때 이들의 이번 사운드를 '맥시멀리즘(Maximalism)'의 코드로 설명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보컬 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사운드 측면에서 고딕적인 어프로치를 통해 정체성을 내 세웠던 이들의 초기 디스코그라피들을 고려해보면, 이번작을 이전의 고딕적인 측면은 줄이고 보다 파워풀한 메탈과 장엄한 오케스트라에 집중한 조합으로 설명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모든 소리의 요소들을 극단으로 까지 몰고 완벽에 가까운 수준으로 조합했다는 점에서 '메탈+오케스트라'라는 단순한 조합 형식의 코드로 설명하기에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이는 그만큼 Epica의 이번 사운드가 한번 척 듣기에도 출중하다고 느낄 정도로 구성되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아티스트에게는 음악적으로 무언가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의무가 있는 동시에, 사운드가 새롭든 이전에 쓰이던 것이든 상관없이 음악적 요소들을 탁월하게 조합하여 '잘 만든' 앨범, 흔히 우리가 '클래식(Classic)'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보여줘야 하는 과제도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Epica의 이번 앨범은 사운드의 '새로운 측면'을 보여주는 면보다 '클래식'을 만드는 부분과 더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러한 측면이 '맥시멀리즘'과 연결되는 부분이기도 한데, 앞서도 말했듯 Epica의 맥시멀리즘의 핵심이 되는 부분은 파워풀한 메탈과 장엄한 오케스트라의 조합이다. 다만 무조건 파워풀하고 장엄한 요소들을 사용했다고 해서 수작 이상이 되기는 힘든데, 이로 볼때 본작을 수작 이상으로 평가하는 데는 그 이상의 요소들이 분명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The Quantum Enigma]에는 메탈과 오케스트라의 극적인 성격을 제대로 서포트 해주는 요소들, 예를 들자면 적재적소에 꽂아 넣는 Simone의 (메조)소프라노 보컬과 극적인 멜로디 라인, 프로그레시브틱한 접근들이 굉장히 탁월하다는 생각이다. 'The Essence Of Silence'의 사비(Sabi : 후렴)와 브릿지(Bridge : 후렴 이전에 등장하는 짧은 마디)는 Simone의 소프라노 부분을 극대화시키는 부분인데, 이는 하쉬 보컬(Harsh Vocal)이 주가 되는 벌스(Verse) 부분의 강렬함과 대비되어 극적인 연출을 보여준다. 후에 이어지는 'Victims of Contingency'는 위협적으로 들리는 오케스트라가 압권인 곡으로 파워풀한 기타 리프와 하쉬 보컬, Simone의 보컬이 자주 교차되며 병렬 진행하는 구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The Quantum Enigma]를 구성하는 곡들은 메탈과 오케스트라의 강점들을 꽉 잡고 있는 동시에 화려한 멜로디 라인과 출중한 보컬과 같은 요소들의 비중을 적절한 비율로 조합하면서 이번작의 성격, 즉 '맥시멀리즘'의 성격을 극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이러한 이번작의 성격을 가장 훌륭하게 드러내주는 트랙은 단연 'Chemical Insomnia'라는 생각이 드는데, Simone가 가진 음색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동시에 적절하다고 여겨질정도로 구성감있게 짜여진 프로그레시브틱한 곡구성은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다양한 느낌을 짧은 플레이타임 속에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고 싶다.
물론 이렇게 훌륭하고 빡빡한 사운드에도 아쉬움은 남는다. 이는 앞서도 말했듯 이들의 초기 정체성을 규정했던 고딕적인 어프로치가 거의 없어지고, 다른 심포닉 메탈 밴드들과 유사한 노선을 채택했다는 점과 연결되어 있다. 이들에게서 뭔가 색다른 분위기를 기대했던 청자들에게는 여러모로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Canvas Of Life'가 등장하기 전까지 쉴 새 없이 몰아치는 분위기가 다소 부담스럽게 들린다는 점 또한 앨범을 과연 완급조절을 잘한 '클래식'으로 부를 수 있는가하는 의문을 남기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본작을 '클래식'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니어 클래식(Near Classic)'으로 부르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다. 보다 쉬운말로 하자면 '수작 이상'.
그러나 확실한 것은 [The Quantum Enigma]와 같은 앨범은 결코 흔하지 않다는 사실이다. 음악적 역사에 대항하여 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심화시키기 위해 작금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선택하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맹점이 여러모로 제기되고 있는 요즘 자신감있게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는 길을 선택한 이들의 행보야말로 뚝심있다고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머리로는 부정할 수 없는 감각을 극대화시킨 본작이야말로, 표면적이고 피상적인 변화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청자들과 어떻게 하면 자신들의 정체성을 튀게 만들지만 고민하는 얄팍한 아티스트들에게 내리는 묵직한 철퇴와 같다고 생각한다. 자신들만의 것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 중요하지만 반대로 많은 사람들이 듣기에 훌륭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클래식을 만드는 일은 더 중요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본작을 '니어 클래식'이라고 부르고 싶지만, '이 앨범은 단연 클래식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충분히 클래식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이번년도에서 단연 가장 주목해야할 앨범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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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 Tranquillity –
Construct (2013) |
90/100 Jun 11, 2013 |
<트랑시(Transi)>
'트랑시'는 방금 죽은 시체와 완전히 썩은 백골의 중간 단계를 뜻하는 말로서, 본래 중세미술에서 기독교적 교리를 담아내는 데 쓰였던 소재다. 중세미술 작품에서 나타나는 트랑시의 모습은 해골에 가까운 마른 체형에 살점이 떨어질듯 말듯 달려있고, 머리카락은 거의 다 빠진 채 몇올만 남은 형태로 그려지는데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살이 붙어 있는 시체와 백골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흥미로운 중간단계의 존재. 생명과 비생명의 간극을 보여주는 시체의 모습! 트랑시를 처음 접했을 때 떠오른 이미지는 천국과 지옥 사이에 존재한다는 '연옥'이었다. 불길에 자 신의 죄와 생명을 완전히 태울 때까지 참고 기다려야 한다는 연옥 말이다.
그리고 Dark Tranquillity의 'Construct'를 들었을 때 나는 다시 연옥을 떠올리고 트랑시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Dark Tranquillity가 추구하는 음악은 데스메탈의 거친 느낌과 차가운 멜로디라는 대조적인 두 요소의 결합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Damage Done에서는 데스메탈의 거칠고 빠른 템포위에 수려한 멜로디를 얹는 방식이었고, Fiction은 보다 테크닉한 라인전개와 한층 톤이 낮아진 멜로디를 복잡하게 구성하는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디스코그라피는 크게 위의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실험과 구조화를 반복하는 흐름을 가지고 있다. 덧붙여 말하자면 'Construct'의 전작인 'We are the Void'는 데스메탈의 날카롭고 육중한 리프를 극대화한 극히 '실험'적인 작품이 아니었는가 생각해본다.
'Construct'는 전작의 날카로운 느낌을 죽이는 대신 밴드 특유의 명상적인 멜로디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렇지만 이것이 메탈의 느낌을 완전히 지워버렸다는 것은 아니다. 유별났던 작품인 'Projector'를 제외하고 본다면 이들은 대체적으로 강렬함과 특유의 차분함을 이종교배 시키면서 '야누스'와 같은 이중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달리 'Construct'에서는 밴드가 가지고 있던 '특유의' 차분함이 상위 요소로 등장하며 강렬함이 그 상위요소를 보조해주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Michael의 처절한 보컬과 간혹 엠비언트를 연상시키는 꽉찬 느낌의 기타리프, 수면위로 떨어지는 물방울같은 신디사이저와 낮은 음역대를 돌아다니는 베이스. 간혹 분위기를 적절하게 다운시키는 Michael의 클린보컬까지 많은 요소가 일관된 분위기아래 차분히 정돈되어 있는 느낌이다. 어떻게 보면 강렬한 곡들이 많고 발라드가 한 두곡 정도 있었던 다른 디스코그라피를 180도 반전시킨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곡 하나하나가 소반전을 이루면서 전체적인 앨범의 분위기 또한 바뀌는 '대반전'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까.
'Construct'를 들으면서 '트랑시'가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작을 통해 Dark Tranquillity는 야성과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수라의 정체성을 넘어서 인간적인 얼굴 위로 존재의 무거운 고뇌를 새겨넣는 조각가의 모습으로 변모한 것 같다. 비록 음악적 구조이지만 이것이 아직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해골인 트랑시의 얼굴을 조각하는 듯한 느낌을 준 것이다. 밴드는 자신들이 오랫동안 탐구해온 음악적 가치를 미니멀하게 담아내는 데 어느정도 성공한 것일까? 그 답은 계속되는 청자들의 평가와 피드백 속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글을 쓰는 나에게 있어서만은 그들의 의도가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중세시대의 트랑시가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면서 바이올린을 들었다면 이런 음악이 나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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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eror –
Prometheus: The Discipline of Fire & Demise (2001) |
95/100 May 27, 2013 |
<'대부'에서 다시 '황제'로>
지금은 해체됬지만 Emperor를 떠올릴 때면 항상 밴드 이름 그대로 '황제'라는 웅장하면서도 장엄한 타이틀을 가장 먼저 상기하게 된다. 다만 그 타이틀은 본작 이전에 발매한 1,2집 시절의 Emperor에게 해당되는 얘기다. 지글거리는 리프에차디찬 노르웨이의 숲속위로 하얀 눈이 쌓이는 듯한 환각을 불러일으키는 심포닉적 요소를 덧입힌 그들의 음악은, 지금 들어봐도 '황제'라는 타이틀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아니, 실상 '황제'라는 타이틀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 와서야 붙일 수 있는 칭호일 것이다. 시간이 지난 지금에서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것을 보면 이제 초기의 Em peror를 'Black Metal Wizard'라는 상징으로 불러도 될 것만 같다.
1999년의 'Equilibrium'을 기점으로 이들이 형성하고 있던 '황제'의 이미지는 점차 변해간다. 그 분수령의 중심에는 음악적 형태의 급격한 변화가 있다. 그런 점에서 Equilibrium과 본작 Prometheus의 Emperor는 황제보다는 '대부(Godfather)'라는 명칭이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실상 '대부'라는 호칭은 최근 Ihsahn의 개인적 행보에 딱 어울리는 듯 싶지만, 이미 Equilibrium과 본작에서부터 Ihsahn의 고유한 느낌은 다소 복잡한 형식으로 피어나기 시작한다.
전체적으로 블랙 메탈 특유의 꽉찬 리프위에 심포닉적 요소가 깊게 깔리며 공간감을 형성하는 1 2집과 달리 본작은 아방가르드하고 이전보다 약간 그루브한 느낌의 리프를 중심으로 심포닉과 블랙 메탈을 교차로 넣는 복잡한 형태를 취한다. 이런 작곡의 형태에는 어떤 확정된 방식이 없어서 감상 포인트를 짚는 데에도 상당한 집중을 요구한다. 1, 2집의 느낌을 주는 곡은 In the Wordless Chamber가 유일한데, 이마저도 블랙 메탈과 심포닉의 정신없는 병렬 진행과 계속되는 변주로 인해 오히려 앨범의 복잡함을 가중시키는 느낌이 있다. 생목을 긁어대는 듯한 스크리밍에 가까운 Ihsahn의 히스테릭한 창법도 본작의 유니크함을 더해주는 요소라고 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본작을 '뛰어나다' '혁신적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떤 낯선 느낌의 악기를 배제하고, 기존에 있던 심포닉과 메탈적 요소들을 가지고서 완전히 새로운 느낌을 주조해낸 것에 있다. 최근 Ihsahn의 솔로작과 이 앨범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Prometheus를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현대적 기법으로 새롭게 채색된 지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기법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상상해왔던 지옥의 지독한 유황 냄새와 타오르는 불길의 빛을 지니고 있다.
본작은 10년이 넘게 지난 지금 들어봐도 혁신적인 느낌으로 가득하다. 지금까지도 그렇게 들린다면 아마 완전히 분석되고 인정되기 까지는 조금의 시간이 더 필요할 지 모른다. 그렇지만 아직까지도 당혹스런 느낌을 주는 요소들에 매달리기에는 작품의 완성도에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사견이다. 사실 '완성'보다는 '치밀함'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릴 정도로 본작의 느낌은 타이트하다. 그 점이 Prometheus가 유작으로서 약간 과했던 점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타이틀이라는 왕관은 결국 청자들의 선택에 달려있다. 결국 얼마 있지 않아서 Emperor는 '대부'에서 다시 '황제'로 군림하게 될 것 같다. '귀납적 논리의 오류'가 있는 것 같지만 그걸 심적으로 증명하는 현상들을 몇개 발견했다. 일례로 Youtube에는 10년도 더 지난 음악에 대한 놀라움과 끊임없는 분석, 그리고 젊었던 시절 Ihsahn의 게이설(..)에 대한 화끈한 댓글이 지금도 '10 Min ago'의 간격으로 올라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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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orexia Nervosa –
Drudenhaus (2000) |
90/100 Apr 27, 2013 |
<폭력적 미학의 현(絃)>
2000년대에 발매된 Drudenhaus라지만 십년이 넘게 지난 지금에서도 여러 리스너들에게 회자되는 것을 보면 그 명성이 이름뿐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게 된다. 앨범이 발매된 당시에도 스트레이트한 전개력 뒤에 다른 감상의 포인트가 숨어 있지 않을까하는 의견이 제기됬지만, 실상 별 생각 없이 본작을 몇번씩 풀로 돌린 이들만큼 본작의 매력을 꿰뚫고 있는 사람들은 없을거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확실한 음악 스타일만큼이나 본작에 실린 청자들의 호불호도 명확했지만 그만큼 Drudenhaus의 특징을 비교설명하는 데 있어서 좋은 자료 또한 없을 것이다.
메탈 과 심포닉을 조합하는 과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두 요소를 일정 비율로 조율하는 일이다. 대체적으로 메탈쪽이 거칠고 스피디함을 담당한다면 심포닉은 메탈이 간과한 섬세함과 웅장함을 보강하는 방식으로 곡의 전체적인 얼개가 잡히게 된다. 이러한 과정에서 클래식의 선율에 맞게 기타와 베이스의 속도를 조절하거나 드럼의 템포를 늦추는 등의 테크닉을 통해 완급조절까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통상적인 심포닉 메탈과 다르게 Anorexia Nervosa는 메탈적 요소와 심포닉적 요소를 동일선상에 놓고 사운드의 일관성을 추구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속칭 '패스트 블렉 메탈'이라고 불릴 만큼 시종일관 빠른 드러밍에 뭉개지는 듯한 디스토션을 얹는데, 심포닉적 요소까지 패스트한 박자를 따라가는 수평적인 사운드가 인상적이다. 이러한 방식은 곡의 입체성을 살리지는 못하지만 반대로 스트레이트한 특징을 부각시키는 측면이 있다. RMS Hreidmarr의 위협적인 스크리밍과 녹음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노린듯한 높은 피치는 청자들의 귀를 피곤하게 만들 정도의 날카로움까지 가미시킨다. 이렇게 불순한 의도 없이, 순수한 음의 측면에서 볼 수 있는 퇴폐적인 아름다움은 '폭력의 미학'이라고 불리는 예술적 틀 속에서 설명될 수 있을법한 요소를 가진 듯하다. 국적이 프랑스라는 점도 밴드의 데카당스적인 느낌를 강화할 수 있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운드를 하나하나 떼어놓으며 점차 '소리' 그 자체의 탐구에까지 이른 실험이 많아지면서, 세삼 옛날 방식의 작법이 소홀해지는 것을 느낀다. 본작을 다시 찾는 사람이 많아지는 이유가 그러한 방식의 반작용이라는 생각도 든다. 다시 들어봐도 본작의 시끄럽고 가학적인 사운드는 실체마저 부정하는 요즘의 소리와는 대척점에 놓여있는 것 같다. 언젠가 밴드가 다시 돌아온다면 그 폭력의 대상을 확실하게 정했으면 좋겠다. 아마도 그들의 광폭한 소리가 오늘날의 허황된 음악 논리들을 다 집어삼켜 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이상한 상상을 할만큼 Drudenhaus는 실제적인 이미지를 살아있게 하는 환상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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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eth –
Heritage (2011) |
90/100 Apr 18, 2013 |
<소리의 뼈>
Opeth의 2011년작은 2008년 Watershed부터 감지되던 변화를 수면상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기존에 Opeth가 보여주던 육중한 데스메탈의 리프와 그로울링을 완전히 제거하면서 멜로트론의 은은함과 블루지한 기타 톤이 주요소로 격상되는데, 이것은 마치 그들이 추구해오던 음악적 형태에서 살이 떨어져나가고 간소하게 뼈대만 남은 느낌을 들게 한다. 결과적으로 이전의 무겁고 농도 깊은 멜랑콜리함에서 벗어나 다소 가볍고 은은한 분위기를 가지게 되었다. 본작을 제 2의 Damnation으로 볼 수 없는 것 또한 분위기 상 무겁고 가벼운 느낌을 차이를 감각적으로 인지하는 것에서 그 실마리를 찿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면에서 'Heritage'는 2011년 전에 발표한 Opeth의 작품을 볼 때와는 확연히 다른 감상법을 요구한다.
Opeth의 골수팬들이 가장 당황하고 부정적인 멘트를 남겼겠지만, 역설적으로 Heritage에는 Opeth를 오랫동안 들어온 사람만이 감지할 수 있는 요소가 많다. 예를 들면 기존 Opeth의 음악에서 자주 사용되는 기타와 베이스의 잔음, 그리고 Ghost Reveries에서 부터 그 잔음을 일정부분 대신하게 된 키보드와 멜로트론 사운드는 실상 Opeth의 음악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Heritage에서도 여전히 작곡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다만 키보드와 멜로트론이 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서 새로운 방법을 중시하는 이른바 '전복'적인 작곡 방식은 이전의 방법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Nepenthe에서 Häxprocess으로 이어지는 앨범의 중간 파트는 그야말로 키보드와 멜로트론만이 수면위로 넘실거리고 사라지는 음(音)의 바다라고 묘사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이런 전복적인 방식은 기타의 비중을 줄이고 다른 요소를 강조시킨 방법의 차이일 뿐, 본질적인 측면에서 이전의 음악과 뼛속부터 다르다고 볼 수는 없다.
또한 소리에 대한 일종의 연구가 있다는 것도 조심스레 예상할 수 있는데, 이는 기존에 Opeth가 소리위에 여러 소리를 덧입히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구성하는 것과는 대조된다고 할 수 있다. Blackwater Park를 여러 소리를 합쳐서 만든 '새로운 하나의 소리'이라고 평가한다면 반대로 Heritage는 뭉쳐있던 것들을 하나하나씩 '해체'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번 앨범에 수록된 10개의 트랙들이 다 어딘가 비어있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그 때문일 것이다. 소리를 하나하나 떼어놓으면서 악기가 가진 고유한 질감이 잘 살아나는 것은 본작이 가진 최대의 메리트라고 볼 수 있다.
비록 이전의 음악과는 다르지만, Opeth를 꾸준히 들어온 사람이라면 이러한 차이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차이들을 받아들이는 심정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개인적으로 글을 적는 나는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이 본작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소리의 뼈', 즉 가장 기본적인 소리의 근본이야 말로 우리가 물려받아야 할 하나의 유산(Heritage)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Heritage는 예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논의되어 왔던 '음'에 대한 Opeth식의 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몇몇 팬들이 Pink Floyd나 King Crimson을 들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는 말(조금 불평도 섞인 것 같은)도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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